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으로 콩갈다 - 콩가루 집안에서 태어난 아이의 19년 인생 여행기.박웅현 크리에이티브 교육법
박연 지음 / 북하우스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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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아홉, 스무살 초반 젊이들에게서(나는 늙은이인가?) 당찬 말들을 듣고 짧은 삶을 회고하는 일이 잦아진다
나는 늙은이 맞다
마음이 더욱 그러한

독서 끝무렵 이 친구는 세상을 즐기는 것은 잘 하는데 바라볼 줄은 모르는구나 하고 안타까워했는데
그마저도 나름대로의 봉사철학으로 무마시켜 주어 얼마나 다행이었던지
더불어 사는 내용이 없을까봐 혼자 가슴 조였다, 후후

저자 박연 양 말대로 '대한민국 모든 가정을 콩가루 집안으로 만들기 위한 필독서'라고 아니 할 수 없는 책이다
감사히 잘 읽었다
그리하여 가족들에게 읽기를 강요했다
부모들에게 위로와 또다른 길을 제시해주는 사례였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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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건축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연소시켜야 할 대상이다
- 까뮈

  

'아! 이쁘다'하고 지나가는 것이 아니다
개인적인 취향, 사회적인 맥락, 환경의 영향
그리고 역사의 흐름에 따라 필요에 의해 창조되는 미적 표현 방법이다
따라서 관련된 지식을 많이 가지고 있을 수록 깊이 이해할 수 있다
- '예술'에 대한 박연 양의 생각

(지당하신 말씀이다, 그래서 사진찍기가 더욱 어려워진다)

  

아마도 삶은 순간들의 합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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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송 전형필 - 한국의 미를 지킨 대수장가 간송의 삶과 우리 문화재 수집 이야기
이충렬 지음 / 김영사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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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년에 봄, 가을 소장전을 여는 간송미술관을 찾아가보기 전에 이 책을 읽었다
한참을 미뤄두었던 책을 전시회를 빌미로 이제서야 읽은 것이었다
이틀에 걸쳐 읽을 정도로(물론 종일 책만 읽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니) 빠르게 읽어나갔는데
아주 오랜만에 읽은 사람의 일대기(?..., 잘 읽지 않는 분야다, 그래서 내가 남들과 많이 다른 모양이다 ㅠ.ㅠ), 너무 큰 감동이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훈민정음 해례본을 수장한 일화, 보화각에서 민족의 유산을 지켜준 이들에게 큰 절을 하며 오열 할 때,
마지막 부분에서 만난 간송의 큰 문화예술 사랑까지 읽어내려가니 감동과 울음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북받쳐 오른다
간송이 울 때 나도 울었고, 간송이 웃을 때 나도 웃었다

아름다운 사람, 귀한 사람
아름다운 책, 귀한 책이 아닐 수 없다

올 여름 주목할 만한 책으로 올려놓고 남들에게 권유만 했지 눈길만 주기를 여러번... 이제라도 읽게 되어 간송을 알게 되어 감사하다
2006년 전시에 못 가봤다는 것에(그때는 알지도 못했다) 괜시리 배가 아파오지만, 이제라도 알게 된 게 어디랴
이번 전시는 '화훼영모대전', 마음에 드는 첫 발걸음

 
하늘이 내려준 집안의 유산으로 민족의 유산을 지켜낸 사람
누가 또 이러할 수 있을지...
존경스럽고 또 존경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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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은 무겁게, 손은 공손하게, 눈은 바르게, 입은 신중하게, 소리는 고요하게, 머리는 똑바르게,
숨소리는 고르게, 설 때는 의젓하게, 낯빛은 단정하게
- 《소학》의 아홉가지 몸가짐 中

 

(어린 아이들이《소학》을 읽고 모두 다 이해하지는 못했겠지만, 그 옛날 지금의 아이들과는 달리 정신 연령이 높았을 것(타의적이었건, 주입식이었건, 외웠건 간에) 같다고 생각하면 엄숙해진다
요즘은 직접적으로 익히지 않아 이렇게도 힘이 드는 것인지...
에돌아 쿨하고 친절하게 인성교육을 하고, 인성교육 동화도 읽어주지만
받아들이는 강도나 깨달음이 각각 다르긴 해도 비장함이나 진지한 분위기가 형성되지 못하는 것에서 살짝 한계를 느끼게 된다
정말 예전처럼 《소학》이라도 읽으며 자라야 하는 것일까...)

