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랜프 1 - 거룩한 땅의 수호자
사이먼 케이 지음 / 샘터사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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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침공한 외계생명체에 맞서는 예언속 구원자가 나타났다.
움스크린을 통해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인간‘인 벙커 속 아이들, 그리고 평범한 인간 선우필,
그둘 사이에서 태어난 인류구원의 열쇠 선우희.
이들이 함께 만들어낼 멸망으로 부터의 구원이 성공할지 무척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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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을 때까지 기다려
오한기 외 지음 / 비채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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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기짐을 해결하기 위해 꼭 챙겨야 하는

아침, 점심, 저녁의 삼시 세끼와 달리

디저트는 식사 후에 먹는 후식으로

달콤한 케이크나 쿠키, 때로는 초콜릿처럼

'배고픔'과는 관련이 없지만

추가적인 즐거움과 기쁨,

식사의 완결을 의미하기에 느낌이 다르다.


오늘 디저트는 무얼 먹을까 하는 기대감,

때로는 달콤하고 때로는 씁쓸한 무언가를

입에 넣고 만끽하는 그 시간은

배를 채우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채워주며,

지난한 일상이나 힘들었던 하루의 피로와

스트레스를 풀어주는 존재이기도 하다.


여러 가지 디저트 메뉴 가운데

초콜릿, 이스파한, 젤리, 박하사탕, 슈톨렌이라는

다섯 가지 디저트와 관련된 앤솔러지 소설,

《녹을 때까지 기다려》는

각 디저트에서 영감을 받아 형형색색의

다섯 작가의 세계관, 그리고 평범한 일상 밖의

소설적 상상력을 펼쳐 보였다.


디저트 = 달콤한 음식이라는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던 나에게

때로는 달콤하고 때로는 쓰고 떫기도,

또 맵고 짠 것도 있고,

알싸한 시원함 등 다양한 맛을 연상시키는

흥미진진한 이야기 속으로 끌어당겼는데,


오늘의 디저트는 뭐로 할까? 고민을 하듯

입맛에 따라 감정에 따라 원하는 메뉴를 다룬

이야기를 펼쳐 읽다 보니

인생을 살아가며 느낄 수 있는 다양한 감정들을

이만큼 짙게 맛볼 수 있었다.


첫 번째 이야기 〈민트 초코 브라우니〉는

초콜릿에 대한 이야기로,

곤경에 처한 한 작가의 시점으로 진행된다.

어린이를 대상으로 글쓰기 공부방을 운영하던 중,

지역 인터넷 커뮤니티에 그의 사상을 의심하는

글이 올라오며 수강생이 줄어들자

누구보다 '정상적이고 건전한' 소설을 써서

자신을 증명하기로 결심한다.


달콤하고 부드러운 초콜릿의 맛을 다룬

이야기가 아니라,

호불호가 강한 민트 초코 같은 이 이야기는

똥으로 초콜릿을 싸는 작가라는

기이한 상상력의 틈에서 주류는 아니지만

누구나 궁금해하고 호기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아이러니한 매력을 엿볼 수 있었다.


두 번째 이야기 〈세계의 절반〉은

우연한 기회에 물가에서 줍게 된

안구가 이마에 붙으면서

타인의 전생을 볼 수 있게 된

치과의사의 이야기를 담았다.


자신은 태어나지도 않은 시대의 짤막한 장면들,

주변 사람들의 전생이 자꾸만 보이며

알 수 없는 일상에서의 패턴은

참으로 혼란스럽기만 하지만

'이렇게 되어버렸고 이제 모든 것을 알 것 같다'라는

생각에 빠지게 된 민형.

보려 애쓰지 않아도 보이고,

쌓여가는 타인의 전생에는 무슨 의미가 담겼는지

읽으면서도 참 어렵고 헷갈리지만


도시 이름이기도, 마카롱과 비슷한 모양의

이스파한이라는 디저트의 알 수 없는

정체성과 맞물려 오묘한 맛을 느끼게 해주었다.



세 번째 이야기 〈모든 당신의 젤리〉는

편의점이나 슈퍼마켓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곰 모양 젤리와 관련된 '너'와 젤리의 이야기이다.


