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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딩 피플
앨리슨 에스파흐 지음, 김보람 옮김 / 북로망스 / 2026년 5월
평점 :
※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후기입니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
1920년대를 배경으로 런던의 한 상류층 여성이
저녁 파티를 준비하는 하루를 담아낸
버지니아 울프의 대표작 《댈러웨이 부인》.
겉으로는 평온하고 부족함 없어 보이는
댈러웨이 부인의 일상이지만,
전쟁 후유증에 시달리는 참전 군인
셉티머스의 비극과 평행선을 달리듯
겹쳐지는 그녀의 하루를 통해
삶과 죽음의 감각을 마주할 수 있었다.
우리의 인생도 그렇지 않을까 싶다.
겉으로는 아무 문제 없이
무탈한 하루를 보내고 있는 것 같지만
각자에게 얹어진 삶의 무게나
자신의 존재에 대한 고민은
댈러웨이 부인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앨리슨 에스파흐의 소설 《웨딩 피플》도
같은 결에서 시작한다.
이제 이 지친 삶을 끝내고 싶은 여자와
화려한 결혼식을 통해 막 인생을
제대로 시작하려는 여자가 만나는
화학작용을 그려냈다.
댈러웨이와 셉티머스가 그러했듯,
상반된 상황 속 너무도 다른 삶이지만
두 여자는 서로를 통해 자신을 되돌아보며
사실은 무엇에 솔직하지 못했는지,
내 삶을 어떻게 다시 사랑할 수 있는지
그 이유를 찾아간다.
연이은 임신의 실패와 남편의 불륜,
그리고 이어지는 이혼과 반려동물의 죽음으로
인생의 끝에 내몰린 것 같은 피비.
남은 인생을 똑같이 반복하며 보낼 수 없어
차라리 아름다워 보이는 죽음을 택하기로 한다.
가고 싶다 생각하면서도 늘 망설이기만 했던
고급 호텔에서 인생을 마감하기로 결심한 피비는
자신을 제외하고는 온통 결혼식을 위해 찾은
하객들만 가득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팬데믹으로 정신없었던 호텔 측에서
결혼식을 위해 신부가 통째로 대관한 것을 잊고
덜컥 그녀의 예약을 받아버린 것이다.
피비는 하객으로 찾아온 이 평범한 이들도
자신처럼 외로울지 모른다 생각하지만,
누구도 혼자인 사람은 없어 보이고
자신만 외롭게 혼자인 것처럼 느껴진다.
혼자 조용히 마지막을 맞이하려는 그녀에게
어느 쪽 하객이냐며 말을 건 신부 라일라.
피비가 어느 쪽의 하객도 아니라는 사실에
마치 그녀의 존재가 자신의 완벽한 계획,
결혼을 망치는 오점이라도 되는 양 울상이 되어
생을 끝내려는 피비의 계획을 말리며
'내 결혼 주간 동안에는 죽지 말라' 우긴다.
누군가는 죽고자 하고,
누군가는 그녀의 죽음을 말린다.
서로로 인해 각자의 계획은 엇갈리고,
너무도 다른 이 두 사람 중
과연 어떤 사람의 계획대로 흘러갈까?
마냥 행복한 신부처럼 보이지만
라일라에게도 숨겨진 외로움이 있다.
피비의 죽음을 말리기 위해
그녀의 방을 찾은 라일라는
낯선 사람이기에 털어놓을 수 있는
자신의 진심과 걱정을 털어놓는다.
일주일에 100만 달러를 들여가며
화려하고 완벽한 결혼식을 강행하려는
라일라에게도 자신만의 외로움,
포장된 자아가 있었던 것.
서로의 낯섦에 기대 자신의 속을 털어놓으며
둘은 조금씩 가까워진다.
끝과 시작, 평행선을 달리듯
절대 겹치는 부분이 없을 것 같았던
피비와 라일라의 삶이
결혼식과 죽음이 한 장소에서 만나
우연치 않게 일주일의 결혼 주간을 함께하며
서로의 인생을 또 다른 삶의 가능성으로
이끄는 역할을 하게 된다.
책의 곳곳에 등장하는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 《댈러웨이 부인》의 구절과 어우러져
때로는 유쾌하고 두근거리는 문장으로,
때로는 묵직한 분위기 속
자신의 인생에서 솔직하지 못하고
자유롭지 못한 스스로를 마주하게 하며
이야기 속 피비와 라일라뿐 만 아니라
책을 읽는 '나의 삶'을 되돌아보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삶을, 그리고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고
그저 남이 정해주는 대로, 혹은 적당히,
그리고 보통의 삶을 이어가고자 했던
등장인물들이 새로운 삶의 방향을 깨달으며
자신만의 방식으로 성장해나가는 모습은
내가 가로막고 있던, 내가 만들어 낸 가면을
벗어낼 용기를 일깨워 주는 시간이기도 했다.
자신이 만들어둔 인생의 테두리,
이대로도 충분히 괜찮다며
진심을 지운 채 쓰고 있던 사회적 가면이
피비, 라일라 각자의 고집에 휘말리며
처녀 파티, 리허설 디너, 요트 선상파티 등
결혼식 행사를 따라 휩쓸리면서
조금씩 벗겨내지고 그 틈 사이로
숨 쉴 구멍이 만들어진다.
피비가 낯선 이에게서
오히려 편안함을 느끼고
그동안 깨닫지 못했던 자신을 내보이는
일탈이나 설렘,
라일라가 결혼을 결심한 계기는
더 이상 관계를 흔들고 깨뜨리는 사건이 아니라
진짜 나의 모습을 발견하는
여정으로 해석되며 공감할 수 있었다.
전혀 접점이 없었던 이들이
짧은 시간이지만 낯선 서로에게
연민과 다정함을 건네며
각자의 진짜 모습에 가닿도록
이끌고 밀어주는 모습은
모든 것을 포기한 이들에게,
삶을 놓고 싶은 순간에도
다시 삶을 사랑할 이유를 만들기에
충분한 따스함이라 생각한다.
처음에는 온수풀에서 흔들리는 피비,
점점 결혼에 확신이 사라지는 라일라를 보며
그들의 만남이 파국이 아닐까,
이게 불행의 시작이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표면적으로 보이는 결혼이라는
긍정의 테두리가 꼭 진짜 행복을 가져오는 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결말이 더 오래 여운으로 남았다.
그들이 만남과 결혼식의 끝으로
인생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보여주는
명확하게 닫힌 결말이 아니었지만,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 인생 속에서
자신의 진짜 모습을 찾아가는 이들의 여정이
분명 남은 인생을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향으로
더 행복하게 만들어줄 것이라는 기대로
웃음 지을 수 있었다.
적당히 행복이 보장되는 인생, 평범한 보통의 삶,
이만하면 되었다며 자신의 마음을 가리고
그저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건 아닌지
나의 하루를, 인생을 되짚게 하는
의미 있는 작품이었다.
진짜 행복한 삶을 살아가고 싶은 이들에게,
지금이 유쾌하지 않은 이들에게
다시 살아갈 이유를 다정하게 일러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