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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다운 일상을 산다
소노 아야코 지음, 오유리 옮김 / 책읽는고양이 / 2019년 4월
평점 :










어느덧 외할머니가 돌아가신 지도
3년째를 맞이하게 되었다.
할머니는 인생의 마지막 몇 년을
당신이 살던 집이 아닌 요양센터에서
보내다가 가셨는데,
센터에서 할머니가 식사를 통 드시질 않고
기력이 쇠하여 병원에 가는 게 좋겠다는
연락을 보내와 병원에 간 길이
그대로 마지막이 되어버렸다.
수술을 받고 의식이 깨어나지 못한 채
중환자실에 머무르던 할머니는
그렇게 세상을 떠나셨는데,
제대로 인사를 나누지도 못하고
이송을 위해 구급차로 이동하던 할머니께
"저 왔어요" 하는 목소리만 겨우 들려드린 게
오래도록 마음에 부채감으로 남았다.
어떤 죽음이든 남은 사람들의 마음에
후회를 남기지 않겠냐마는
그때 할머니의 마지막을 겪으며
'혹시 요양센터에 모시지 않고
집에서 모셨으면 조금 더 편안하셨을까'
하는 생각을 굉장히 많이 했는데,
지나가버린 할머니의 마지막뿐만 아니라
부모님이나 나의 죽음까지
어떤 마지막을 보낼 것인지에 대한
많은 고민과 생각을 불러일으켰다.
이 책 《나다운 일상을 산다》는
일본 유명 작가 소노 아야코의 에세이로,
쓰러져 병원에 입원한 남편을
다시 집으로 데려오겠다는 결단을 내리고
'죽을 때까지 평소처럼 지내게 해주리라'는
결심 아래 남편이 죽기 전까지
1년 반이라는 한정된 시간 동안 병간호를 하며
가장 익숙한 모습으로 나답게,
자신이 제일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한 그녀의 간병기이자
단단한 일상을 쌓아온 인생 이야기이다.
집에 돌아와 익숙한 풍경 속에서
어린아이처럼 좋아하는 남편의 모습을 통해
무미건조한 병실에서
생의 마지막을 보내는 것이 당연시된
오늘날 우리의 현실을 되돌아보게 했고,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조용히
가까운 지인만 참석한 채
집에서 치러진 유명 작가의 소박한 장례식은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오기도 했다.
그저 한 사람의 죽음을
그 곁을 지킨 아내 입장에서
바라보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남편을 간병하는 방식,
그 속에서도 자기 자신의 삶 또한 놓지 않고
설렁설렁하지만 일상의 빛을 놓지 않도록
엄격히 노력한 소노 아야코만의
삶의 방식을 엿보며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나다움을 유지하는 삶이 얼마나 충만하며,
나다운 일상을 유지한다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가 엿볼 수 있는
기회가 된 책이었다.
작가 특유의 '애쓰지 않고 적당히'
살아온 삶의 방식은 간병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이었는데,
이미 자신도 노령인지라 체력적으로 힘든 만큼
힘에 부치는 것, 너무 완벽하게 하려는 마음은
일찍이 포기하고 대신 끝까지 해내기 위해
비용을 들여 가전을 구매한다거나 집을 수리해
매사 간병하는 '자신'이 지치지 않도록
건사하는 노력은 물론
남편과의 마지막 작별을 앞둔 투병생활 중에도
정기적인 외출과 오페라 관람,
글을 쓰고 사람을 만나는 등
취미와 작품 활동을 병행하며
자신이 쌓아 올린 단단한 일상을 유지하는 모습은
소중한 가족의 한정적인 남은 시간에
모든 것을 쏟아붓는 것이 당연해 보이는
시선에 신선한 자극은 물론
죽음이라는 무거운 공기를 가볍게 희석하고
그 안에서 서로 간의 단단한 신뢰를
엿볼 수 있어 부러움을 사기도 했다.
오래된 집, 마당에서 자라는 채소,
적당한 햇살이 비치는 익숙한 방에서
창을 등지고 앉아 신문이나 잡지를 읽고
때로는 안마의자에서 낮잠을 자고,
투병 중인 남편의 곁에서
무언가를 애써 함께하지 않아도
서로가 하나의 풍경이자 익숙한 배경이 되어
그저 장소와 시간을 공유하며
마지막을 보내는 모습은
마지막을 향해 가는 여정임에도
여느 노부부의 일상과 다르지 않아
애틋해 보이지는 않지만
그 어떤 마지막보다 평온하고,
떠나가는 사람에게는 익숙한 안도감을 주기에
이를 바라보며 '어떤 마지막'을 맞을 것인가
하는 질문에 대한 해답을 얻을 수 있었다.
그렇게 남편이 세상을 떠나간 뒤에도
언제나 그래왔듯 자신만의 일상으로 돌아가
'남은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품든
앞으로 걸어나가야 한다'라는 것이
지구의 물리적인 역학이라며
'배짱 있는 할머니'같은
강단 있는 소노 아야코의 모습이었지만
담담한 듯 써 내려간 글 한편에서
마음 찡한 그리움과 상실의 마음이
엿보이기도 해서 울컥하는 부분도 있었다.
일상 속에 녹아있는 나다움,
그것은 비단 매일을 살아가는 힘을
불러일으킬 뿐만 아니라
가족이 떠나가는 상황에서도
나를 무너지지 않게 이끌어준다.
그저 내가 나다울 수 있는 매일을
유지해나가는 것은
별로 대단할 것 없어 보이지만,
결국 인생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소노 아야코의 가르침은
우리의 매일을 다시 바라보고,
그 안에서 길어올릴 수 있는
일상의 재발견이라는 사명을
되새김질하는 기회가 되었다.
인생의 마지막 순간 사실 가장 그립고
마지막까지 놓고 싶지 않은 건
'익숙한 풍경 속 매일 해 오던 대로의 일상'
이었을 거라는 걸 다시 한번 깨달으며,
이 소중한 매일 속 차곡차곡 나다운 일상을
쌓아야겠다는 마음이다.
할머니의 마지막을 맞이하기 전
이 책을 만났으면 어땠을까 그런 생각이 든다.
나이 든 부모님이나 반려인을 둔 사람이라면,
흘러가는 일상에 큰 의미를 느끼지 못한 채
매일을 보내는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