  

" [...] 아무튼 나는 역사소설을 통해서 민족에 이바지하려고 하니, 아우도 장래를 계획할 때 무엇으로 민족과 함께 할 수있을지 잘 생각해 봐."
(p. 58)

  

" [...] 옛 선비들은 세상에 나가 출세하고 이름을 알리기보다, 서재에서 학문과 세상의 이치를 익히면서 자신의 뜻에 맞게 사는 것을 훨씬 더 가치 있게 여겼지. 그래서 붓과 벼루를 서재에 두고 시를 짓고 글씨를 쓰며 마음을 다스렸단다. [...] "
(p.p 58~59)
 

 
<<세종실록>> 1446년 9월 29일자

계해년 겨울에 우리 전하께서 정음 28자를 처음으로 만들어 예의를 간략하게 들어 보이고 명칭을 '훈민정음'이라 하였다. 물건의 형상을 본떠서 글자는 고전을 모방하고, 소리에 인하여 음은 칠조에 합하여 삼극의 뜻과 이기의 정묘함이 구비 포괄되지 않은 것이 없어서, 28자로써 전환하여 다함이 없이 간략하면서도 요령이 자세하면서도 통달하게 되었다. 그런 까닭으로 지혜로운 사람은 아침나절이 되기 전에 이를 이해하고, 어리석은 사람도 열흘 만에 배울 수 있게 된다. 이로써 글을 해석하면 그 뜻을 알 수가 있으며, 이로써 송사를 청단하면 그 실정을 알아낼 수가 있게 된다. 자운은 창탁을 능히 분별할 수가 있고, 악가는 율려가 능히 화합할 수가 있으므로 사용하여 구비하지 않은 적이 없으며 어디를 가더라도 통하지 않는 곳이 없어서, 비록 바람소리와 학의 울음이든지, 닭울음소리나 개 짖는 소리까지도 모두 펴현해 쓸 수가 있게 되었다.
마침내 해석을 상헤히 하여 여러 사람에게 이해하라고 명하시니, 이에 신이 집현전 응교 최항, 부교리 박팽년과 신숙주, 수찬 성삼문, 돈녕부 주부 강희안, 행 집현전 부수찬 이개, 이선로 등과 더불어 삼가 모든 해석과 범례를 지어 그 경개를 서술하여, 이를 본 사람으로 하여금 스승이 없어도 스스로 깨닫게 되는 것이다.

 

세상을 초탈한 이름난 방울새 작은 둥지에 살며
저녁 종소리에 돌아가는 나그네 짐짓 수레를 멈추네
나이 들어 푸른 등불 아래서담소 주고받자니
흐르는 물 뜬구름처럼 지난 일 헛되어라
우스워라, 나는 깊은 밤 술잔만 자주 기울이는데
부럽게도 그대는 옛사람의 글을 많이 읽는구려
차라리 도연명처럼 벼슬을 버릴지언정
연못물을 말려 물고기들을 어렵게 하지 말라
 

