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말은 항상 이렇게 끝났다. "하지만 난 슬퍼요." 슬프다는 건 대개 시간이 남아돈다는 뜻이다. 진짜다. 내가 자격증 있는 상담사는 아니지만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슬프다는 건 대체로 시간이 너무 많다는 뜻이다.

...그러나 내가 실제로 사기를 당했든 아니든, 나는 사기를 당하지 않았다고 믿기로 선택했다. 살면서 수많은 사람을 속여서 수많은 일을 믿도록 했던 나다. 그런 나에게도 이번 일은 그야말로 생애 최고의 업적이 될 참이었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행동이 합리적이라고 나 스스로 믿도록 만드는 것! 옳진 않더라도 나름 합리적인 일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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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말하는 겁니다, 마드무아젤. 죽음은 불행히도 편견을 낳지요. 이미 죽은 자에게 유리한 편견 말입니다. 지금 막 아가씨가 제 친구 헤이스팅스에게 한 말을 들었습니다. ‘남자친구 하나 없는 착하고 밝은 아이였다’라는 이야기 말입니다. 당신은 신문 기사를 흉내 내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 말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젊은 여자가 죽으면 으레 그런 식의 말이 나옵니다. 그녀는 밝고 행복하고 친절하고 걱정거리나 불건전한 인간관계 같은 건 전혀 없었다고 말입니다. 우린 죽은 자에게는 언제나 몹시 관대해지기 마련이니까요. 지금 같은 때에 제가 뭘 해야 하는지 아십니까? 엘리자베스 바너드를 알고 있으면서 그녀가 죽었다는 것을 모르고 있는 사람을 찾아내야 하는 겁니다. 그러면 아마도 도움이 되는 말, 곧 진실을 들을 수 있겠지요."

.."자네 말이 맞고말고, 친구. 이제까지는 줄곧 ‘내부’로부터 수사하는 것이 우리가 할 일이었네. 중요한 것은 희생자의 개인사였단 말일세. 중요한 쟁점은, ‘그 죽음으로 누가 이익을 보는가? 피해자 주변에서 범죄를 저지를 만한 기회는 어떤 것인가?’ 하는 것이었네. 언제나 ‘사적인 범죄’였지. 하지만 이번에는 우리가 함께 일한 후 최초로 냉혹한 범죄, 특정 개인과 상관이 없는 살인이 등장한 걸세. ‘외부’로부터의 살인 말일세."

"...헤이스팅스, 뭔가 숨겨야 할 것이 있는 사람에게 대화만큼 위험한 것도 없다네! 언젠가 어떤 현명한 프랑스 노인이 내게 말해 주길, 숨기는 것을 내놓게 하는데 오래 얘기하게 하는 것만큼 효과적인 수단도 없다는 거야. 인간이란 말일세, 헤이스팅스, 대화 속에서 자신을 드러내고 개성을 과시할 수 있는 기회를 뿌리치지 못하는 존재라네. 그럴 때마다 사람은 스스로를 드러내게 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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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이 가늘고 뾰족한 가위로 그 검은 실을 자르고 핀셋으로 집어서 하나씩 뺀다. ‘따끔’보다도 실을 뺄 때의 슥슥슥 하는 진동이 정말 싫다. 자신이 무력한 식자재가 된 듯한 느낌이다. 사람의 몸도 실은 고깃덩어리라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영토 문제라는 것은 공격받은 측이 포기했을 때 끝이 난다. 당연하다면 당연하다. 공격하는 측, 영토를 원하는 측은 언제까지나 계속 집적거린다. 손에 들어올 때까지 집요하고 끈질기게. 거기에 지쳐서 ‘이제 모르겠다’라고 생각하면 공격받는 측은 끝장이다. 패배가 확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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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123p.
..그 밤, 우리 집을 올려다보던 어머니의 마음은 도대체 어떤 것이었을까요. 왜 들어갈 생각은 않고 하염없이 집을 바라보는 데에 정신이 팔려 있었던 걸까요.
..오랜 시간이 더 지난 후에야 나는 그 밤 어머니를 사로잡고 있었던 것이 두려움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도무지 손안에 쥐어지지 않고, 어떻게 해도 온전히 자신의 것이 되지 않는 그 집을, 그럼에도 결코 포기가 되지 않는 자신의 마음을 어머니는 두려운 마음으로 올려다보고 있었던 게 아닐까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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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p.
.."아이하고 다니면 아이들 마을, 스님하고 다니면 스님들 마을이야. 어디나 그렇지 않아?"
..맞는 말이었다. 야쓰다하고 다닐 때 이 도시는 여행자의 도시로 보였다. 사가르하고 함께 다니기 때문에 아이들의 모습이 눈에 더 잘 들어오는 것이리라.

212p.
..‘앎‘이란 고귀하고, 그것을 널리 알리는 일에도 긍지가 깃든다. 그렇게 믿기에 퇴직한 뒤에도 기자로 살아갈 결심을 한 것이다.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사람은 나니까, 내가 해야만 한다.

275p.
.."제 생각은 비슷하지만 다릅니다. 저는 완성을 원합니다. 시든 그림이든, 가르침이든, 인류의 예지가 응축된 완성품을 만들어내기 위해 저마다 노력하고, 지혜를 짜내고 있는 건 아닐까요? 부처님은 철학 분야에 한 조각을 덧붙였습니다. 굉장히 크고, 중요한 조각을 더한 거지요. 그렇다면 범천의 설득은 헛수고가 아닐 테지요.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449p.
...지휘자 레너드 번스타인은 위대한 일을 해내려면 두 가지 요소가 필요하다고 했다. 하나는 계획. 또 하나는 약간은 촉박한 시간.

518p.
..BBC가 전하고, CNN이 전하고, NHK가 이미 전했더라도 내가 글을 쓰는 의미는 거기에 있다.
..몇 명, 몇백 명이 제각각의 시점으로 전하는 글을 통해 우리는 이 세상이 어떤 곳인지 알아간다. 완성에 다가간다는 것은, 내가 어떤 세상에서 살고 있는지 인식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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