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묘 대소동 - 묫자리 사수 궐기 대회
가키야 미우 지음, 김양희 옮김 / 문예춘추사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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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 대명절인 추석을 앞두고

연휴가 시작되기 무섭게 서울에서 부산까지

7-8시간 가까이 걸리는 귀성길을 떠나

많은 사람들이 고향을 향해 길을 나섰다.


인터넷 기사에서도 이것저것 잔뜩 짐을 챙겨

아이들과 귀성길에 나선 시민들의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온 가족이 모인다는 포근하고 따뜻한,

뭔가 넉넉하고 결속이 느껴지는 마음과 달리

명절 때면 수없이 차리고 치워지는 밥상,

그리고 다 먹지도 못할 만큼 상다리가 휘어지게

차려지는 차례상과 맞물려

여성들의 가사노동이나 부부 싸움,

친정방문과 관련한 갈등 또한 많이 언급된다.


아내라는 이름, 며느리라는 이름 아래

수많은 여성들에게 자연스럽게 얹어지는

고된 가사노동은 '너무 힘들어서'로 시작해

이제는 꽤나 큰 젠더 문제로 번질 만큼

사회적 이슈가 되기도 했다.


꼭 명절의 상차림뿐만 아니라

제사를 모시는 것과 관련해서도

이제는 예전과 다른 인식이 널리 퍼져있다.


종갓집이면 '격이 다른 양반 집안'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던 과거와 달리

공중파 방송사의 한 아나운서가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명절을 맞아

온 가족이 모이는 모습을 소개한 적이 있었는데,

그 많은 식구들의 상차림을 하느라 애쓴

어머니의 모습이 보이며

출연진들이 '오늘 이 방송이 비혼식인가요'

할 정도로 이런 문제를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인식이 크게 바뀌었다.


세상은 바뀌었고, 예전에는 가치가 있고

존중받던 이념이나 생각도

사회가 변화함에 따라 지탄받기도,

혹은 고쳐야만 하는 단점이 되기도 한다.


이 책은 그런 이슈 중의 하나인

'가족묘'를 둘러싼 이야기를 시작으로

저출생, 고령화, 젠더 문제를 비롯해

우리와 다른 사회문제이기는 하지만

'부부 별성'을 허용하지 않는

일본의 구시대적인 법률까지 얹어져

유쾌하게 꼬집어 내었다.



평생을 큰 갈등 없이 살아온 시부모님이었는데,

먼저 돌아가신 시어머니가 유언으로

남편과는 같은 묘에 들어가고 싶지 않다며

가족묘에 안장하는 대신

수목장을 부탁하며 이 이야기는 시작한다.


시어머니가 왜 수목장을 선택했는지

모르는 새에 사실은 시아버지와 갈등이 있었는지

궁금한 마음에 남편과 아주버니,

형님이 나누는 이야기를 듣고 싶어

본인의 집에 이들을 초대한 며느리 사쓰키는


어머니를 이해하는 딸 미쓰요 형님과

도무지 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남편 신지,

그리고 데릴사위로 다른 성을 가진

남편의 형 아키히코의 대화를 통해

많은 생각에 빠지게 된다.


그러는 한편, 사쓰키의 딸 시호는

결혼을 앞둔 남자친구와

누구의 성을 따를 것인가 하는 문제로

갈등을 겪고 결혼 자체를 고민하게 된다.


자신을 누구보다 잘 이해해 주는

좋은 친구이자 연인, 때로는 오빠처럼

그리고 부모처럼 자신을 감싸주던

남자친구 사토루가

지금까지는 누구보다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며 여자의 입장을 이해하고

시호를 배려해 주는 것처럼 굴었음에도,


결혼 후 성을 바꾸는 것에서만큼은

전혀 양보할 생각도 없이

무조건적으로 시호의 희생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모습에 실망한다.


시호의 이복 언니인 마키바가

결혼을 앞둔 남자친구와 '부부 동성 문제'로

다투다 파혼한 경험이 있기에

더 골치 아프기만 한 문제이다.


처음에는 가족묘 안장,

그리고 결혼을 앞둔 부부간의 갈등이

시작이었던 이 문제는

각 등장인물들의 입장과 마음이 펼쳐지며

점점 커다란 사회문제로 확장되는데


무조건적인 희생을 강요당하고

결혼과 동시에 남편의 집안에 귀속되어

아내, 며느리, 딸 등의 역할에만

충실하도록 만들어지는 여성의 고충을

다룬 젠더 문제부터


저출생으로 점점 가족묘를 이어받아

관리해 줄 사람이 줄어들게 되는 것,


남은 가족들이 가족묘를 관리하거나

서로의 생활을 케어해주는 데에도

피로감이나 힘이 부치게 되는 고령화까지

다양하게 확장되는 문제는


비단 부부 별성이 보장되는 우리나라이지만

크게 다르지 않은 갈등이라

더 많은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우리나라에서도 이제 조상의 묘를 찾아

직접 묘를 관리하는 경우는 드물다.

