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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딩엄마 파란만장 인생 분투기 - 반드시 지켜주겠다는 약속
차이경 지음 / 이야기장수 / 2025년 8월
평점 :
※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후기입니다.























새로운 사연자가 등장할 때마다 이슈화되는
'고딩엄빠'라는 프로그램.
남들 학교 다니고 공부해야 할 나이에
출산과 결혼을 선택한 이들의 삶에 대해
손가락질은 물론 비난이 이어지곤 한다.
"일찍 애 낳은 게 무슨 자랑이라고,
부끄러운 줄 모르고…" 하면서
아이를 지우지 않고 낳아 키우기를 선택한 이들에게
무책임하다는 말을 퍼붓는다.
이른 나이에 아이를 낳은 만큼
정숙하지 않고 비행을 저질렀을 거라는 편견,
출산을 결정하고 책임을 떠안았음에도
어리고 미숙하다는 비난으로
우리는 쉽게 편견 어린 프레임을 씌우곤 한다.
이 책 차이경 작가의
《고딩엄마 파란만장 인생 분투기》는
그런 우리의 고정관념에 돌을 던지듯
당당하게 자신의 삶을 고백한다.
지금보다도 보수적인 1980년대,
고등학생이던 시절 아이를 출산한
자신의 자전적 경험을 담은 에세이로,
준비도 없이 엄마가 된 그녀가 겪은
극적인 인생 여정을 담았다.
단순한 삶에 대한 회고에 그치지 않고
시대와 사회, 가족과 여성의 역할을 관통하는 이 이야기는
한 사람의 인생을 넘어 강한 울림으로 다가왔다.
1부 〈주민등록증도 없는 엄마〉에서는
고3의 봄날, 의식을 잃고 쓰러진 작가가
예고 없이 집에서 아이를 출산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갑작스러운 출산은 그녀의 인생에 격변을 가져오는데,
아이의 출산을 인정하지 않고
그저 어떻게든 '없는 것'으로 되돌리고 싶어 하는
시댁과 친정엄마의 외면, 폭력적인 시선 아래
아이를 지키려는 생존의 사투가 펼쳐진다.
단칸방에서 굶주림과 추위에 떨거나
쌀을 훔치기도 하며 힘든 생활이 이어지지만,
'제 아기예요'라는 외침 속에서
인정받고 싶었던 어린 엄마의 마음,
'애가 애를 키운다'는 말을 실감할 수 있는
처절한 생존의 기록을 엿볼 수 있었다.
2부 〈엄마는 어른이 된다〉에서는
본격적으로 엄마라는 이름을 지키기 위한
그녀의 고군분투와
사회적 책임을 짊어진 여성의 성장기를 담았다.
뒤늦은 결혼식, 과태료를 내며
아이의 출생신고를 하고 주민등록을 갖게 되며
잠시나마 안정을 갖는 듯싶지만,
남편의 입영통지로 인해 경제적 어려움에 처하자
청와대에 편지를 보내는 간절함을 더한다.
생활력 있는 모습으로
장사 밑천을 마련하기 위해 시댁에 담판을 짓거나
식당을 창업하며 세상의 쓴맛을 보기도 하며,
아무것도 모르던 여자아이가
엄마라는 역할을 통해
어른으로 성장해나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하필 이럴 때 찾아온 종양과 크론병이라는
희귀 난치성 질환까지 겹친 건강의 문제에도,
아이를 지키기 위한 ‘엄마’라는 이름의 선택과 희생 아래
점점 단단해지는 자신을 마주한다.
‘여자는 약하지만, 엄마는 강하다’는 말처럼
아무것도 모른 채 아이를 지키겠다는 결심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애쓴 작가의 인생이
녹록지는 않았지만 참 단단하고 뚝심 있음을,
엄마가 되며 어른이 된 그녀의 성장이
뭐라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존경스러웠다.
