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파이퍼의 초자연적 성경 읽기 - 하나님을 경험하는 말씀 읽기
존 파이퍼 지음, 홍종락 옮김 / 두란노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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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파이퍼는 톰 라이트와 <칭의논쟁>을 펼치면서 우리에게 익숙해진 이름이다. 존 파이퍼는 미국 칼빈주의 계열 침례교 목사이고, 미네아폴리스에 위치한 베들레헴 교회 목사이다. 많은 저술과 강연을 활발하게 펼치고 있다. 최근에 한국을 방문해서 많은 활동을 갖기도 했다. 존 파이퍼의 Reading the Bible Supernaturality(2017)을 신속하게 두란노에서 번역했다. 이제 한국 교회 의식과 지식 수준이 성장해서, 해외 연구자들의 저술을 거의 동시에 번역하는 수준에 이른 것 같다. 그런 점에서 존 파이퍼의 <성경 읽기> 번역 출판이 기쁘기도 하다.

 

파이퍼는 성경 읽는 방법을 상당히 방대하게 소개하고 있다. 그 총체는 ‘Supernaturality’(초자연적)이다. 필자는 이성적(Rationalism, 합리주의)으로 성경을 읽는 것을 거부한 Supernaturality로 이해했다.

 

모두 3 부분으로 구분했고, 27장으로 구성했다. 1부는 “성경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2부는 “초자연적 읽기, 믿음의 기적을 만든다”, 3부는 “자연적 행위로 이루어지는 초자연적 성경 읽기”이다.

 

파이퍼는 성경 읽기에 목적(예배 지향)을 제시하며, 성경 읽는 과정과 유익을 제시한다. 그리스도의 비밀, 구약의 영광 등을 알아가며, 다양한 영적 유익, 영혼과 삶의 변화를 기대하도록 제시하고 있다.

 

파이퍼는 성경을 읽을 때 실패한 유형으로 바리새적인 것을 제시하고, 믿음의 기적을 이루는 방안을 제시한다. 성경을 읽어서 모두 유익을 얻을 수 없다. 파이퍼가 제시하는 영적 유익을 얻는 방안을 명료하게 알 수 있다.

 

파이퍼는 자연적 행위로 초자연적 성경 읽기가 된다고 제시한다. 역발상(逆發想)이다. 성령이 일하심은 초자연적 성경 읽기이다. 그러나 파이퍼가 말하는 자연은 인간에게 있는 성품, 겸손, 기도, 훈련, 텍스트 해독 능력 등이다. 상당히 당연한 것처럼 생각될 수 있지만, 성경 해석하는 사람에게 필요한 덕목들이다. “훈련은 반복이고, 반복하면 익숙해지고, 익숙하면 자기 몸 일부가 된다”(고경태).

 

파이퍼가 제시하는 성경 읽기는 단순한 것처럼 보이지만, 오랜 사역자가 연구와 사역에서 정리한 매뉴얼이다. 그 자체에 큰 가치가 있고, 그 체득한 지식을 탐구한다면 성도의 교제의 유익까지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이신칭의 교리를 사모하는 성도에게 파이퍼는 큰 위로를 주는 목사이다. 선명하게 성경을 연구하려는 성도에게 파이퍼의 제안은 좋은 길잡이가 될 것이다.

 

파이퍼는 성경 연구를 위한 제안으로 부록에서 www.Biblearc.com을 소개했다. 누구나 그 사이트에 들어가서 성경 본문을 연구하는 과정을 관찰하고 게시할 수 있다. 파이퍼의 성경 연구 과정을 엿볼 수 있고, 많은 성경의 제자들의 성경 연구 훈련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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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의, 루터에게 묻다
김용주 지음 / 좋은씨앗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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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의, 루터에게 묻다/김용주/좋은 씨앗/고경태 편집위원

2017년, 종교개혁 1517년 500주년이다. 한국의 대표적인 루터 연구 전문가인 김용주 박사(분당두레교회 목사, 백석대 겸임교수)가, 종교개혁 500주년을 기념해서 <칭의, 루터에게 묻다>를 집필했다.

