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답고 위태로운 천년의 거인들 - 개발과 손익에 갇힌 아름드리나무 이야기
김양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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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포스팅은 한겨레출판 하니포터 10기로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후기입니다.





















고등학교에 다니던 시절,

졸업앨범을 찍는 날이면 단골 촬영 스폿으로

손꼽히는 장소가 있었다.

바로 학교 근처에 있는 500년이 넘은 느티나무로,

엄청나게 거대한 그 나무 앞에 동그랗게 서서

학창 시절의 추억을 사진으로 남겼다.


해가 갈수록 키가 커지고 두께가 두꺼워지며

그 위엄을 자랑하는 나무는

우리 학교 학생들의 졸업사진 속에서

함께 차곡차곡 시간을 쌓았고,


한참의 시간이 지난 이후에도

그 나무 앞을 지날 때면 앨범을 찍던 날의 기억이

선명하게 떠오르곤 했었다.


그러던 어느 여름 날,

굉장히 충격적인 뉴스를 보았다.

장마철 비바람이 세차게 퍼붓던 날,

사방으로 활짝 퍼졌던 가지들이

큰 바람으로 인해 찢기듯 무너져 내렸고,

속살을 드러낸 나무는 530여 년의

역사를 뒤로하고 부러져 버린 것이다.

내부의 동공(洞空)이 커서

바람을 견디지 못한 것으로 추정된다는 것.


그 소식을 접하고는 괜스레 마음이 아팠다.

인명 피해도 시설물의 피해도 없었지만

어린 날 추억의 장소이자,

오랜 세월 동안 신성한 나무로 여겨지며

수많은 전설이 있었던 터.


전쟁처럼 나라에 큰 어려움이 닥칠 무렵에는

나무가 구렁이 울음소리 같은

이상한 소리를 냈다고도 했고,

수원화성 축조 때에는 이 나뭇가지를 잘라서

서까래용으로 썼다는 얘기도 있었다.

또한, 일제 강점기에는 벌목 위기에 놓였던

나무를 지역 유지가 구했다고 전해지기도 할 만큼

단순히 '오래된 나무'를 넘어 상징적인

의미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무는 신도시로 개발되기 전 1990년대까지

평범한 농촌마을이던 시절에

마을의 상징이자 구심점이라고 했다.

농민들이 볕을 피해 쉬는 쉼터였으며,

단옷날에는 근처 산에서 산신제를 지내고 내려와

당산제와 동네잔치가 열리는 소통의 장이었다.


신도시가 들어서면서 나무는

아파트 숲 한가운데에 자리 잡게 되었지만

그래도 도심 빌딩 숲 사이 우뚝 선 나무는

그 기세에 밀림이 없이 단단한 존재였는데,

한순간에 이렇게 무너지다니 말이다.


소식을 듣고 며칠 뒤,

나무 앞 도로로 차를 몰고 가보니

나무의 윗부분은 온데간데없어지고

뾰족하게 아무렇게나 부러져 버린

나무 밑동만 초라하게 남아있었다.


이렇게 부러질 때까지 왜 아무런 조치를

제대로 취하지 않았던 것일까?

나무 안이 많이 비어있었다고 했는데

진작 신경 썼더라면 이런 일은 막을 수 있었을 거라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그 처참한 모습을 보고 나니,

500년의 유산이 한순간에 무너졌다는 걸

비로소 실감할 수 있었다.


과연 그런 나무가 우리 동네의 느티나무

한 그루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이 책 《아름답고 위태로운 천년의 거인들》에는

현대사회의 개발과 손익이라는 계산 아래

한쪽 구석으로 내몰리고

겨우 숨만 유지하고 있거나

이미 그 생명을 잃은 나무들이 한가득이다.


