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어서 눈물이 날 때
모리사와 아키오 지음, 임지인 옮김 / 문예춘추사 / 2024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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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스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도서를 제공받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인생을 살아오면서 누구에게나

가슴 한구석에는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잊히지 않고 박혀있는

추억 어린 시간이 있을 것이다.


친구들과 처음 떠났던 여행이라던가

남몰래 주고받았던 비밀 편지,

혹은 교환일기 같은 것들.

그때에는 세상의 전부인 양 소중했지만

시간의 흐름 아래 손아귀로 빠져나가는 모래처럼

붙들지 못하고 그저 추억으로만 남았다.


어쩔 수 없었지,라고 생각했지만

시간을 지나 이제 와서야 그때의 추억을 곱씹으며

때로 그립고 미안해지는 마음은

되돌릴 수 없는 그 시간에 대한 추억을

더욱 애틋하게만 만든다.


여기에 두 명의 청춘이 있다.

어린 시절 불치병으로 엄마가 세상을 떠나고

식당을 운영하는 아빠와 단둘이 사는 소년 신야.


참관수업에 꼭 참여하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난 엄마로 인해

'지킬 수 있는 약속은 없다'라며

어딘가 모르게 마음에 공허함을 가진 그는

친구들 사이에서도 둥 떠있는 느낌이다.


엄마가 세상을 떠난 뒤

운영하는 식당에서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을 위해

'어린이 밥' 이벤트를 진행하는 신야의 아빠.

그로 인해 신야는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올 때면

어린이 밥을 먹는 같은 학교 친구들을 보며

애써 시선을 돌리기도 한다.


하지만 '어린이 밥'을 먹으러 오는 아이들 가운데

신야가 마음을 열고 인사를 나누는 이가 있다.

어렸을 때는 같이 어울려 놀기도 했던

소녀 유카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학교에서는 은근한 따돌림을 받는 유카이기에

따로 알은체를 하거나 대화하지는 않지만,

우연한 기회로 여름방학에 신야와 유카 둘이

학급신문을 만드는 일을 맡게 되며

오랜 시간 서먹했던 둘의 사이는 가까워진다.


엄마가 일찍 돌아가신 신야처럼

유카에게도 아픈 사정이 있다.

재혼한 엄마로 인해 가족이 된 의붓아버지,

그리고 그가 데려온 동생까지.


엄마와 재혼한 이후 거의 일을 하지 않고

집에서 술을 마시거나 노름을 하는 게 대부분이며

술에 취해 때로는 손찌검을 하기도 하는

의붓아버지로 인해

유카는 신야네 아빠가 운영하는 식당에서

어린이 밥을 먹는 순간,

그리고 신야와 함께 학급신문을 만드는

순간만큼은 오롯이 안도감을 느끼고

그 시간들로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다.


어느 날 유카에게 손찌검을 하는

의붓아버지의 횡포는 신야에게 들키고 만다.

그렇게 해서 도망치듯 단둘이

뜻밖의 여행을 떠나게 되는데……


전형적인 일본 청춘물의 한 장면처럼

쨍한 햇볕이 내리쬐는 여름의 풍경 속

바다를 향해 여행을 떠나는 두 아이의 모습은

처음에는 '뻔한 진행인데'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던 게 사실이다.


이렇게 사랑으로 이어지겠지,

그러면서도 여행이 끝나면 어떻게 될까

하는 궁금증이 이어지던 찰나


단순히 이성적인 애정으로 이어지지 않고,

여행을 통해 서로의 아픔과 마음을 헤아리며

이를 각자의 방식으로 위로하고 치유하며

여행이 끝나고 나서는 앞으로 나아가는

성장을 만나볼 수 있어

애틋하고 찬란한 마음이 들었다.