곰 모양 젤리를 먹던 중 하나의 젤리가

'너'에게 말을 걸어오며 시작하는데,

전생에 사람이었던 젤리가 생전 기억을 지닌 채

약 400여 개의 젤리에 기억을 나뉘어 갖게 되고

그중 하나인 오렌지 젤리가 자신의 소원을

들어달라며 '너'에게 도움을 요청하는데…


젤리의 존재를 알게 되면서부터

그의 보금자리는 물론 그의 목소리와 사연에

귀를 기울이며 젤리가 가진 '전생'의 미안함을

사과하기 위해 도움을 주던 '너'는


젤리의 사과 대상을 마주하며

언제까지고 젤리를 도울 수 없고,

그러면서도 누군가의 도움의 손길을 외면하는

자신이 그리 좋은 사람이 아니라는 것에서

오는 죄책감으로 고민하는 모습을 보인다.


같은 곰 모양의 젤리이지만

색도 맛도 제각각인 것처럼,

얼핏 비슷해 보이는 사람들도

제각기 다른 모습과 마음, 생각으로 살아간다.


누가 옳고 그른가를 떠나

각기의 '맛'으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 역시

어떤 면에서는 젤리 곰이 세상을 비춰주는

거울과 같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든다.



네 번째 이야기인 〈박하사탕〉은

특별히 싸운 것은 아니지만 오랫동안 연락 없이

만나지도 않고 지낸 두 명의 친구가

함께 가까이 지내던 친구의 부고를 듣고

오랜만에 서로를 마주하게 된 이야기를 담았다.


어쩌면 오늘이 지나면 다시 만나지 않을 수 있는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관계.

시간이 많이 지나 서운하고 미운 감정은 덜었지만

다시 가까이하기에는 망설임이 생기는

그간의 시간은 날씨처럼 차기만 하다.


화장터 근처 추모 공원에서 미묘한 산책을 하다

우연히 대강 끼니를 때우기 위해 들른

식당에서 후식으로 가지고 온 박하사탕을

서로 하나씩 나누고서는

혀 위에 사탕을 올리고 '녹기를 기다리며'

자연스레 서로의 손을 꽉 움켜쥐게 된다.

다시 이런 시간이 올지 장담할 수 없다는 것을

서로 느끼면서 말이다.


갑작스러운 관계의 단절에서 나이를 먹어도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는 인간의 모습,

갈등 아래에서도 끝까지 미워하고 싶지도

그렇다고 나서서 먼저 화해하고 싶지도 않은

그 감정들까지 달콤하면서도 알싸한

박하사탕의 맛처럼,

그러면서도 오래 잔상처럼

입에 마음에 남는 글이었다.



마지막 이야기 〈라이프 피버〉는

집을 떠나 해외에서 살다,

십 년 만에 고국에 돌아온 엄마의 집.

나의 방이 에어비앤비로 쓰일 뿐,

가족들과의 불편하고 어색한 관계는

변하지 않은 것 같이 날씨처럼 춥기만 하다.

빈손으로 오기 뭐해서 선물로 들고 온

독일의 디저트 '슈톨렌'을 함께 먹으며

오랜만의 어색한 조우에 달콤함을 더한다.


마지막 슈톨렌은 행운의 상징이죠,

라는 빵집 주인의 말처럼

슈톨렌을 나눠먹으며 겉으로는 십 년 전과

하나도 다를 바가 없었지만 조금은

서로를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된 것도 같은

이 미지근해진 온도는

아마도 슈톨렌 덕분인가 하는 피식하는

웃음을 짓게 하기도 했다.


디저트 이름을 하나씩 따고 있지만

대단히 달콤하고 사랑스러운 이야기라기 보다

조금은 기이하고 현실성이 없어

낯설게 느껴지기도 한다.


무슨 맛일까 짐작이 되지 않는 디저트를

처음 먹어보는 경험처럼,

때로는 익숙한 맛의 디저트가

상황이나 함께 먹는 사람에 따라

다른 맛이 느껴지기도 하고,

어떤 때에는 그 디저트 하나로 분위기가 달라지듯


작가들이 표현하는 각 이야기들의

여러 가지 맛들을 입이 아닌 눈으로 맛보며

그 맛을 마음으로 느껴보는 것 또한

색다르면서도 재미있는 경험이기도 했다.


