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알게 된 모든 것 - 기억하지 못하는 상실, 그리고 회복에 관한 이야기
니콜 정 지음, 정혜윤 옮김 / 원더박스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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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쓴 저자 니콜 정은 한국계 이민자의 딸로,
태어나자 마자 한 백인 가정에 입양되었다.
양부모가 살던 오리건은 아시아인이라고는
손에 꼽을 정도로 적은 백인 마을로,
'그분들(친부모)은 너에게 입양이 최선이라고 생각했어'
라는 설명과 양부모의 충분한 사랑에도 불구하고
부모님과, 친구들과는 다른 외모로 인해
자라는 내내 많은 아픔을 겪는다.

자신의 정체성과 생물학적 부모에 대한 온갖 궁금증을
떨쳐낼 수 없었던 니콜은 결혼과 임신을 하게 되며
문득 친부모를 찾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되는데

그것은 아이에게만큼은 뿌리 없이 살아간다는 감각,
자신만 따로 떨어져 있다는 외로움과 고독,
윗 대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조차 알 수 없는
텅 빈 가계도를 물려주고 싶지 않은 것이 그 이유로
자신의 뿌리에 대한 궁금증과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해결하고자 조심스레 가족 찾기에 나서게 된다.

가족을 찾던 니콜은 중계인을 통해
먼저 친자매들과 연락을 주고받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어떤 거짓과 비극이 숨겨져 있음을 감지하고
또 한 차례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암울한 가족사와 복잡하고 어두운 진실을 대면할지,
이제 적당히 물러서 재회의 기쁨만을 누릴지.

두려움이 앞서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결, 관계, 뿌리에 대한 갈망 으로 그녀는
이 비극적인 가족사와 대면하기로 용기있게 결단한다.

자신의 미래를 위해 희생했다고 생각했던 친부모는
완전무결한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에 직면하고,
그 과정에서 인간이란 존재가 얼마나 모순되고 복잡한
존재인지, 진실이란 얼마나 복잡한 것인지 깨닫게 된다.

그럼에도 계속해서 이어지는 친부, 언니와의 관계로
그는 자신과 그들의 감정, 생각을 제대로 읽어내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았고 그렇게 차근차근 신뢰를 쌓아가며
자신의 정체성과 가족의 의미에 대해 고민하고 성찰한다.

이런 고민을 하며 그녀는 자신이 낳은 아이들에게
어떤 역사를 들려줄지, 그리고 그 아이들이 어떻게
스스로를 규정하도록 도울지에 대한 부분에까지
생각을 확장하게 되는데,

이 과정을 통해 자신에게 친부모, 가족과의 재회는
그 자체로 평화를 되찾는 구원이 아니라,
그제서야 그 때부터 주체적으로 자기 이야기를
만들어 나갈 수 있는 뚜렷한 출발점이 된 것임을
깨닫게 된다.

결혼해 가정을 꾸린 부모님에게서 태어나,
다른 형제자매들과 함께 살아가는 '평범한' 가정.
이 일반적인 보통의 범주에 들어가있는 내가 가진
입양가족과 입양아를 바라보는 시선이
얼마나 편협했는지 새삼스레 느낄 수 있는 글 이었다.

'상실'이라는 감정은 본래 가정의 부모와 형제,
혹은 그 문화를 기억하는 사람에 한해
그것들을 잃었을 때 느낄 수 있는 감정이지
태어나자마자 입양되어
인생의 출발점부터 이미 다른 가정에 속한 경우에는
그 뿌리가 궁금할 수는 있지만
상실감이 느껴지지는 않을거라고 생각해왔다.