명절이면 찾아 성묘를 하긴 하지만

묘의 잔디 관리나 조경 등은

업체를 통해 맡기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젊은 층에서는 고향의 선산처럼

먼 곳에 부모님을 안장하기보다는

살고 있는 도심에서 가까운 추모의 집,

메모리얼 파크에 모시고 찾거나

화장해 뿌리는 등 관리가 편하고

비용이 적게 드는 쪽을 선호하고 있기에


책 속의 설정은 우리의 사회에서도

언젠가 벌어질, 혹은 이미 벌어지고 있는

현실이기도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혼과 동시에 자신을 지운 채

남편 집안을 위해 존재하는 사람으로

살아가야 했던 시어머니 요시코가

이미 죽은 이후인데도 남편이나

시부모와 같은 묘에 묻히기 싫다고 했던 것은


궁극적으로는 결혼하고

남편의 성을 따르면서 남편의 집안에 구속되어

아내, 며느리, 엄마로서 해오던 역할에서 벗어나

죽어서라도 이 굴레에서 해방되어

오롯이 자신으로서 죽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이 나타난듯해

마음이 아프기도 했고,


남편인 이치로가 '원래 그렇게 해왔으면서

갑자기 죽으면서 이런 말을 해'하는

원망의 마음이 드는 것도

구시대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생각일 뿐,


그렇게 아내를 배려하지 않고 집안만을 위해

살아온 지난 시간은 본인을 외롭게 할 뿐

전혀 '누구에게도 존중받지 못한 선택'

이라는 후회를 남기게만 한다.


사후에 대한 선택뿐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며 마주하는 모든 문제에는

사회가 그동안 쌓아온 전통,

혹은 정답처럼 언급되는

옳고 그름의 분위기가

여전히 존재하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각자의 선택에 달렸을 뿐

정해진 정답이 없다는 것은

사실 누구나 알고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모든 각자의 선택은 충분히 존중받아야 하며

'그래왔으니까'하는 이유로

타인의 희생을 강요하는 기존의 관습은

악습에 불과하다는 메시지,

모든 선택이 존중받길 바라는

등장인물들의 변화와 성장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아닐까 싶다.


자꾸 변해가는 세상 속에서

기존 세대와 다른 생각, 가치로

살아가야 하는 현대의 우리들에게

아직 과거의 생각에 갇혀있는 어른들에게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이 어디를 향하는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게 해주는

의미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독서가 될 것 같다.


유쾌하면서도 직설적으로

사회의 문제를 꼬집어내는 가키야 미우 작가

특유의 통쾌한 비유와 날카로운 메시지가

돋보이는 신작이었다.


피해 갈 수도, 외면할 수도 없는

이 사회문제는 우리나라의 현실에서도

꼭 생각해 봐야 할 문제이기에

소설로서도, 인생의 지침서로서의

의미 있는 이야기였다.


온 가족이 함께 읽어보고

각자의 미래에 대한 선택과 신념에 대해

대화를 나눠보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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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이강의 다리 위에 조선인이 있었네 - 역사에 연루된 나와 당신의 이야기
조형근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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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를 이야기할 때면

그 시절을 직접 겪지 않았음에도

뜨거운 분노와 피가 끓어오르곤 한다.

강제로 타국을 점령한 가해자인 일본,

그리고 그 아래 아스라이 사라져간

수많은 아까운 생명과 희생으로 점철된 시간은

우리는 '피해자'라고 규정하며 말이다.


그런 시선 아래 과거사를 이야기할 때

수없이 '책임'을 논하며 우리가 받은 피해를

인정받고 그에 따른 적절한 배상이나 보상,

그리고 진정성 있는 사과를 받기를 원한다.


하지만 이 책은 제국주의 열강의 침략을

문제의 모든 것으로 보는 관점에서 벗어나

그러한 폭력이 가능하게끔 만든

당대의 사고체계나 인식, 감수성의 구조를

이해하고 이를 성찰의 계기로 삼을 때에만

이 시기와 진정한 단절이 가능하다고 이야기한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중반까지 이어지는

식민제국주의 시기를 주 배경으로

단순히 정치적이고 이념적인 갈등이나

침략의 시선으로 해석한 역사를

색다른 시각으로 되짚어가며 이를 재조명하였다.


역사를 가해자와 피해자로 양분하며

책임의 여지로 나누는 사건 중심이 아닌

그 시대를 살아가는 개개인의 복잡한 마음,

역사 속 인물들에 집중해 풀이했는데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사랑하고 실수하며, 꿈꾸고 욕망하는

당시 인물들의 입체적인 모습이 얽힌

이야기들을 읽어 내려가며

식민제국주의를 생각할 때면

'피해와 가해'만을 떠올리던

과거의 좁았던 시야와 생각을

깨뜨릴 수 있는 새로운 기회가 된 책이었다.


