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 우체국
호리카와 아사코 지음, 김선영 옮김 / 북다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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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후기입니다.

























몇 해 전 할머니가 돌아가셨던 때가 생각난다.

준비도 없이 갑작스러웠던 할머니의 임종에

많은 눈물을 쏟기도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애틋함과 죄송함 등

후회의 감정이 더 크게 다가왔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49재를 맞아

온 가족이 다시 모여 할머니의 묘를 찾았던 날,

번갈아 술잔을 올리며 절을 하고는

마음속으로 '할머니 저 왔어요.

하늘나라에 잘 도착하셨어요?

계실 때 잘 챙겨드리지 못해서,

살갑게 마음 쓰지 못해서 죄송해요.'

이런 말들을 전했다.


신기하리만치 마치 그 말을 들었다는 듯,

다 이해한다는 듯 여기에 잘 도착했다 말하듯

갑자기 우리 가족이 있는 쪽으로

따뜻한 햇볕이 한줄기 내리쬐었다.


그 경험은 할머니가 우리에게

마음을 전한 거라는 생각을 갖게 했고,

절대 소통할 수 없는 이승과 저승이지만

이 두 세계에 분명 무언가

연결고리가 있으리라는 믿음을 가지게 했다.


호리카와 아사코가 쓴 《환상 우체국》은,

이처럼 죽은 자와 산 자를 이어주는

신비로운 공간인 도텐 우체국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판타지 소설이다.


취업 준비생인 아즈사는,

이력서에 적은 '물건 찾기'라는 특이한 특기 덕분에

산꼭대기에 위치한 도텐 우체국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게 된다.


이런 곳이 있었나 싶은 아리송함,

우체국을 향하는 길에 마주한

미스터리한 만남에 당황하던 것도 잠시,

그녀는 도텐 우체국이 단순한 우체국이 아니라

죽은 사람이 살아있는 사람에게 안부 편지를 보내고,

또 살아있는 사람이 고인에게 편지를 보낼 수 있는

특별한 공간임을 깨닫게 된다.


처음에는 이 일을 그만두고자 하지만,

자석 같은 끌림으로 이곳에서

개성 강한 동료들과 함께 일하며

다양한 사연을 가진 손님들을 마주한다.


죽은 딸과 함께 태워버린 유품을

다시 되찾고 싶은 한 어머니,

형에게 물려받은 잠옷을 입고 온 소년,

우연한 기회에 죽지 않았음에도

잠시 저승에 닿았다가 돌아가

우체국을 오갈 수 있게 된 선생님,

매캐한 탄내를 풍기며

자신을 죽인 이조차 모르는 여자 등.


때로는 섬뜩한 심령 스팟 같았던 이곳에서

상식을 초월한 사건들이 벌어지지만,

아즈사는 점차 이곳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고

각자의 이유로 죽음과 이별을 겪은 이들의

사연을 풀어가게 된다.


과연 아즈사의 아르바이트는

어떤 결말을 맞이하게 될까.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판타지를 넘어

죽은 자는 그대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는

이 작품의 설정은

삶과 죽음, 존재와 부재의 경계에 대해

성찰하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소중한 가족을 잃은 경험이 있는 나에게는

할머니의 묘에서 마주한 햇빛 한줄기가

'정말 할머니가 보낸 메시지일 수 있다'는

설렘과 벅차오르는 감정을 느끼게도 했고,


죽음이라는 무거운 소재를 다루었지만

특유의 따스하고 섬세하게 풀어낸 문장들은

공감과 위로로 힐링이 되었다.


처음에는 무섭고 두려운 마음에

이 일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아즈사가

점점 고인들의 마음과 사연을 헤아려

죽은 자와 산 자 사이를 소통하며

자신만의 방식으로 도와가는 모습은

'삶과 죽음의 연결'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게 했다.


책 속의 등장인물들은 각기 다른 이유로

고인을 기억하며 편지를 쓰고,

여기에 후회와 사랑, 감사와 미안함 등

다양한 감정을 담아낸다.


고인들 역시 세상을 떠나가면서

감사했던 마음을 담아내 편지에 써내면

이를 도텐 우체국에서 살아있는 사람들의

꿈이나 암시로 답을 준다는 게

판타지이지만 꼭 '실제로 존재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갖게 만들기도 했다.


할머니에게 전하지 못한 마음이

죄책감이 앙금처럼 가라앉아

떠올릴 때면 항상 죄송할 뿐이었는데,

만약 이런 우체국이 존재한다면

온 마음을 담아 표현했을 텐데,

그랬다면 할머니가 뭐라고 답을 해주실까

궁금해지기도 했다.


각 등장인물의 사연을 따라가며

때로는 우스꽝스럽기도,

어떤 때에는 안쓰러움과 대견함의 감정으로

흠뻑 빠져들었다.

괴기스러운 분위기나 공포를 자아내는 사연도 있어

죽음을 마주하는 다양한 태도를 엿볼 수 있어

굉장히 현실적인 느낌을 받았고,


각각의 세계로 분리되어 있다고 여겼던

이승과 저승의 관념이 경계를 거두는 순간

이해와 호감으로 바뀌어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내용은


미처 말하지 못한 마음도

상대에게 전할 수 있다는 희망적인 무드,

각기 '생과 사'라는 갈림길에 서있지만

이별은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이 되어

여전히 서로가 연결되어 있다는

유대감을 느끼게 했고,

이는 두렵게만 느껴지던 삶과 죽음의 경계를

조금은 다른 시각으로 볼 수 있게 만들었다.


이 책의 시리즈가

총 네 편으로 이어진다고 들었다.

1편인 이 책의 후반, 도시로 이사한 아즈사가

도텐 우체국에서의 경험을,

함께 일한 동료들과의 추억을 잊지 못해

지울 수 없는 그 '기억'으로

다시 우체국을 찾는 장면은

뒤이어 이어지는 이야기들 속에

또 어떤 환상과 판타지를 담았을지

손꼽아 기다리게 한다.


내가 놓쳐버린 물건, 전하지 못한 마음을

전해주는 이런 우체국이 존재한다면

어떤 죽음도 외롭거나 슬프지 않고

잔잔한 아련함으로 추억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죽음이 끝이라는 생각으로

할머니를 떠올리면 늘 무거운 마음이었는데

이 소설을 통해 위로와 감동,

그리고 마음의 부채감을 조금은 줄일 수 있었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전하지 못한 마음을 꺼내보고 싶어질지도 모르겠다.

그런 마음을 품고 살아가는 누군가에게

《환상 우체국》은 조용한 위로가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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