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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개가 왔다
정이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6월
평점 :
※ 본 포스팅은 한겨레출판 하니포터 10기로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후기입니다.




반려동물.
짝이 되는 동무를 의미하는 반려(伴侶)로서
인간과 더불어 사는 동물을 의미한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반려 가구는 550만을 훌쩍 뛰어넘어
아파트 단지나 주택에서도 심심치 않게
동물과 함께 살아가는 이웃을 만날 수 있다.
이렇게 동물과 가족이 되어 함께 사는 모습이
보편적인 요즘이라고 하지만,
아직까지 인생을 살아오면서
단 한 번도 동물과 함께 살아본 적이 없다.
동물을 싫어하는(사실은 무서워하는)
엄마의 입김으로 인해 접하지 못했고,
가까이서 접하지 못한 동물에 대한
낯선 감정은 두려움과 겁으로 인해
'나는 동물을 싫어한다'라고 생각해왔다.
대화가 통하고 어디로 튈지
행동반경이 예상되는 사람과 달리
나름의 의사 표현을 하고 있겠지만
도무지 의사소통이 되지 않으며,
날카로운 이빨과 컹컹 울리는 짖는 소리는
가까이하려야 가까이할 수 없는
평행선 같은 존재라고 여겨졌다.
산책을 하는 개가 있으면,
그들이 리드 줄에 묶여 주인과 함께 있어도
도무지 그 옆을 평온하게 지나갈 수 없었다.
지금이야 산책 에티켓이나
반려동물을 키우는 매너를 갖춘 가정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지만
내가 어릴 때만 해도 '집을 지키라'라며
낯선 사람이 지나가면 짖도록,
혹은 줄을 묶지 않고 오프리쉬로 풀어두어
금방이라도 달려들듯 경계하는
그들 옆을 지나가는 건 공포 그 자체였었다.
시간이 이만큼 지나고
SNS나 TV 프로그램 등을 통해서
다양한 매력의 귀여운 반려견들을 보니
마냥 무섭게만 느껴졌던 '개'라는 존재가
조금은 함께 어우러질 수 있게 되었다.
길에서 그들을 만나도 더 이상 피하지 않고,
오르내리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매일 같이 마주하는 이웃 개를 볼 때면
이름을 부르며 인사를 나누고
또 손을 내밀거나 가볍게 쓰다듬기도 하니
장족의 발전이 아닐 수 없다.
점점 개에게 마음을 열고
편견이나 고정관념 없이 하나의 생명체로서
인간과 함께 살아가는 그들을 받아들이며
뭐든 처음이 어려울 뿐이지
익숙해지면 두려울 것이 없구나
그런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따금 다른 가족들이 모두 잠들어도
주인이 돌아오면 현관문 앞으로 달려오거나,
치매를 앓는 노인이 집을 나갈 때
따라나가 그를 보호하고 지켰다는
개의 뉴스를 볼 때면
'나도 언젠가는 개를 키울 날이 올까?'
그런 상상에 빠질 때가 있다.
나는 동물을 키우는 일이 없을 거라
단언했던 지난 시간이 무색하게
마음이 물렁해지며 달라지는 걸 보니
모든 반려 가구들의 처음도 분명
이러지 않았을까 짐작해 본다.
여기 나처럼 개를 무서워하고
평생을 동물과 함께한 경험이 없는 사람이 있다.
우연한 기회에 생후 3개월의 강아지를
집에 들이게 되면서 '펫팸족'이 된
소설가 정이현이 그 주인공이다.
그녀의 인생에 뛰어들게 된 강아지 '루돌이'와
낯설고 어린 개를 덜컥 떠안게 되며
헤매던 초보 집사 시절의 에피소드,
적당한 거리로 동거하던 개와
조금씩 조금씩 가족이 되어가는 과정을
《어린 개가 왔다》는 책을 통해
따스한 글로 담아내었다.
사람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강아지,
그리고 개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무지한 한 사람이 만나
서로를 구원하게 되는 이 이야기 덕분에
마냥 무겁게만 느껴지던 반려동물에 대한
'책임감'을 뒤로한 채
따끈말랑한 '가족애'를 듬뿍 만끽할 수 있었다.
