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세계 대전을 배경으로 한 이야기들은 많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는 없었다. 총 760페이지의 분량 중 두 주인공이 만나기까지 677페이지가 걸리는 이야기는.
아. 그 10년의 기다림이 나에게도 10년 같았다. 이제나 저제나 너희들은 대체 언제 만날 수 있는거니ㅠㅠ 하며 힘들게 읽은 1권. 아-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있으면 만날 것같아! 하며 비교적 빠른 속도로 읽어나간 2권에서도 368페이지가 되서야 그들은 드.디.어 만나게 된다. 하루도 채 되지않는 단 한 순간의 만남이지만 그들이 만나게 되기까지의 얽힘과 포개지는 이야기들 덕분에, 그 만남이 이루어졌을 때의 애틋함과 독자로서의 기쁨은 매우 컸다.

소설은 1933년, 우리의 여주인공 마리로르가 여섯 살, 시력이 빠르게 악화되어 앞을 볼 수 없게 된 때부터 1945년 2차 대전이 끝날 때까지를 왔다갔다하며 보여주는데, 두 주인공의 이야기가 번갈아서 전개된다. 마리로르, 베르너, 유타, 다시 마리로르, 베르너, 에티엔..의 식이다.
이야기는 짧은 장면의 장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 장의 분량은 짧게는 1쪽, 길게는 9~10쪽 정도. 평균 3장 분량에 상황을 잘 드러내보여주는 소제목이 붙어 있어 읽기에 지루함은 없는 편이다. 다만 소제목이 각 장면을 너무 잘 함축하고 있어서 소제목만 읽어도 그 장의 내용이 짐작가는 부분이 있어 김새는 느낌이기도 했다. (퓰리처상 선정단은 `우아한 구성`이라고 평했는데, 정말로 우아한지는 잘 모르겠다.)

2차 세계 대전의 참혹한 실상과 눈먼 소녀와 고아 소년이라는, 두 주인공의 결코 밝지 않은 삶을 아주 짧은 문장과 단순한 문체로 차갑지도 따뜻하지도 않게 보여주는 것이 이 소설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생각한다. 그 안에 어려움 속에서도 어떻게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해내는 용기와 가해지는 폭력에 순응하지 않는 정의로움, 값어치를 따질 수 없을 정도로 귀한 것에 끌리는 감정으로부터 등을 돌릴 수 있는 강함, 본원적인 상냥함으로 은은한 빛을 발하는 영혼 등 인간 본성을 따뜻한 시선으로 탐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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