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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인데요, 집수리 기사입니다
안형선 지음, 조원지 그림 / 크래커 / 2025년 12월
평점 :
※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후기입니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 단지에서는
엘리베이터 교체 공사가 한창이다.
한 달의 공사기간 동안 계단으로 오르내려야 해서
택배나 장 보기에 불편함도 있지만
아침 일찍부터 주말에도 쉴 새 없이
뚝딱이며 공사하는 인부들의 수고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것 같다.
이따금 계단을 오르내리며 공사하는
인부들을 마주하곤 하는데
며칠 전 엄마 아빠가 문득 이런 말을 꺼냈다.
"공사 인부 중에서 여자도 있더라고.
힘들어서 여자가 어떻게 일하는지, 대단해."
생각해 보면 길에서 마주하는 공사장의 인부,
가전이나 가구 설치·수리 기사님,
덤프트럭, 버스·택시 운전기사,
인테리어와 설비, 하다못해 택배기사까지
죄다 남자분들이다.
꼭 남자만 할 수 있는 일은 아닌데,
직업의 이름만 들어도 우리의 머릿속에서
'남자들의 일'로 여기는 게 당연한 풍경이랄까.
반대로 어린이집, 유치원 교사나 간호사,
승무원 같은 직업은 '여자들의 일'로
우리 사회에서는 정해진 것이 아닌데도
특정 성별의 일로 규정되는 직업이 참 많다.
그런데 최근 들어 이런 성별의 고정관념을 깨고
남자만의, 혹은 여자만의 일이라 여겨졌던 분야에
다른 성별을 가진 사람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어떤 직업이든 '누구나 할 수 있다'는 마음으로
더 넓은 세상을 향하는 사람들이 나타나며
어떤 직업에도 성별에 따른 한계가 없음을 보여주는
이들의 등장이 마냥 반갑기만 하다.
이 책 《여자인데요, 집수리 기사입니다》를 쓴
안형선 대표 역시 젠더 관념을 깨고
'남자의 직업'이라 일컬어지는 수리기사를
직업으로 삼은 사람이다.
어릴 때부터 장난감 공구를 좋아하고
작은 전자기기를 해체하는 것을 즐겼던 그녀가
여성들을 위한 집수리 업체를 창업하며
수리기사로서 살아가는 매일을 담았다.
실제로 나 역시 살아오며 아직까지
여자 집수리 기사를 만나본 적이 없기에
어떻게 이런 결심을 하게 되었을까 궁금한 마음,
한편으로는 여자 기사가 있으면
혼자 사는 여성도 부담 없이
수리를 신청할 수 있겠다 싶어
꼭 여성도 필요한 일이라는 생각에
그녀의 이야기에 금세 푹 빠져들게 되었다.
아직은 '수리기사 = 남자'라는 고정관념이
팽배한 우리의 사회에서
나라면 과연 그런 도전을 할 수 있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엄두가 나지 않는데,
'왜 여성 기술자가 없을까?'라는 질문에 멈추지 않고
스스로 직접 현장에 뛰어드는 도전으로
남성의 영역이라 불리는 분야에
굳이 나서고 맞서는 용감한 선택이
참 멋지게만 느껴졌다.
남자 수리기사와 똑같은 일을 하고 있음에도
'여자가 이 일을 선택하다니 대단하다'는 칭찬,
혹은 '여자가 무슨 수리를 하느냐'는 의심 등
여성 수리기사로서 현장에서 느끼는 벽은
때로 불편할 때도 많았을 텐데
그럼에도 하나의 퀘스트를 깨듯
수리과정 자체를 즐기면서
여성의 성역할 고정관념을 깨나가는
그녀의 우직한 발걸음은
'성별에 관계없이 누구든,
어떤 직업이든 선택할 수 있다'는
단단한 메시지를 몸소 보여주었다.
또한 본인이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직업적 선택이나 성취감을 넘어
더 많은 사람들이 사회적 편견을 허물고,
여성이 택할 수 있는 직업의 범위를 넓히기 위해
더 많은 것들로 일을 확장해갔다.
여성 수리 서비스 업체 '라이커스'를 창업하고,
집 수리와 기술을 가르치는 워크숍을 진행하며
업계에서 새로운 길을 개척하며
여성 기술자의 존재감을 증명해낸 것.
꼭 같은 직업이 아니더라도
어떤 고정관념이 팽배한 상황에서
나만의 길을 개척하려는 모든 이들에게
그녀의 도전과 성장은 '나도 할 수 있다'는
단단한 믿음이자 응원이 되리라 생각한다.
열심히 자신만의 길을 개척한
여성 집수리 기사의 이야기를 읽으며
문득 우리가 '남자의 일, 여자의 일'을 나누는
기준은 어디에서 비롯되었을까 궁금해졌다.
여성도 충분히
기술직에서 주체적으로 살아갈 수 있고,
남성 역시 여성만의 일이라 치부되는 일에서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데
나 역시 이를 너무 당연히 한 성별만의 역할로
규정해왔던 건 아닐까 반성이 되었다.
어릴 때부터 남자 옷 = 바지, 여자 옷 = 치마,
경찰관이나 소방관, 군인은 남자의 역할로
요리나 비용, 아이들을 돌보는 일은
여자의 역할로 규정한 미디어, 사회에
물음표도 던지지 않은 채
그냥 받아들인 거였구나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처음에는 남자만의 세계에 뛰어든
한 여성 직업인의 이야기를 다룬
집수리 현장의 기록이라 생각했는데,
책을 덮고 나니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선택하고
사회적인 편견을 넘어서는 용기를 담아낸
묵직한 메시지를 담아낸 책이란 생각이 든다.
그저 성별이라는 특수성으로 여성 고객을 겨냥하는
틈새시장을 노리는 것이 아니라
사전 견적과 부품 안내를 도입하는 등
정직하고 투명한 태도라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고객과의 신뢰를 쌓아가며 '집수리 기사'로서
경쟁력을 키워나가는 모습 또한
내 일에서 최선을 다하고,
더 나은 방향으로 발전시켜 나가고자 하는
책임의식을 배울 수 있기도 했다.
남자 일, 여자 일이라는 구분은
그저 사회적인 관습일 뿐,
실제로는 누구나 원하는 일을 할 수 있고
우리가 모를 뿐 젠더 편견을 넘어선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 존재하고 있다.
한 개인의 선택과 실천이
업계의 관행을 바꾸는 시작이 되고,
더 나아가 그것이 사회적 안전망을
확장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가 수없이 고정관념에 맞서고
부딪쳐야만 하는 필요성을 느낀다.
꼭 직업이 아니더라도
젠더 관념에 사로잡혀 내가 엄두 내지 못하거나
망설이고 있는 건 없었나
다시 한번 되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새로운 직업적 길을 모색하는 사람이나
기존의 관행을 벗어나 새로운 서비스를
창업하고자 하는 이들에게는 좋은 가능성을,
다양한 장래희망을 꿈꾸고 실현하기에 충분한
어린이, 청소년들에게도 추천해 주고 싶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