전형필이 그 무렵 지인에게 써준 글이다. 그의 처지를 아는 사람이라면 그 절절한 심정을 눈치 챘으리라.
전형필은 재단에서 빚을 갚지 못해 학생들이 피해를 입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도연명이 벼슬을 버리듯, 한남서림 건물도 팍고, 가락동에 남아 있던 땅도 팔고 ...... 팔 수 있는 것은 다 팔아, 연못에 물을 대듯 재단에 돈을 댔다. 서호와 도자기 몇 점만 팔면 해결할 수 있었겠지만, 전형필은 수장품을 지키기 위해 몇 년에 걸쳐 남아 있던 재산을 처분했다.
(p.p. 392~3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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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들
김중혁 지음 / 창비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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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 '좀비'일 것이라 예상했지만 독특한 상황 설정과(편혜영의『재와 빨강』만큼은 아니지만) 함께 이 작가라면 엉뚱한 소설을 써 볼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여러 감독들 운운하며 영화로 만들어지면 재미있겠다는 생각까지
하지만 처음 예상했던 대로 좀비 이야기는 아니었던 것이다
사람냄새 나는 이야기

산문 쓰시는 솜씨를 보면 소설 쓰기와 참 다른 인상을 주는 작가 중 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소설을 읽고 난 후 작가의 느낌은 실제로 작가를 만나본(인사 나누고 사인 받으며 질문 하나 던진 게 전부지만) 느낌과 『좀비들』의 느낌과 비슷했다
(『대책없이 해피엔딩』같은 느낌은 아니더란 말이다, 그래서 다행이란 말을 하고픈거냐???
그 두 사이를 오가는 사람이겠거니...로 마무리, 후후
실제로 만나 뵈니 사진들은 왜 그렇게 찍혔던 것입니까... 썩 훌륭한 외모였습니다, 하하하)

 
케겔 노인의 대화와 상황들을 읽노라면 재미있는 외국영화를 보는 것 같았는데 배경이 한국의 어느 외곽지역이라는 설정만이 낯설 뿐 별명, 마을 이름, 뮤지션, 음식... 마치 외국소설과 한국소설을 반반 섞은 듯해서 흥미로웠다

『리스본행 야간열차』와 함께 영화화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소설 초반에 했더랬다(마지막까지 이 생각이 지속되지는 않았지만, 후후 

대신 빠른 스피드를 자랑하며 웃기는 한국영화 스타일이 아닌 빔 밴더스, 코엔 형제, 아키 카우리스마키 같은 감독들이 만드는 영화면 딱 좋을 것 같다는 생각
하지만 한국 배우, 한국 배경이면 죽었다 깨어나도 맞추기는 힘든 느낌 =ㅅ=;; 우린 너무 그런 것들에 익숙해져 있으므로)

고리오 마을의 장례식은 에밀 쿠스트리차 감독 영화의 한 장면처럼 유쾌해서 우리의 주인공들을 당황스럽게 만들었는데 내 마음에는 들더라
 

『리스본행 야간열차』에서 등장하는 프라두가 남긴 수많은 글과 편지
그것들을 간직하고 있는 사람들은 그 글들을 읽지 않은 경우가 많았는데, 나는 읽는 내내 답답함을 느끼기도 했다
그레고리우스가 이야기를 끌고 가게 하기 위해서라기에는 진부한 느낌마저 들었던 것이다
허나 이안이 지훈에게 엄마의 노트를 읽지 않는(못하는) 이유를 말하는 부분에서 상기 느낌을 조금은 털어낼 수 있었다
그래봤자 문학적 틀일테지만
나 또한 남의 이야기에 관심이 많은 인간인지라

 
김작가님의 사인을 받으며 던진 질문은 이랬다

"사인해주시는 동안 한 가지 궁금한 게 있어서 좀 물어볼께요. 저만 모르는 것일 수도 있을 것 같은에 외래어 표기에 있어 'ㅆ' 'ㄸ'등의 센소리로 표기한 어떤 이유가 있는 것인지 궁금해서요..."

(뭐 이런 걸 물어보나... 하는 표정으로 =ㅅ=;;) 간결한 대답이 이어졌다

"그건 제가 일부러 그렇게 쓴 게 아니라 창비의 외래어 표기법이에요. 창비의 편집 방침에 따른 것 뿐입니다."

