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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 오늘의 일본문학 12
아사이 료 지음, 권남희 옮김 / 은행나무 / 2013년 8월
평점 :
품절


 

 

 

  너무 적나라해서, 그동안 애써 외면하고 있었던 것들을 아사이 료가 너무 적나라하게 드러내버린 것 같아서 나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외면하고 있었던 게 무엇이었는지는 소설 뒤표지에도 나와 있었다. 누군가를 비웃어 놓은 SNS, 이중성, 외로움 등등. 들키고 싶지 않은 나의 모습을 소설을 통해 들킨 것 같아서 기분이 묘했다. 뜨끔해서 책을 읽는 내내 마음이 불편했고, 내 마음이 불편했다는 건 아사이 료가 그만큼 현실을 잘 그려냈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래서 ‘옮긴이의 글’에서 옮긴이가 사용한 호러 소설이라는 단어가 내 머릿속에서 계속 맴돌았다. 진심으로 이 이야기는 호러 소설에 가까웠다. SNS에서 안에서 우리는 행복한 척, 즐거운 척, 매사에 열심인 척을 하고 있었지만, 완벽하게 속여내지 못했고, 결국 이렇게 우리 스스로를 관통하는 소설이 나오는 것도 막지 못했다. 우리가 어떤 마음으로 트위터를 하고, 취업한 친구를 바라보는지, 아사이 료가 잘 알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나에겐 호러에 가까웠다.

 

 

  트위터와 취업은 모두 내게 해당되는 이야기여서 소설의 내용이 흥미로웠다. 이십대 초반의 내 또래라면 누구나 재밌게 읽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완벽한 공감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속담이 옛날부터 있었던 걸 보면, 굳이 이십 대가 아니더라도 이 책을 재밌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취업 얘기가 대부분이지만 그 가운데서 인간이 보편적으로 가지고 있는 감정에 대해 우리는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다) 본인은 아직 취업을 하지 못했지만, 가까운 친구나 같이 취업을 준비하던 친구가 먼저 취업에 성공했다면? 우리는 정말 순도 백퍼센트의 마음으로 그 친구를 축하해줄 수 있을까? 진심으로 축하해준다 하더라도, 그 진심에는 부러움과 시기와 질투가 약간 섞여있을 거라고 나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우리는 성인군자가 아니라 그저 평범하게 살아가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타로가 간 총문서원이 평판이 어떤지 알아본 다쿠토나, 미즈키가 입사한 다이니치 통신 에어리직 블랙이라고 찾아본 리카도 나는 이해할 수 있었다. 겨우 그런 걸 알아본다고 해서 고타로와 미즈키의 입사가 취소되는 건 아니지 않는가? 입장을 바꿔서 고타로나 미즈키가 입사를 못하고 있었다면, 다쿠토나 리카가 입사한 곳이 어떤 평판을 가지고 있는지 한 번쯤은 찾아보지 않았을까? 회사의 평판이 좋지 않다거나 그저 그렇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 조금은 고소해하지 않았을까?

 

 

  일본의 이야기였지만, 우리나라에 대입해도 크게 어색하지 않을 것 같았는데, 일단 나부터 해당되는 이야기여서 그런 듯 했다. 일본에는 트위터를 하는 취업준비생이 있었고, 한국도 마찬가지였으며, 그건 저 유럽이나 미국, 캐나다, 중국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어디에나 있기 때문에 지루할 수도 있는 이야기를 아사이 료는 잘 풀어내다 못해, 날카롭고도 정확하게 그려냈다. 거기엔 아사이 료가 89년생이라는 것도 한 몫하고 있을 것이었다. 같이 있으면서도 트위터를 내려놓지 못하는 것, 실시간으로 내가 있는 상황을 SNS에 올리는 것, 누군가 내 글을 리트윗해 주거나 관심글로 지정해 주는 게 기분 좋다는 것, 정말 중요한 이야기는 SNS에 하지 않는다는 것 등등. 트위터의 메커니즘을 잘 알고 있었기에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이야기가 나올 수 있었던 것 같다.

  줄곧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리카는 언제 이런 사진을 찍어서 보정까지 해 트위터에 올린 것일까. -77p.

  리카도 다카요시도 좀 전까지 같은 장소에 있었으면서 굳이 다른 기계로 다른 얘기를 발산하고 있었다. -88p.

  정말로 중요한 이야기는 트위터에도, 페이스북에도, 메일에도, 그 어디에도 쓰지 않는다. 정말로 호소하고 싶은 이야기는 그런 데에 쓰고 답장을 받는다고 만족할 수 있는 게 아니다. -160p.

 

 

  한편으로는 소설을 읽으면서, 아사이 료가 어리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때도 있었다. 자신만의 철학이 확고하다는 느낌을 받을 때, 나는 아사이 료가 인생에서 풍파를 많이 겪은 노인처럼 느껴졌다.

  역시 상상력이 없는 인간은 고역이다. -81p.

  다카요시에게 “진심으로 부탁할게!”하고 손을 모으는 고타로는 역시 피에로가 될 줄 아는 어른이구나, 생각했다. -111p.

  아무것도 아니지만, 앞으로는 이제 스스로 움직이지 않으면 내 이름은 바뀌지 않는구나,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지금의 나인 채로잖아. 앞으로 줄곧. -254p.

 

 

  소설을 다 읽은 뒤에도 여운이 쉽게 가시지 않았다. 이야기가 너무 현실적이고, 디테일해서 나는 한동안 후유증에 시달릴 것 같다. 수많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지만, 속마음을 솔직하게 드러내지 못하고, 계속해서 자신을 꾸미고 지어내는 사람들. 상대에게 질투가 나지만, 아닌 척 하고 있다가 뒤에서 이중성을 보이는 사람들. 외롭지만 더 외롭지 않기 위해 티를 내지 않는 사람들. 취업에 한 번에 성공하지 못하는 보통의 사람들. 이건 내 모습이었고, 다른 사람의 모습이기도 했으며, 실은 그 누구도 아닌 우리 모두의 모습이었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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