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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근이세요? ㅣ 창비청소년문학 133
표명희 지음 / 창비 / 2025년 3월
평점 :
※ 본 포스팅은 창비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후기입니다.












학교 다니던 시절을 돌이켜 보면
엄마는 가정주부, 아빠는 회사원인 게
모두에게 당연한 기정사실로
때로 엄마가 일을 하는 맞벌이 가정이나
편부, 편모 가정은 '다르다'는 이유로
아이들 입에 오르내리곤 했었다.
얼핏 다 똑같은 모양으로 사는 것 같지만
한 발짝 다가가 그 안을 들여다보면
집마다 각기 다른 사정, 이유로 제각각이다.
지극히 평범해 보이지만
이렇게 저마다의 사연을 지닌 각자의 일상을 통해
생생하게 한국 사회의 면면을 그려낸
표명희 작가의 《당근이세요?》를 보며
낯설지 않은 우리의 과거와 오늘을
청소년의 시선으로 엿볼 수 있었다.
각기 다른 사연으로 얼핏
'정상가족'의 모습을 이만큼 비켜난
아이들의 이야기를 따라 읽어가다 보면
막상 우리의 가정과 크게 다르지 않은
그들의 삶에 많은 공감을 느낄 수 있었다.
1980년과 2002년, 지금에 이르기까지
이 사회에 벌어진 다양한 사건을
청소년의 시선에서 바라보며,
사회에서 발생한 일들이 각자만의 일이 아니라
'나의 가족과 우리 이웃의 일'이라는 것을,
서로에게 베푸는 작은 선의와 배려, 어우러짐은
개인주의가 만연한 요즘이
마냥 삭막하지만은 않다는 기대를 품게 한다.
책은 월드컵 4강 신화의 기적으로
온 국민이 열광했던 2002년을 배경으로 한
〈딸꾹질〉로 시작한다.
386세대인 지완의 부모님은
월드컵이 시작될 때만 하더라도
'정치문화적으로 업그레이드가 안될 것 같으니
스포츠로 승부하려는 모양'이라며
회의적인 모습이었는데
한국의 첫 승리를 기준으로 태도가 돌변해
같은 경기를 반복해서 보거나
응원 티셔츠를 사고, TV를 바꾸는 등
축구 결과처럼 '이변'에 가까운 변화를 보인다.
이해할 수 없는 부모님의 이변 아래,
한 번도 한 적 없는 술 심부름을 가는 지완은
슈퍼마켓을 비워두고 축구에 몰입하는
아저씨를 기다리다가 맥주에 손을 대고
슈퍼마켓의 음식을 먹는 '이변'을 저지른다.
모든 국민과 나라가 통째로
'이변' 그 자체였던 그때의 분위기,
강자를 이기며 짜릿했던 감정을
100%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함께 휩쓸렸던
그 시대의 추억을 회상할 수 있었다.
두 번째로 이어지는 〈당근이세요?〉는
편모 가정 아래에 살고 있는 나라가
엄마의 심부름으로 용돈을 벌기 위해
'당근 거래'를 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당근 거래에 응한
외국인 노동자에게 물건을 건네고
오랜만에 예전에 살던 동네로 가
친구들을 만나게 되는데,
한 명은 다문화 가정, 나머지 한 명은
부모의 이혼으로 인해 시설에서 지낸다.
각자의 고충을 가진 '가정 사정'을 생각하면
편모 가정일 뿐 나쁘고 힘든 기억이 없는
자신은 '행복한 사람'이라 생각하는
나라의 모습을 보며,
다양한 가족의 형태로,
여러 문화가 뒤섞인 것이 익숙한 시대로 바뀐
요즘의 현실을 엿볼 수 있는 시선이었다.
세 번째 이야기 〈오월의 생일 케이크〉는
조금 묵직한 소재를 담았다.
큰아빠의 생일을 맞이해 엄마의 심부름으로
할머니 댁에 '도시락 찬합 생일상'을
가지고 가는 민서의 이야기로,
군 복무하던 1980년 5월 이후
시간이 멈춰버린 채 현실을 살지 못하는 큰아빠와
이를 안타깝게 여기는 할머니,
큰아빠와 부딪치며 갈등하는 아빠를 보며
국가가 자행한 폭력이 한 가정과 가족에게
어떤 상처를 남기게 되었는지를 살펴볼 수 있었다.
정확하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도통 입을 열지 않는 큰아빠,
일도 무엇도 하지 않고 '그저 사는'
큰아빠가 부끄러운 날도 있었지만
길에서 우연히 목격한 사건의 충격으로
두려워하는 자신을 보듬어 안아주고
품어주는 큰아빠의 모습을 보며
그들의 내일은 좀 더 평온이 가득하길
바라는 마음이 되었다.
마지막 이야기 〈개를 보내다〉는
친구들과의 관계에서 상처받고
게임에만 빠져 지내던 진서가
어느 날 생일선물로 아빠가 데려온
유기견 '진주'를 만나며 달라지게 된
이야기를 담았다.
충분한 준비나 상의도 없이,
아빠의 독단적인 결정으로 데려온 입양은
가족 사이를 삐걱거리게 만들기도 했지만
어느덧 강아지를 가족으로 인정하고
돌보게 된 진서가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미 노견에 접어든 강아지
진주는 기력을 잃기 시작하고,
개를 데리고 동물 병원으로,
여기저기 검색과 도움을 얻어 가며
개를 돌보고 보내는 과정을 겪게 된다.
반려동물과의 추억과 작별을 담아낸
이 이야기를 통해 애틋한 마음과 동시에
이러한 과정 속 '성장'하는 주인공을 보며
뭉클해지는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가 일상 속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어디에나 있을법한'
평범한 청소년들의 이야기이기에
가볍게 슥슥 읽기 좋은 네 개의 사연은
얼핏 커다란 의미로 와닿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 안에 담겨있는
사회적 참사나 역사적 사건, 이슈를 되새기며
공감하고 추억을 되짚는 시간을 가졌고,
그 소통 아래 각자가 가진 상처 나 아픔을
극복하고 성장해나가는 아이들을 통해
조금은 더 나아진 미래를 꿈꿀 수 있었다.
그렇기에 혹여 내가 가진 '평범하지 않음'으로
조금은 주눅 들거나 위축된 청소년들이라면,
책을 통해 '말하지 않지만 누구나 가지고 있을'
무언가로 받아들이고 다시 내일을 살아갈
힘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읽는 사람에 따라 각기 다른 재미,
공감과 위로를 안겨줄 수 있는 책이라
온 가족이 함께 읽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