그중 하나의 예로, 책의 제목으로도 언급된

콰이강의 다리 위에 존재한 조선인들의

이야기가 있다.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2년,

동남아시아 일대를 점령한 일본군은

미얀마를 넘어 인도까지 넘보고 있었고,

이를 위해 태국-미얀마를 잇는

철도 건설을 결정하며 이 다리 공사에

연합군 포로와 현지 민간인을 강제 동원했다.

험지에서의 어려운 공사 과정에서

수만 명이 죽어나갔고,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지만

(사실 우리 누구도 알려고 하지 않았던)

죽음의 철도 공사에 포로감시원 역할로

강제징용된 조선인들이 있었다.


일본군에게는

포로들을 제대로 감시하라며 맞았지만,

포로들을 학대하며

현장을 이끌었던 조선인의 얼굴은

포로들에게는 가장 끔찍한,

우리가 피해자로만 기억하고 있지만

한 번도 제대로 마주하지 못했던

가해자의 역사이기도 했다.


전쟁이 끝난 후 포로감시원들은

그곳에 '강제로' 징용되어 갔다는 사실에도

전범 재판의 대상이 되었지만,

그들의 일본인 상관 다수는 재판도 받지 않고

그대로 풀려났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부당하기 그지없는 것 같다.


하지만 명령에 따라 저지른 폭력과

포로들에게 오랜 트라우마와 고통을 안겨준

포로감시원 조선인들의 행위는

과연 책임이 없는 것인가 의구심이 들게 한다.


콰이강 다리 위에 있었던

조선인 감시원들을 비롯해

수많은 역사의 소용돌이 속

중첩된 운명을 살아간 이들의 사연을

인물 중심으로 하나하나 짚어가며,

과연 '가해와 피해'로만 바라보던 역사를

사건 중심으로 해석하는 것이 맞나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답하는 과정을

거치는 시간이 되었고,

그 질문의 끝에 비로소

새로운 시야를 가질 수 있었다.


가해자인 일본의 사람이지만

신분을 숨기고 일제의 괴리인 만주국의

스타가 된 인물이자 전후에는 위안부 문제

해결에 적극 개입했던 리샹란,


질소비료 개발로

식량 생산량을 비약적으로 늘리고

염소가스 제조법을 발명하며

대량학살의 시대를 불러온 유대인 프리츠 하버,


약육강식의 질서를 내면화한 인물이자

세간의 비난 속에서 나혜석과 박인덕을

공개 변호한 계몽 지식인 윤치호,


서구 남성의 동양 여성 판타지에 일조한

할리우드 스타이자 나치에 맞선

독일인 마를레네 디트리히,


아프리카 원주민의 사라져가는 삶을

사명을 다해 기록한 나치 연루자

레니 리펜슈탈까지


18개의 대표적인 에피소드를 통해

각 사건의 인물 중심으로 들여다본 역사는

국가나 민족, 선과 악, 피해와 가해의 논리로

포착하기 어려운 인간의 다양한 면을

엿볼 수 있는 흥미진진한 이야기였다.


한 사람이 태어나 죽고,

그의 후손이 이어져 또 삶을 반복하며

이어가는 시간이 역사가 되니,

결국 역사는 '인간'의 이야기이구나

하는 깨우침을 만나게 된 것이다.


시점을 조금만 달리해 보니

사건의 연속으로 점철되었던 역사는,

다수의 인물들이 이러한 역사에 휘말리고

역사를 만들다가 이윽고 역사가 되는

그 현장을 직접 마주할 수 있었다.


우리는 여전히 서로 얽혀있고

세상은 단순하지 않고 복잡하게 연결되어 있다.

이들을 악랄한 가해자인 악마 혹은

애달픈 희생의 피해자로 그리지 않고

각각을 한 사람의 인간으로 바라보며

그들이 져야 할 역사적 책임,

역사가 그들에게 져야 할 책임을 함께 보려

애쓴 시각이 담긴 글이었다.


우리 역시 우리가 겪었던 그 시각을

'피해의 역사'로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무엇을 어떻게 기억하고

우리가 져야 할 역사적 책임이 없는지

다른 시각으로 문제를 되돌아본다면

지금까지 이어온 과거를 반복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용기 있는 제안이기도 했다.


우리가 지나온 지난한 역사에 대해

무엇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지 판단하는 것에서

연루된 주체로서 공동의 얽혀있는 역사를

바로 마주할 수 있겠다는 책의 제안이

많은 부분을 생각하게 했다.


파국의 역사 속에서도

상관 몰래 포로들을 위해 열차의 문을 열어두었던

조선인 포로감시원에 대한 고마운 마음,

오래 회자되는 대단한 사건도,

역사를 바꾸고 뒤흔드는 일도 아니었지만

그 한 사람의 마음은 포로였던

누군가의 기억에 남아 기록으로 남겨졌고,

이러한 사소한 '선택'은 역사의 흐름 속에

또 다른 가능성을 만들어내었다.