아, 예--------

사실 나는 '퍼쎈트, 쌘드위치, 쏘파, 빠스따, 쏘나타, 메씨지, 콘써트, 씰리콘, 에스쁘레쏘, 까뿌치노, 씰루엣' 등의 외래어 표기들이 너무 튀어 자꾸만 읽기를 방해하더란 말이다
그래서 작가를 만나면 꼭 물어보고 싶었던 표기법
아무것도 아니어서 살짝 실망 =ㅅ=;;

작가는 이 소설을 오래전에 탈고하고 이제 출간이 된 것이라고 했다
지금은 또다른 재밌는 소설을 연재 중이다 

여전히 기대 중 ^^
 

 

- 작가의 말

이것은 좀비들의 이야기가 아니다
잊고 있던 기억에 대한 이야기다
기억하고 싶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오랫동안 좀비들을 품고 있었다
이제는 모두 세상으로 떠나 보낸다
아마도, 좀비들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지훈이 너무 일찍 몸에 지니게 된 죽음과 삶의 인식, 그것들이 삶에 끼친 영향은 내 이십대를 돌아보게 만들었다

『좀비들』의 출간을 기다리며 이전 작품의 영향으로 심히 커져버린 기대를 완전히 충족시켜주지는 못했지만 여전히 흔치 않은 소재와 상상력으로 빚어낸 작가의 첫 장편이었다, 작가의 문체 색도 뚜렸했다
그래도 개인적으로는 올해 읽었던 편혜영의『재와 빨강』(작가가 여자인지 남자인지도 모를 것 같던 문체와 소재)의 적잖은 놀라움을 앞서지는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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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의 설탕 두 조각 소년한길 동화 2
미하엘 엔데 지음, 유혜자 옮김 / 한길사 / 200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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렝켄은 이제 모든 것을 자기 혼자 결정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

.

.

"물론 그 결정은 지금 네가 이 자리에서 내려야 해.
너무 많은 시간이 지나고 나면 다시 원상태로 되돌아갈 수 없게 되어 계속 그렇게 지내야 되거든.
살다 보면 그런 일이 종종 있잖아.
이해할 수 있겠지? [...] "
 

"난 네 결정에 어떤 영향도 미치고 싶지 않단다.
혼자 생각해서 네가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결정을 내려야 해.
난 앞으로 어떻게 될지 네게 사실대로 이야기해 주고 싶었을 뿐이야.
너도 이해할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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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읽고 싶어져 책을 집어들고 걷고 또 걸으며 읽어본다
유명함에도 불구하고 읽지 않고 아는 척하느라 조금 답답했었다(이 얇은 내용을 가지고!)
(내친 김에 미하엘 엔데의『냄비와 국자 전쟁』까지 읽어본다)
읽고 나서 언젠가 조카에게 선물했던 이 책을 조카는 읽어보았는지 올케에게 손전화기 문자로 물어본다
몇 번 읽었다고 했다
올케는 이 책의 옮긴이의 글을 읽어보았는지도 궁금했다
옮긴이 유혜자님이 책의 말미에 실은 옮긴이의 글을 자꾸 곱씹어 보게 된다
부모가 되면 아동심리학자에 버금가게 되기도 하는 모양이다

재치있는 엔데의 글에 감동적인 옮긴이의 글까지 오늘은 좋은 동화 한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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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본행 야간열차 세트 - 전2권
파스칼 메르시어 지음, 전은경 옮김 / 들녘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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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문장 하나하나에 공을 들인, 허투루 쓴 문장이 단 한 문장도 없는 듯한
아니, 원래 문장을 이렇게 밖에 쓸 줄 모르는 작가인 것 같은 엄청남
글도 이야기도 너무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게 미끄러지듯 고요히 나를 끌고 가는 마술같은 솜씨
('솜씨' 라기 보다는 명상록에 가깝다)
그 대신 독자는 조용한 가운데 한 글자, 한 줄도 빠뜨리지 않고 집중해서 모두 읽어야 한다
아니, 읽게 된다