엄마의 죽음을 일찍이 겪은

신야가 느끼는 외로움과 고독감,

가정사로 인해 집안에서도

안정감과 편안함을 느끼지 못하는

유카의 두려움이 한데 묶여

각자의 이유로 눈물을 참고 있는 두 아이들이

서로를 위로 삼아 기댄 이 마음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을 잘 살아내고 싶은'

그리고 '삶이 아름다운 이유'를

느낄 수 있게 해주지 않았나 싶다.


상황은 다르지만 신야와 유카가

여행을 통해 서로를 향한 공감과 우정,

여기에 애절한 긴장감을 더해가며

각자의 아픔을 치유하고 서로를 위로하는

이 일탈 같은 여행은,

단 하루뿐이었지만 그들의 인생에서

'기억될만한 추억'이 되기에 충분했고,


그렇게 성장해서 원래의 자리로 돌아온

아이들이 그 사건을 계기로

더 가까워지거나 특별한 발전이 있지 않았지만

각자의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

중요한 구심점이 된 것은 분명하기에

'치유'로 나아가는 아이들의 선택이

용기 있고 기특하게 느껴졌다.


신야와 유카의 이야기와 맞물려

레스토랑 겸 카페를 운영하며

'어린이 밥' 이벤트를 진행하는

마스터와 유리코의 이야기도 등장한다.


갑작스러운 자동차 사고에도

가게 앞마당의 벚나무 덕분에

다친 곳 없이 무사히 살아남았지만

그들 삶의 기반이자 업인 가게가 무너져

걱정에 빠지게 된다.


가뜩이나 무너져 약한 상태의 가게로

태풍이 다가온다는 소식에

그들은 이대로 다시 가게를 일으킬 수 없게 될까 봐

눈물 지으며 고민에 빠지게 된다.


마스터의 아버지로부터 대를 이어온

이 가게는 물론, 가게를 찾아와 끼니를 해결하는

어린이 밥을 먹는 아이들에게 미안해져

마음이 무거워진 것이다.


턱없이 부족한 예산에 수리를 망설이던 그때

이들에게 돕고 싶다며 무료로 수리를 해준다는

한 사람이 나타나게 된다.


어딘가 모르게 익숙한 '어린이 밥' 이벤트와

레스토랑에서 파는 메뉴,

이를 요리하는 손놀림은 '뭐지' 싶은 기시감에

몇 번이나 앞으로 다시 돌아가

연결고리를 찾게 하는 흥미진진함도 있었다.


이야기 끝에서야 마주하게 되는 진실,

그리고 비밀 앞에 어쩐지 눈앞이 뿌옇게

목구멍이 뜨겁게 차오르는 건

지난날의 잊지 못할 추억을 가진 모두에게

같은 반응이지 않을까 싶다.


짧게 끝나버린 인연,

다시는 볼 수 없을 거라는 생각에

더 잊히지 않는 맛과 잊을 수 없는 추억을

아름답게 버무려내어 만들어 낸

진한 한 그릇의 요리 같은 이 이야기는


타인과의 애틋한 결속,

그리고 마음을 주고받으며 남은 온기,

추억과 우정, 사랑은 물론

살아오며 생채기 난 마음을 달래주고,

지난날의 잊고 있던 추억을 되짚게 하는

특별한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각기 다른 두 이야기가 만나며

비로소 이해가 가는 전체의 흐름은

반전처럼 느껴져 더 짜릿했고,

그 추억의 힘으로 성장한 각자의 삶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인생의 묘미를 맛볼 수 있어 감동적이었다.


다시 돌아갈 수 없기에

애틋하고 그리운 것이라 치부했던 추억에

인생이 담겨있고 충분한 힘이 있음을,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결국에는 다시 닿아

아름다운 삶으로 마주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가

지나친 시간들에 다시 한번 손 뻗어볼

용기를 만들어준 것 같다.


모리사와 아키오 특유의 서정적인 표현에

겨울을 사는 지금, 청량한 여름 바다에 닿아

뜨겁고 강렬한 햇빛 아래 행복한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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