꼭 달콤한 것만이 디저트는 아니야,

라고 하나하나 직접 맛을 보여주듯

다양한 맛의 이야기들을 들려주며

마음을 이만큼 꽉 채워주었다.


또 어떤 맛의 이야기가 있을까

기대감을 가지게 하는 특별한 앤솔러지,

각기 다른 배경과 이야기로

연관성이 하나도 없는 듯싶지만

읽고 나면 하나로 묶여 마음에 울림을 주는

특별한 소설이었다.


하루에 한 편씩, 오늘의 디저트를 고르듯

그렇게 다채로운 인생의 맛으로

참 즐겁고 맛있었던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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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꾼들의 모국어
권여선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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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주가들의 식사를 가까이 들여다보면

술을 먹기 위한 빌미가 필요한 사람인 마냥

'이 음식에는 이 술을 마셔야 하는데'하며

각종 메뉴에 어울리는 술을 읊어댄다.


거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기어코 그 술을 주문하고 잔을 부딪치며

'그래, 이 맛이지'하고 감탄하는 모습을 볼 때면

술을 즐기지 않는 나에게는

그저 신기하기만 한 풍경이다.


여기에 술을 좋아하는 한 작가가 있다.

고주망태로 부어라 마셔라 술 마시는 행위나

알코올 그 자체를 즐기는 것이 아니라

술과 그에 곁들이는 음식인 '안주'를 즐기며

그 맛과 멋을 맛있는 글로 써낼 줄 아는 사람이다.


부모님 연배보다는 조금 젊지만

이모 또래인 그녀의 글을 따라

술을 한 잔도 걸치지 못하는 내가

순댓국에 소주며, 먹어본 기억도 없는 홍어 회며

가죽나물이나 간짜장이나 감자탕까지

계절마다 '제철'을 맞이한 음식을

먹고 마시다 보니 어느새 그의 글에

진탕 취해버리고 마는 특별한 경험을

하게 된 독서였는데,


익숙한 음식도,

한 번도 먹어본 적 없는 음식도

그녀가 써 내려간 글을 보는 눈을 통해,

글을 읽어내는 입을 통해 내 혀에 닿아

그 맛이 미뢰에 느껴지니

자연스레 '먹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며

시장해지는 참 맛깔난 글이었다.


똑같은 음식을 먹고도

누군가는 '단맛이 나고 짜기도 하고' 정도로

심플하고 단조롭게 표현한다면


그녀의 글 속 음식의 표현은

아직 맛이 들지 않는 여름의 끝자락임에도

당장에 무를 사다가 정성스레 손질하고

갈치와 함께 양념장을 넣고 끓여 내어

부드럽고 달큼한 그 무 조림을

내 밥숟가락 위에 올리고 싶게 만들 만큼

요리의 충동을 불러일으켰고,


언니와 애인과 세명이 찾던

팔보채 중짜에 간짜장 조합에

술잔을 기울이는 풍경은

내가 직접 그 음식을 먹은듯한 착각도,

그녀의 꾀죄죄한 모습에도 작가임을

알아보고 있었던 중국집 매니저가 있었음에도

'너무 맛있어 다시 찾을 수밖에 없는'

수치심과 쾌감에 가까운 만족감이

공존한 경험은 웃음과 동시에

먹방을 보는듯한 대리만족을 느끼게도 했다.


삼시 세끼 까지는 아니어도

적어도 두 끼, 혹은 하루에 한 끼라도

누구든 제대로 된 끼니를 챙기려 한다.

그런 우리에게 때로는 바쁜 일상이

음식을 '즐기기'보다는 숙제 같은 느낌으로

그저 '적당히 해치우는' 존재가 되기도 하는데,


대수롭지 않게 입에 넣는 음식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추억을 되새겨 그 그리움까지 맛있게

끄집어내어 무언가를 먹고 마시는

정성스러운 그녀의 식사와 술자리는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어 주었다.