이념과 국적, 인종을 넘어 보편을 향했던

작은 선택들을 되돌아보고 곱씹으며

그 섬광 같은 마음을 통해

다른 역사를 가질 수도 있겠다는 기대감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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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많던 신여성은 어디로 갔을까 - 도시로 숨 쉬던 모던걸이 '스위트 홈'으로 돌아가기까지
김명임 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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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작고하신 우리 할머니가 태어나기도 전,

1923년 창간되어 1934년까지

여성의 이야기를 다룬 총 73권의

《신여성》이라는 이름의 잡지가 발행되었다.


가정 안에서 조용히 숨겨진 존재,

가사나 육아에만 전념하고

가족을 부양하고 남편을 챙기는

수동적인 삶이 당연한 것으로 비치던

그 시절의 사회에서 말하는

신여성이란 과연 어떤 모습일까.


여름이 다가오면 흰 구두와 양산을 사고,

해수욕을 즐기거나 벚꽃 놀이를 즐긴다.

머리는 구불구불한 펌을 하거나

과감하게 짧은 단발로 자르고,

가끔 테니스와 골프도 친다.

좋아하는 음반을 사 모으거나

자유연애로 데이트를 즐기는

잡지 속 신여성의 모습은

요즘 현대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그런데 왜 우리의 할머니, 어머니, 이모는

다른 삶을 살아온 것일까?

그때의 신여성은 모두 어디로 간 걸까?


일제강점기와 전쟁을 겪으며

먹을 것도, 입을 것도 부족했던 그 시절,

여성들에게 이런 소비와 문화향유가 있었다니

과연 사실일까 싶을 만큼

잡지 속 신여성의 모습은 마냥 신기하기만 했다.


새로운 외양을 장착하고

집 '안'에서의 삶에서 '밖'으로 나온

여성들의 존재는 그야말로 문화충격 그 자체.


시스루 스타일의 의상이나 단발 등

서양에서 들여온 옷차림과 머리모양으로

백화점 쇼핑을 즐기는 신여성의 모습,

호떡이나 군고구마 같은 것을

여자가 직접 가게에 들어가 사는 것이

'문화충격'으로 다가왔던 당시의 모습 등은

꽤나 흥미를 끄는 소재로,

새로운 여성의 등장을 담은 이 책에

재미있게 접근하게 해 주었다.


하지만 장을 거듭할수록

근대의 스타이자 주목받는 신여성이 겪었던

각종 스캔들과 소문,

그들을 향한 가학적인 폭력은 물론

신여성의 실체를 파헤치겠다며

정의라는 논리 아래 '은파리'라는 이름의

관음적 시선으로 여성을 미행하고

불편한 소문을 양산했던 당시의 시선을

날 것 그대로 보여주며

여성의 '변화'를 비난하고 비판하게끔

유도했던 잡지의 진짜 '의도'를 보여주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잡지의 주된 집필진은 대부분 남성,

여성 잡지임에도 여성 필자의 비율은

30퍼센트 안팎에 불과했다고 한다.


근대도시의 신교육과 신문물을 열망하며

'안'에서 '밖'으로 나온 여성들을

조명하고 소개하는 듯 보이지만

사실 여부가 확인되지 않은 수많은 소문과

시빗거리를 짚어내고,

새롭게 공적 영역에 나타난 여성을

염려하고 걱정하는 체하며

혹은 꾸짖고 계도하겠다는 목적을

내세우는 이 잡지 속의 시선은


어떠한 사안에 대해

여성들이 잘 모를 것임을 전제하고

남성들이 무턱대고

아는 척 설명하거나 가르치려고 하는

당시의 '맨스플레인(mansplain)'이기도 했고,

사실 《신여성》은 여성이 '주체'인 잡지가 아니라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계몽잡지였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행가나 영화 등 당대 폭발적으로 유입되었던

대중문화에 대해 어떤 집단보다 먼저 나서

수용자와 생산자가 되고자 했던 여성의 모습,

자기들만의 문화를 쌓아나가던 그들의 적극성,

변화하는 시대에 맞춰 자유로운 연애와

성에 대한 욕망을 적극적으로 드러냈던 행보까지


그들의 '불온한' 행보를 비난하고 조롱하며,

'사치와 허영'을 일삼는 못되고

정신적으로 미성숙한 존재로 치부,

여성을 억압하려는 시도가 가득한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들만의 정체성을 세워나가고자 애써온

신여성의 모습은 많은 울림을 주었다.