개를 키운다는 것에 대해
여태까지는 오롯이 '사람이 개를 책임진다'
라고만 생각해왔던 게 사실이다.
사람이 개의 먹이와 물을 챙겨주고,
때때마다 적당한 산책을 시켜주고,
아플 때면 병원에 데려가 치료를 받게 하고,
개가 짖거나 타인을 공격하지 않게
적당한 훈련을 시키는 등
개가 사람에게 무엇을 해준다기 보다
일방적으로 사람이 개를 보살피는
그런 관계라고만 여겨왔었다.
그렇기에 '끝까지 책임질 수 없다면
애초에 시작하지 않는 게 맞아'라며
반려 가구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도
덤으로 가지고 있었다.
책의 서두에 소개된
보호소에서 데려온 어린 개와의 첫 만남,
그리고 그와 함께하며 겪은
좌충우돌의 시간들을 읽어 내려가며
초보 반려인이 맞닥뜨리는 에피소드에
피식 웃음 지으며
'만약 내가 개를 키우면 겪게 될 일'이라
가볍게 시작했는데
개와 함께 하는 일상 속에서
흐르는 시간 속 서로 마음을 나누고,
어린 개와 함께하며 변모하게 된
작가 자신을 발견하게 된 점,
그와 비례해 넓고 깊어지는 그의 세상까지
다른 종과 함께 어우러지는
작가와 무돌이의 변화를 읽으면서는
종을 뛰어넘은 교감과
그 무엇도 따지지 않는 마냥 순수하고
절대적인 사랑의 감정을
나 역시 한번 겪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들게 할 만큼 마음을 일렁이게 했다.
개를 키우는 사람들이 스스로를
'엄마'라 칭하는 것이
마냥 신기하기만 했다.
뉘앙스는 알아들어도
대화를 할 수 없는 개와 사람이
어떻게 '혈연'관계인 가족의 호칭으로
부를 수 있을까 하고 말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루돌이에게 스스로를 '엄마'라
칭하는 작가의 모습을 보며
인생에서 예상한 적이 없었던 개를 키우며
생활과 일상이 달라지고,
그만큼 포기해야 할 것이 늘어나기는 했지만
태어나는 순간 아이를 보며 '모성애'가 샘솟듯
어린 개를 만나는 순간 어쩌면
그의 마음속 숨겨져 있던 어떤 끓는 마음이
튀어나온 게 아닐까 싶기도 했다.
절대적이고 순수한 사랑,
애정을 보여주는 루돌이의 따뜻한 눈빛,
그렇게 만끽한 절대 순수의 세계를
다시 글로 쓰면서 치유받는 느낌이 들어
이렇게 글로 이어지게 되었으니
그가 작가에게 준 영향력을 헤아려보면
개를 키운다는 것이
오로지 인간만이 지는 '책임'이라
말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지금으로서는 여전히 나에게 '개'는
보면 인사하는 정도,
어쩌다 귀엽게 생겼네 생각하는 정도이지만
'누구에게나 어린 개의 순간은 반드시 온다'는
작가의 말처럼,
만약 나만의 '어린 개'를 마주하는 시간이 오면
내가 어떤 모습으로 달라질 것이며
또 어떤 깊이와 넓이의
새로운 세상을 만나게 될까 궁금해졌다.
아무것도 모르는 백지상태에서 마주한
어린 개 한 마리와 작가가
시간의 흐름 속에서 서로를 이해하고
함께하는 '가족'이 되는 과정,
서로가 서로를 구원하고
단 하나의 세계를 가지게 해줬다는 충만한 행복감이
아직 느껴보지 못한 나에게는
마냥 미지의 세계 같지만,
동물과 함께 살아가는 반려 가구에도,
아직 동물이 무섭거나 두려워
혹은 책임감에 선뜻 그들에게
손 내밀지 못하는 나 같은 사람에게도
이 문장들이 나만의 '어린 개' 한 마리를
마음에 품게 하는
계기를 만들어줄 것이라 기대된다.
책을 읽고 나니 개와 함께 하는 삶을
머릿속에 그려보게 되었다.
어쩌면 언젠가는 이 달콤하고도 상냥한 세계에
푹 빠지게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