함께 살아가는 한 식구(食口)와

음식을 함께 맛보는 순간에 느껴지는

무한한 희열과 공감, 그리고 연대감


또 가장 소박한 것이지만

확실한 행복과 기쁨을 가져다주며

사람들을 결속하게 하는 요소인

음식에 대한 그녀의 조명은


그저 '때가 되었으니 먹는 거지' 싶은 마음으로

꺼져 들어간 매일의 식사와 음식에 대한 열망을

입맛을 다시 돌게 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틈만 나면 술 마시는 술꾼의 부끄럽지만

마음껏 술에 대한 애정을 표출한 듯

이야기하는 작가의 글은,


사실은 무엇보다 소박한 하지만 꽉 찬

인생의 행복을 다룬 글로,

음식에 대한 예찬론이자 술꾼들의 '모국어'로

그 언어를 아직 이해하지 못하는

풋내기 술꾼들에게도 기분 좋은 자극이자

침을 삼키게 하는 진수성찬이 될 것 같다.


평상시에 '술은 별로'라며 손사래를 치고

'취해서 무슨 맛인지도 잘 모를 거야'라며

속단하던 나의 마음에

찬바람 나는 계절에 무가 나오면

무 조림에 소주 한잔 기울여 볼까 하는

작은 기대감이 샘솟게 한다.


계절에 어울리는 음식들이 20가지나 소개되어

그녀의 글을 따라 사계절의 음식과

그에 어울리는 술을 먹고 마시다 보면

일 년이 금방, 늘 사소한 행복으로

배와 마음을 모두 채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도,

술을 즐기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여러 의미로 따스하고 반가운 글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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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묘 대소동 - 묫자리 사수 궐기 대회
가키야 미우 지음, 김양희 옮김 / 문예춘추사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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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 대명절인 추석을 앞두고

연휴가 시작되기 무섭게 서울에서 부산까지

7-8시간 가까이 걸리는 귀성길을 떠나

많은 사람들이 고향을 향해 길을 나섰다.


인터넷 기사에서도 이것저것 잔뜩 짐을 챙겨

아이들과 귀성길에 나선 시민들의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온 가족이 모인다는 포근하고 따뜻한,

뭔가 넉넉하고 결속이 느껴지는 마음과 달리

명절 때면 수없이 차리고 치워지는 밥상,

그리고 다 먹지도 못할 만큼 상다리가 휘어지게

차려지는 차례상과 맞물려

여성들의 가사노동이나 부부 싸움,

친정방문과 관련한 갈등 또한 많이 언급된다.


아내라는 이름, 며느리라는 이름 아래

수많은 여성들에게 자연스럽게 얹어지는

고된 가사노동은 '너무 힘들어서'로 시작해

이제는 꽤나 큰 젠더 문제로 번질 만큼

사회적 이슈가 되기도 했다.


꼭 명절의 상차림뿐만 아니라

제사를 모시는 것과 관련해서도

이제는 예전과 다른 인식이 널리 퍼져있다.


종갓집이면 '격이 다른 양반 집안'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던 과거와 달리

공중파 방송사의 한 아나운서가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명절을 맞아

온 가족이 모이는 모습을 소개한 적이 있었는데,

그 많은 식구들의 상차림을 하느라 애쓴

어머니의 모습이 보이며

출연진들이 '오늘 이 방송이 비혼식인가요'

할 정도로 이런 문제를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인식이 크게 바뀌었다.


세상은 바뀌었고, 예전에는 가치가 있고

존중받던 이념이나 생각도

사회가 변화함에 따라 지탄받기도,

혹은 고쳐야만 하는 단점이 되기도 한다.


이 책은 그런 이슈 중의 하나인

'가족묘'를 둘러싼 이야기를 시작으로

저출생, 고령화, 젠더 문제를 비롯해

우리와 다른 사회문제이기는 하지만

'부부 별성'을 허용하지 않는

일본의 구시대적인 법률까지 얹어져

유쾌하게 꼬집어 내었다.



평생을 큰 갈등 없이 살아온 시부모님이었는데,

먼저 돌아가신 시어머니가 유언으로

남편과는 같은 묘에 들어가고 싶지 않다며

가족묘에 안장하는 대신

수목장을 부탁하며 이 이야기는 시작한다.


