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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수용소 이후 - 빅터 프랭클이 남긴 인생 강의
빅터 프랭클 지음, 유영미 옮김 / 북하우스 / 2026년 6월
평점 :
<이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빅터 프랭클의 책, 솔직히 고백하자면 워낙 유명한 필독서라 이름은 수도 없이 들어봤지만 그동안 왠지 손이 안 갔어요. 뭔가 아주 오래된 옛날 책 같고, 내용도 엄청 고리타분하고 무거운 철학 얘기만 잔뜩 있을 것 같은 선입견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부끄럽게도 저는 이번 <죽음의 수용소 이후>를 통해 그분의 글을 처음 접하게 되었습니다.
다 읽고 난 지금 제 심정요? '아... 나 왜 이걸 이제야 읽었지?' 하는 격한 후회와 함께, '와, 그래도 마흔이 되기 전엔 이 책을 읽어서 진짜 다행이다!' 싶더라고요. 과장 하나도 안 보태고 제 인생 책 리스트 1순위가 바뀌는 순간이었습니다.
요즘 제 일상이 딱 '번아웃' 직전이었거든요. 영상 디렉터로 일하면서 매일같이 쏟아지는 새로운 AI 툴들 공부해서 현장에 적용하고, 최근엔 스튜디오 인테리어 한답시고 우드톤 바스툴부터 쉬폰 커튼까지 하나하나 직접 골라가며 정말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살았어요. 그런데 내년에 마흔, 서른아홉이라는 나이 탓일까요? 어느 순간 덜컥 '나 지금 대체 뭘 위해서 이렇게 아등바등 살고 있는 거지?' 하는 지독한 허무함이 밀려왔습니다. 책에서는 이런 제 상태를 콕 집어서 '의미의 위기', 실존적 좌절이라고 부르더라고요.
읽으면서 제 마음을 쾅 하고 울린 첫 번째 문장은 이거였어요.
"모든 사람에게는 저마다의 아우슈비츠가 있습니다."

처음엔 홀로코스트라는 그 끔찍한 역사적 비극에 어떻게 제 일상적인 스트레스를 들이미나 싶었죠. 그런데 프랭클 박사님은 고통의 크기를 절대적인 저울에 올려놓고 비교하지 않으시더라고요. 남들 눈엔 배부른 소리나 사소한 투정처럼 보여도, 당장 내가 감당하기 버겁고 숨이 턱턱 막힌다면 그게 바로 나만의 아우슈비츠라는 거예요. 매번 '남들도 다 저렇게 힘들게 사는데, 내가 유난 떠는 거야'라며 제 감정을 꾹꾹 억누르기 바빴는데, 이 문장을 읽는 순간 묘하게 위로를 받으면서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내 안의 고단함을 텍스트 너머의 지혜로운 할아버지가 토닥여주는 기분이었어요.
인터뷰 내용 중에 사회자가 묻는 대목도 잊히지가 않습니다. 그 지옥 같은 수용소에서 삶의 의미를 잃은 사람들과, 끝까지 살아남은 사람들의 차이가 뭐냐고요.
"어떤 의미를 지향하는 사람들, 즉 미래에 실현될 의미를 향해 나아갔던 사람들이 가장 생존 확률이 높았다는 것입니다."

이 문장을 활자로 마주하는데 마음 밑바닥에서 뜨거운 게 확 올라오더라고요. 사람을 그 극한의 고통 속에서 버티게 만든 건 대단한 체력이나 단순한 운이 아니었어요. 앞으로 다가올 미래에 내가 꼭 이루어야만 하는 그 '어떤 것'에 대한 간절함이었습니다. 저 역시 일하다 보면 통제할 수 없는 변수들 때문에 다 엎어버리고 싶고 좌절할 때가 많은데, 내가 피워내고 싶은 미래의 의미만 뚜렷하다면 어떤 시기도 묵묵히 버텨낼 수 있겠다는 묵직한 용기를 얻었습니다.
그리고 제 삶의 태도를 완전히 뒤집어버린 마지막 한 방울은 이거였어요.
"죽음이 없다면 삶이 어떻게 될지 한번 상상해보세요. 유한성의 압박하에서만, 인간 존재의 시간적 유한성 앞에서만 비로소 행동하는 것이 의미를 지닌다."

우리는 가끔 천년만년 살 것처럼 오늘 하루를 무의미하게 흘려보내잖아요. 저한테 주어진 시간이 유한하다는 그 당연한 사실이, 역설적으로 지금 이 순간의 피곤한 업무와 짜증 났던 일상적인 선택들에 '진짜 의미'를 불어넣어 주더라고요. 삶이 유한하기 때문에 지금 이 순간이 뼈저리게 소중한 거고, 바꿀 수 없는 상황 속에서도 '내 태도'만큼은 내가 결정할 수 있다는 그 자유가 얼마나 큰 무기인지 깨달았습니다. 당장 쏟아지는 촬영 스케줄에 한숨부터 났을 하루도 그저 흘려보낼 수 없는 기회로 다가왔으니까요.
이 책은 절대 고리타분하거나 어려운 철학 책이 아니에요. 산전수전 다 겪은, 너무나 따뜻하고 다정한 할아버지가 제 옆에 앉아 인생 이야기를 조곤조곤 들려주는 느낌입니다.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일상 속에서 문득 길을 잃은 것 같을 때, 혹은 이유 없이 마음이 텅 빈 것처럼 공허할 때 가만히 꺼내 읽어보세요. 내 안의 아우슈비츠를 견뎌내고 내일을 살아갈 단단한 힘을 분명 얻으실 수 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