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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의 책 - 괴테에서 톨킨까지, 26편의 문학이 그린 세상의 정원들
황주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6월
평점 :
※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후기입니다.














'정원이 있는 집'하면
누구나 꿈꾸는 드림 하우스의 모습일 것이다.
초록빛 나무와 식물,
아름다운 빛깔의 꽃이 피어있는 정원,
그 풍경이 한눈에 들여다보이는 널찍한 집은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것 같다.
부의 상징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너른 공간을 할애해 식물이나 꽃 등을
삶에 가까이 다가오게 만드는 정원은
누구에게나 리프레시 되는 존재가 아닐까 싶다.
최근 들어 식물 집사라는 말이 꽤 유행이다.
개나 고양이 같은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이
스스로를 '집사'로 칭하는 것에서 비롯된 말로,
나무나 꽃, 화분 등의 '반려 식물'을 가꾸는 이들이
스스로를 식물 집사라 칭한 것이다.
식물을 재배하거나 가꾸는 가드닝은
그 노동의 강도나 번잡스러움을 떠나
마음 한편에 치유와 재미, 추억 등
다양한 감정을 안겨준다.
그 감동과 재미는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짐작하지 못할 터.
여기 정원을 사랑하는 작가들이 있다.
괴테에서 톨킨, 그리고 한국인들에게 익숙한
김초엽에 이르기까지
때로는 배경으로, 혹은 주인공으로
작품에 정원을 등장시킨 26편을 하나로 모아
그 안에 담긴 정원의 의미를 쫓아가며
문학에서 정원을, 정원에서 인간을 읽고자 한
독서 에세이 《정원의 책》이다.
정원과 글쓰기는 얼핏 보면
전혀 관련이 없는 소재인 것 같지만
이 두 세계를 연결하는 작업은
'가든 라이팅(garden writing)'이라는
용어가 있을 정도로
오래전부터 많은 작가들이 해온 일이라고 한다.
식물 재배법이나 기술적인 글은 물론,
정원의 역사나 이론서, 정원 가꾸기에 대한 에세이나
최초의 낙원인 정원이 묘사된 성경과 코란처럼
다양한 종류의 글이 한가득하다.
이 책을 쓴 작가 황주영은 '조금 과장하면
이 세상에 정원과 관련되지 않은 분야는
거의 없는 것 같다'라고 말하며
인류의 역사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정원의 의미를
예술, 그중에서도 문학 안에서 찾고자 이 책을 썼다.
정원에 대한 정의는 물론,
작품의 배경, 혹은 주인공으로 등장한
여러 작품들 속 정원을 탐구하며
우리는 왜 정원을 가꾸는가,
혹은 가꾸어야 하는가 하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실었다.
치유와 사랑, 욕망과 생태라는
네 가지 키워드로 분류한 26개 작품을 읽으며
단순히 꽃과 나무를 모아 심고 가꾸는 것 이상의
'정원을 통해 인간 읽기'라는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고 확장해나갈 수 있었는데,
시공과 장르를 넘나드는 다양한 작품들을
정원이라는 렌즈를 통해 바라봄으로써
이미 읽어보거나 알고 있는 작품을
새로운 시선으로 재접근해 새롭게
다시 읽을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했고,
아직 접해보지 않은 작품에 대해서는
새로운 호기심과 궁금증으로
펼쳐보고 싶게 만드는 좋은 자극이 되었다.
정원이 서사의 중심이 되거나
강력한 은유가 되는 작품들을 보며,
마치 좋아하는 '최애' 중심으로
드라마나 영화 같은 극에 몰입하듯
'정원 덕질러'의 주관적 시선이 주는 재미를
맛볼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다.
식물을 돌보는 데는 손이 많이 간다.
물을 주고 햇빛이나 바람을 신경 쓰는 것 외에도
어떤 때에는 가지를 쳐주거나
잘 올라온 싹을 솎아줘야 충분히 자라듯
시간을 들여 살피고 돌봐야 하는 가드닝처럼
얼핏 대단한 의미를 가진 것 같지 않은
정원 배경이 담긴 작품 안에서도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가치나 의미가 무엇인지
되새겨볼 수 있었다.
각 장에서는 문학작품에 투영된
인간의 다양한 감정과 욕망을 세분화한다.
1장 〈치유의 정원〉에서는
영화로도 만들어진 적이 있는
'비밀의 화원'처럼 인간을 자라고 회복시키는
정원의 가치를 담은 작품이 소개되었고
2장 〈사랑의 정원〉을 통해서는
좁은 의미의 성애부터
기억에 대한 그림을 포괄하는
'사랑'을 담은 정원을 소개한다.
완전하고 안온한 세계를 의미하기도,
닿으려 해도 다다를 수 없는 연인을
동시에 은유하는 무대로서의 정원이나
애니메이션으로 그 스토리가 익숙한
'캔디 캔디'에 이르기까지 묵직한 스토리부터
가볍게 접근할 수 있는 이야기까지
흥미의 끈을 놓을 수 없게 만들었다.
3장 〈욕망의 정원〉에서는 좀 더 치열하고
또 역동적인 인간사가 투영되었다.
실제 관광지로서도 그 엄청난 규모감과
화려함으로 압도되는 베르사유 정원에 담긴
루이 14세의 공간 통제 욕망을 읽기도,
유혹과 타락의 무대가 된 닫힌 정원과
피와 비명으로 지어진 아우슈비츠 사택의 정원까지
상상의 이야기 속에 펼쳐진 정원의 의미를 넘어
실제 우리의 역사 속 정원을 볼 수 있었다.
마지막 4장 〈생태의 정원〉에서는
기후 위기로 위험에 처한 현대의 인류에게
강력한 울림을 주는 정원이 등장한다.
받은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땅에 돌려주는
정원사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작품,
아직은 먼 미래의 배경이지만
엉망이 된 지구 모퉁이마다 씨앗을 심어
미래를 지키고자 하는 사람들이 등장하는
유일한 국내 작가 작품인 '지구 끝의 온실'까지
문학과 정원이라는 세계를 관통하며
그 안에 담긴 희로애락의 감정은 물론
이를 캐어내 정성스레 가꾼 작가의
'가드닝' 솜씨를 엿볼 수 있었다.
한 권의 책을 읽었음에도
스물여섯 편의 책을 다 읽은 듯
무척이나 길고도 다양한 호흡이었다.
책의 중간마다 들어간 정원 삽화와
각기 다른 매력으로 표현해 낸
정원을 담은 문장들을 통해서
역시, 하며 감탄하게 되는 작가들의 문장력은 물론
푸릇한 정원에 대한 애정, 갈증을
자극했다는 점에서 참 싱그러운 독서였다.
정원을 소재로 삼은 작품을
그저 모아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땅에 가장 소중하고 좋은 것을 두고 지키는 일'
이라는 정원의 의미를 더 확대해
단순히 꽃과 나무를 심고 가꾸는 것
그 이상의 가치를 깨닫게 하는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