 

김용주 박사는 독일 훔불트 대학에서 자기 확신을 학으로 증명해서 학위(제목: 십자가만이 우리의 신학이다, 2008년)를 취득한 집념의 학자이다. 한국 교회에 칭의 이해가 혼돈을 일으키고 있는 상황에서, 현재 논란에서 해결점을 찾으려 하지 않고, 칭의의 원천인 루터에서 이해하는 것을 시도했다. 저자는 루터에 대해서 연구할 때 “역사적-발생학적 연구”을 사용한다고 했다. 즉 현재 칭의 이해가 ‘법정적 칭의’ 등 용어 이해로 논란을 일으키는 현상에서, 루터의 생애와 루터가 저술한 문서를 기본으로 본래 루터가 주장하는 칭의 이해를 밝히는 것이다.

 

김 박사는 루터가 직접 ‘칭의란 무엇인가?’에 대해 논문을 집필하지 않았기 때문에, 루터의 칭의 이해에 다양한 이해가 있을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루터의 일생과 저술에서 칭의 이해가 수 없이 등장하기 때문에, 루터에게 칭의의 중요성을 의심할 수 없는 주제라고 했다. 그렇다면 루터의 칭의 이해는 무엇일까? 저자는 루터 전기를 통해서 삶의 정황을 탐구하며 제시한다. 그래서 루터가 제시하는 칭의 이해가 얼마나 삶에 밀착된 개념이고 신학적으로 탄탄인지를 제시하고 있다. 저자는 1517년의 루터의 칭의 이해 상황과 1545년의 칭의 이해 상황을 보여준다.

 

저자가 제시하는 루터의 특징적인 언어들이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교회의 서고 넘어짐의 조항”, “생소한 의”, “의인이면서 죄인” 등 루터가 제시한 개념인데, 그러한 개념들이 체험적이고 학문적임을 제시한다. 그래서 루터의 인간미와 학문의 원숙미를 느낄 수 있다.

 

루터가 법학도의 길에서 갈등하는 것 등은 저자의 <루터 혼돈의 숲에서 길을 찾다>(익투스, 2013)에서 실존적인 갈등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칭의, 루터에게 묻다>에서는 루터의 실존에 대한 부분이 살짝 제시하고, 바로 ‘칭의 이해’에 대해서 전개한다. 루터의 학문 진보와 함께 칭의 이해 진보를 제시한다. 그래서 독자들이 루터의 칭의를 단순하게 생각하지 않도록 부드럽게 주장한다.

 

저자는 루터가 칭의 이해를 완성했다고 제시했다. 저자는 1545년에 칭의가 완성된 개념이라고 정의하고, 트렌트(트리엔트) 종교 회의가 1545년에 시작함으로 제시해서 ‘발생학적 연관성’을 제시한다. 종교개혁과 트렌트 종교 회의를 살피는 것은 바른 믿음을 추구하는 신자에게 큰 도전을 줄 것이다.

 

저자는 현대 칭의 이해에서 새관점에 대해서 비판한다. 라이트가 루터의 저서를 독서하지 않고 독단적으로 비판한 것을 밝힌 것은 매우 값진 소개다. 루터가 칭의 이해를 세우는 과정은 평생 과정이었다. 칭의는 단순한 개념이 아니라, 루터의 일생이다. 그런 루터의 칭의 이해를 연구하지도 않고 거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라이트를 비평하려는 학도로써 매우 큰 정보라고 생각한다.

