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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엄마가 있었다
조유리 지음 / 바른북스 / 2023년 5월
평점 :

《그런 엄마가 있었다》는 책 제목을 보고는
어떤 내용을 담았을까 궁금한 마음에
슬쩍 펼쳐보았다가 치매를 앓다가 세상을 떠난
엄마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라는 걸 알고는
할머니가 생각나 홀린 듯이 집어 들었다.
이 책은 자식이 배부르기만 하면 만사 OK였던 한 엄마,
자식들을 치열한 8학군 강남지역에 뚝 떨어뜨려 놓고는
정작 본인의 검정고시에 집중하거나
어릴 때 아이를 키우던 것이 하나도 기억이 안 난다며
손녀들을 돌보는 데 마냥 둔하고
겁쟁이이기만 했던 엄마,
그런 친정엄마와 시종일관 툴툴대는 아버지 밑에서
그런대로 유복하게 지내왔다고 생각했던 작가가
둘째 출산 이후 맞물려 시작된
친정엄마의 뇌경색과 뇌출혈,
그 이후 치매로까지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을 겪으며 무너지는 일상과
그리고 엄마를 '분실'해 가는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아직도 엊그제 같은 기억이지만
우리 가족 역시 일 년 반쯤 전
치매를 앓은 이후 요양병원에서 지내시던 할머니가
응급수술 이후 깨어나지 못하고 임종을 맞이했기에
'어쩐지 공감하는 내용이 많을 것 같다'라는
생각에 펼쳐보게 되었다.
먹고 사느라 바빠서 자식들에게 애정을 쏟거나
세심한 정성을 기울일 새도 없이
떼어두고 장사를 나가느라 바빴던 친정엄마,
어린 시절에는 그렇게 매정한 손끝이
아쉽고 서럽기만 했지만
비로소 같은 입장이 되어
자식을 떼놓고 직장에 나가고 보니
그제야 아이를 둘이나 키웠음에도
'도무지 육아에 대해 기억나지 않는다던'
엄마의 말과 입장이 이해가 되었다고 했다.
그런 엄마와의 공감과 이해도 잠시,
두 번의 뇌경색과 뇌출혈로
엄마의 인지 기능과 활동에 문제가 생기고
결국 치매를 앓게 되면서
그들의 평범한 일상이 무너지게 되는 과정은
이미 할머니를 통해 경험했음에도
'겪어보지 못한 사람은 그저 글만으로는
짐작하거나 헤아릴 수 없을' 고통이기에
몇 번이나 책 읽기를 멈추고
숨을 내쉬었는지 모른다.
요즘은 워낙 주간보호 센터 등의 시설이 많아
하루의 일부 혹은 24시간 내내
어르신들을 돌봐주는 곳이 많고
나라에서 요양보호사 비용 지원을 해주기도 하니
그들의 손을 빌리지 않는 나머지 시간에
가족들이 돌보는 일이 얼마나 된다고 힘들겠어,
다 늙고 병들고 나니 싫어진 거겠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분명 많을 것이다.
나 역시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하루 중 길지 않다고 생각할 그 시간 동안
(주로 모두 자야 하는 밤이나 새벽시간)
인지 기능이 떨어진 노인이 불쑥불쑥
다른 가족의 평온을 깨뜨릴 때
이를 감수해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있음에도
얼마나 많은 스트레스와 피로감,
마음의 무거운 짐이 되는지
겪어보고서야 알게 되었다.
이따금씩 '분실'했던 가족이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올 때 느껴지는 미안함과 애틋함,
그리고 다시 '분실'되는 과정의 반복에서 찾아오는
부양인의 정서적 무너짐은
결국에는 죽음에 이르러서야 끝이 난다는 게
너무도 길고 힘든 여정이랄까.
무언가 아쉬운 사회적인 제도와
치매나 인지장애의 단계를 고려하지 않은
관리하기 좋은 식으로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고려하지 않는 요양센터의 운영,
사고나 사건이 발생했음에도
'직접 어르신을 모시지 않은 죄책감'으로
큰소리치지 못한 채 그저 입을 닫고
눈물만 흘렸던 건
작가만의 것이 아니라
우리 가족의 이야기이기도 했고,
아직 겪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언젠가 겪게 될 이야기이기도 해서
치부를 들키거나 정곡을 찔린 듯
죄책감에 아프기도 했다.
할머니의 치매를 겪으면서도 느꼈지만
우리나라 사회적 돌봄 체계에는
여전히 많은 허점이 있고
철저하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제공자 중심으로
시스템이 꾸려져 있다.
맡기는 가족들의 기대를 충족하거나
서비스를 받는 당사자는 오히려 소외되어 있다는 게
말이 되지 않는 듯싶지만 그게 현실이다.
현대 사회에서 노인이 죽음에 이르는 길은
참 복잡하고 인위적이라서
남은 가족들은 자연스레 죄인이 되게 하고
그로 인해 감당할 수없이 복합적인 감정에
휩싸이게 한다.
할머니의 죽음 이후 따지고 싶은 게 많았지만
그저 '아쉬움'의 전화 한 통이었을 뿐
아직 그곳에 남아있을 어르신들은
'내 가족이 아니라 남이니까'
오지랖이 될 수 있고 그런다고 달라지는 게 없기에
그저 거기에서 멈췄을 뿐,
이게 사회적인 문제라는 생각까지는 이어지지 못했다.
용기 있게 이를 사회적인 문제로 인식해
'다른 이의 부모, 그리고 노인'을 위해
발 벗고 나선 작가의 용기가 멋지기도 했고
그런 움직임이 세상을 바꿀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 기대감이 생기기도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런 과정에 있어서
이들을 보살피고 책임져야 할
가족들의 입장뿐 만 아니라
아무리 인지가 떨어지고
이따금 본인을 '분실'하는 사람이라 해도
각 돌봄의 과정에 필요한 선택의 시간에서는
반드시 본인의 의사를 확인해
어떤 돌봄과 처치와 연명치료를 할지
미리 결정하고 준비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
그러한 준비가 조금이나마
죽음에 이르는 길을 편안하게 해준다는 것을
뒤늦게나마 알게 해 주어
언젠가 다가올 부모님의 마지막,
그리고 나의 마지막을 제대로 준비해야겠다는
가르침을 얻을 수도 있었다.
만약 할머니가 치매를 앓기 전
혹은 임종을 맞이하기 전에 이 책을 만났다면
조금 더 할머니를 위한 길을 선택할 수 있지 않았을까
혹은 좀 더 남은 가족들이 덜 힘들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이 든다.
단순히 누군가 한 사람이 죽음에 이르는 과정과
이를 옆에서 지켜보고 겪은
한 가족의 기록을 담은 글을 넘어서
많은 것을 되짚어 생각하게 해주고
울림과 변화의 마음을 일깨워준 독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