시어머니가 왜 수목장을 선택했는지

모르는 새에 사실은 시아버지와 갈등이 있었는지

궁금한 마음에 남편과 아주버니,

형님이 나누는 이야기를 듣고 싶어

본인의 집에 이들을 초대한 며느리 사쓰키는


어머니를 이해하는 딸 미쓰요 형님과

도무지 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남편 신지,

그리고 데릴사위로 다른 성을 가진

남편의 형 아키히코의 대화를 통해

많은 생각에 빠지게 된다.


그러는 한편, 사쓰키의 딸 시호는

결혼을 앞둔 남자친구와

누구의 성을 따를 것인가 하는 문제로

갈등을 겪고 결혼 자체를 고민하게 된다.


자신을 누구보다 잘 이해해 주는

좋은 친구이자 연인, 때로는 오빠처럼

그리고 부모처럼 자신을 감싸주던

남자친구 사토루가

지금까지는 누구보다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며 여자의 입장을 이해하고

시호를 배려해 주는 것처럼 굴었음에도,


결혼 후 성을 바꾸는 것에서만큼은

전혀 양보할 생각도 없이

무조건적으로 시호의 희생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모습에 실망한다.


시호의 이복 언니인 마키바가

결혼을 앞둔 남자친구와 '부부 동성 문제'로

다투다 파혼한 경험이 있기에

더 골치 아프기만 한 문제이다.


처음에는 가족묘 안장,

그리고 결혼을 앞둔 부부간의 갈등이

시작이었던 이 문제는

각 등장인물들의 입장과 마음이 펼쳐지며

점점 커다란 사회문제로 확장되는데


무조건적인 희생을 강요당하고

결혼과 동시에 남편의 집안에 귀속되어

아내, 며느리, 딸 등의 역할에만

충실하도록 만들어지는 여성의 고충을

다룬 젠더 문제부터


저출생으로 점점 가족묘를 이어받아

관리해 줄 사람이 줄어들게 되는 것,


남은 가족들이 가족묘를 관리하거나

서로의 생활을 케어해주는 데에도

피로감이나 힘이 부치게 되는 고령화까지

다양하게 확장되는 문제는


비단 부부 별성이 보장되는 우리나라이지만

크게 다르지 않은 갈등이라

더 많은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우리나라에서도 이제 조상의 묘를 찾아

직접 묘를 관리하는 경우는 드물다.

명절이면 찾아 성묘를 하긴 하지만

묘의 잔디 관리나 조경 등은

업체를 통해 맡기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젊은 층에서는 고향의 선산처럼

먼 곳에 부모님을 안장하기보다는

살고 있는 도심에서 가까운 추모의 집,

메모리얼 파크에 모시고 찾거나

화장해 뿌리는 등 관리가 편하고

비용이 적게 드는 쪽을 선호하고 있기에


책 속의 설정은 우리의 사회에서도

언젠가 벌어질, 혹은 이미 벌어지고 있는

현실이기도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혼과 동시에 자신을 지운 채

남편 집안을 위해 존재하는 사람으로

살아가야 했던 시어머니 요시코가

이미 죽은 이후인데도 남편이나

시부모와 같은 묘에 묻히기 싫다고 했던 것은


궁극적으로는 결혼하고

남편의 성을 따르면서 남편의 집안에 구속되어

아내, 며느리, 엄마로서 해오던 역할에서 벗어나

죽어서라도 이 굴레에서 해방되어

오롯이 자신으로서 죽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이 나타난듯해

마음이 아프기도 했고,


남편인 이치로가 '원래 그렇게 해왔으면서

갑자기 죽으면서 이런 말을 해'하는

원망의 마음이 드는 것도

구시대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생각일 뿐,


그렇게 아내를 배려하지 않고 집안만을 위해

살아온 지난 시간은 본인을 외롭게 할 뿐

전혀 '누구에게도 존중받지 못한 선택'

이라는 후회를 남기게만 한다.


