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하는 눈동자 - 양장
이슬아 지음, 이훤 시.사진 / 먼곳프레스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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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삭막해져서 그런가

게임에서의 승자, 큰 목소리를 내는 사람,

성공한 사람들의 목소리에 힘이 실린다.


나보다 약하고 소외된 사람의 이야기나

나와는 관련 없는 미지의 타인,

예민해서 외면하고 싶은 사회 문제 등

주저하고 흔들리며 갈등하는

눈동자들에 대해서는 시선을 외면한다.


등단하지 않고 문학계에 나타난 작가로

이메일로 글을 써서 파는 발칙함,

일반적인 작가와는 다른 결로

작가보다는 '글 쓰는 노동자'라는 이미지를 가진

이슬아 작가의 신작 에세이 《갈등하는 눈동자》는

우리가 쉬이 다가가지 못하던 세계 속

다양한 사람들의 시선을 담아냈다.


출간 소식이 알려짐과 동시에 중쇄에 들어가고

엄청난 반응을 일으켰던 작품이기에

과연 이번에는 이야기 속에서

우리가 미처 캐치하지 못했던 감정을,

사건을, 시선을 다뤘을지 궁금했다.


책은 총 열여덟 편의 에세이와 두 편의 강의록,

두 편의 인터뷰가 실려있다.

누군가를 직접 인터뷰한 내용도 있고,

경기를 보거나 작품을 통해 접하며

자신만의 방식으로 그들을 삶을

해석하고 풀어낸 것도 있다.


종합격투기 선수들,

멸절을 앞둔 세계에서 동료의 이름을 외우는

애니메이션의 등장인물,

이동권 투쟁을 하는 전장연,

누군가의 승인 없이 스스로 데뷔하고

디지털에 시집을 발간한 작가,

한국에서 태어나 덴마크로 수출된 입양아,

그녀의 독자인 시각장애인 등

다양한 등장인물의 세계를 소개한다.


책을 읽다 보면 어느새

그냥 스쳐 지나갔을 수많은 타인을,

그들이 살고 있는 다양하고 울창한

타자의 세계를 바라볼 수 있었다.


같은 풍경을 보면서도

바라보는 사람의 시선에 따라

다르게 보일 수 있다고 했다.


그저 치고받는 싸움처럼 보이는 격투기에서

'복수'가 존경심의 표현일 수 있음을,

누구보다 상대가 무탈하길 바라는 적수들의

뜨거운 연대를 읽어내었으며


애매한 승리를 인정할 수 없어

스스로 선택한 연장전에서 멋지게 패한 선수,

비슷하게 닮은 죽음으로

누군가 희생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그 뒤를 이어가는 유족들의 이야기까지


전혀 빛나거나 멋있는 장면은 아니지만

각자의 生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그리고 열심히 부딪치고 무너지는 이들의 이야기는

때로 가슴이 먹먹해지거나 쓸쓸해지기도 했고

또 아직은 살만하다는 기대나 따스함으로

웃음 지어지는 장면도 있었다.


각각의 산문에는 눈동자, 시선, 응시,

동공, 눈빛, 눈망울과 같은 단어들이

반복해서 등장한다.

심지어 앞을 보지 못하는 시각장애인

김성은과의 인터뷰에서는

그녀의 눈동자와 눈빛이 고스란히 느껴지며

나를 중심으로 살아가던 삶에서

타자로 시선이 옮기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각자가 가진 재난의 틈에서,

가까스로 존재하는 이들의 이야기이지만

그 안에서 서로를 구하고 구원하는

이 이야기의 울림은 특별하게 다가왔다.


발칙하고 자신감이 넘치는 전작

《인생을 바꾸는 이메일 쓰기》나

《가녀장의 시대》와는 다른 결로

항상 흥미진진하고 기발한 생각으로

허를 찌르는 느낌이 있지는 않았지만


다양한 세계를 바라보고 관찰하며,

이를 자신만의 시선으로 해석하고

우리에게 소개하는 그녀의 진심이

세상을 조금씩 바꾸게 도와주리라 생각한다.


전장연의 이동권 보장, 레즈비언 커플의 출산,

환경 보호를 위한 옷 소비 끊기 등은

작가만의 신념이나 특정인에게만

공감 가능한 소재로 느껴질 수 있지만


그런 예민함까지도 기꺼이 끌어안고

그들을 바로 마주하는 눈동자에서

나는 무엇을 알고 있으며

또 타인을 제대로 바라보고 있는가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이 책을 통해 편집자는

굳건한 눈동자를 가진 사람의 세상은 소란하지만,

갈등하는 눈동자를 가진 사람의 세상은

울창하다고 말했다.


결코 흔들리지 않는 확신의 눈동자를 가진 사람만이

성공한다는 세상의 정설 앞에서

몹시 흔들리는 눈동자,

눈에 눈물을 머금고 누군가와 부딪치며

인정받지 못하는 타자의 세계마저 품어내는

이슬아의 감각과 이 책의 시선이

많은 생각과 여운을 남겼다.


간절하게 타자를 향한 세계로

무언가를 구해내고 바꾸기 위해 애쓰는

그녀의 간절한 바람이 녹아든 이 글이

나만을 위주로 생각하는 개인주의 시대에

조용하지만 묵직한 메시지를 주었다.

이 책이 아니었다면 그동안 몰랐던 이들의 세계를

과연 마주하고 이해할 수 있었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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