..가이드가 골라준 음식이었다면, 영어 메뉴를 보고 고른 것이었다면, 비싼 코스 요리의 일부로 나온 것이었다면, 이렇게 평생 기억할 만한 추억은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여행준비의 가장 큰 장점은 여행이 풍성해지는 게 아니라 추억이 풍성해지는 거다. 여행을 앞두고 그 나라 말을 조금만 공부하면 더 많은 추억을 만들 수 있다. 메뉴판을 읽고 원하는 걸 주문하는 데 필요한 단어들을 익히는 일은 특히 중요하다.

..나는 한국인의 영어 실력을 세 단계로 나눈다. 돈 쓰는 데 필요한 영어가 가능한 사람은 중간 레벨이다. 이 책의 독자 대부분이 여기에 속할 것이다. 나도 여기에 속한다. 영어를 사용하며 돈을 쓸 수는 있는데, 돈을 벌지는 못한다. 돈 버는 데 필요한 영어까지 가능한 사람이 상위 레벨에 있고, 영어가 잘 안 통해서 돈을 쓰는 데도 적지 않은 불편함을 겪는 사람이 하위 레벨이다.

..부모님과 함께 떠나는 여행의 최대 장점은 여행 이후에 드러난다. 겨우 며칠의 여행이 최소 몇 년 동안의 대화 소재가 되기 때문이다. 부모 자식 간의 대화 소재도 되고, 두 분의 대화 소재도 되며, 부모님이 친구들에게 은근히 자랑할 수 있는 이야깃거리도 된다.
..결코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 시간이다. 여행 상품을 사드리는 것과 함께 여행을 떠나는 것의 가장 큰 차이는 ‘함께한 시간’이고 ‘함께 만든 추억’이다. 함께 한 여행은 눈에 보이는 비용보다 더 귀중한 ‘시간’이 투입된 것이라, 당연히 더 오랫동안 우리에게 기쁨을 준다. 향기가 오래가는 꽃처럼.

..『질문이 답을 바꾼다』라는 책에는 다음과 같은 대목이 나온다. "사람들이 가장 갈망하는 것은 두 가지다. 인정받는 것, 그리고 상대가 자기 말에 귀 기울여주는 것. (…) 상대가 말을 너무 많이 한다고 불평하는 사람은 있어도, 너무 많이 들어준다고 불평할 사람은 없다."

..물론 잊어버린다. 한가할 때 가끔씩 그 별들을 이것저것 눌러보는데, 도대체 내가 무슨 이유로 별을 붙여놓았는지 알 수 없는 장소들도 있다. 인생의 어느 순간, 나중에 돌이켜보면 하등 중요하지 않은 일에 쓸데없이 마음을 빼앗겨 연연했던 것처럼, 그때 그곳에 별을 붙인 사람도 나고, 지금 다시 보며 이 별을 지우는 사람도 나다. 그렇게 별들은 나타났다 사라진다. 유난히 오랫동안 유별나게 반짝이는 별도 있고, 한동안 별이었다가 소리 소문 없이 먼지가 되는 별도 있다.

..대신 언젠가 꼭 가보겠다고 마음먹은 경기장은 참 많다. 그중에서도 다음 세 곳은 정말 가고 싶은데, 접근성이 워낙 떨어지는 곳들이라 언제쯤 꿈이 이루어질지는 모르겠다.
..노르웨이 로포텐 제도에 있는 헤닝스베르 스타디움Henningsvaer Stadium, 크로아티아 이모트스키에 있는 스타디온 고스핀 돌라치Stadion Gospin Dolac, 그리고 아이슬란드 베스트만나에이야르에 있는 하스테인스뵐루르 스타디움Hasteinsvollur Stadium.

..짧은 여행 중에 그 나라의 독특한 시스템을 제대로 파악하기는 쉽지 않다. 뭔가 특이한 점을 알게 된다고 해도 그 연원을 깊이 이해하는 건 또 다른 문제다. 그러니 여행 전후에 여행지에 관한 책을 읽거나 여행 중에 그들이 사는 방식을 유심히 살펴보는 것은 그런 맥락을 이해하는 데, 나아가 우리 생활에 필요한 교훈이나 아이디어를 얻는 데, 그리고 자신이 아는 것이 전부라 생각하며 쓸데없이 우기거나 타인에게 간섭하는 행위를 줄이는 데 확실히 도움이 된다. 여행자는 호기심이 많고 고집은 적어야 한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이시가키에서 배를 타고 4시간을 더 가면, 요나구니라는 작은 섬이 있다. 일본의 최서단. 비행기로 갈 수도 있다. 나하에서는 1시간 20분, 이시가키에서는 30분 거리다. 이 섬은 1986년에 우연히 발견된 해저 지형 때문에 유명해진 곳이다. 인공적으로 만든 것인지 자연적으로 생성된 것인지 아직 규명되지 않은 매우 이상한 형상들이 수심 3미터에서 25미터 사이에 퍼져 있다. 사진을 봐서는 도저히 자연적으로 만들어지기 어려워 보이는데, 누가 언제 어떻게 만들었는지, 이게 어떻게 바닷속에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이빙이 가능하면 직접 들어가서 볼 수 있고, 나처럼 수영도 못하는 사람들은 글라스보트나 반잠수정을 타고 둘러볼 수 있다. 가깝지만 먼 곳. 여기도 언젠가 가볼 수 있을까?

..외교관 출신의 우동집 사장님인 신상목의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일본사』를 일본 여행 전이나 후에 읽으면, 아, 그게 다 역사적 맥락이 있구나, 하며 무릎을 탁 치게 된다. 이 책을 흥미롭게 읽은 사람이라면, 다음번 도쿄를 방문할 때 ‘에도도쿄박물관’이라는 곳에 가보기를 추천한다. 그 책의 실사판이 그곳에 구현되어 있다....

..하지만 이렇게 실용적인 제품을 사는 것만으로 여행 중의 쇼핑 욕구가 전부 채워지지는 않는다. 쓸모는 없더라도, 오로지 추억을 만들고 그 여행을 기념하기 위한 물건도 사야 한다. 여행은 결국 즐거운 기억을 더 많이 남기기 위해서 가는 거 아닌가. 우리의 한정된 기억 공간에 즐거운 기억을 꾸역꾸역 집어넣어서, 어느 날 랜덤으로 떠오르는 기억의 맛이 씁쓸하지 않고 달콤할 확률을 높이기 위해서 시간과 돈을 쓰는 거 아닌가. 사진도 그래서 찍는 거고. 아무 기념품도 사지 않는 것보다는 뭐라도 사는 게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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