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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어른
이옥선 지음 / 이야기장수 / 2024년 8월
평점 :




일흔 살이 넘는 나이에
아카데미상을 수상한 윤여정 배우를 보며
사람의 인생이란 언제 스포트라이트가 켜질지
끝까지 알 수 없는 것이며,
초라하거나 혹은 내리막길로 빗대어지는
노년의 인생도 얼마나 멋지게 빛날 수 있는지
새삼 깨달을 수 있었다.
십여 년 전쯤 후배 여배우들과 떠난
유럽으로의 여행기를 다룬 예능에서
그녀는 이런 이야기를 했다.
"아쉽지 않고 아프지 않은 인생이 어딨어.
60이 되어도 인생을 몰라요.
내가 처음 살아보는 거잖아, 나 67살이 처음이야.
내가 알았으면 이렇게 안 하지.
그래서 아쉬울 수밖에 없고 아플 수밖에 없고,
계획을 할 수가 없어.
내 인생만 아쉬운 것 같고 내 인생만 아픈 것 같지만
사실 모두 다 아쉽고 아파.
…
하지만 인생은 한 번 살아볼만해.
인생 참 재밌다."
나이를 먹어가면 자연히 알게 되지 않을까
생각했던 인생에 대해서
'나 역시 아쉽고 아프며, 처음이라 잘 모르겠다.
세월의 흐름에 따라 하나씩 내려놓고
포기하게 되지만 그래도 용기를 내어 도전해 보고
즐겁게 웃고 살기로 했다'라는 그녀의 고백은
많은 사람들에게 울림을 주었고
여러 기사를 통해 회자되기도 했다.
'어떻게 나이 드는 어른이 될 것인가'라는 질문에
그저 사회나 타인의 시선이 규정한 모습에서
벗어나지 않는 정형화된 이미지를 떠올렸던 나에게
이렇게 일반적이지 않은 新 어른의 모습은
신기하기도 하고 무척이나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여기에 또 한 명의 그런 사람이 있다.
자애롭고 따스하며
생각만 하면 절로 애틋함이 드는
평범한 할머니가 아니라
호탕한 일갈과 매콤 칼칼한 유머,
앞으로 몇십 년은 끄떡없을 것 같은
호랑이 같은 씩씩한 기상을 겸비한 채
지금이 인생의 '골든에이지'라 말하는
70대의 이옥선 여사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딸이 태어나 다섯 살이 될 때까지의 육아일기를
엮어만든 전작 《빅토리 노트》의 작가이자,
요즘 여러 저서와 <여둘톡> 팟캐스트로
젊은 세대에게 주목받는 김하나 작가의
어머니이기도 한 그녀의 글은
'김하나 작가의 필력이 갑자기 샘솟은 게 아니구나,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거였어.' 하고
무릎을 탁 치게 만들어 주었다.
국어 교사였지만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남편의 직장을 따라 움직이며
자연스레 경단녀이자 가정주부가 된 그녀가
남편을 먼저 떠나보내고 자식들을 다 키워놓고
70대가 되어서야 풀어놓은 이 이야기들은
그 농축된 시간만큼이나 강렬하면서도
그동안 마주하지 못했던 어른의 모습이기에
더 매력적이고 멋지게만 느껴졌다.
✔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
✔ 절대 유명해지지 마라
✔ 뭐든 다 지나간다
✔ 여자라면 의리다
✔ 결혼생활에 해피엔딩은 없다
✔ 남자 잘못 만나 인생 망한 여자는 있어도
안 만나서 망한 여자는 없다
등 기상천외하고 일명 골 때리는
그녀의 매콤한 인생 조언 메시지는
아직 30대라 풋내기 어른에 불과하지만
'어른'이라는 호칭이 주는 무게감,
누군가에게 모범이 되거나
손가락질 받지 않게끔 스스로를 채비하고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던 나에게
오늘보다 내일 더 성숙할 필요 없이
대충 '다 지나간다'라는 마음으로 살다 보면
지나간 과거와 다가올 미래에
붙들리지 않을 수 있다며
지금을 최대한 즐기는 그녀의 모습은
그 어떤 청춘보다 적극적이고 열정적이라
한편으로는 문화충격이자 좋은 자극이 되었다.
이 또한 그녀가 70여 년 세상을 살면서
깨달은 지혜일 수도 있지만
아무런 기대 없이 스스로의 명랑성과
가벼운 마음가짐에 기대어
자유로운 인간으로,
노년의 인생을 죽음을 향해가는 마지막이 아닌
여전히 현역의 마음으로 재밌게 사는
인생 노하우를 지켜보며,
나이에 상관없이 세상에 관심을 두면
무언가를 끊임없이 배울 수 있다는 것,
유머를 잃지 않을 때 즐거운 일상을 보낼 수 있다는
단순하지만 명쾌한 인생 진리는
'어른'이라는 이름에 짊어진 무게감과
부담감을 조금은 내려놓을 수 있게 해주었다.
또한 멋지고 존경받는 어른이 되기보다,
나에게 관심 가지는 사람은 나밖에 없으니
매사에 쫓기듯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며
전전긍긍 하기보다는
그저 지금에 집중하자는 무심한 듯 따스한 조언은
'어른이 되려 애쓰지 않아도 된다'라는
다독임으로 다가오기도 했다.
얼큰 칼칼한 국물처럼 속을 뻥 뚫어주는
그녀의 글을 읽다 보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되려 진짜 '어른'은 본인이 어른임을 자각하거나
거창한 말을 하려 애쓰지 않는다는 것.
그저 '매일을 즐겁고 유쾌하게'
스스로를 해방시키고 자유롭게 살아가는
시간들 속에서 인생에 대한 방향을 찾을
뿐이라고 말이다.
나이를 먹어갈수록
'더 나은 사람'이 되어야 할 것 같아서
말 한마디, 선택의 순간마다 망설임이 많았는데
그 고민의 순간에 이 글과 그녀의 인생이
조금은 덜 흔들리고 스스로의 마음에만
더 집중하게 도와주지 않을까 싶다.
나 또한 이렇게 명랑함을 잃지 않고
'즐거운 어른'이 되어
누군가의 좋은 롤 모델이자 이정표 같은
존재가 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깨에 잔뜩 얹어진 힘을 조금은 빼고
꼭 노년이 아닌 지금부터
매 순간이 인생의 '골든 에이지'가 되도록
나의 매일에 즐거움과 유쾌함을 곁들여
살아가야겠다는 마음이다.
아직 60대 중반인 엄마에게도
인생 골든에이지를 만끽할 수 있도록,
아직 즐거운 어른이 되기에 늦지 않았다며
추천해 주고 싶다.
책을 써 내려간 그녀를 시작으로
기상천외하고 유쾌한 어른들이 늘어나
각자의 다양한 삶을 영위하는 노년이 많아지길,
그래서 더 다채로운 인생의 모습을
여기저기서 쉽게 접할 수 있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