시대의 차이가 있기에

고리타분할 수밖에 없는 생각이긴 하지만

1920-30년대 남성의 시각에서 바라본,

곱디 고울 리 없겠다는 짐작은 있었지만

남성 중심적 잣대로 바라본

새로이 등장한 신여성의 이미지는


책을 읽는 내가

마치 그 시대를 살아가는 여성인 양

그들이 강요하는 시선과 비난 아래

숨이 턱 막히는 답답함과

뜨거운 화가 일어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성 중심적이고 강압적인 시선에

강력히 반발하는 여성들의 백래시

(backlash - 진보적인 사회, 정치적 변화에 대한

기득권의 반격)를 마주하는 짜릿함,


그 시대를 살아던 신여성들이

한 사람으로서 우뚝 서 자신으로 서고자,

또 자신의 욕구를 겉으로 드러내고

바깥으로 나온 용기 있는 시작과 도전은

그들이 분명히 존재했다는 반증이기도 하기에

한편으로는 그 시도 덕분에

지금의 우리가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으로 감사한 마음도 들었다.


동시에, 신여성의 등장부터

그들을 다시 익숙하고 폐쇄적인

가정이라는 공간으로 내몰아가는

남성들의 시선과 사회적 분위기는

분명 '과거'의 일임에도 '현재'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잡지에 소개된 2-30년대 여성들의 모습,

그리고 이들을 바라보는 남성과

당시 사회 분위기를 담아내며

그 안에 숨겨져 있는 '여성의 역사'를 재조명한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이것은 아니었을까 싶다.


여성이 새로운 시대에 걸맞은 인재로

거듭나야 함을 강조하면서도,

용기 있게 '밖'으로 나와 자신을 드러내고

또 자신의 욕구대로 행동하는

신여성에 대해서는 끊임없는

비난의 시선으로 그치지 않는 아이러니함,


경제활동을 하지 않는 여성에 대해서는

남성의 '창기'가 다름없다고 평하면서도

경제활동을 하는 여성은 가정에 소홀하거나

혹은 여성성을 잃어버렸다는 평으로,

심지어 경제활동을 하며 가정을 챙기는 여성은

'남성의 기를 죽인다'라는 논평이 덧붙여졌으니

여성들의 삶은 참 고단하기 그지없었다.


도시의 거리에서 가정으로 되돌아간

100년 전 신여성을 재조명한 이 책,

《신여성》을 다시 읽으며

당대와 지금 여기의 현실을 똑같은 의미로

관통하는 문제의식을 깨닫고

현재의 현실을 제대로 마주할 수 있었다.


언제 어디에서, 어떤 모습으로

존재할지에 대한 자유,

그리고 규정되고 강요되는 역할로부터의

해방을 위해 투쟁했던 당대 신여성들의

소리 없는 아우성과 목소리는


여전히 유리천장, 워킹맘, 경력단절 등의

용어로 뒷받침되는 현대에서의

신여성의 분투기로 이어져

지금도 여전히 달려가는 길 끝에 있을

열린, 혹은 막힌 출구를 향해 매일을 쌓아가는

나 자신과 만나는 시간이기도 했다.


100년도 넘는 시간을 달려

함께 걸어주는 그 시대의 신여성들의 발걸음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르는

지금의 끝없는 길에 용기를 더해주었다.


지금 마주하는 우리의 현실이

그때의 신여성들이 그랬듯

변화 없이 아스라이 저물더라도,

시간이 흐른 뒤 그때의 여성들에게

지금의 우리가 따뜻한 격려를 얹어줄 수 있는

단단한 동료로 남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한 발걸음을

내디뎌야겠다는 다짐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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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망 1
박완서 지음 / 민음사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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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르지 않은 나이에 입문한 작가 생활임에도

생애 동안 남긴 수많은 주옥같은 작품들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온 박완서 작가,

그녀가 쓴 유일한 역사소설이자 대작인

미망을 새로이 개정해 방언과 입말,

소설에 쓰인 한자어와 일본어, 숙어 등의

표현을 풀어내 더욱 이해하기 쉽도록

민음사에서 새로이 출간되어

감사한 기회에 읽어보게 되었다.


미망은 작가의 고향인 개성에 대한 그리움을 담아

자신이 만들어 낸 인물들을 통해

그리운 고향의 산하를 거침없이 누비고,

운명과 싸워 흥망과 울고 웃는 삶의 모습을

풀어내고 싶다고 고백했는데,

개성 지방의 물과 흙으로 키워낸 인삼농사와

조선 말부터 일제강점기, 한국전쟁을 거쳐

분단에 이르기까지 전씨가 사람들을 통해

한반도의 역사와 그 시대 사람들의 삶을

녹여낸 대작이다.


대한민국 이전의 조선,

그 이전의 고려 시절부터 맥을 이어온

역사와 경제, 구시대의 가족과 그 이후로

시대를 거듭하며 변해가는 시대에 대한

통찰이 담겨있기도 한데,


역사의 큰 줄기를 관통해가는 과정 속

작가 특유의 여성주의적 관점,

서정적인 시선으로 담아낸

인물에 대한 냉철하고 가식 없는 평가와

욕망에 가차없는 판단이 빛을 발하는

부분들이 넘겨나는 책이라 할 수 있다.


