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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지키는 여자
샐리 페이지 지음, 노진선 옮김 / 다산책방 / 2025년 3월
평점 :
※ 본 포스팅은 다산북스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후기입니다.



















우리는 일상생활 속에서 수많은 사람을
스치고 함께 생활하며,
그들이 나누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때로 우연히 버스나 지하철에서
대화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심취해
'궁금해서 내리고 싶지 않네' 싶기도 하고,
어떤 때에는 흥미를 자극하는 이야기에
귀를 쫑긋거리며 몰입하기도 한다.
그렇게 누군가가 하는 이야기를
수집하는 한 사람이 있다.
바로 '유능한 청소 도우미'라 칭찬받으며
매일같이 정해진 고객의 집을 오가며
청소를 하며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재니스가 그 주인공이다.
자신의 본업인 '청소 도우미'일 외에도
그녀는 스스로를 '이야기 수집가'라 칭한다.
누구에게도 이를 입 밖으로 내지 않지만,
청소를 하며 만나는 고객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위로하며 토닥이기도 하고
때로는 그들의 안위를 걱정하며
친절을 베푸는 따뜻한 사람이다.
하지만 그녀는 타인의 이야기를 들을 뿐,
자신의 이야기는 누구에게도 하지 않는다.
매일 자신이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지만
집에 돌아오면 거의 반백수와 다를 바 없이
집안일에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남편
마이클이라는 걱정이 있고,
그로 인해 사이가 멀어진 아들은
저 멀리 다른 지역에 따로 떨어져 산다.
그리고 마음 한편에는 누구에게도
꺼내놓지 않은 비밀,
그로 인한 죄책감으로 인해
타인을 헤아리기만 할 뿐,
내 안의 상처에 대해서는 스스로도
관심을 갖거나 헤아릴 생각을 하지 못한다.
책은 그녀가 수집하는 이야기를 따라가며
그녀가 만나는 고객들의 사연이 이어진다.
'왜 자신의 이야기는 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기만 할까?'라는
재니스에 대한 다소 미심쩍은
호기심과 궁금함이 이어지던 찰나
새로 일하게 된 B 부인의 집에서
우연한 계기로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게 되며
재니스는 그동안 애써 외면해왔던
스스로의 감정, 상처를 마주하게 되고
그 안에 숨겨진 재니스의 비밀이 드러나게 된다.
열심히 자신의 역할에 최선을 다하며 살아왔지만
그런 자신을 '고작해야 청소 도우미'라고만
생각하며 제대로 인정하고 존중하지 않는
남편 마이클을 떠나지도 못하고,
동생과 어머니에 대한 죄책감을 가진 채
'그저 나는 이야기가 없는 사람'이라
스스로를 낮추는 재니스에게는
어떤 사연이 있는 것일까 궁금했는데
무언가 비밀을 알고 있는 듯 그녀를 자극하는
B 부인의 교묘하고 능숙한 독려는
쉴 새 없이 이야기 속으로 빨려 들어가게 했다.
재니스는 평범한 사람들이
예상치 못한 일을 하는 이야기,
그들이 용감하고 재미있고 친절하고
이타적이라는 사실을 일깨우는
그런 이야기를 좋아한다고 했다.
그래야만 삶에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날 수 있고,
보통 사람에게도 비범한 힘이 있으며
그로 인해 희망이 존재한다고
믿을 수 있기 때문이라며.
하지만 그런 '평범한 사람에게 있는 비범한 힘'이
자신에게도 존재하고 있음은 알지 못한 채
타인의 '현실'을 바꾸고 위로하는 데에만
도움을 주는 그녀였다.
하지만 그런 재니스가
스스로의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자극하기 위해
B 부인이 꺼낸 '베키'이야기는
오직 자신만을 생각하며 살아온
베키와 상반되는 스스로를 깨달으며
알을 깨고 나오듯 자신의 상처를
비로소 어루만지게 된 계기가 되었다.
이야기를 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게 없을 것이라고
누구에게도 입을 열지 못한 채
마음의 짐을 혼자서만 지고 있던 재니스가
이야기를 한 것만으로도 변화가 일어나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지만
또한 모든 것이 변했다'는 것을 실감하는 성장은
그녀의 '이야기' 속에서 발견한
새로운 인생의 기회였다는 점에서
굉장히 울림 있는 의미로 다가왔고
누구에게나 마음 한편에 있는 상처,
완벽하지 않은 자신에 대한 불만족이나
혹은 실망감을 가지고 있다면
재니스가 그러했든 타인과의 '이야기'를
통해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내는
힘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물론 자기 자신을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도
존재하긴 하지만,
완벽하지 않은 자기 자신을 용서하고
포용하며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도 많다.
그렇게 홀로 외로운 싸움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고 느낀다면
그녀에게 손 내밀어 준 따스한 이웃,
그들과의 상호작용으로 변화하는
재니스의 모습을 기회 삼아
자신의 마음에 담긴 얼룩을 지워내고
새로운 인생의 가능성을 찾아내는 데
도움을 받았으면 좋겠다.
조금씩 조금씩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하면서 용기를 내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적극적인
'나다운 인생'으로의
변화를 향해 나아가는 재니스를 보며
결국 그녀의 인생을 바꾼 것은
그녀가 열심히 수집하고 모아온
타인의 이야기 덕분이 아니라
오롯이 그녀 자신의 이야기였음을,
그리고 그 이야기를 그저 간직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에게 전하고 나누는 '소통'의
과정을 거치고 나서야 비로소
그 힘을 발휘하게 되었다는 점에서
우리는 속으로 끙끙 앓고 있는 마음을 내려놓고
그게 누구든, 나를 둘러싼 다른 사람과의
유대와 공감 아래 '상호작용'하며
함께 살아가야 하는 존재들이라는
깨달음도 얻을 수 있었다.
이런 '연결'이 주는 변화가 크기에
누군가에게 내 마음을 표현하고,
내 생각과 상처를 이야기하는 게
때로 어렵고 서툴더라도
담담하게 나의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은
분명 존재한다는 단단한 믿음이
앞으로의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
큰 힘이 될 것 같다.
타인의 이야기만을 쫓던 재니스가
비로소 자신만의 이야기를 써 내려갔듯
책을 덮고 나니 '나의 이야기'는 무엇인가
혹시 내가 외면하고 있던 나의 이야기,
감정이 있지는 않은가 하고
마음속을 다시 한번 들여다볼 수 있었다.
자존감이 떨어질 때,
내 의견보다는 타인의 의견을 따르는 게
오히려 편하다고 생각하는 우유부단한
너무 착하기만 한 사람들,
다른 사람을 헤아리며 배려하고,
내가 맡은 '역할'에만 집중하면서
내 삶의 주인공이 되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꼭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