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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두콩의 비밀
오가와 이토 지음, 이지수 옮김 / 더블북 / 2023년 2월
평점 :
익숙한 매일의 풍경에서 벗어나
훌쩍 다른 나라를 여행하다 보면
평상시와는 다른 모습의 일상,
그곳에서만의 루틴이 생기게 된다.
활발하고 적극적인 사람도
낯선 풍경 속에서 조금은 차분하게
그곳의 정취를 만끽하기도 하고,
내성적인 사람이 되려 나를 아는 이가 없는
이 분위기에 한껏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내가 살아온 곳과 다른 계절, 풍경,
다른 날씨를 온몸과 마음으로 겪으며
미처 알지 못했던 나의 새로운 취향을
발견하는 계기가 되기도 하고,
시간이 흐르며 차곡차곡 쌓이는 날들 속에
더없이 알찬 경험과 행복이 쌓인다.
인생 후반전을 코앞에 두고
남편, 반려견과 함께 떠난 낯설고 먼 타국,
베를린에서 보낸 일 년의 일상을 담은
오가와 이토의 에세이 《완두콩의 비밀》.
2017년의 일기를 엮은
전작 《두둥실 천국 같은》에 이어
2018년 그녀가 써 내려간 일기들을 엮었다.
낯선 타국에서의 생활은
어린아이의 매일처럼 좌충우돌투성이다.
하지만 아이가 발걸음을 떼고
부모에게서 한마디씩 말과 단어를 배우듯
라디오를 들으며 독일어를 배우고,
또 동네를 산책하며 새로운 이웃을 사귀거나
추운 겨울에 이불 속에서 반려견과 꼭 끌어안아
온기를 나누는 소소한 매일의 일상,
때로는 떠나온 고국과 음식을 그리워하며
추억 어린 음식을 만들어 먹는 하루는
특별하지 않지만 잔잔한 행복을 안겨준다.
대단한 것은 아니지만
'어쩐지' 행복하고 '어쩐지' 즐거운
작가의 매일을 따라가다 보니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독일 베를린의 생활이
그녀의 것을 넘어 나의 경험이 되는 기분이었다.
어떤 날에는 친구들과 자전거를 타고 여행하고,
물에서 둥실둥실 몸을 띄운 채
우주에 내던져진듯한 느낌을 만끽한다.
시장에서 파는 신선한 재료로
몇 가지는 부족하지만 그리운 맛을 찾거나
된장을 만들고 나누며 정을 나눈다.
한 번씩 남편이나 작가 당사자가
집을 비우고 일본에 다녀올 때면
반려견 유리네와 서로에 대한 그리움을 느끼며
다시 만났을 때 마주하는
가족과의 사랑, 단단한 안정감까지
평범하지만 더할 나위 없는 행복한 하루가
절로 미소를 짓게 만들었다.
사실 인생이란 게 그런 게 아닐까 싶다.
누군가에게 보이는 내 모습에 신경 쓰거나
무언가 이뤄내고자 하는 성취를 덜어내고
그냥 하루하루의 작은 즐거움만 있어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는 것.
한 해의 시작인 1월 1일부터
이듬해를 앞둔 12월까지
1년 사계절, 계절의 변화를 따라
꽉 채워 그 순간의 즐거움을 만끽하는
작가의 일상을 통해
잊고 있던 행복을 발견할 수 있었다.
들여다보면 모두의 삶에
이만큼 가득한 행복이 있다고,
작가처럼 삶을 긍정하고 아름답게 바라볼 때
일상의 스트레스는 저 멀리,
조이풀하게 둥실둥실 떠오르는 기분으로
매일을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이
마음 한구석에 있는 불안이나 스트레스를
스르륵 녹여주었다.
다정하게 매일을 바라보는,
또 특별하지 않은 하루들을 어여삐 여기며
어느 날에는 주름 없이 잘 삶아진
완두콩에 행복을 느끼는 인생.
누구에게나 걱정과 불안은 있겠지만
거기에 침잠하지 않고 더 나은 세상을 꿈꾸며
그저 오늘을 살아내자는 마음이 잔잔한 감동,
롤 모델 삼고 싶은 마음이었다.
유유히 흘러가는 매일을 애정하는 마음을
일러주는 책 속의 문장들을 잘 새겨
나의 하루를, 일상을,
슈퍼 조이풀하게 살아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