입양된 가정에서 충분히 사랑을 받으며 자랐지만
그럼에도 그 안에서 명백히 이질적인 존재로 느껴온 경험,
다른 생김새로 받은 숱한 놀림과 따돌림,
'백인이 아닌게 불편해' 자신을 받아들이지 못해
심리치료를 받기도 한 작가의 담담한 자기고백을
읽어 내려가며 쉽게 단정짓고 편협한 시각을 가졌던
스스로에 대해 부끄러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단순히 내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뿌리를 찾아나서는데 그치지 않고
자신에게 상실을 안긴 가족의 모순적인 부분까지,
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용기로
치유와 성장의 첫 걸음을 떼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나아가는 니콜의 모습에서
한 인간이 타인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방법을
배울 수 있었는데,

어두운 부분을 외면하지 않고, 부정하고 지워내
없애는 대신 더 제대로 알고 받아들일 때
나 자신이 더이상 그 상실에 멈춰 있지 않고
비로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출발점이 된다는
깨달음도 얻을 수 있었다.

과연 내가 그였다면 가족을 찾을 마음을 먹었을까,
혹은 어두운 진실을 마주할 용기를 낼 수 있었을까
생각하면 솔직히 자신이 없다.
이 모든 과정을 거치며 진실을 마주하고 받아들여
스스로를 치유하고 성장해나갔을 뿐 아니라,
그를 증명하든 '니콜 정(정수정)'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을 써내려간 그녀에게 박수를 보낸다.

그저 입양된 한 사람 만에게 해당된 이야기가 아니라,
삶의 의미와 목적을 찾아가는 그녀의 여정을 통해
삶의 위기마다 이를 어떻게 마주하고 나아갈 것인가
하는 방향을 고민하게끔 해준 의미있는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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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과 수납 - 미니멀라이프를 꿈꾸는 맥시멀리스트
무레 요코 지음, 박정임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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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코로나 시대를 맞이하게 된 약 3년여 전,
예상치 못하게 집에 오래 머무르게 되는 일상이 이어지며
'집 정리' 와 '미니멀리즘'이라는 키워드가
유행처럼 번지기 시작했다.

그동안이야 집은 휴식을 취하고 잠을 자는
공간으로 인식이 되었다면,
코로나로 인해 재택근무는 물론
감염 시 2주일 정도 집 밖으로는 나가지 못하는
격리 생활이 이어지며 한정적인 집의 공간을
좀 더 효율적으로 이용해 쾌적한 생활을 하고자 하는
욕구가 사람들에게 생겨나게 된 것이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도 tvN 채널의 《신박한 정리》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일반인부터 유명인에 이르기까지
나만의 공간인 '집'의 물건을 정리하고,
공간에 행복을 더하는 노하우를 전하며
꽤나 큰 센세이션을 일으키기도 했다.

정말 '이렇게까지 정리 정돈이 되지 않은 집에서
생활할 수 있다고?' 하는 생각이 들 만큼
엄청난 짐을 지고, 이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며
나는 저 정도는 아니야 하면서도,
꼭 필요해 남겨두어야 하는 물건과 누군가에게
나누어줄 수 있는 물건, 버려야 할 물건을 구분해
과감하게 정리를 이끌어주는 전문가의 손길을 보며
한 번씩 흘끔거리며 내 방과 집을 살펴보게 되었던 건
비단 나만의 경험은 아닐 거라 생각한다.

다양한 작품으로 많은 공감과 찬사를 받은
일본의 유명 작가 무레 요코,
싱글 라이프 36년 차로 프로 작가인 그녀는
방 두 개가 딸려있는 멘션에서 고양이와 함께
20년째 살아가고 있다.

워낙에 책을 業으로 삼고 있는 사람이기에
수많은 책을 가지고 있는 건 예상 가능한 범주이지만,
고양이 스크래치도 네 개씩 두고 방에는
기모노가 수 십 벌씩 넘쳐나고 있으며
혼자 살고 있지만 거실과 주방 등에는 일인용 의자만
일곱 개나 가지고 있을 만큼 정리와 수납에 있어서는
젬병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한 집에서 20여 년을 살고 있으니 알게 모르게
집에 쌓아두거나 모른 체 방치해 둔 속짐이 얼마나 많을지
그녀의 글에 담긴 내용으로만 봐도
내가 다 막막할 지경이었다.