더욱이 개인적인 고통 속에서 집필했음에도

결연하고 전진하는 듯한 단단한 힘이 서린

문장과 전씨일가의 삶을 통해서

인생에 대한 참 맛을 깨우치는 시간이기도 했다.


이 책의 시작은 신분제가 들썩이던 시절,

비범한 상업 감각으로 인삼 농사와 장사를 통해

집안에 어마어마한 부를 축적해

자수성가한 전처만 영감의 시점으로 진행된다.


지금이야 넉넉한 부를 가지고 있으니

세상 두려울 게 없어 보이는 전처만이지만,

그의 어린 시절은 평탄치만은 않았다.


서만의 아버지는 등짐장수로 번 돈을

청국이나 왜국과 밀무역했다는 오해를 받아

동네 양반집 이생원에게 문초를 당하게 되고,

이를 지켜보던 어린 서만이 대들어

진노한 이생원이 '눈을 뽑겠다'라며 달려들자

아버지는 스스로 눈을 쑤시며

한쪽 눈을 잃은 대가로 아들을 지킨다.


이때부터 서만은 동네를 떠나 전국을 돌며

장사를 시작하고 종국엔 큰돈을 들고

고향으로 돌아와 거부가 된 것이다.

샛골에는 그의 땅이 아닌 곳이 없고,

그곳의 삼포는 거의 그의 것과 진배없었기에

일명 개성 제일가는 상인이 되었다.


그는 슬하에 세 아들을 두었으나

장남은 일찍부터 건강이 좋지 않아

딸인 태임 하나만 낳은 채 세상을 떠나고,

다른 아들과 손자들이 있음에도

일찍이 세상을 떠난 첫째 아들의 여식인

손녀 태임에게 유난히 애틋하게 아낀다.


무어라 설명할 수는 없지만

장사꾼으로서의 촉이 좋았던 그는

팔도를 두루 돌아다니며 느낀

개화의 바람을 눈치채고는

이 변화에 걸 맞춰 손녀 태임을

지금껏 자신의 어머니가, 그리고 아내가,

또 며느리나 이 세상 여자들이 살아온 것과는

다른 삶으로 이끌고 싶다는 소망으로

애정을 담아 키워왔다.


그러나 그런 평온한 나날들도 잠시,

아들의 집에서 사환으로 일하는 청년

종상의 얼굴에서

어린 시절 그를 두렵게 하고

집안에 아픈 상처를 가져다준

이생원을 떠올리게 하고,

그가 이생원의 손자라는 것을 알게 되자

걷잡을 수 없는 분노에 휩싸인다.


운명의 뜻인지

이생원 댁과 얽히게 된 전처만은,

가세가 기울었다는 이생원 댁의 손자인 종상을

자신의 첩인 해주댁의

집에 머슴으로 보내게 되고


삼포의 인삼(전처만의 인삼)을

일본인들에게 불법으로 넘기려 한 걸

혼자 쫓아서 관아에 신고했으나

되려 거꾸로 벌을 받아 다리가 부러지는

중상을 입게 된 종상을 보고

보호해 주고 싶다는 마음이 드는 한편,

전처만과 마찬가지로 그를 신경 쓰고

챙기는 손녀 태임을 보며

어떤 면에서는 어떻게든 종상을 집에서 쫓아

내고 싶다는 걱정에 빠지게 되는데……


짜임새 있는 각 인물들의 서사,

천서만의 어린 시절과 이생원 댁과의

끈질긴 악연이 담긴 이야기는 물론


충분히 성공한 삶을 이루었으나

마음에 차지 않는 남은 두 아들보다

더 애정하고 잘 키워내고 싶은 건

먼저 떠난 장남의 여식인 태임뿐이다.


친우의 딸을 며느리로 들이고 싶은 마음에

병이 든 것을 숨긴 채 혼사를 고집해

이렇게 벌을 받는 건가 자책하기도 하는

천서만은 마냥 계산적이지도,

혹은 요즘식 표현으로 꼰대스럽지 않은

깨어있는 시선을 가지고 있어


그가 태임을 바라보는 애정 어린 눈빛,

당시였으면 큰 죄인 외간 남자와의 사이에서

아이를 가진 며느리를 포용하고

그 아이마저 어여삐 여기는 그의 마음은


반드시 복수하고 또 성공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악이 가득했던 어린 시절을 지나

성공해 모든 것을 쥐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쓸쓸하고 외로운

그의 삶 전체를 엿볼 수 있어 인생에 대한,

시대의 변화에 대한 다양한 모습을

엿볼 수 있어 좋기도 했고


그의 애정 아래 자라 티 없이 단단한 태임이

변화의 물결 속에서 공부에 대한 욕구,

신분을 떠나 종상에 대한 신뢰나 애정을

숨기지 않는 모습 역시도

굉장히 놀라운 발전이 아니었나 싶다.


