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이것부터 먹고
하라다 히카 지음, 최고은 옮김 / 하빌리스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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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 동창 다섯 명이 함께 만든

스타트업 회사 그랜마,

회사의 규모가 커지고 일도 늘었지만

그들이 함께 쓰는 사무실의 공기는 냉랭하기만 하고

대화는 날이 갈수록 줄어든다.


어질러진 신발장,

공용 욕실에 널브러진 샴푸와 린스,

끼니는 대강 편의점 도시락으로 때우거나

바빠서 제때 치우지 못한 쓰레기도 한가득이다.


이런 문제를 더는 두고 볼 수 없다는 생각에

CEO인 다나카의 제안으로

그랜마의 사무실에 중년의 가사도우미

가케이가 출근하기 시작했다.


척척 사무실의 묵은 때를 벗겨내고

멤버들이 먹을 야식을 만들어내는 모습을 보며

이들 중 유일한 '홍일점'인 고유키는

어쩐지 '설 곳을 잃어버린 느낌'을 받기도 하는데,


퇴근하며 다 함께 먹을 야식을 준비하는 방법을

콕 집어 고유키를 불러 설명하는 가케이에게

고유키는 마음속에 담겨있던 묵은 감정을 쏟아내며

날선 반응을 보이고 만다.


얼핏 잘나가는 회사,

일도 바쁘고 문제없을 것 같은 이들 멤버에게

도대체 무슨 일과 사연이 있는 것일까?


유독 마음이 무거운 날이 있다.

고민하고 있는 것이 있지만 어디에 말 못 하거나

혼자서만 끙끙 앓느라 입맛도 없고,

때로는 일에 집중하지 못하며 예민해진다.


이런 날에는 작은 일에도 날선 태도로

타인에게 크게 반응하기도 하고,

입맛이 없어 기운이 축 처지기도 한다.

그럴 때 문득 드는

'엄마가 만든 밥 먹고 싶다'라는 생각.


어쩐지 냉소적이기도 하고,

서글서글하지도 않은 가사도우미 가케이는

각자의 고민과 시름을 앓고 있는 그랜마 직원들에게

기꺼이 '엄마가 만든 밥'같은

위로의 음식을 척척 차려낸다.


사실은 가정에서도, 회사에서도

내 '쓸모'가 없는 것 같아서 고독감을 느끼며

어디에도 흠뻑 속하지 못한 채

겉도는 고유키의 마음을 달래는

구운 사과에 아이스크림을 곁들인 디저트를,


신라면에 밥을 넣어 끓인 라밥이나

알뜰하게 얻어온 도미 머리로 만든 밥처럼

정말 간단한 요리부터

때로는 뼈에 붙은 살을 하나하나 잘 발라야 하는

까다로운 음식까지 다양하게 넘나든다.


그가 만들어 낸 음식들은

각자에게 얹어진 고민을 잊을 만큼

위로해 주고 응원해 주는 맛이다.

가케이는 고민이 있어 보이는 멤버들의 마음을

다 알고 있는 것처럼

'우선 이것부터 먹어봐'하며 음식을 내민다.

때로는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조언하는 역할까지 하며

점점 그랜마 직원들의 마음에 스며들게 된다.


가케이가 없었던 시간은 상상이 되지 않을 만큼,

그리고 앞으로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된 이때

이들 모두에게 공통의 '미스터리'로 남은

前 멤버 가키에다의 실종 목격자가 나타나고

가사도우미 가케이에게서 발견되는

석연치 않은 점이 드러나게 되면서

이야기는 '미식 힐링'에서 '미식 미스터리'로 변모한다.


맛있는 음식에 초점을 맞추어

꿀꺽 침을 삼키게 되었던 마음은

어느덧 그랜마 직원들이 숨기고 있는

가키에다의 실종사건에 대한 진실,

그리고 가케이가 숨기고 있는 무언가를 쫓아

열심히 따라가게 되었다.


식욕을 자극하기 무섭게

마음을 두근거리게 하는 이야기의 전개는

하라다 히카 특유의 '미식 표현'에

호기심을 덧입혀 더없이 맛있는

요리와 같은 글이 되었고,


각각의 등장인물의 시점으로 펼쳐지는

각 편의 소설을 다 읽어내고 나서야

퍼즐이 완성된 듯 이야기가 짜 맞춰지고

비로소 숨겨진 진실은 물론

서로가 서로에게 '힘'이자 '위로'가 되는

인간적인 '연대'까지 엿볼 수 있었다.


입맛이 없고, 삭막했던 분위기의 사무실이

가케이의 정성스러운 요리로

자연스레 분위기가 풀리며

'앞으로도 이런 시간이 계속되면 좋겠다'

생각할 정도로 즐거워졌듯이


가케이가 음식을 내밀며

"우선 이것부터 먹어봐" 하는 말처럼

힘든 상황일 때 무언가를 먹고 마음을 채우며

올바른 판단으로 나아가는 각 인물들의 성장도

열심히 응원하는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어쩐지 서먹했던 그랜마 멤버들의 고민이

한꺼풀씩 벗어져 분위기를 회복할 때 즈음

실종된 가키에다의 목격담과

이 소동을 바라보는 가케이의 행보가 드러나며

평온했던 분위기가

다시 쫄깃한 긴장감으로 이어지는 진행은

마음을 놓을 수 없게 만들어 참 재미있었고


그 와중에도 여전히 식욕을 자극하는

가케이의 맛있는 음식에 대한 설명,

이야기 끝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극적인 재미를 놓치지 않으면서도

따뜻한 다정함과 희망, 서로에 대한 믿음으로

이를 극복해가는 등장인물들의 모습은

일반적인 미스터리 소설과는 또 달라

더 마음에 와닿았다.


때로 마음이 고파 예민해진,

그랜마 멤버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고민을 안고 있는 현대의 우리들에게도

이 소설이 '우선 이것부터 먹어봐'하는

가케이의 따스한 음식, 손길과 같은

글이 될 것 같다.


잔잔한 감동을 자아내는 일반적인 힐링 소설과 달리

텐션감 있는 긴장과 호기심이 일어나는

미스터리를 더해 더 매력적이었다.

정말 여러모로 맛있는 미식 독서가 아니었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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