그런 작가가 한 살 한 살 더 나이 듦에 따라
나중에는 내 뜻대로 짐이든 몸이든 원하는 대로
움직이기 어렵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더 늦기 전에 짐을 줄이고 제대로 정리해야겠다는
마음을 먹게 된 것이 이 에세이의 시작이다.

이제는 더는 미룰 수 없다는 생각에
드디어 쌓아둔 물건과의 작별을 결심한 것이다.

물건을 정리하기 위해서는 일단, 내가 어떤 물건을
얼마나 가지고 있는지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려면 불가피하게 내가 가진 물건을 꺼내
그 물건의 숫자와 앞으로의 사용 가능성을 셈하고
이것을 어떻게 처분할지를 결정해야 하는데,

'시험 기간에는 책상 정리는 금물이다.'하는 것처럼
정리를 위해 물건을 살펴보던 작가는
이 물건을 어떤 마음으로 얼마를 주고 샀는지,
그리고 '아직은 쓸모가 있는데' 싶은 생각에
제대로 정리에 임하지 못하고
다시 물건을 봉인해버리는 난관에 빠지기도 하며
글을 읽는 내내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짠한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나 역시 이따금 한 번씩 마음을 먹고 정리를 하려다가도,
'지금은 전혀 쓰지 않지만 아직 새거라 버리긴 아까운데'
라는 생각에 버리려는 마음을 접기도 하고,
몇 년이 지나도 입지 않는 옷을 바라보면서도 쉽사리
정리하지 못한 채 망설이기도 한다.

그래서 작가의 망설임과 고민이 더 남의 일 같지 않고
마냥 '이 사람의 정리는 낙제점이야'하고
비난하거나 우습게 생각할 수 없기도 했다.

물건이라는 것이 필요에 의해 구매한 것이고,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면 정리하는 것이 맞지만
그 마음을 실행으로 옮기는 게 쉽지 않다는 것을 알기에
더디게 흘러가는 정리와 수납에서도
조금씩 물건을 비워내는 과정을 읽어내려가며,
응원과 격려의 마음을 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

꼭 아무것도 없이 텅 비어있는 극단적인 미니멀리즘이
무조건적으로 옳은 정답지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내가 가진 수많은 물건들 속에서 매일 매 순간은 아니어도
이따금씩 이렇게 결심을 하고 한 번씩 비워내며
물욕을 잠재우고 깔끔하고 산뜻한 생활을 추구한다면
그 노력 자체로도 좋은 성장이 아닌가 싶다.

이렇게 비워내고 또 비워내다 보면
어느새 무레 요코 작가도, 또 나 역시 언젠가는
비록 '적은 물건을 가진 미니멀리스트'가 될 수는 없어도
'조금 많아도 꼭 필요한 물건만 가진 맥시멀리스트'로서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한바탕 비워냈던 방의 짐이 조금씩 늘어갈 기미가 보이고,
계절의 변화를 앞에 두고 물욕이 생겨 쇼핑 욕구가
솟구치는 요즘의 마음을 반성하게 해주는
딱 필요한 시기의 독서였다.

일단 비우고 나서, 진짜 필요한지 다시 생각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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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 치는 할머니가 될래 - 인생 후반전에 만난 피아노를 향한 세레나데
이나가키 에미코 지음, 박정임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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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에 입학할 무렵 우연히 네 살 터울의
언니가 다니는 피아노학원에 따라가게 되었던 날이
지금도 어제 일처럼 선명하다.

원장선생님이 내 옆에 앉아 무척 상냥하게
건반을 누르는 법, 노래를 연주하는 걸 알려주며
"너무 재밌지? 여기 다니면 매일 배울 수 있어.
집에 가서 엄마한테 피아노 다니고 싶다고 해."
하며 꾀임의 말을 건네었고,
그게 나의 첫 '피아노 데뷔'로 기억된다.