안동의 은행나무, 창녕의 모과나무,

부산의 회화나무, 영암 이팝나무,

의령 느티나무 같은 나무 할머니, 할아버지


그리고 유행과 개발에 따라

길에서 오래 살아왔음에도 불구하고

쉽게 베어진 청주의 플라타너스 가로수길,

서울 보라매공원의 포플러길,

제주 구실잣밤나무 길, 비자림로 삼나무 숲길 등

떼죽음 당한 나무들의 사연과 현실,

무엇이 중요한지 잊은 채

개발과 인간의 편리를 좇는 우리의 문제를

톡톡히 짚어갈 수 있었다.


'나무는 땅에서 자란다'는 고정관념과 달리

물 가까이에서 살아가며

독특한 生의 모습을 보이고 있는

대구 왕버들 숲, 전주 버드나무숲,

동해안 향나무 숲, 군산 간척지의 팽나무 노거수와


점점 개발 범위가 확장되면서

조용한 숲속에 머물고 있었으나

그 자리를 빼앗게 된 서울 봉산의 나무,

고양 산황산, 지리산 가문비 숲과

가덕도 산서어나무 동백나무숲 사례를 보면서는

지금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그것이 초래하는 문제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

그 심각성을 깨달을 수 있었다.


똑같이 살아있는 생명임에도 불구하고

동물에 대해서는 '지구는 함께 살아가는 것'이라

말하며 그들의 존재에 대해서 상대적으로

쉬이 인정하고 자리는 내어주는 사람들이지만,

말을 하거나 소리를 내거나

움직임이 없는 식물, 나무에 대해서는

'생명'이라는 것을 간과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하나의 나무가 싹을 틔우거나

작은 묘목의 상태에서 큰 나무로 자라는 데는

정말 많은 시간이 필요한데도,

그들을 보호하거나 나무를 돌아

도로를 만드는 것은 '실용적이지 않다'는

이유를 들어 쉽게 베어버리는 것이다.

심지어 옮겨 심는 방법은 번거로우니

고려하는 방안에 넣지도 않고 말이다.


사람과 나무는 별도의 존재가 아니다.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는 인간, 동물 외에도

우리를 둘러싼 모든 환경에 살아가는

모든 생명체는 서로가 서로에게

유기적으로 영향을 주는 존재라는 걸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경각심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나무 한 그루가

많은 시간이 지난 미래에 어떤 역할을,

또 영향을 주게 될지를 먼저 고민한다면

개발과 손익이라는 이름으로

천 년을 살아가는 이 거인들의 가치를

쉽게 판단하지 못할 것이라는 메시지가

오래 마음에 울림으로 남는다.


쉽게 쓰고 버리는 종이,

유행에 따라 싫증이 나거나 이사를 하면

쉽게 버리는 나무로 만든 가구들에

죄책감을 가진 적이 있었나 싶다.

그런 생각을 해보지 않았다는 것 자체가

참 부끄럽기도 했고,


학창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500년 된 나무가 속이 비어 부러지도록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은 행정을 탓할 뿐,

나는 가만히 방관했다는 것을

이제는 인정할 수 있을 것 같다.


우스갯소리로 "종이를 많이 써서

나중에 죽기 전에 나무를 몇 그루는

심고 가야 할 것 같아." 하곤 했었는데

먼 미래로 책임감을 희미하게 미루지 말고

당장 내 근처에 있는, 우리의 외면 아래

신음하고 있는 거인들을 지키고

보호하기 위해 무엇이라도 해야겠다는

그런 다짐이 든다.


나무 한 그루에 얽힌 생태적인 내용을 넘어

수호신에서 애물단지가 된

노거수의 세상살이 속 기쁨과 슬픔,

우리의 환경에 영향을 주는 나무와

이들을 섬세하게 읽고 새롭게 관계 맺는 법을

책을 통해 배워가면서

진정한 생명의 연쇄작용,

그리고 우리가 자연과 나무를 바라봐야 할

새로운 시각을 깨우칠 수 있는 계기가 된 독서였다.


이제 어딘가를 여행하든

마을을 지키고 있는 노거수를

그저 '나무'로 보지 않을 것 같다.

한자리에 우뚝 서서 여전히 아름답고

또 한편으로는 위태로운 그들을 보며

어떤 표정을 짓게 될까 그런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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