사후에 대한 선택뿐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며 마주하는 모든 문제에는

사회가 그동안 쌓아온 전통,

혹은 정답처럼 언급되는

옳고 그름의 분위기가

여전히 존재하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각자의 선택에 달렸을 뿐

정해진 정답이 없다는 것은

사실 누구나 알고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모든 각자의 선택은 충분히 존중받아야 하며

'그래왔으니까'하는 이유로

타인의 희생을 강요하는 기존의 관습은

악습에 불과하다는 메시지,

모든 선택이 존중받길 바라는

등장인물들의 변화와 성장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아닐까 싶다.


자꾸 변해가는 세상 속에서

기존 세대와 다른 생각, 가치로

살아가야 하는 현대의 우리들에게

아직 과거의 생각에 갇혀있는 어른들에게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이 어디를 향하는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게 해주는

의미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독서가 될 것 같다.


유쾌하면서도 직설적으로

사회의 문제를 꼬집어내는 가키야 미우 작가

특유의 통쾌한 비유와 날카로운 메시지가

돋보이는 신작이었다.


피해 갈 수도, 외면할 수도 없는

이 사회문제는 우리나라의 현실에서도

꼭 생각해 봐야 할 문제이기에

소설로서도, 인생의 지침서로서의

의미 있는 이야기였다.


온 가족이 함께 읽어보고

각자의 미래에 대한 선택과 신념에 대해

대화를 나눠보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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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이강의 다리 위에 조선인이 있었네 - 역사에 연루된 나와 당신의 이야기
조형근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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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를 이야기할 때면

그 시절을 직접 겪지 않았음에도

뜨거운 분노와 피가 끓어오르곤 한다.

강제로 타국을 점령한 가해자인 일본,

그리고 그 아래 아스라이 사라져간

수많은 아까운 생명과 희생으로 점철된 시간은

우리는 '피해자'라고 규정하며 말이다.


그런 시선 아래 과거사를 이야기할 때

수없이 '책임'을 논하며 우리가 받은 피해를

인정받고 그에 따른 적절한 배상이나 보상,

그리고 진정성 있는 사과를 받기를 원한다.


하지만 이 책은 제국주의 열강의 침략을

문제의 모든 것으로 보는 관점에서 벗어나

그러한 폭력이 가능하게끔 만든

당대의 사고체계나 인식, 감수성의 구조를

이해하고 이를 성찰의 계기로 삼을 때에만

이 시기와 진정한 단절이 가능하다고 이야기한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중반까지 이어지는

식민제국주의 시기를 주 배경으로

단순히 정치적이고 이념적인 갈등이나

침략의 시선으로 해석한 역사를

색다른 시각으로 되짚어가며 이를 재조명하였다.


역사를 가해자와 피해자로 양분하며

책임의 여지로 나누는 사건 중심이 아닌

그 시대를 살아가는 개개인의 복잡한 마음,

역사 속 인물들에 집중해 풀이했는데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사랑하고 실수하며, 꿈꾸고 욕망하는

당시 인물들의 입체적인 모습이 얽힌

이야기들을 읽어 내려가며

식민제국주의를 생각할 때면

'피해와 가해'만을 떠올리던

과거의 좁았던 시야와 생각을

깨뜨릴 수 있는 새로운 기회가 된 책이었다.


그중 하나의 예로, 책의 제목으로도 언급된

콰이강의 다리 위에 존재한 조선인들의

이야기가 있다.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2년,

동남아시아 일대를 점령한 일본군은

미얀마를 넘어 인도까지 넘보고 있었고,

이를 위해 태국-미얀마를 잇는

철도 건설을 결정하며 이 다리 공사에

연합군 포로와 현지 민간인을 강제 동원했다.

험지에서의 어려운 공사 과정에서

수만 명이 죽어나갔고,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지만

(사실 우리 누구도 알려고 하지 않았던)

죽음의 철도 공사에 포로감시원 역할로

강제징용된 조선인들이 있었다.


일본군에게는

포로들을 제대로 감시하라며 맞았지만,

포로들을 학대하며

현장을 이끌었던 조선인의 얼굴은

포로들에게는 가장 끔찍한,

우리가 피해자로만 기억하고 있지만

한 번도 제대로 마주하지 못했던

가해자의 역사이기도 했다.