마냥 즐거울 것만 같던 피아노였지만 막상 배우게 되니
까만색 방음판이 붙은 피아노방은
무섭고 지루하기만 했으며,
하루에 한 번 원장 선생님께 그날 연습한 피아노를
연주하고 레슨받을 때면 혼나는 때가 대부분이라
레슨을 앞두고는 공포감이 들 정도 였다.

초등학교를 다니는 내내 피아노를 배우며
콩쿨대회에 나가기도 했지만,
즐겁기는 커녕 언제나 피아노에게서
도망칠 생각만 하다 6학년이 되며 비로소
겨우 피아노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비슷한 문화를 가진 일본도 마찬가지 였는지
이나가키 에미코 작가의 피아노 입문기는
나와 크게 다르지 않아 피식 하며 웃음을 짓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50대가 된 인생 후반전에서
다시 피아노를 시작하게 된 계기랄까
다시 만나게 된 피아노는 그때와는 다른 마음일까
궁금한 마음이 들어 책에 몰입하게 되었다.

배움에 나이가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지만
50대라는 나이에 무언가를 다시 배우고 시작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울까 싶다.

몸은 더 뻣뻣해지고, 힘도 예전만 못하고,
할 수 있는 것보다 할 수 없는게 더 명확히 보이니
의욕 또한 젊을 때에 비하면 약할 것이기에.

아니나 다를까 악보를 보는 법을 까먹고,
마음과 다르게 느리게 더듬더듬 연주하는 손가락을
체감하며 저자는 나이들어 배우는 피아노의 어려움을
몸소 실감하게 된다.

악보를 확대복사해 볼 수 밖에 없는 노안,
새삼스럽게 느껴지는 건반의 무게라던가
어릴 적엔 무시했던 손가락 번호를
필사적으로 따라가며 겨우 한 곡을 연주하는
웃을 수 만은 없는 헤프닝 속에서

웃음과 눈물이 섞인 성장과 고비의 경험을 통해
'괜히 시작했나' 하는 걱정의 마음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내고 싶다'는 의지를
모두 느끼게 된 것이다.

책의 서두를 읽어나갈 때만 해도
나이 들어서 다시 시작하게 된
배움의 어려움과 즐거움을 알려주는
이야기일 것이라 생각했었다.

그러나 후반부로 갈수록
'늙음과 노후' 앞에 좌절하던 작가가
피아노를 만난 뒤 비로소
즐겁게 나이들어 갈 수 있게 되었다는 고백,

자신과 같은 모험을 시작할 누군가를 응원하고,
또 그런 자신을 위해
오늘도 피아노 앞에 앉는다는 단단한 다짐을 통해
피아노로부터 배운 나이듦의 즐거움과
나를 사랑하는 방법을 담은
한 사람의 인생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계속되는 시행착오를 거듭하며 저자는
인생 후반전에 누려야 할 즐거움은
그 전과 사뭇 다르다는 것을,
남들이 보기에 완벽한 결과는 아니더라도
매 순간 최선을 다해 열정을 쏟는 마음가짐이
앞으로의 인생을 즐겁게 만들고
또 이렇게 살아가야 겠다는
삶의 방향을 깨닫게 되었다.

나이가 들어간다고 해서 한 해가 갈수록
더 늙어가는 내일을 안타까워 할 필요는 없다고,
오늘의 아름다움을 만끽하는 쾌활한 다짐을 통해

어떻게 나이들어 갈 것인가,
그리고 늦었다고 생각할 때 시작하는 도전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게 된 계기가 된 독서였다.

아직 30대 임에도 불구하고
지금 무언가를 하기엔 내 나이가 좀, 하며
몸사리고 망설이게 되는 때가 있었다.

