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책 식당
하라다 히카 지음, 김영주 옮김 / 문학동네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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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의 손길도 닿지 않은

빳빳하고 깨끗한 새 책도 좋지만,

세월의 흐름에 따라 빛바래고

누군가의 손길이 많이 닿은 헌책에도

또 그만의 매력이 있다.


유독 너덜거릴 정도로 책장이 일어난 책은

얼마나 인기 있는 책이었는지 알 수 있고,

때로 어떤 문장 아래에 그어진 밑줄을 보면서는

'나도 이 부분 좋았는데…' 고개를 끄덕이거나

누군가 접어둔 페이지를 보며

'왜 접어두었을까' 생각하기도 한다.


하여 일부러 헌책방을 찾는 사람들이 있다.

이미 절판되어 구하기 힘든 책이나

주머니 사정이 녹록지 않아

새 책을 살 엄두가 나지 않을 때에,

혹은 아주 깨끗하지는 않아도

되려 편안하게 책을 만끽할 수 있게 해주는

헌책 만의 매력이 있기 때문이다.


깔끔하고 세련된 인테리어,

도서관을 방불케하는 엄청난 장서를 가진

일반 서점은 아니지만

오히려 아무 때나 들어가 책장을 뒤적이며

보물처럼 숨어있는 책들을 찾아낼 수 있는

헌책방은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때로 '여행지'같은 장소가 된다.


헌책방 하면 유명한 거리가 있다.

일본 도쿄의 세계 최대 헌책방 거리인

진보초 거리로,

오랜 시간 동안 자리한 고서점 들은

현대 서적이 아닌 오래된 서적만을 취급하고

인근에 출판사가 몰려있기도 해서

그야말로 '문학 거리'이다.


이 풍경을 배경으로,

다카시마 헌책방을 둘러싼 이야기가 펼쳐진다.


항상 실제 존재하는 거리나 식당을 배경으로

우리 일상에서 마주할 수 있는

소소한 이웃들의 이야기를 통해

서정적인 감성과 감동을 전하는

작가 하라다 히카의 신작 《헌책 식당》이다.


책은 도쿄에서 헌책방을 운영하며 혼자 살던

오빠 지로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인해

책방을 이어받아 운영하게 된

산고의 시점에서 시작한다.


한 번도 운영해 본 적 없는 서점이지만

오빠가 몇십 년을 운영해왔기에

하루아침에 '그냥 닫아버릴 수는 없다'는

생각으로 다시 열은 산고,

하지만 아는 것이 없어 온통 난감할 뿐이다.


하지만 서점을 열지 못하는 동안에도

이웃 가게에서는 서점 앞까지 청소해 주며

정을 베풀어주었고,

그녀에게 따뜻한 커피 한 잔을 대접하고

오빠의 일하는 방식을 알려주며 도움을 건넨다.


그래서 '일단은 운영해 보자' 마음먹고

서점 운영을 시작한 첫날,

큰오빠의 손녀인 미미코가 찾아와

도움의 손길을 건네 함께 영업을 시작한다.


입시 고민으로 작은할아버지를 찾아

조언을 듣기 위해 들렀던 헌책방에

남다른 애정을 가지고 있던 미미코는

'서점을 어떻게 할 생각인지 살펴보라'는

엄마의 심부름으로 서점을 찾았지만,

고모할머니인 산고를 도와 가게 운영을 하며

진보초 헌책방 거리의 매력에 푹 빠진다.


낯설었던 것도 잠시,

둘이 교대로 밖에 나가 점심을 사 먹고 오거나

식당에서 간식을 포장해와

끼니를 해결하곤 했는데

우연하게 책방을 찾은 손님에게

자신들이 먹을 '음식'을 나누고 책을 소개하며

어설펐던 그녀들의 서점 운영은 익숙해진다.


무언가에서 도망치듯 오비히로를 떠나

도쿄에 오게 된 산고,

자신의 몫은 아니지만 '헌책방'에

유독 정을 두고 있는 미미코는


책을 사랑하고 헌책방 주인을 존경했던

이웃 출판사, 철도 서적 전문 서점,

근처 카페의 사람들과 어울리며

이 책방을 이어나가게 되는데……


도쿄를 여행하는 사람들이

실제 여행 코스로 많이 들르는

진보초 헌책방 거리를 배경으로 한 이 소설은

하라다 히카 작가 특유의 서정적이면서

마음에 작은 위안과 감동을 주는 스토리로

여행하는 느낌으로 편안하게 읽을 수 있었다.


먼지를 털어내며 청소를 하고, 가게를 열고,

구하기 힘든 오래된 책도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이익도 얼마 남기지 않고 내어주는 마음,

그리고 그들의 고민이나 상처를 씻어주는

맛있는 음식들을 보며

시각적으로도 미각으로도 자극을 받았다.


작은할아버지와의 추억을 담은

300년 이상의 전통을 자랑하는 게누키스시,

진보초 거리의 최고 명물인 비프 카레,

북카페의 카레빵이나

튀긴 면에 소스를 부어 먹는 야키소바,

대단한 문호들이 사랑했던 맥주까지

다양한 메뉴가 소개되면서

뱃속 허기는 물론 마음의 허기까지

채우고 달래주는 작가만의 시선 덕분에

더욱 즐겁게 읽을 수 있었다.


아직은 미숙하지만 갑자기 세상을 떠난

오빠와 작은할아버지를 대신해

어떻게든 책방을 운영하려는

산고와 미미코의 노력,

그리고 각자의 고민에 빠진 두 주인공이

고민을 해결하고 진심을 깨닫는 과정은

세상을 떠난 헌책방 주인이 남긴

선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다카시마 헌책방을 찾는 손님은

책과 이 서점에 익숙한 이웃들은 물론,

책에 별로 익숙하지 않거나

때로는 주머니 사정이 넉넉하지 않은

다양한 사람들이다.


각기 직업도 취향도 사고방식도 달라

손님들을 지켜보는 산고와 미미코는

'이 손님에게는 무엇을 추천할까'

골똘히 궁리하고 상대방을 바라보며

'마음을 읽는 눈'을 키워갔을 것.


책방 일을 좋아하지만

논문에는 진척이 없는 국문과 대학원생인

미미코 역시 이렇게 손님들을 마주하며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일'을 깨닫게 되고,


어떤 감정에서 자신이 없어

도망치듯 도쿄행을 결심한 산고 역시

용기를 내어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게 된다.


각자의 막막한 상황에서

자신에게 도움이 될 만한 책을 찾는

손님들을 도와가면서 두 주인공은

책방 일의 보람과 소중함을 느끼고,

그 과정 속에서 자신의 문제에 대한

나름의 답을 찾아가는 '성장'을 이룬다.


상냥하며 따스한 손길로

손님을 위한 책을 고르고

맛있는 음식을 내미는 그들의 진심,

그로 인해 회복하고 한걸음 나아가는

손님들의 모습을 통해


각자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는

우리의 인생이지만

서로가 맞닿아 끈끈하고 섬세하게 연결된,

'함께'의 삶 임을 깨달을 수 있었다.


이야기가 담긴 책,

그 책을 통해 어떤 하나의 '연결고리'가 된

산고와 미미코의 엔딩이

사실은 책방 주인 지로가 바라던,

부탁하고자 했던 유언이 아니었을까 싶다.


책과 서점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따스한 음식과 함께 어우러지는

힐링 소설을 찾는 누구에게나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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