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궁장의 고백
조승리 지음 / 달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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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후기입니다.




시각장애인 작가인 조승리의 글에는

수많은 '다른' 조승리들이 존재한다.

앞이 보이지 않는 세상을 살고 있으면서

어떻게 이렇게나 명쾌하게

세상을 꿰뚫어 볼 수 있을까 싶을 만큼

아프게 세상을 꼬집고 문제를 끄집어낸다.


그래서 자신만의 이야기를 다룬

그녀의 에세이보다는 수많은 조승리들을 투영해낸

그녀의 소설에 더 푹 빠져들게 된다.

되려 타인의 시각으로 물러나

세상을 조명하는 날카로운 문장이

오히려 더 냉철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번 조승리의 소설 《용궁장의 고백》은

사회에서 배제된 이들이 기거하던

모텔이 불타게 되며,

투숙객 전원이 참변을 당하는 화재사고를 다룬다.


네 명의 피해자는 노년의 치매질환자,

폐암 말기 투병자, 삼십 대의 정신이상자와

오십 대의 부랑자이다.

안타까운 사고로 인한 죽음이지만

기이하게도 피해자의 합동 장례식장에서는

단 한 번의 곡소리도 나지 않았다.

오히려 '잘 죽었다'라며 남은 유족을 위한

말들만 오갈 뿐이었다.


우연한 사고였지만, 정말 사고일까 하는

의문이 드는 이 화재.

용궁장을 둘러싼 피해자와 가해자,

설계자와 생존자, 조력자의 고백 등

5인의 목소리를 따라가며 펼쳐진다.


우리가 끊을 수 없다 이야기하는 '천륜'이,

그리고 생존을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

치명적인 폭력이 되어 누군가를 해하며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고,

가해자가 피해자가 되는 현실을 바라보며

과연 무엇이 악이고 무엇인 선인가를

되짚게 하며 깊은 여운을 남긴다.


첫 번째 이야기는 시각장애가 있는

70대의 주인공이 치매를 앓는 노모와

형제들에게 겪는 폭력을 담았다.

계속된 학대와 무시, 가정폭력에 견디다 못해

집을 빠져나와 자신만의 가정을 꾸리며

행복하던 것도 잠시,

남편의 사고로 다시 혼자가 되며

외로움에서 벗어나고자

원래의 가족과 연결되고 싶다는 마음으로

다시 가족을 찾았다가

부양의 늪에서 고통받는 현실을 다룬다.


이어지는 두 번째 이야기에서는

아버지의 편애와 비호 아래

형제들의 희생을 발판 삼아 안락하게 살아온

주인공이 아버지의 죽음을 겪으며,

직접적인 폭력을 가하지는 않았지만

형제들에게 '가해자'로 비치는 모습을 통해

앞의 이야기와 교차하며

가족 간의 폭력을 날카롭게 보여주었다.


각각의 이야기에서 피해자들은

용궁장에 부모를 들여보내고,

그들을 고통으로 몰아넣던 부모가

화재사고로 생을 마감하면서

비로소 삶과 일상에 평화를 찾는다.


뉴스에 전해지는 소식으로는

안타까운 죽음이자

이렇게 열악한 곳에 부모를 모신

자식들이 매정한 듯 보이지만,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악'을 처단하고

새 삶을 찾은 이들을 나쁘다고 할 수 있을까

우리가 규정해왔던 선과 악의 정의를

되려 되묻는 기분이 들었다.


타인의 비극으로 내 불행을 극복하며

복수라는 카타르시스를 넘어

해방감을 느끼는 인물들의 감정은

기이하면서도 공감이 가고,

묘하게 짜릿한 느낌을 가져다줬다.


그들을 돕는 거룩 교회의 오 사장,

이런 복수의 마음과 죄를 지은 이들을 돕는

조력자의 모습도 독특하다.


지역사회에서는 선의 가득한 봉사와

어려운 사람을 보듬는 장로와

장로인 오 사장을 돕는 딸의 모습은 선인이지만,

그들의 사연을 들여다보면

감정을 느끼거나 공감을 하지 못하며

철저하게 사고를 계획하고 기다리는

잔인한 모습이기도 하다.


그리고 직접적으로 관련되지는 않았지만

자신의 상처나 고통, 받은 폭력을 복수하기 위해

누군가의 계획을 돕는 조력자이자

사고를 방관하고 행하는 인물이

모든 것이 끝난 후에 새 인생을 찾는 것도

과연 우리가 옳고 그름을 따질 수 있는 일일까

물음표를 던지게 했다.


등장인물들은 각자의 죄를 지었지만

하나님을 믿는 거룩 교회에서

서로를 구원하고 고통에서 해방되며

새 출발을 할 수 있었고,

과거와 연결된 모든 것들이 불타며

각자 새로운 자신만의 천국에서 삶을 이어간다.


그 끝이 행복했을지,

또 다른 고통으로 가는 길일지는 알 수 없지만

자신에게 안겨진 불행한 운명을

수용하고 순응하던 이들이

자발적으로 사적인 복수를 위해 공모해

직접 얻어낸 그 평화가

부디 편안히 오래 이어지길 바랄 뿐이다.


첫 번째 이야기를 통해서는

자신에게 학대와 폭력을 일삼는

부모에 대한 부양을 외면했을 뿐,

그녀가 복수를 했다고 여겨지지는 않았었는데

각자의 그 작은 복수가 모이고 만나

하나의 큼직한 계획과 공모가 된 결말이

어떤 면에서는 참 어둡고 씁쓸했다.


처음에는 이 화재가 누구 때문에 발생했을까,

궁금한 마음으로 읽어나갔지만

결국에는 모든 이야기가 '왜'로 이어지며

거침없는 결말로 나아갔다.


누군가를 해하고자 하는 목적 없이,

내가 살아남기를 원해서

그렇기에 각자의 인연을 불태운 사람들.

이 행위로 인해 가해자가 된 피해자를 처단하기 위해

또 다른 피해자가 가해자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되지 않을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상상이 펼쳐진다.


그녀에게 누군가 앞을 못 보니

세상의 부조리를 대면하지 않아도 되니

얼마나 다행이냐는 말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녀 안에 있는 어둠 한 조각을 꺼내

보여주기로 했고,

그것이 이 글의 시작이 되었다고.


일방적으로 강요된 인륜,

폭력과 다를 바 없는 그 어둠이

분명 상상 속의 이야기만은 아닐 것이다.

현실의 지옥에 살고 있는 이들에게

이 지옥에 대항하는 분투가

또 다른 느낌으로 와닿을 것 같다.


책 표지 너머 '그대, 운명에 지지 않기를!'라는

반듯하게 써내려간 작가의 문장에서

운명에 지지 않고 맞서기 위해

글과 마음속에서나마 커다란 불을 지핀

작가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이번 작품 역시 참으로 발칙한 시선이었다.

인간관계의 비뚤어진 위선,

사회적인 통념을 비틀어내는 이 이야기가

오래 마음에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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