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친구들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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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후기입니다.




위탁가정과 보호시설을 전전하며

외롭게 살아온 막 열여덟 살이 된 루이사.

가장 가까운 친구이자 유일한 '내 사람'인

친구를 잃고는 상심에 빠진다.


친구와 언젠가 함께 보러 가자고 약속했었던

「바다의 초상」을 보러 갔던 미술관에서

작품을 해하려 한다는 오해를 받고

도망쳐 나오다가 어떤 노숙자와 부딪친다.


그녀를 쫓는 경비와 경찰로부터

시선을 돌려준 노숙자와 우연히 대화를 시작하고,

푸념하듯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다가

그와 함께 벽면에 그림을 그리게 된다.

함께 그림을 그리던 노숙자가 그린

해골 모양을 보고 그의 정체를 알아챈다.

그는 바로 작품을 그린 C. 야트.

루이사는 그와 만난 기쁨으로

벅찬 경험을 뒤로 한 채

다시 자신만의 길을 향해 나선다.


다음 날 들려온 작가의 부고.

화가의 작품에 숨겨진 이야기가 눈에 보이는,

또 그림 속의 아이들을 직접 만난 적은 없지만

그들이 유일한 '내 사람들'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던 소녀는

전날 화가와 함께 했던 추억의 장소를 다시 찾게 되고,


운명처럼 그곳에서 화가의 친구이자

그림 속 아이들 중 한 명인 테드에게서

화가가 죽기 전 전 재산을 털어 다시 손에 넣은

「바다의 초상」을 선물로 받게 된다.


어마어마한 가치를 지닌

그림을 자신에게 넘긴 이유가 궁금한 루이사는

화가의 마지막을 지킨 친구 테드와 동행하며

기차 안에서 그림 속 아이들에 얽힌 사연을 듣게 된다.

과연, 이 그림에는 어떤 사연이 있을까?


인터넷에서 '우정은 한쪽 성별만 바꾸면 사랑'

이라는 글을 본 적이 있었다.

인생에 있어 가장 일렁이는 사춘기 시절,

하루 종일 함께 부대끼며 시간을 보내고

대수롭지 않은 일들을 함께 하며

울고 웃었던 그 시간들 속에서

그 어떤 마음보다 깊고 진한 사랑이 샘솟는다.


성적에 대한 고민, 가정환경 등

각자가 짊어진 무게와 형태는 다르지만

그래도 친구라는 이름으로 서로를 보듬고

구원해 준 그때의 기억은

시간이 지난 후에도 '버틸 수 있는 힘'이 된다.


《나의 친구들》 속

잔교의 아이들도 서로에게 그런 존재이다.

가정폭력, 학대, 따돌림 같은 잔혹한 현실은

아이들의 삶을 퍽퍽하고 고달프게 만들지만,

그런 현실을 버티는 아이들에게

잔교와 바다는 유일한 안식처이다.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이 장소에서

서로의 비밀을 나누며 농담을 나누는

이 친구들과의 우정과 사랑은

서로에게 '내일을 살아가야 할 이유'를 만들어준다.


그런 마음에서 시작된 한 폭의 아름다운 그림은

25년의 시간이 지나 지금의 루이사에게도

같은 감정과 위로로 다가온 것일 터.


그 그림의 진정한 의미를 알아차린

루이사와의 만남을 이야기하며

화가는 친구 테드에게 '우리 과'라고 한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다른 시간과 장소에 살고 있는 이들이

서로를 '내 사람'으로 받아들이는

이 아름다운 만남과 공감, 연대가

타인과의 따뜻한 접촉, 우정을 그리워하는

모든 세대에게 깊은 공감을 이끌어낼 것이다.


각자가 가진 상처, 바쁘게 사느라

나 하나만 지키기에도 벅찬 요즘이지만

가장 어둡고 비참한 시간 속에서도

서로를 붙들어 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우리는 무너지지 않고 나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그리고 보잘것없어 보이는 이들일지라도

서로에게 기댐으로써 서로가 서로를 구원하고

또 삶을 인간답게 살아내게 만든다는 메시지가

친구 그리고 우정의 진정한 의미를 일깨워 주었다.


그저 작품에 대한 이해와 공감을 이유로

자신의 전 재산을 털어 손에 넣은 그림을

루이사에게 넘긴 화가의 마음이

처음에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무작정 자신을 따라오는 그녀를

친구인 화가의 말 한마디에

믿고 함께하는 테드, 그림 속 아이들의

단단한 우정을 보며

문득 '이게 사랑이 아니면 뭔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부모, 학교 선생님, 주변 어른 누구에게도

다정한 눈길 한 번 받지 못했던 아이들이지만,

이들은 함께하는 시간 속에서

가장 초라하고 고통스러운 순간까지

서로를 외면하지 않고 손을 붙들었다.


누군가를 지키고 책임지는 것,

그 사람을 위해 한 발 더 용기를 내는 것.

각자의 방식으로 서로를 지키는 아이들의 우정은

그저 따스한 위로를 넘어

한 인간을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구원하는

숭고한 무엇이 되어 있었다.


그런 감정을 마주하고 나니

문득 나의 어린 시절 친구들의 이름을 떠올리며

힘들 때 나를 붙들어준 마음을,

오랜만에 그리움을 피워올렸다.


잊고 있던 과거의 추억을 되살리는 것을 넘어

배크만의 소설은 상처를 들키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단단히 감싸고 있는 등장인물들이

끝내는 혼자 외롭게 무너지지 않는 모습으로

마음을 몽글하게 만든다.


투덜대면서도 서로의 손을 잡고,

때로는 눈물을 닦아주거나 옆에 있어주는 식으로.

그저 동정이나 연민이 아니라

무엇보다 깊은 공감과 연대로

서로가 가진 고통을 함께 짊어지는 이 마음이

엉망이 된 누군가의 삶을 기어이 구원한다.


어둡고 막막하지만 초라하지 않고 청량한,

마냥 고통이 아닌 '절대 바꾸고 싶지 않은'

시절로 만들어주는 친구들과의 우정,

끊임없이 찾아오는 상심과 절망인 삶에서

견디는 힘이 되어주는 이 절절한 우정은

기적처럼 다가왔다.


해피엔딩이라 할 수 있을까 싶을 만큼

먹먹해지는 순간이 많았지만,

'슬픈 결말처럼 들리지만

우리의 이야기 속에서 웃음을 터뜨린 게

몇 번인지를 기억하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는

테드의 말처럼 오랜 여운이 남는

따스하고도 아픈 이야기였다.


또 화가와 친구들, 루이사가 그랬듯이

나 역시 이런 친구가 되고 싶다는 바람,

나는 누군가의 버팀목이 되어주고 있는가

질문을 던지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된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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