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댈러웨이 부인 ㅣ 을유세계문학전집 142
버지니아 울프 지음, 손영주 옮김 / 을유문화사 / 2025년 8월
평점 :
※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후기입니다.


















제1차 세계 대전이 끝난 지 약 4년이 지난
1923년 6월의 어느 날,
파티를 준비하기 위해 꽃을 사러 나가는 여성
‘댈러웨이 부인’의 모습으로 이 책은 시작한다.
그녀의 발걸음을 따라
‘의식의 흐름대로’ 진행되는 이 이야기는,
빅 벤의 종소리를 기점으로 수시로 화자가 바뀌며
수많은 사람들의 과거와 현재를 되짚는다.
각 인물이 가진 내면의 갈등과
존재의 의미에 대한 고민이 이어진다.
일반적인 소설처럼
특정 인물의 시점으로만 전개되지 않고,
어떤 부분에서는 주인공의 독백을 통해
인물의 내면을 직접 체험하는 듯한
몰입감을 주다가도 순식간에
제3자의 시선으로 거리를 두고
바라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수시로 변하는 시점은 때로는
멀미가 느껴지는 듯한 혼란을 주기도 했다.
거기에 중심 인물뿐 아니라
핵심적이지 않은 주변 인물들의 내면까지
풀어내는 서술 방식은
신선하면서도 꽤 어렵게 느껴졌다.
주인공 클라리사는
결혼을 하며 자신의 이름을 잃고
‘댈러웨이 부인’으로서 매일을 살아간다.
파티를 준비하는 고상하고 여유로운 모습 속에서
겉으로는 사회적 역할에 충실하고
완벽한 삶을 살아가는 듯 보이지만,
이는 사회적인 가면일 뿐,
그 안에서는 과거의 선택과 잃어버린 사랑,
그리고 현재의 공허감 속에서
고독과 존재의 불안을 끊임없이 느낀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동시에
삶의 아름다움을 붙잡으려는 욕망을 가진
클라리사가 여는 파티는
사회와 연결되려는 시도이자
삶을 긍정하려는 의식적인 행위로 비친다.
파티를 준비하고 오래전의 연인을 마주하며
그녀는 짧은 하루라는 시간 속에서
과거의 기억과 현재의 순간을 수없이 오가며
시간의 상대성과
인간 존재의 덧없음을 깨닫게 된다.
극의 또 다른 주인공으로,
댈러웨이 부인과 정반대의 캐릭터인
전쟁을 겪은 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앓는
셉티머스가 등장한다.
남성다움을 강요하는 사회 분위기에 떠밀려
전쟁에 참전했지만,
그 이후 환각과 환청, 불면에 시달리는
후유증을 앓게 되고
부적응자로 분류되어 사회와의 격리를 앞둔 그는
불합리한 세상 속에서 죽음을 선택한다.
상반된 두 주인공의 모습을 통해
버지니아 울프는
사회가 요구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진실한가,
아니면 내면의 진실을 지키기 위해
죽음을 선택하는 것이 진실한가라는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삶과 죽음, 사회와 자아,
외면과 내면이라는 이중 구조 속에서
서로를 비추는 거울처럼 존재하는
클라리사와 셉티머스를 통해
서로 다른 인생을 살아가는 두 인물이
같은 질문 앞에서 잠시 마주치며
소통하고 공감하는 순간을 만날 수 있었다.
개인적인 욕망과 사회적 기대 사이에서
끊임없이 흔들리던 클라리사는
파티에서 셉티머스의 자살 소식을 들은 뒤
그 죽음을 통해 삶의 본질을 되묻게 된다.
그녀는 그의 죽음을 단순한 비극이 아닌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게 하는 거울로 삼아
삶의 방향을 다시 정립하려는 의지를 보인다.
사회적 역할에 순응하면서도
내면의 공허함과 자아의 갈망을 느끼는
이 여성의 복합적인 정체성은
시대를 넘어 현대의 우리에게도
나는 누구이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존재론적 탐색을 제안한다.
단 하루의 이야기 속에
삶과 죽음, 사회와 자아, 시간과 기억이라는
거대한 주제를 담아내며
존재에 대한 깊은 질문과 사람이 갖는
감정의 복잡성을 마주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도
무척 특별한 경험이었다.
긴 시간이 지나 새로운 시대를 맞이했지만,
여성에 국한되지 않더라도
우리 모두는 여전히 댈러웨이 부인처럼
사회적 역할에 충실하면서도
내면에서는 다른 삶을 꿈꾸곤 한다.
사회가 요구하는 여성상에 맞춰
자신을 조율하면서도
내면은 자유와 진정성에 대한 갈망으로 가득 찬,
단순히 설명할 수 없는 복잡한 감정선을 가진
그녀를 따라가며 어려움을 느꼈듯,
타인과 그 내면을 이해한다는 것에는
얼마나 많은 상상과 공감의 노력이 필요한가
새삼 깨달을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다.
사회가 규정한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 속
부적응자로 분류된 셉티머스에게
‘자신과 닮았다’는 공감을 느끼고,
그가 죽음을 통해 표현한
순수함과 저항에 감동하며
그 죽음마저 저항과 소통의 시도로 여기며
포용하는 클라리사의 삶을 바라보는 태도는
작가가 꿈꾸는 어떤 이상향이랄까,
삶과 죽음에 대한 사유를 엿볼 수 있게 했다.
억압된 사회의 이름으로만 살았던 그녀가
셉티머스의 죽음을 통해
같지만 다른 모습으로 한걸음 내디디는 모습은
커다란 변화이자 울림 있는 행동으로
느껴지게 되리라 생각한다.
다른 시대 속에서 살고 있지만,
두 인물의 삶을 교차로 들여다보며
자꾸만 지금의 내 삶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응접실로 나온 그녀가 앞으로 어떤 삶을 살지,
자신을 위해 어떤 선택을 하게 될지
극에 드러나지 않는 결말이
더 궁금해지는 작품이었다.
각 인물들의 내면을 관통하며
독자에게 자신의 삶과 시간의 관계를
되돌아보게 하는 《댈러웨이 부인》은
여전히 불합리한 세상,
매일을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존재의 유한함과 삶의 무상함을 환기하며
각기 다른 자극점이 되어주리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