올해 출간된 책은 아니지만 올해 읽은 책 중 인상적인 책이다
문제를 던져주고 생각하게 하고 위로해주고 숙연하게 만드는
인생에서 한번쯤 겪게 되는 그레고리우스의 '어느날 갑자기'
나를 닮은 그를 따라다니며 인생을 돌아보고 위로받기도 하며

언젠가 리스본 기행문을 책으로 펴낸 한 블로거가 있었는데 그때 흥미롭게 들린 리.스.본
이 책의 각 장 간지마다 흑백의 판화처럼 상단에 찍혀있는 야간 열차역을 계속 보고 있자면
그레고리우스를 따라 포르투갈에
아니, 내 삶에 또다른 방향으로 나 있을 것들을 따라 가고 싶어진다
 

페르난두 페소아의『불안의 책』이 번역되기를 고대하며...
 
 

 


-
우리의 삶은
죽음이라는 저 바다로 흘러드는
강과 같다.
/ 호르헤 만리케

 
 
-
우린 모두 여러 가지 색깔로 이루어진 누더기. 헐겁고 느슨하게 연결되어 언제든지 자신이 원하는 대로 펄럭인다. 그러므로 우리와 우리 자신 사이에도, 우리와 다른 사람들 사이만큼이나 많은 다양성이 존재한다.

/ 미셸 에켐 드 몽테뉴, 『수상록』제2권 Ⅰ
 

-
우린 모두 여럿, 자기 자신의 과잉. 그러므로 주변을 경멸할 때의 어떤 사람은 주변과 친근한 관계를 맺고 있거나 주변 때문에 괴로워할 때의 그와 동일 인물이 아니다. 우리 존재라는 넓은 식민지 안에는,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고 느끼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
/ 페르난두 페소아,『불안의 책』, 1932년 12월 30에 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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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박사 학위를 딸 생각이 없냐고 물으면 그는 그저 웃을 뿐이었다.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아주 단순했다. 문법이든 표현 양식이든 고전의 외진 구석까지 모두 알고 표현 하나하나에 들어 있는 역사를 아는 것, 다른 말로 하면 자신의 일을 잘 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겸손함이 아니었다. 그는 자신에게 요구가 많은 사람이었다. 변덕이나 뒤틀린 허영심도 아니었다. 나중에 그는 가끔, 자신의 이런 태도는 잘난 척하는 세상을 향한 조용한 분노, 허풍선이들을 향한 꺾이지 않는 고집이라고 생각했다. 박물관 경비원이었던 그의 아버지는 이런 세상 때문에 평생 괴로워했다. 그레고리우스보다 훨씬 능력이 없던ㅡ정말 말도 안 되게 공부를 못하던ㅡ사람들도 졸업시험을 치르고 확실한 직장을 얻었다. 그러나 그에게 이런 사람들은 다른 세상, 견딜 수 없이 천박한 세상, 그가 경멸하는 기준을 지닌 세상에 속해 있었다. 그들 내보내고 대신 졸업장이 있는 교사를 채용할 생각을 하는 사람은 학교에 아무도 없었다. 교장도 고전문헌학을 전공했지만, 그레고리우스가 자기보다 실력이 월등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또 그를 내보내면 학생들이 폭동을 일으키리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레고리우스는 결국 졸업시험을 치렀다. 시험 문제는 너무 쉬웠다. 시간을 반이나 남겨두고 답안지를 제출했을 정도였다. 그는 자신의 고집을 꺾은 아내를 가끔 원망했다.