배움과 도전 앞에 나이는 중요하지 않다고,
늦게 시작하는 만큼 어려움도 있지만
그 나이에만 깨달을 수 있는 통찰이 있으니
힘껏 도전해보라는 작가의 메시지가 마음을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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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니들 - 좋은 날엔 좋아서, 외로운 날엔 외로워서 먹던 밥 들시리즈 6
김수경 지음 / 꿈꾸는인생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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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니란 아침, 점심, 저녁과 같이 날마다 일정한 시간에
먹는 밥. 혹은 그렇게 먹는 일을 의미한다고 한다.

삼시세끼 라는 말 처럼
보통 하루에 세 번의 식사를 챙기게 되니
평생 살아가며 우리는 얼마나 많은 끼니를 챙기는지
전부 셈 할 수 없을 정도이다.

그렇지만, 나를 스쳐간 수많은 끼니 속에서도
내 기억과 마음 속에 오래 남는 끼니가 있다.
좋은 날에는 좋아서, 외로운 날엔 외로워서 먹던
밥에 대한 이야기가 바로 이 책에 담겨있다.

먹는다는 행위 자체는 우리가 생존하는 데 있어
꼭 필요한 요소이기도 하지만,
'밥'이라는 단어에는 생존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작가는 이야기 한다.

이 책은 한 사람의 유년기 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먹는 이야기이자 살아가는 이야기로,
작가의 시간을 따라 그녀의 끼니를 읽어내려 가다보면
매 끼니에 담긴 각자의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는 점에서
단순한 음식 이야기라고 할 수만은 없다.

같은 집에 사는 가족과 먹는 밥은 엇비슷하고
특별할 게 없는 것 같아도
그날의 메뉴, 내 기분 같은 것이 더해질 때면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고 잔상처럼 남는
세상에 단 하나 뿐인 추억이 되니
어찌 특별하지 않다고 할 수 있을까.

나에게도 돌이켜 생각해보면
유난히 마음에 점처럼 기억에 남는 특별한 끼니들이 있다.

커서야 아프면 병원을 찾거나 약을 먹고,
입맛이 없어도 알아서 억지로 한 스푼 밥을 뜨지만
어릴 때는 아프면 그대로 풀죽이 되어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누워 앓기만 했었다.

어린 입맛엔 아프면 일단 입이 깔깔해서
무얼 먹어도 입이 쓰기만 했는데,
맞벌이인 엄마를 대신해 우리를 보살피던 아빠는
조금이라도 더 먹을까 싶어 죽 대신
시중에 파는 가루 스프를 묽게 끓이다가
거기에 미리 해 두었던 밥을 넣고 뭉근하게 끓여낸
'스프밥'을 만들어주곤 했다.

평상시에 아무 때나 먹을 수 있던 스프가 아니었는데도
아픈이는 그조차 써서 몇 입 먹지도 못하고,
아픈 당사자를 제외한 나머지 두 자매만
신나서 먹었던 기억이 바로 그것이다.

그래서인지 아플 때면 여전히
스프밥의 그 씁쓸하고도 짠 맛,
나는 아프지 않아서 미안하지만 맛있었던 기억이
혼재되어 떠오르곤 한다.

작년에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도,
상을 치루는 일이 처음이라 장례음식을 주문하며
일반적으로는 잘 주문하지 않는 인절미를
한가득 이미 발주를 넣어버려
손님상을 차리는 직원분이 당황하셨었는데

이와중에 다행이랄까 상중 임에도 이상하리만큼
인절미가 맛있게 느껴졌었다.
고소하고 커다랗고 폭신 말랑한
할머니의 잔잔한 사랑 같았던 인절미.

빨리 먹지 않으면 금세 굳고 뻣뻣해져서
손님상에는 올리지 못하게 된다던 그 인절미를
걱정이 무색하게 가족들이며 친척들이
상을 치루는 동안 거의 남김없이 싹 먹은 것이다.