마지막 3부 〈아주 작은 자유〉에서는
미숙했던 어린 엄마, 성장하는 여성을 넘어
드디어 삶의 방향을 스스로 정하는 존재로 거듭나는
작가 본인을 위한 인생이 펼쳐진다.
우연히 글쓰기를 통해 상을 받으며
누군가에게 자신의 실력을 인정받고
작가로서의 가능성을 발견한 그녀가,
큰 아이와 함께 수험생이 되어 공부하고
검정고시를 거쳐 대학에 진학하는 모습은
엄마라는 역할을 선택하느라
자기 자신은 놓고 살았던 한 여성이
주체적으로 ‘나’를 찾아가는 과정이기에
더없이 빛나고 아름답게 느껴졌고,
아이와 함께 대학에 진학하고,
남편도 대학원에 진학하며
각각의 가족이 자신만의 꿈을 향한 도전을 이어가며
서로를 격려하는 모습은
시작은 어설프고 갑작스러운 짜임이었지만
점점 함께 제대로 된 가족을 이뤄가는 성장이 엿보여
괜스레 뿌듯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이렇게 삶의 주인으로 스스로를 마주하게 된
그녀의 인생을 돌아보니
그 어떤 미약한 시작, 혹은 두려운 현실을 가진 누구라도
희망의 씨앗을 가지게 되지 않을까 싶다.
단순한 고난의 기록이 아닌
사랑과 책임, 성장과 회복의 서사가 가득 찬
그녀의 인생을 통해
인간의 존재에 대한 깊은 통찰을 엿볼 수도 있었다.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아이를 낳고,
엄마라는 이름을 지키기 위해 모든 고난을 감내한
아이를 지키겠다는 약속은
그녀의 삶 전체를 관통하는 원동력임을,
모성이 단순한 본능이 아니라
선택과 책임의 결과임을 느끼게 했다.
특히나 1980년대라는 시대적 배경에서는
고딩엄마라는 낙인이 가져오는
멸시와 폭력적인 시선을 생각하면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텐데,
그 편견을 뚫고 아이를 키우고 학업을 이어가며
작가로서 재탄생한 그녀의 인생은
여성의 놀라운 생존력과 회복력을
엿볼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다.
다들 사는 모양이 엇비슷하다고는 하지만,
단칸방에서의 퍽퍽한 삶과
난치질환을 앓으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삶에 대한 의지를 가진 단단함은
극한의 상황에서도 꺾이지 않는 인간 정신에
감동한 포인트이기도 했다.
처음엔 아이를 지키기 위한 삶이었지만
점차 자신을 위한 인생을 찾아가는 작가의 모습에
끝없이 응원의 마음을 쏟아내게 되었다.
마치 내 엄마를 떠올리듯
혹은 사회의 편견 아래,
엄마라는 이름으로 많은 것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수많은 여성들을 대신하듯
엄마라는 역할을 넘어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는
여정은 많은 생각에 잠기게 만들었다.
결국 삶은 포기하지 않는 자에게 길을 내준다는 것,
아이를 낳는다고 어른이 되는 것이 아니라
아이를 지키기 위해 성장하는 과정에서
진짜 어른이 된다는 깨달음은
한 인간이 어떻게 삶을 붙들고 성장하며,
자기 자신이 되어가는지를 보여주는
강렬한 서사가 아니었나 싶다.
그에 비하면 너무도 평온하고 안전한
나의 삶을 다시 마주하면서,
나는 지금 어떤 삶을 살고 있는가
되묻게 되는 시간이기도 했다.
마냥 보듬어 주고 싶을 정도로 안쓰러운 어린 소녀가
생활력으로 악착스러운 엄마가 되었고,
결국에는 아이도 자신도 성장하여
오롯이 내 인생을 만들어가는 모습이 참 대견하기만 하다.
일찍 아이를 낳았지만 너른 책임감으로
진짜 어른으로 자라난 그녀의 인생에
끝없는 박수를 보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