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는 만큼 내가 된다 - 매일의 순간이 모여 내일의 내가 되는 일에 대하여
리니 지음 / 더퀘스트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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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는 하루가 참 길었고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것 같았는데,

나이를 먹을수록 시간이 어찌나 빨리 흐르는지

금세 일주일, 한 달, 일 년이 지나가 버린다.


어디선가 그런 글을 읽었다.

어릴 때는 작은 순간들에서도

커다란 의미를 자주 찾기에

하루 24시간이라는 시간 속에서도

기억하고 싶은 순간들이 많아

그것들을 기억하다 보면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것처럼

체감하게 된다는 것이다.


반면 어른들의 삶은 매일이 엇비슷하고

특별한 사건이나 기억해야 할만한

가치나 마음을 두지 않기에

어제와 오늘, 내일이 크게 다르지 않아

회상했을 때 기억나지 않는 시간은

머릿속에서 지우게 되어

금방 흐른 것처럼 느낀다고 말이다.


어떻게 해야 아이들이 그러하듯

매일을 즐겁게, 또 의미를 부여해

기억 속에 남길 수 있을까 싶다.


어릴 때 숙제로 매일 쓰던 일기장 속엔

엄마의 심부름을 다녀온 일,

친구와 다퉈 눈물을 쏟거나

길에서 나비나 개미를 마주한 것까지도

별것 아닌 일들로 빼곡하게 담겨있다.


대수롭지 않을법한 그 일들이

되돌아봤을 때 의미 있는 기억이자

잊고 싶지 않은 추억이 되어

나의 한 시절이 되었다.


그렇다면 '기록'이 나의 시간을 붙잡아주고,

미처 나도 알아채지 못했던 나를

더 자세히 알게 해주는 게 아닐까?


기록에 대한 열망은 항상 갖고 있지만

쓰면서도 이게 어떤 의미가 있을지

확신하지 못하는 내게


《기록이라는 세계》라는 책으로

기록의 즐거움과 나를 확장하는 법을 일깨워 준

작가 기록친구리니가

이번에는 신간 《쓰는 만큼 내가 된다》에서

매일의 순간을 모아 흐릿한 나를

선명하게 마주하는 방법을 소개한다.


책은 전작처럼

자신만의 기록 팁을 담고 있지만

단순히 '기록법'에 대한 소개나 추천보다는

꼭 완벽하거나 잘 정리된,

의미 있는 기록이 아닐지라도

무언가 쓰기 시작함으로써 가까워진

나와의 거리에 대해 이야기한다.


사진을 모으고,

내가 마주한 타인의 친절을 수집하고,

어떤 날에는 싫은 것들에 대해,

또 어떤 날에는 할까 말까 망설이는

고민을 한 줄씩 써 내려가다 보면

어느덧 세상에 휩쓸려 나다움을 잃고

적당히 매일을 반복하는 스스로를

단단하게 부여잡는 마음을 배우게 된다.


꼭 작가처럼 잘 써낸 기록이 아닐지라도

나만의 스타일, 취향을 밝혀가며

조금씩 조금씩 선명한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들 것이다.


나 역시 매일 블로그에 일상을 남기고,

여러 권의 다이어리에 일정과

식단, 소비 기록을 이어가고 있다.


기존에는 누군가의 예쁘고 잘 정돈된 기록을 보며

'나도 한번 시작해 볼까'하는 가벼운 마음이었지만

쌓인 기록을 되돌아볼 때면

내가 어떤 마음으로 매일을 살아가는지,

내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은 무엇인지

나조차 잘 알지 못했던 나를

새롭게 알게 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런 기록의 힘을 인지하고 나니

한 사람을 만들어내고,

그 사람의 역사를 담아낸 기록이

얼마나 의미 있는 과정인지를

새삼스레 다시 깨달을 수 있었다.


지우면 쉽게 사라지는 온라인 SNS의 글과 달리

손글씨로 한 글자 한 글자 써 내려가는 기록은

그대로 흔적으로 남기 때문에

처음에는 감정을 담아내는 게 어려웠다.

내 일기, 기록임에도 거짓말을 하듯

좋은 내용만 쓰려 애쓰기도 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기화펜으로 감정을 쏟아내며

그 글씨가 사라지는 과정을 통해

마음속 후련함을 느끼거나

때로는 피하고 싶은 감정들을 써보는 시도는

물론 전혀 예쁘지 않고

날 것 그대로의 모습이기는 하지만,

그 어떤 것보다 나답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시간이 아닐까 싶다.


작가가 강의와 북토크에서 만난

독자들의 사연과 고민은

내가 가진 못난 마음과 크게 다르지 않아

공감할 수 있는 포인트가 많았다.


나만 이런 고민을 하는 게 아니구나,

나만 기록에 어려움을 느끼는 게 아니구나

하는 안도감과 공감의 마음은 물론

이를 헤아려주고 다독여주며

자신만의 방식으로 답을 찾아 일러주는

작가의 잔잔한 응원 덕분에

더욱 단단하고 분명한 나를 발견하는

새로운 계기를 만들 수 있었다.


글씨를 쓴다는 것,

나의 생각이나 마음을 기록하는 것.

작게는 그날 먹은 식단이나 걸음 수,

마신 물의 용량을 쓰는 것이

아무 의미가 없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그 보잘것없는 한 글자가

'나를 위해 적은 것'이라는 사실이

조금씩 더 선명한 '나'로 닿아가는 길임을

이제야 깨닫게 된 것이다.


답을 찾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 자체를 오롯이 만끽할 것을,

기록을 통해 나와 나를 둘러싼 세계를

조금 다른 시각으로 감각할 수 있는

태도를 배울 수 있었다.


늘 흐지부지되는 기록을

이 책을 읽고 나니 조금은 단단하게,

계속 이어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라는 사람을 제대로 마주하고,

아무거나 상관없다며 스스로의 취향을

미처 알지 못하는 이들에게

작가의 기록 방법을 추천하고 싶다.

쓰는 만큼 내가 되는 경험을

꼭 만끽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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