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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사람 도감
묘엔 스구루.사사키 히나.마나코 지에미 지음, 이지수 옮김 / 서교책방 / 2025년 1월
평점 :








방학이면 언니를 따라 사무실로
함께 출근하는 초등학생 조카.
방학 동안 조카와 함께 보내다가
개학을 하고 새 학기가 되어 학교에 나가니
그 빈자리가 크게 느껴지는 요즘이다.
점심을 먹고 나면 양치를 하는데,
보통 아이는 점심을 먹고 난 이후에는
으레 숙제를 하거나 학원에 가는 등
다음 일정이 있으니까
항상 먼저 하라고 얘기해두는 편이다.
겨울이면 수돗물이 너무 차니까
뜨거운 물을 조금 섞어
미리 양칫물을 만들어주곤 했는데
자기에게 치약을 짜주거나
양칫물을 만들어주는
엄마나 이모들의 모습을 보더니
어느 순간 자기가 양치를 마치고 나면
아직 양치를 하지 않은
엄마나 이모의 칫솔에 치약을 미리 짜두고
찬물과 뜨거운 물을 섞어
양칫물까지 만들어 두었다.
금방 손만 씻을 거니까, 하고
불도 안 켜고 어둠 속에서 손을 씻고 있으면
"이모 편하라고…" 하고
톡 하고 불을 켜주기도 하고
물을 떠오거나 짐이 있어 빈손이 없는걸
창밖으로 보면 얼른 문을 열어준다.
그럴 때면 "예나는 정말 좋은 사람이야."
"예나는 마음이 예뻐." 하면서
칭찬을 이만큼 해주기도 하지만,
그 작은 행동이 주는 기쁨은
이만큼 자란 어른에게도
사랑받고 챙김 받는 기분을 느끼게 해
나의 하루를 행복하게 만든다.
이렇게 우리의 하루를 충만한 행복으로,
누군가에게 챙김 받고 있다는
사랑스러운 기분을 느끼게 하지만
정작 익숙해서 어떤 때에는
그 배려를 인식하지 못할 때가 있다.
여기에 그런 '좋은 사람'을 모아둔
책이 있다고 해서 펼쳐 보았다.
일본의 한 크리에이티브 팀이
기획해낸 이번 도감은,
일상에서 만날 수 있는 100명의
좋은 사람에 대한 소개이자,
어떤 행동이 타인을 기쁘고 행복하게
만들어주는가를 알 수 있는
모음집이라 할 수 있겠다.
직장과 학교에서,
취미 그리고 놀이 활동에서,
밥 먹을 때, 혹은 생활하며 만나는
좋은 사람들을 소개하면서
우리가 너무 익숙해서 잊고 있던
타인의 배려를 되새기며
새삼스레 감사함을 느낄 수 있었다.
학교에서 뒷자리 친구에게
프린트물을 넘겨줄 때
꼭 뒤돌아서 눈을 맞추며 건네는 사람,
짝수로만 탈 수 있는 놀이 기구에서
혼자 타주는 사람,
여러 명이 같이 셀카를 찍을 때
셔터를 눌러주는 사람 등
그러고 보니 '늘 이런 사람 있더라'하며
대수롭지 않게 여기던
그렇지만 누구도 나서지 않는
불편을 감수하고 타인을 배려하던
좋은 사람을 떠올리게 만들기도 했고
설령 돌아보지 않더라도
상대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드는 사람,
메뉴판을 상대방 방향으로 펼쳐주는 사람,
남이 좌석 앞을 지나갈 때 다리를 들어주는 사람,
다른 선반에 놓여있던 과자를
원래 선반으로 되돌려놓는 사람 등
꼭 '지인'에 한정 짓지 않고
우리가 일상 속 마주하게 되는
모르는 타인을 위해
친절을 베푸는 사람을 소개하며
'타인에게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의
태도를 되돌아보고 고치게 하는
계기가 되는 독서이기도 했다.
요즘은 '착하면 바보'라는 인식이 크다.
누군가에게 이유 없이 친절을 베풀거나
나는 조금 불편하면서 타인만 편한 건
'미련하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뭐든 빨리빨리, 성과를 내야 하고
이득을 내야 하는 이 세상은,
좋은 것은 독식하고
남의 피해나 불편은 '내 알 바 아닌'
사람들이 대부분인 것 같다.
하지만 우리가 마주하는 일상 속에는
타인의 인정이나 인식에 관계없이
묵묵히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따스한 '좋은 사람'이 있기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살만한 세상'
이라 말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까지 타인을 먼저 생각한다고?
하는 포인트도 있었고,
어떤 행동에 대해서는 '이거 나다!'싶어
우쭐해지는 경우도 있었다.
누군가에게 나의 작은 행동이
(물론 계산적인 것은 아니었지만)
다른 사람에게 행복이나 웃음을
가져다주었다 생각하니 뿌듯해지기도 했고,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은
'이렇게 해봐야겠다'라고 좋은 자극,
동기부여가 되기도 하며
가벼운 마음으로 부담을 갖지 않고
'좋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행동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때마침 이 책을 들고 지하철에 탔을 때,
같이 앉으려던 동반인과
연달아 빈 좌석이 없어 "나는 여기,
너는 저기에 앉자." 하는 순간
한 빈자리 옆에 있던 분이 벌떡 일어나
아무 말 없이 두 자리를 만들어주고는
다른 한 칸의 빈자리에 앉아
나란히 앉아 갈 수 있었다.
'덕분에 함께 가서 좋다'하고 웃으면서
'정말 센스 있고 좋은 사람이네'하고
뭔가 굉장한 행복을 선물받은 기분이었는데
좋은 사람 도감에 추가할 만한
새로운 사람을 하나 더 발견한 것 같아
더 유쾌해지는 순간이었다.
책에 소개된 100명의 좋은 사람을 만나보며,
우리는 굳이 좋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서로에게 많은 친절을 베풀며
살아가고 있음을 깨달을 수 있었고,
어떤 상황에서는 의도치 않았지만
나의 행동이 타인에게 배려가 되었다는 사실이
스스로를 '꽤 괜찮은 사람'으로 느끼게 만들어
나를 더 좋아하게 되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퍽퍽한 세상이지만 이 책 덕분에
앞으로는 일상 속에서 좋은 사람들을
쉬이 지나치지 않고 발견하게 될 것 같고,
나 역시 타인에게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이런 각자의 노력이 쌓이고 모여
앞으로 더 따뜻하고 행복해질 것이라는 기대,
그것이 이 책이 준 가장 큰 교훈이라 생각된다.
'내 주변에는 좋은 사람이 없어,
다들 너무 불친절한 것 같아.'하고
투덜거리는 마음이 든 다면
혹은 사랑받고, 배려 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 자존감이 떨어지는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덕분에 일상을, 매일을 사랑하는
힘을 얻을 수 있는 독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