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거품
마쓰이에 마사시 지음, 김춘미 옮김 / 비채 / 2026년 1월
평점 :
모두가 똑같은 교복을 입고
같은 시간에 학교에 나가 하루 종일,
야간 자율학습까지 마치고
집에 돌아와 몇 시간 눈을 붙이고 나면
같은 매일이 여지없이 반복되던 수험생 시절.
다들 겪는 시기라고 하지만
공부 외에는 어떤 것도 허용되지 않는 분위기,
몸도 마음도 다 자란 것 같지만
각자의 마음이나 생각은 헤아려 주지 않는
강압적인 학교는 참 답답했다.
먹고살기 빠듯해서 공부도 마음껏 하지 못했던
부모님의 기준에서는
공부만 하면 되는 요즘은 참 감사한 건데
뭐가 그렇게 힘들고 딴짓만 하냐는
잔소리가 야속하기만 하고,
꽉 막힌 통제와 오직 성적으로만
판단하고 바라보는 선생님 역시
갑갑한 존재 그 자체였다.
그 시간을 지나 어른이 되고 나서는
나 역시도 '뭐가 그렇게 힘들었지' 싶지만
그때에는 마냥 힘들게만 느껴져
어딘가로 도망가고 싶은 기분이었다.
어떻게 어른이 되었더라,를 생각하면
지금도 답을 내리지 못하겠다.
그렇지만 미완의 상태로 헤매던 그 시간 자체가
어른이 되는 하나의 과정이 아니었나 싶다.
때로 중간중간 나를 보듬어 주고
내가 있고 싶은 모습대로 존재하게 해주는
다정한 어른들의 틈에서 말이다.
힘들었던 학창 시절
어른이 되고 사회에 나가 산다는 것이
스스로와 너무 거리가 느껴졌다던
작가 마쓰시에 마사시,
막상 어른이 되고 회사에 들어가서는
지나칠 만큼 잘 적응해 열심히 살았는데
돌이켜 생각해 보면 왜 그렇게 학교가 싫었는지
선명한 이유를 찾지 못했다고 했다.
그래서 그런 과거의 자신을 마주하며
《거품》을 출간했다.
노골적으로 폭력적이며 갑갑한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한 채 학교 밖 청소년이 된
고등학교 2학년 가오루가
친척들과의 모임에서 농담도 던지며
자유인처럼 보이는 작은할아버지네에
머물고 싶다는 생각에
여름 한 철, 살던 도쿄를 떠나 그가 있는
바닷가 작은 마을로 떠나는 것으로 시작한다.
작은할아버지가 운영하는 재즈카페 일을 도우며
처음으로 집, 학교, 부모님을 벗어나
어른들과 관계를 맺고 생활을 하게 되고,
자신을 다그치고 옭매지 않는 그들 속에서
지금까지 허락되지 않았던 자유를 만끽한다.
평상시에 과한 긴장으로
호흡 중 공기를 과하게 삼키며
뱃속에 거품이 가득했던 가오루는
별다를 것 없는 재즈카페의 일상 속
닮고 싶은 어른, 사랑받고 싶은 마음을 깨달으며
자신만의 방식으로 조금씩 자라
변화하고 한걸음 앞에 나아갈 힘을 얻는다.
숨 쉴 곳을 찾기 위해 집과 학교를 떠난 가오루,
그리고 그를 품어준 작은할아버지 가네사다와
재즈카페에서 일하는 오카다의 이야기는
특별한 사건 없이 잔잔하게 흐른다.
가오루를 위해서 특별히 애쓰지 않고
그저 하고 싶은 대로 하되
원한다면 일을 돕도록 하는 할아버지와
몇 해 전 가네사다의 도움으로 카페에 정착한
오카다가 보여주는 '닮고 싶은 어른의 모습' 아래
가오루는 반복과 통제가 싫던 시간에서
조금은 자라나는 성장을 보여준다.
커다란 계기 없이 스스로 숨을 고르고
다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조용히 곁에 머물러주는 어른들,
그들의 힘겹고 지난했던 과거의 사연과 얽혀
모두가 그렇게 어른이 된다는 것을
일깨워 주는 것도 같았다.
자신 역시 헤매는 시간이 있었지만
질풍노도의 시절을 통과하는 소년에게
적당한 거리감과 조용한 연대로
품어줄 줄 아는 어른들의 모습에서
나의 과거의 시간을 되짚게 되었다.
나에게 그런 어른이 누구였던가,
그리고 현재로 다시 되돌아와
나는 누군가에게 그런 어른이 되고 있는가
다시 질문하는 시간이 되었고
누가 누구를 살린다, 구원한다는 개념을 넘어
서로와의 연대 속에서 조금씩
각자가 서로를 살리며 다시 살아가게 하는
이 따스함이 오랜 여운으로 남았다.
입시, 학교생활, 미래에 대한 불안은
소설 속 가오루에게만 한정되어 있지 않다.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의 청춘 역시
각자가 안고 있는 불안이 있기에
가오루가 헤매는 시간에 대한 공감이
크게 다가오리라 생각한다.
흘러가는 순간을 붙잡으려 하지 말고
그 자체를 아름답게 바라보는 성찰,
단순히 나이를 먹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경험과 관계 속에서
자신을 발견하는 과정 그 자체인
성장의 진정한 의미를 되새겼다.
어쩌면 집과 학교를 떠나온
재즈카페라는 장소가 아니라
가오루의 지친 마음을 헤아리며
지금 이 순간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스스로 느낄 수 있게 보여주는
어른들의 삶과 오늘이
그를 치유하고 자라게 했는지도 모르겠다.
시간의 덧없음 속에서도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눈으로
방황하는 청춘을 이끄는 이 이야기가
삶의 불완전함, 실패에 두려워하는 이들에게
해답을 주리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