그레고리우스는 몸을 돌려 천천히 키르헨펠트 다리 쪽으로 향했다. 다리가 눈에 들어왔다. 그는 57년이 지난 후 처음으로 자기 인생을 완전히 장악하려고 한다는, 불안과 해방감이 섞인 기묘한 기분을 느꼈다.
(p.p. 24~25)
 

 

그가 라틴어 문장을 좋아하는 이유는 이 문장들이 과거의 모든 침묵을 자기 안에 품고 있기 떄문이었고, 뭔가 대답하라고 강요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 언어는 온갖 소란스러움에서 떨어져 있었고, 확고부동하며 아름다웠다. 그레고리우스는 라틴어를 죽은 언어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경멸했다. 그들은 정말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위인들이었다. 플로렌스가 누군가와 에스파냐어로 통화를 하면 그는 문을 닫았다. 이런 행동은 아내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하지만 그레고리우스는 그 이유를 설명할 수가 없었다.
(p. 29)

 
 

우리는 많은 경험 가운데 기껏해야 하나만 이야기한다. 그것조차도 우연히 이야기할 뿐, 그 경험이 지닌 세심함에는 신경 쓰지 않는다. 침묵하고 있는 경험 가운데, 알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의 삶에 형태와 색채와 멜로디를 주는 경험들은 숨어 있어 눈에 띄지 않는다. 그러다가 우리가 영혼의 고고학자가 되어 이 보물로 눈을 돌리면, 이들이 얼마나 혼란스러운지 알게 된다. 관찰의 대상은 그 자리에 서 있지 않고, 말은 경험한 것에서 미끄러져 결국 종이 위에는 모순만 가득하게 남는다. 나는 이것을 극복해야 할 단점이라고 오랫동안 믿어왔다. 그러나 지금은, 이런 혼란스러움을 인정하는 것이야말로 익숙하면서도 수수께끼 같은 경험들을 이해하기 위한 왕도라고 생각한다. 이 말이 이상하고 묘하게 들린다는 것은 나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생각을 하고 나서야 깨어 있다는 느낌, 정말 살아 있다는 느낌이 든다.
(p.p. 31~32)
 

 

그는 전화 옆에 서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생각했다. 오늘 오전부터 제 인생을 조금 다르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제 더 이상 문두스 노릇을 하고 싶지 않습니다. 새로운 삶이 어떤 모습일지 저도 모릅니다만, 미룰 생각은 조금도 없습니다. 저에게 주어진 시간은 흘러가 버릴 것이고, 그러면 새로운 삶에서 남는 건 별로 없을 테니까요. 그레고리우스는 크게 소리 내어 이렇게 말해 보았다. 이 말은 옳았다. 그는 자기 인생에서 이렇듯 옳고 의미 있는 말을 한 적이 별로 없었다. 그러나 전화기에 대고 이런 말을 한다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허하면서도 장엄한 문장이었기 때문이었다.
(p. 38)
 

 

고전어들은 베른식 억양으로 말하는 그의 입에 적절하게 맞았다. 시간을 초월한 그 세계에서는 서둘러야 한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p. 40)
 

 

자신의 뻣뻣한 발음과 미끄러지는 표준 발음 사이의 거리를 좁히기 위해 그는 같은 문장을 계속해서 다시 들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이 해방감을 느끼고 있음을 깨달았다. 스스로 정한 한계, 자기 이름을 발음할 때의 느림과 무거움, 생각에 잠겨 박물관의 한 전시실에서 다른 전시실로 더디게 움직이던 아버지의 발걸음과 같은 느림과 무거움에서의 해방, 계획한 것은 아니지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천천히 만들어진 자화상ㅡ자화상 안에서 그는 시력이 나쁜 사람들이 그러하듯, 책을 읽지 않을 때에도 먼지가 쌓인 책 위로 몸을 굽히고 있다ㅡ에서의 해방. 문두스의 자화상에는 그의 서명만 들어 있는 것이 아니라, 박물관 분위기를 풍기는 이 조용한 인물이 주는 휴식을 편안하게 생각했던 모든 사람의 서명이 들어 있었다. 그레고리우스는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는 박물관의 측면 벽에 걸려 있던, 먼지가 많이 낀 이 자화상에서 자기가 걸어 나온다는 느낌을 받았다.
(p.p. 40~41)
 

