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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가다가 아닌 노동자로 삽니다 - 건설 노동자가 말하는 노동, 삶, 투쟁
마창거제산재추방운동연합 외 기획, 이은주 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5월
평점 :
※ 본 포스팅은 한겨레출판 하니포터 10기로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후기입니다.





한때, 아침이면 휴대폰 알람이 아닌
민중가요 노래로 잠이 깬 시기가 있었다.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 근처에서
새로 공사를 하고 있던 현장에서
일명 '노조'의 시위로 인해
민중가요를 크게 틀어둔 것이다.
분명 시위는 미리 신고했을 것이고,
정해진 데시벨을 넘지 않도록
그들 역시 우리 단지 곳곳에
소음 측정기를 설치해두었음에도
아침마다 울리는 노랫소리는
단잠에 빠져있던 주말이나 평일,
조카가 다니는 학교 앞에까지
시도 때도 없이 울리곤 했다.
며칠이면 괜찮아지겠지,
도대체 시위를 왜 건설사가 아닌
일반 시민들이 사는 곳을 향해
노래를 틀어놓는 걸까,
소음을 측정해야 하나, 신고할까 등
동네 맘 카페에서도 연신 울리는
이 민중가요와 시위에 대해
다들 볼멘소리로 한동안 난리였다.
몇 주 가까이 이어지는 이 시위에
그들이 어떤 메시지를 전하는지,
혹은 그들에게 불합리하거나
억울한 일은 없는지를 들여다보기 전
일단 내가 불편하니까
그리고 '돈 더 달라고 저러는 거지'하는
어르신들의 말처럼
곱지 않은 시선으로만 보았더랬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매일같이 스피커를 켜고 민중가요를 틀던
노동조합은 어디론가 자취를 감췄다.
공사는 다시 진행되었고,
누군가는 '공사하는 사람 따로,
시위하는 사람은 따로 있어.
저 사람들은 매일 시위하는 게 직업이야'
하며 언론에 오르내리던 '건폭'으로
그들의 모습을 쉬이 규정하곤 했다.
그때는 말마따나 '나쁜 사람들' 혹은
'자기 이득을 위해 다른 이에게 피해를 주는
이기적인 사람들'이라 생각했는데
이 책 《노가다가 아닌 노동자로 삽니다》를 통해
우리의 이웃이자, 크게 다르지 않은
'그저 열심히 매일을 사는' 그들의 삶을 보며
건설 노동자에 가진 삐딱한 시선,
고정관념이나 오해했던 부분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어쩌면 지극히 정치적으로 해석될 수 있는
그러기에 조심스러운 책이기도 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건폭' 발언,
그리고 '탄압 정치'로 인해 더 힘들어졌다는
건설 노동자들의 이야기는
사람에 따라 동의하지 않는 사람도 있을 터.
정치적인 부분은 정답이 있는게 아니기에
이에 대해서는 떨쳐놓고, 책에 소개된
12명의 노동자 한 명 한 명의 이야기를 통해
그들의 일과 삶에 대해 집중하는 시간을 가졌다.
각자의 이유로 건설노동에 뛰어든 사람들.
아직 어렸던 10대의 방황 끝 선택이거나
이혼 이후 아이들을 키우기 위해
건설 현장에 뛰어든 여성 노동자.
한국에서의 삶이 좋아 보여
외국에서 한국으로 멀리 날아온 이주노동자,
아버지에 이어 아들까지 건설 일에
뛰어든 사람도 있었다.
결국에는 '잘 먹고 잘 살기 위해'
그들은 '노가다'라 비하 받기도 하지만
열심히 몸을 움직이면
그만큼 주머니와 배를 채울 수 있는
이 일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삶,
비싼 유지비나 정비로 버는 것보다
쓰는 게 많은 때도 있는 어려움,
몸이 다쳐도 제때 치료하지 못하거나
산재처리를 받지 못해 고생하기도 하고,
그렇게 노동을 했어도 제때 돈을 받지 못해
때로 생활과 가정이 무너지는 경험 속에서
그들은 '노동조합'을 통해 이 어려움과 힘듦이
그래도 조금은 더 나아졌다 입을 모았다.
우리가 잘 모르는 건설노동자의 채용,
그리고 단가 경쟁, 임금체불의 현실이
얼마나 그들의 '인간다움'을 앗아가고
힘들게 만들고 있는지,
그저 '떼쓰는 것'으로 보였던
노동조합의 목소리에 대해
그들이 말하고자 하는 바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계기가 되었고,
아무것도 할 줄 아는 게 없어
'마지막 선택지' 같아 보였던 건설노동에서도
더 나은 삶을 위해 배우고 함께하며
스스로를 발전시키고 뿌듯해하는
한 사람의 애쓰는 '삶'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얼핏 이들의 이야기가
'우리'가 아닌 그들만의 것으로 보일 수 있지만
책 속에 소개된 그들의 삶,
건설 노동자의 노동과 그들의 애씀이
우리의 인생과 다르지 않음을 깨닫게 되는 순간
결국에는 이 모든 것이 우리의 일 임을,
이들의 자부심을 다시 세우고
'인간다운 노동 현장'을 위해 목소리를 높이는 일이
우리 모두의 관심이 필요한 것임을
비로소 이해하게 되었다.
건설노동이 가치 있는 일인가,
이들의 노동에 대해
우리 사회가 인간적으로 대우하고 있는가,
혹여 폭력적이고 차별적인 시선으로
그저 혐오하는 감정으로
그들의 '행동'을 비난하고 있던 건 아니었을까
그동안 가지고 있었던 생각들을 되짚었다.
그들의 입으로, 말로, 마음으로 써 내려간
진심 어린 글을 통해
인간답게 일할 수 있는,
보다 안전한 일터에서 그저 '일하고자' 하는
보통의 삶을 꿈꾸는 그들의 소망이
과하거나 잘못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아침잠을 깨우던 그때의 소리를,
그저 '시끄럽네'라 생각하지 않고
그들이 무엇을 이야기하고자 하는지
'들어보려는 마음'을 가졌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렇게 해서라도 '내 이야기를 들어달라' 말하던
그들의 진심을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정치적인 관점에서 잘잘못,
옳고 그름을 떠나서 내가 하는 일에 있어서
'인간답고 자'하는 누군가의 목소리에
한 번쯤 귀 기울여보면 어떨까 싶다.
책을 덮고 나면
노가다가 아닌 '노동자'로 불리길 원하는
그들의 바람과 요구가 절대 과하지 않다고,
이건 당연한 거라고 고개를 끄덕이게 될 것이다.
현재를 비판하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건설 산업 전반에 팽배한
오래된 악습이나 관행, 부조리에서 벗어나
인간답게 일할 수 있는 일터로 발전할 수 있도록
우리 사회와 각자가 노력해야겠다는 마음이
숙제처럼 남지 않을까 싶다.
혹여 건설 노동자에 대해 편견을 가지거나
'하찮은 일'이라 생각하고 있다면,
부모님이 건설노동 일을 하고 있다면
그들의 '인생'을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꼭 한번 읽어보면 좋을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