 

다만 <칭의, 루터에게 묻다>에서 루터의 칭의 이해가 전부인 것처럼 느껴지는 것에 아쉬움을 표한다. 루터파의 신학을 체계화한 멜랑톤을 제시하지만, 칼빈의 이해에 대한 소개가 없다. 두 마리의 토끼를 잡을 수는 없지만, 트렌트 종교 회의나 새관점(현대 칭의 이해)에서 칼빈의 위치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저자의 부드러운 온화한 필체는 독자들이 루터의 믿음의 진보를 잔잔하게 느낄 수 있도록 인도한다. 격정적인 루터의 생과 신학을 부드러운 필체로 표현해서 멋진 교향곡과 같은 저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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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의 인류학 - 미메시스 이론과 르네 지라르
정일권 지음 / 대장간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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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의 인류학/정일권/대장간/고경태 편집위원

‘십자가’는 기독교 핵심 가치인데, 십자가에 ‘인류학’이 첨가된 저술, <십자가의 인류학>다. 기독교 이해를 탐구한 것이 아니라, 문화인류학자 르네 지라르가 어떻게 이해했는지, 그리고 그 영향력이 얼마나 큰지를 보여주는 유익한 저술이다.

 

문화인류학자 르네 지라느가 ‘십자가’를 인류 근원 매카니즘을 밝히며, 기독교의 독특한 십자가 사상을 제시했다. 그의 영향력이 얼마나 큰지 신학자들이 그의 사상과 연계해서 자기 사상을 구축했다. 정일권은 그 과정을 모두 제시하려고 노력했다. 그래서 르네 지라르가 기독교 신학계에 얼마나 큰 영향력을 발휘했는지를 증명하려는 의도라고 생각했다. 정일권은 지라르의 십자가 제시가 문화 코드이지만, 포스트모던 사회(종교다원주의)에 대항하는 좋은 사고 체계로 제안하고 있다.

 

정일권은 르네 지라르가 하이데거, 니체, 데리다가 주도하는 해체주의 현대 철학에 정면으로 대립한 사고 체계를 확립했다고 제시했다. 지라르에 유명한 기독교 신학자들은 모두 그에 관해서 글을 썼다. 필립 얀시, 앨리스터 맥그래스, 본 발타자, 부르스마, 후드 등 수 많은 학자들의 이름이 등장한다. 독자는 수 많은 저자 이름 숲에서 길을 잃을 수도 있다. 그 때 길을 잃음에 놀라지 말고, 숲의 웅장함에 경탄하면 된다. 책을 덮으면 다시 현실로 돌아온다. 지라르와 연계해서 수 많은 연구자들이 학문을 펼쳤다. 정일권은 지라르의 사상의 영향으로 로마 교회 신학자 칼 라아너가 종교다원주의 색체를 약화시켰다고 제시했다. 르네 지라르가 갖는 위력을 단편적으로 알 수 있는 부분이다.

 

그런데 지라르와 바르트의 연결 부분에서 유사성을 언급하는 연구물들을 소개했다. 본 발타자, 토렌스의 협력 연구 등을 통해서 바르트와 지라르를 사상의 연속성으로 밝히려는 것을 제시했다. 필자는 바르트가 종교다원주의를 개방한 위대한(?) 신학자라고 생각하는데, 종교다원주의를 반대하는 지라르와 유사성을 개진하는 연구에 대해서 의문을 가졌다.

 

<십자가의 인류학>은 독자가 접하기 쉽지 않은 도서이다. 그럼에도 서평으로 독자에게 독서를 권하는 것은 ‘순수 학문의 위대성’이 있기 때문이다. 신학자는 아니지만 기독교 신학자들의 심장을 울린 순수 학문의 위용이 지라르에게 있고, 그 위용은 한국 청년 신학도의 방향을 바꾸기까지 했다. 르네 지라르를 보면서 ‘순수 학문’이 가능함을 보여준 실례라고 추천하고 싶다. 순수 학문은 1급 학문이다. 1급 학문을 하는 사람은 절대로 무신론자가 될 수 없다.