전처만과 머릿방아씨 모두 세상을 떠나고

종상과 태임의 새로운 발걸음을 기약하며

1권이 마무리되는데,

2권을 통해 새롭게 펼쳐지는 시대의 변화 속

그들의 신식공부는,

또 혁명과 개화에 전씨 일가는

어떤 모습을 가지게 될지 궁금한 마음이다.


전처만의 아버지 대부터 시작해

몇 대를 이어 이어지는 그 서사와

각 인물들의 성격, 연결고리 등을

하나하나 만들어낸 박완서 작가의

깊이 있고 놀라운 필력에 감동하게 된 독서였다.


태임과 종상은 오히려 안되기에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 사랑을 하게 될까,

그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세상은

어떤 모습이며 또 다른 어려움을 없을까

얼른 다음 책을 찾아 펼쳐봐야겠다.


한 사람뿐 만 아니라

한 집안의, 여러 세대의, 우리나라의 역사의

긴 시간을 이어 한반도의 삶을 담아온

작가의 이야기는 정말 오래도록

앞으로도 울림 있는 메시지로 기억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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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나이다 비나이다
신도윤 지음 / 한끼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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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 혼자 화장실에 가는 게 무서운 여동생이

화장실에 같이 가달라며 깨우는 소리에

일어난 초등학생 이준,

동생이 바지를 적시면 혼나는 것은 자신인지라

먼저 앞장 서라며 동생을 앞세웠는데

문고리를 잡은 동생이 앗, 뜨거워하고

화들짝 놀라며 울기 시작한다.

집에 불이 난 것이다.


문틈에서 시커먼 연기가 들어오고

방안에 갇혀 어쩌지 못하던 두 남매는

창문 밖에서 옆집 아주머니가

뛰어내리면 아래에서 받아준다고 얘기했지만,

혹여나 다칠까 무서운 마음에 망설이다가

오빠인 이준이 먼저 창밖으로 뛰어내려

불길에서 겨우 빠져나오게 된다.


동생에게도 빨리 뛰어내리라고 외치던 찰나

화염이 집을 집어삼키며 폭발했고,

그렇게 이준을 제외한 온 가족은

화마로 세상을 떠나고 이준만 혼자 남는다.


가족이 떠나간 세상에서 외롭고 고독하게,

그토록 도움의 손길을 간절하게 기도하던

그의 외침을 들어주지 않는 신을 원망하며

어른이 된 이준은 초등학교 교사가 되어

도시가 아닌 외따로이 따로 떨어진 산골의

바깥과 최소한으로 교류하며 살아가는

한사람 마을로 발령받게 된다.


발령을 일주일 앞두고,

미리 집을 구하고 인사를 나눌 겸 찾은

한사람 마을은 이상하게도 울타리가 쳐져 있고

굉장히 폐쇄적인 분위기이다.


그곳에 자리 잡고 선생님으로서의

역할을 시작하지만,

일요일이면 피로 추정되는 액체가

뚝뚝 덜어지는 비닐을 들고 입으로 무언가

중얼거리며 수십 명의 마을 주민들이

교회를 찾는 이상한 광경을 목격하게 되고,


그에게 교회 출입을 허가하지 않던

이장이자 목사는 노골적으로 호기심과

경계를 풀지 못하는 이준을 교회로 초대해

그들의 예배에 참관할 수 있게 해준다.


매주 예배마다 한 사람을 뽑아

신과 '영접'하게 해준다는 기이한 현실,

신에게 '제물'을 바친다는 것도,

이준에게는 기이하고 알 수 없는 광기에

두려움이 함께 느껴진다.


우연한 계기로 목사가 신을 영접하는

영광의 방에서 신을 영접하게 된 이준은

그때부터 신을 통해

'가족을 다시 살리고 싶다'라는

비뚤어진 마음으로 광기에 휩싸이게 되는데……


엄청난 관객 수로 놀라운 기록을 세웠던

한국형 오컬트 작품인 파묘에 이어

이 붐을 이어갈만한 작품이라는 소개 글을 담은

이 책은 다양한 소재의 장르를 스릴러와 결합한

이야기를 주로 쓰고 있는 2002년 생의

신예 작가 신도윤의 장편소설이다.


오컬트(Occult)란

과학적으로는 증명되거나 믿어지지 않는

미스터리한 소재를 다루는 작품으로

초자연적 현상, 악마, 악령, 마법, 심령술

등을 주제로 하기에 과연 그가 책을 통해

'종교'와 '신'이라는 영역을 어떻게 표현했을까

호기심과 두려움으로 조심스럽게

책장을 펼치게 되었다.