전쟁이 끝난 후 포로감시원들은

그곳에 '강제로' 징용되어 갔다는 사실에도

전범 재판의 대상이 되었지만,

그들의 일본인 상관 다수는 재판도 받지 않고

그대로 풀려났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부당하기 그지없는 것 같다.


하지만 명령에 따라 저지른 폭력과

포로들에게 오랜 트라우마와 고통을 안겨준

포로감시원 조선인들의 행위는

과연 책임이 없는 것인가 의구심이 들게 한다.


콰이강 다리 위에 있었던

조선인 감시원들을 비롯해

수많은 역사의 소용돌이 속

중첩된 운명을 살아간 이들의 사연을

인물 중심으로 하나하나 짚어가며,

과연 '가해와 피해'로만 바라보던 역사를

사건 중심으로 해석하는 것이 맞나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답하는 과정을

거치는 시간이 되었고,

그 질문의 끝에 비로소

새로운 시야를 가질 수 있었다.


가해자인 일본의 사람이지만

신분을 숨기고 일제의 괴리인 만주국의

스타가 된 인물이자 전후에는 위안부 문제

해결에 적극 개입했던 리샹란,


질소비료 개발로

식량 생산량을 비약적으로 늘리고

염소가스 제조법을 발명하며

대량학살의 시대를 불러온 유대인 프리츠 하버,


약육강식의 질서를 내면화한 인물이자

세간의 비난 속에서 나혜석과 박인덕을

공개 변호한 계몽 지식인 윤치호,


서구 남성의 동양 여성 판타지에 일조한

할리우드 스타이자 나치에 맞선

독일인 마를레네 디트리히,


아프리카 원주민의 사라져가는 삶을

사명을 다해 기록한 나치 연루자

레니 리펜슈탈까지


18개의 대표적인 에피소드를 통해

각 사건의 인물 중심으로 들여다본 역사는

국가나 민족, 선과 악, 피해와 가해의 논리로

포착하기 어려운 인간의 다양한 면을

엿볼 수 있는 흥미진진한 이야기였다.


한 사람이 태어나 죽고,

그의 후손이 이어져 또 삶을 반복하며

이어가는 시간이 역사가 되니,

결국 역사는 '인간'의 이야기이구나

하는 깨우침을 만나게 된 것이다.


시점을 조금만 달리해 보니

사건의 연속으로 점철되었던 역사는,

다수의 인물들이 이러한 역사에 휘말리고

역사를 만들다가 이윽고 역사가 되는

그 현장을 직접 마주할 수 있었다.


우리는 여전히 서로 얽혀있고

세상은 단순하지 않고 복잡하게 연결되어 있다.

이들을 악랄한 가해자인 악마 혹은

애달픈 희생의 피해자로 그리지 않고

각각을 한 사람의 인간으로 바라보며

그들이 져야 할 역사적 책임,

역사가 그들에게 져야 할 책임을 함께 보려

애쓴 시각이 담긴 글이었다.


우리 역시 우리가 겪었던 그 시각을

'피해의 역사'로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무엇을 어떻게 기억하고

우리가 져야 할 역사적 책임이 없는지

다른 시각으로 문제를 되돌아본다면

지금까지 이어온 과거를 반복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용기 있는 제안이기도 했다.


우리가 지나온 지난한 역사에 대해

무엇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지 판단하는 것에서

연루된 주체로서 공동의 얽혀있는 역사를

바로 마주할 수 있겠다는 책의 제안이

많은 부분을 생각하게 했다.


파국의 역사 속에서도

상관 몰래 포로들을 위해 열차의 문을 열어두었던

조선인 포로감시원에 대한 고마운 마음,

오래 회자되는 대단한 사건도,

역사를 바꾸고 뒤흔드는 일도 아니었지만

그 한 사람의 마음은 포로였던

누군가의 기억에 남아 기록으로 남겨졌고,

이러한 사소한 '선택'은 역사의 흐름 속에

또 다른 가능성을 만들어내었다.


이념과 국적, 인종을 넘어 보편을 향했던

작은 선택들을 되돌아보고 곱씹으며

그 섬광 같은 마음을 통해

다른 역사를 가질 수도 있겠다는 기대감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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