지금에서야 생각이지만 이 또한 당신이 떠나
슬퍼하느라 끼니도 제대로 못챙길 가족들이 걱정되어
할머니가 부려놓은 마술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인절미는 어릴 때나 좋아했지
커서는 일부러 찾는 떡이 아니었는데
그 때는 왜 그렇게 맛이 있던지
그 이후로 인절미를 떠올릴 때면
할머니의 장례식이 반사적으로 생각난다.

소울푸드 라는 말이 있다.
영혼을 뜻하는 소울(soul)과 음식(food)이 만나
영혼의 안식을 얻을 수 있는 음식,
혹은 영혼을 흔들만큼 인상적인 음식을 뜻한다.

이처럼 음식은 '영양분'이나 '맛'을 떠나
음식 자체가 아닌 그 음식에 대한 추억과 마음이
힘들 때마다의 나를 지탱시키고 버티게 해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힘들 때 확실한 위로를 가져다 주는 음식,
어떤 마음을 달래주는 음식.

그래도 밥은 먹어야지, 라던가
밥 먹고 나서 생각해도 늦지않아, 처럼
밥에 담긴 위로를, 밥심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음식은 맛으로 기억된다고 생각했는데
이제와 다시 생각해보니 음식은 추억으로,
시간으로, 인생으로 기억이 되는 것 같다.

책을 읽으며 지금껏 지나쳐온
수많은 추억어린 끼니를 되새기고 다시 맛보았다.
다시는 느낄 수 없는 아련한 추억의 맛도,
여전히 맛볼 수 있는 밥상이지만
오래오래 기억하고 맛보고 싶은 맛도 있었다.

그 밥상의 힘으로 나도 이만큼 힘을 내고
그 밥심이 나를 만들었다고 생각하니
차근차근 쌓아온 그 따뜻한 마음아래
무엇도 두렵지 않다는 마음도 들었다.

앞으로도 오래 기억될 끼니가 많았으면 좋겠다는 바람,
더불어 누군가의 끼니에 함께 기억될 수 있다면
이 또한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 일까 싶기도 하다.

배 부르면서도 허기가 지는 맛있는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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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보 노인입니다
김순옥 지음 / 민음사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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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한창 인스타그램 에서는 '아씨두리안' 이라는
임성한 작가의 드라마 중 한 장면을 담은 영상과 댓글이
하나의 밈처럼 유행하며 번지고 있다.

드라마에서 칠순의 나이를 가진 배우가
마치 20대를 연상시키듯 화려한 스팽글 의상에
검은 단발머리를 하고 등장해서는,
클럽에서 새초롬한 표정으로 '함께 놀자'는
대시를 거절하거나
스테이지에서 사람들의 환호를 받으며 춤을 추고,
그 모습을 보는 한 젊은 남자는 반한 듯 보이는 장면이다.

이 장면을 두고 '진짜 웃기다'면서
작가에게 배우들이 뭔가 약점을 제대로 잡혔냐는
우스갯 소리를 하는 사람도,
혹은 저 나이든 배우 입장에서는 주목받는
이런 캐릭터를 연기하는 것이 싫지는 않았을거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었다.
또 누군가는 작가가 연하 남자에게 한 맺혔나고도 했고.

뭔가 기괴한 듯한 이 장면을 보고는 물론 당황스러웠지만,
이 밈으로, 극중 54년생으로 우리 엄마 또래의
(실은 우리 엄마보다 젊은 편이지만
극중 성형수술로 엄청난 동안으로 나온다)
여성에게 대중이 가지고 있는 고정관념화 된
'노인'의 이미지를 새삼스럽게 알게 된 순간 이기도 했다.

'60대는 노인인가?'라는 질문을 각 세대에 한다면
연령대에 따라 각기 다른 답이 나올 것 같다.

나 역시 어릴 때만 해도 60대라 하면
'환갑, 만수무강, 어르신' 같은 이미지 때문에
'60대는 할머니, 할아버지'라는 인식이 있었는데
지금의 내 부모님을 떠올리면
60대 중반인 그들은 내 '엄마아빠'일 뿐
누군가에게 아직 노인이라 칭할 정도는 아닌 것만 같다.
중학생과 초등학생 손주를 두고 있어
실제로 '할머니, 할아버지'라는 호칭을 듣지만 말이다.