어린 시절의 사고로 인해 가족을 잃은

트라우마를 가진 초등학교 교사 이준이

이상하고 괴기스러운 한마을의 교사로 부임하며

마주하게 되는 신비한 일들,

그리고 그가 목격한 마을 사람들의

'신의 영접'을 향한 히스테릭한 집착이나

무조건적인 믿음은 특별하게 등장하는

두려운 사건이나 존재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읽는 이로 하여금 긴장감을 놓지 못하게 하는

흡입력 있는 진행이 인상적이었다.


피로 추정되는 액체를 뚝뚝 흘리는

비닐봉지를 들고 교회로 향하는 주민들,

그리고 그가 교회에 가는 것을 필사적으로 막는

교회 목사이자 이장, 그리고 운영팀까지.

이 모든 상황이 되려 그와 독자를

'어떻게든' 교회 안으로 들어가

비밀스럽게 숨겨진 진실을 파헤치도록

이끌고 들어가는데,


처음에는 의심했던 제물이

무언가를 해한 것이 아니라

정육점에서 파는 진짜 '고기' 였다는 점이나

신을 영접하는 것 자체가 연출된 상황이거나

신을 가장한 목사의 군림이라 생각했는데

실제로 영접해서 아픈 허리가 낫는 등

긴장감을 고조시켰다가도

'에이 아무것도 아니었네' 하고

스르륵 기대를 무너뜨리며

독자들을 좌지우지하는 필력이

무척이나 인상적이기도 했고,


무조건적으로 목사와 신을 믿는

마을 주민들을 들여다보면

그 한편에 기대고 바라는 소원이 있다는 점에서

이준과 그리고 평범한 우리 모두와

크게 다르지 않아 과연 누가 악인이고,

무엇이 진실인가에 대해 계속 고민하고

갈등하게 하는 요소가 많았다.


처음에는 한사람 마을의 교회,

영광의 방 안에서 목사의 기도 아래에서만

마주할 수 있는 신의 존재 자체와

그리고 그 진실 이면에 무언가 숨어있을 것 같아

거기에만 초점을 맞춰 이야기를 따라갔다면


나중에는 그토록 기이할 정도로

목사와 신을 맹신하는 마을 사람들의

비 이성적이고 현실적인 모습에

가깝게 닿아가고 그 이상의 파국으로

치닫는 주인공 이준의 모습을 보면서는


되려 순수하게 바라는 소원을 기대하며

제물을 바치고 이들을 위해 기도하는 목사보다

가족을 위해 무슨 일이든 가리지 않고

이성을 잃는 이준이 공포스럽고

괴기스럽게 느껴져 그 끝이 어떻게 될까

궁금해지는 마음으로 쫓게 되었다.


왜 신은 한사람 마을에만 나타나는가 라거나

조금은 허무한 결말에 맥이 빠지기도 했지만

어쩌면 이런 천벌, 파국의 결말을 막기 위해

목사가 그토록 마을을 테두리 쳐 통제하고

그들 내부의 질서를 유지하고 있던 평화가

이방인이자 과한 욕심을 가진 이준으로 인해

그 중심이 무너지게 된 건 아닐까,


어쩌면 제물을 받고서야 기도를 들어주는 신이나

진실을 은폐하고 그저 질서를 유지하고자

입을 닫는 교회의 목사보다

이준이 악인이자 천벌받아야 할 죄를

저지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상하게 비틀린 주민들과 마을의 수상함을

경계하며 읽었던 이야기의 끝에서 느낀

어떤 면으로는 참신한 이 결말은

두드러지는 공포 요소가 없이도

초자연적이면서도 심리를 자극해

두려움과 공포, 기이함으로

극단의 상상력을 불러일으키고

끝까지 긴장의 끈을 놓치지 못하게 하는

매력적인 소설이 아니었나 싶다.


무엇이 되었든 감히 쉽게 선택하기 어려운

대가를 치르고 나서야 소원을 이뤄주는

신을 신이라 할 수 있을까,

그런 신의 강림이나 그와의 영접이

과연 사람들에게 행복을 가져다줄까,

그렇게 '자연'을 거스른 채 질서가 무너진

세상을 과연 평화롭다고 할 수 있을까

끝나지 않는 질문들이 많이 남았다.


누구든 마음속에 간절한 소원 하나쯤은

가지고 있고 안타까운 사연 역시 많지만,

모든 것은 흘러가게 두어야 하는 게

사실은 세상의 섭리이지 않을까 할 만큼

사람들이 각자가 원하는 모든 것을 이루기 위한

움직임이 가져오는 세상의 파국이,


내면에 담긴 욕망을 절제하지 못하고

이를 행동으로 옮기는 한 사람의

잘못된 선택이 어떤 결말을 맞이하게 되는지

섬뜩하고 씁쓸한 결말이었지만

이로 인해 세상의 이치를 깨우친 것 같은

기분이 드는 독서이기도 했다.


책으로도 쫄깃한 긴장감이 한가득이었지만

영상화된다면 더욱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에

혹시나 하는 즐거운 기대감으로

기다림의 시간을 가져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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