 

그 중에서도 가장 끔찍한 것은, 내 말에 귀를 기울여보면 나 역시 끊임없이 똑같은 말을 한다는 사실이다. 이 말들은 소름이 끼치도록 낡았고 평범하며, 수백만 번 사용하여 닳고 닳은 것들이다. 이런 말들에도 과연 의미가 있을까? 물론 말은 나누는 기능을 한다. 사람들은 이 말에 따라 행동하고 웃고 울며, 왼쪽이나 오른쪽으로 가고, 종업원은 커피나 차를 가지고 온다. 하지만 내가 묻고 싶은 것은 그것이 아니다. 문제는 "그 말이 생각을 표현하고 있는가?" 라는 점이다. 이런 말이란 그저 쓸데없는 수다가 새겨진 흔적으로써 사람들을 이리저리 끌고 다니는 효과음에 불과한 것은 아닌지?

그럴 때면 나는 해변으로 가서 목을 길게 늘여 바람에 머리를 맡기고, 우리에게 익숙한 것보다 훨씬 더 차가운 바람이 불기를 바란다. 낡은 단어들과 진부한 언어 습관을 내 머리속에서 날아가게 하고, 늘 똑같은 잡담의 찌꺼기를 묻히고 사는 나를 씻겨 깨끗한 정신으로 돌아오게 해줄 바람. 그러나 그런 다음에도 뭔가 할 말이 생기면, 예전과 조금도 달라진 바 없는 나를 보게 된다. 내가 원하는 정화는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난 이를 위해 무엇인가를, 언어로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 하지만 무엇을? 내가 나의 언어에서 탈출하여 다른 언어로 가고 싶다는 뜻은 아니다. 문제는 언어에서 도피하는 게 아니다. 언어를 새로 발명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내가 원하는 건 도대체 무엇인가?

난 아마 포르투갈어 단어들을 새로 만들고 싶은 모양이다. 새로운 문장들은 낡고 진부하다거나 흥분하여 기교를 부린다거나 의도적이지 않을 것이다. 이들은 포르투갈어로 된 문장의 중심을 이루는 원형이라서, 에움길이나 오염이 없이 다이아몬드와 같은 투명한 본질에서 바로 나온다는 느낌을 사람들에게 주어야 한다. 단어들은 윤을 낸 대리석처럼 흠이 없고, 자기 자신이 아닌 것은 모두 완벽한 침묵으로 변화시키는 바하의 변주곡 음색처럼 맑아야 한다. 가끔 언어의 진흙 구덩이와 타협하려는 마음이 내 안에 약간 남아 있다면, 그 마음은 화기애애한 거실의 부드러운 고요함이나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에 존재하는 느긋한 평온함 정도일 것이다. 그러나 끈적거리는 언어 습관에 대한 분노가 나를 에워싸면, 그 분노는 빛이 없는 우주의 맑고 서늘한 적막함 이상이어야 한다. 내가 포르투갈어로 말하는 유일한 사람이 되어, 소리 없는 열차를 끌고 가는 우주 ...... . 종업원이나 이발사나 승무원은 새로운 조어를 들으면서 그 문장의 빛나는 간결함, 그 아름다움에 놀랄 것이다. 내 생각에 이런 문장들은 이론의 여지가 없을 것 같다. 어쩌면 엄격하다고까지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청렴하고 확고부동하게 서 있다는 점에서 이들은 신의 말과 비슷하고, 또한 과장이나 격정이 없이 정확하고 간결하여 단 하나의 단어나 쉽표도 뺄 수 없다는 점에서 언어의 연금술사가 엮은 시에 비견할 수 있을 것이다.
(p.p. 4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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