엄마 아빠 스스로도 아직은 '노인'이라는
자각이 없는 편이기도 한데,
흰 머리가 자라면 부지런히 새치 염색을 하고
간혹 버스나 지하철에서 누군가 자리 양보라도 할라 치면
소스라치게 놀라기도 하며
때로는 당신보다 나이가 더 나이많은 70대 어르신이
'또래'로 보았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기도 한
에피소드만 봐도 알 수 있다.

예전에는 우리 엄마 아빠는 친구들의 엄마 아빠 보다
훨씬 젊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실제로도 길에서 마주친 수많은 가족들 중
우리 또래의 아이들을 둔 부모들은 여지없이
엄마 아빠보다 연배가 있었는데
시간이 어느덧 흘러 언니가 40대,
우리가 30대가 되고보니 항상 쌩쌩한 것만 같던
우리 엄마 아빠에게도 어느덧 '노화'가 찾아온
순간들을 마주하게 되면서

이 애매한 '초보 노인 입문기'의 부모님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고 또 노년의 문턱 앞에 어떤 기분이자,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싶어 이 책을 펼치게 되었다.

아직은 나라에서 말하는 '노인'의 범주에 들어가지도,
스스로 늙었다는 자각이 없는 준비없는 실버기에 접어든
60대 저자의 이야기를 읽어 내려가면서
마치 '사춘기'를 겪듯 '노인'임을 받아들이는 과정 역시
나이를 먹은 어른이라고 해서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부분은 아니구나 라는 걸
새삼 알 게 되었다.

우리네 조부모님의 시대에만 해도 먹고 살기가 바쁘고
사회생활이 경제활동을 하는 남성 위주로 국한되어,
가정에서의 아이를 육아하고 키워내
그들이 성인으로 자라고 나면
내가 '노인'이 된다는 자각이 자연스레 있었다면,
여전히 활발한 사회활동과 경제활동
그리고 변해가는 분위기 속에 요즘은 나이만으로
나의 '노화'를 인정하는 것이 쉽지는 않겠다 싶다.

엄마 아빠에게도 자주 "내년이면 국가가 인증하는
노인이니까 무리하지 말고 몸을 사려야 해."
같은 잔소리를 하는 편이었는데,
당신들의 마음이 아직 준비 되지 않았음에도
내 기준과 입장으로만 생각해서 엄마 아빠를
'노인'이라는 테두리로 밀어넣었던 건 아닌지
반성의 마음이 들기도 했다.

누구나 늙고, 노인이 된다.
하지만 그 시기와 시점이 모두에게 똑같은
어떤 정의와 기준점이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스스로 '노인'임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때까지
사회적으로, 또 가정에서도
재촉하기 보다는 입문기의 초보 노인들이
스스로의 노년을 제대로 준비할 수 있도록
기다리고 배려하는 마음을 가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백세시대에 이제 겨우 절반의 반환점을 조금 지나
아직 달려갈 길이 많이 남았는데,
당신의 인생은 이제 막바지 입니다 라고
누가 임의로 말할 수는 없는 것 같다.

인생의 매 시기, 가정과 사회에서 새로이 주어지는
역할과 기대하는 모습을 만족시키려면
누구든 적응할 시간이 필요한 법이다.
우리가 미숙한 어린이, 청소년기를 지나
어설픈 어른에서 오롯이 홀로 설 수 있는 어른으로 자랐듯,

어른에서 노인으로 건너가는 시기의
망설임과 두려움, 갈등도 당연한 것이기에
이해할 수 있어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엄마 아빠가 스스로 '우린 늙었어. 우린 이제 노인이야'
라고 얘기하기 전까지 그들의 실버 입문기를
말없이 지켜보고 응원해줘야 겠다는
작은 응원과 반성의 마음이 든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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