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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 메모리엄 - 2024 올해의 영국 도서상 데뷔 소설 부문 수상
앨리스 윈 지음, 이나경 옮김 / 다산책방 / 2026년 5월
평점 :
※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한 후기입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이
장기간으로 이어지면서,
매일같이 언론에 연일 보도되던
전쟁 소식도 차차 잠잠해졌다.
'아직 전쟁 안 끝났나? 하고 있나?' 하며
나와 다른 세상의 이야기인 양
보통의 하루를 살고 있다가
문득 SNS를 통해 본 사진에 마음에 동했다.
군인으로 참여한 이들의
전쟁 전, 후 사진을 비교한 게시물이었다.
우리와 다를 것 없는 평범한 모습으로
가족, 연인과 행복한 웃음을 짓던 그들이
전쟁 이후에 많은 것을 잃었다.
초점 없는 눈동자, 망가지고 형편없이 마른 몸,
피폐해진 것 같은 정신까지.
지난하게 이어지는 전쟁은
어제까지는 이웃나라로 살던 이들에게
총구를 겨누게 했고,
나라를 지킨다는 명목 아래
그들을 참혹한 삶으로 이끌었다.
목숨을 건졌다고 괜찮은 걸까,
과연 이들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고작 사진 몇 장이 마음을 먹먹하게 만들었다.
앨리스 윈의 장편소설 《인 메모리엄》은
참혹한 전쟁에 관한 이야기이자
우리가 시간이 지나며 망각한
지난 세기의 슬픔을 담았다.
제1차 세계대전의 참혹함을
사실적으로 담아낸 이 책을 통해
여전히 진행 중인 전쟁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할 수 있었다.
책은 영국 시골의 명문 기숙학교에 다니던
10대의 소년들을 주인공으로 한다.
영국과 독일의 전쟁이 발발로
실종자와 사망자 명단에서
연일 급우들의 이름을 마주하고
전쟁의 참혹함에 대한 소문을 들었지만,
이들은 그것을 낭만적이라 생각할 뿐
오히려 빳빳이 다른 군복을 입고
친구들과 함께 전투에 나서는
상상으로 꿈꾸기만 한다.
오히려 전쟁보다 훨씬 중요한 것은
서로에게 느끼는 끌림이다.
하지만 곤트와 엘우드는
동성 간의 사랑을 금기시하는
당시의 사회 분위기 아래,
서로에게 마음을 표현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던 중
전쟁이 끝나기 전에 입대해야 한다는
가족과 사회의 암묵적인 압박,
금기된 사랑에 대한 열망을 누르지 못해
차라리 전쟁에 나가는 것이
더 쉬울 것이라는 생각으로 군에 입대한다.
하지만 막상 마주한 현실은 낭만과 달랐다.
충동적으로 입대한 전쟁터는
말 그대로 생명을 뺏고 빼앗는 살육의 현장으로
그 잔인함은 인간성과 감수성을 파괴시킨다.
애국심과 낭만적 기대는 저 멀리,
숨길 수 없이 삐져나온 시체 조각과
내장이 뒤섞인 진흙이 담긴 모래주머니,
가까이 다가오는 죽음의 그림자는
그들을 점점 피폐하게 만든다.
일말의 낭만조차 허락하지 않는
냉혹한 현실 아래에서
'분명 죽을 것'이라는 생각에
전쟁이기에 감추고 외면해왔던
서로를 향한 사랑을 표출해 내지만,
전쟁은 이 둘을 그리고 모든 이들을
무참히 가르고 베어낸다.
그저 사랑 이야기라고 하기엔
너무나도 현실적인 전쟁에 대한 묘사,
맑고 순수한 소년들이 점점 무너져내리며
패닉에 빠지고 괴로워하는 현실을 끄집어내며
시대의 아픔을 헤아리게 만든다.
발간되는 학급 신문에
점점 늘어가는 전자사·부상자·실종자 명단,
전쟁에서 목숨을 잃은 동료의 가족에게
부고를 쓰며 마주하는 무력감.
한 소년은 덩치가 크고 권투에 능하며,
한 소년은 '시인'으로 통할 만큼
풍부한 감수성으로 인기가 많았지만
그들이 가진 능력과 시적인 수사력은
어떤 쓸모도 필요도 없음을 깨닫게 한다.
눈앞의 냉혹한 현실을 온몸으로 마주하며
상상하지 못했던 전쟁의 상흔을,
조금씩 현실을 인식하게 된다.
금기된 사랑을 참을 수 없어 전쟁에 임했지만,
그 전쟁도 미처 받아들이지 못해
처절하게 무너진 소년들의 삶,
모든 것을 망가뜨린 전쟁의 끝에서야
끝내 서로 함께할 수 있게 된 상황이
마음이 아프기도 씁쓸하기도 했다.
고작해야 열일곱에서 열아홉의
어린 소년들이 수없이 사라져 간 전쟁.
누군가를 죽이고 잃으며
자기 자신다움을 모두 빼앗긴 채
그 후유증에도 불구하고
다시 살아내는 그들의 인생이,
시대는 다르지만 여전히
같은 폭력과 슬픔이 반복되고 있는 요즘을,
나와 관련 없다 생각했던 현실을
'우리의 문제'로 끌어올리게 만들었다.
모든 것을 앗아간 전쟁에서
역설적으로 세상의 시선으로부터
가장 자유로워짐으로써
비로소 사랑할 수 있었던 소년들의 남은 삶이
그래도 행복했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