 

<십자가의 인류학>의 독서의 난점은 많은 신학자들의 이름과 함께 등장하는 생소한 용어들이다. 저자가 사용하는 독특한 용어는 ‘초석’, ‘환대’라고 보았다. 르네 지라르의 용어는 ‘미메시스 이론’이다. 지라르의 다양한 사상이 있지만 <십자가의 인류학>에서는 미메시스를 근거로 희생양, 폭력, 인신공양 등이 등장한다. ‘미메시스’를 우리말로 번역하면 ‘모방이론’이고, ‘욕망의 삼각형’이라고 구도화시킨다. 이런 독특한 용어들을 체킹하면서 독서 노트를 만들어 용어들을 체득한다면 관점이 확장되며 놀라운 지식 향상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필자는 현대 신학자들이 주장하는 ‘형벌적 대속 이론’에 대해서 많은 의심을 가졌다. 그런데 지라르가 현대 신학자들이 주장하는 대속적 죽음을 ‘희생양’ 구도로 제안하며 거부했다. 좋은 재료라고 생각했다. 지라느는 십자가가 만족이나 대체가 아닌, 인간의 폭력성을 폭로하는 평화라는 것이다. 희생양, 대속 제물 구도는 요 11:46-53에서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어서 온 민족이 망하지 않게 되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한 줄을 생각하지 아니하는도다”(50절)라는 대제사장 가야바의 발언이다. 신학자들이 그리스도의 죽음을 ‘대속적 죽음’이라고 할 때, ‘희생양적 죽음’인지를 분별하면 된다. 희생양은 Scapegoat로 아사셀(Azazel, scapegoat, 레 16장)이다. 필자는 ‘아사셀의 열쇠’라고 말하고 싶다.

 

<십자가의 인류학>을 보면서 마지막으로 느낀 점은 우리나라에도 기원탐구가 활발하게 전개될 수 있기를 기대했다. 수메르 문명 등 인류문화를 탐구하며, 우리 고대사도 활발하게 탐구하는 결과물이 속출될 수 있기를 기대했다. 순수 학문이 활발하게 전개될 수 있는 것은 독자들이 순수 학문에 관련한 책을 구입해 주는 것이 현실적이다. 국가적으로 조직적으로 지원하는 구조가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기원문화를 탐구하면 풍성한 상상력과 문화코드 등을 이룰 수 있는 귀한 자산이 된다. 순수 학문에 관련된 도서들이 독자들의 서가에 가득하기를 기대한다.

 

정일권의 두 권의 책을 서평하면서, 김모세의 <르네 지르라>(살림, 2008)라는 도서를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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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서 탐구
버나드 W. 앤더슨 지음, 김성천 옮김 / 기독교문서선교회(CLC)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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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서 탐구/버나드 앤더슨/김성천/CLC/고경태 편집위원

CLC에서 김성천이 번역한 버나드 W. 앤더슨(Bernhard W. Anderson, 1916-2007)의 <구약성서 탐구>(2017년) Understanding the Old Testament(1998)는 제5 개정판이다. 앤더슨은 1945년 예일대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뒤, 콜케이트, 프린스턴에서 구약을 가르쳤다. <구약성서 이해>는 1957년에 제1판이 출판했을 때 구약신학계에 하나의 고전이 되었다. 앤더슨는 연구가 확장되고, 구약신학계의 연구 결과들이 발표되는 것을 취합해서 1966년에 제2 개정판. 1975년에 제3 개정판을 냈고. 1986년에 제4 개정판을 출판했다. 제4 개정판은 강성열, 노창규가 <구약성서 이해>로 크리스찬다이제스트에서 번역 출판했다(1994년).

 

우리는 새로운 버전을 유일한 책으로 생각하지만, 학자가 자기 학문의 진보를 보여주는 것은 후학에게 큰 유익을 준다. 학도가 앤더슨의 초판에서 5개정판까지 변화를 탐구하는 것은 학문 도야에 큰 유익이다. 우리에게 개정판에 대한 이해가 좀 생소하다. 좋은 학자들은 출판한 뒤에도 연구를 계속하며, 학문 증진을 개정판으로 독자와 공유한다. 독자는 학자의 학문 변화를 파악하면서 학문 방법과 진보된 재료들을 탐구할 수 있다.

 

앤더슨의 다른 작품인 <구약 신학> Contours of Old Testament Theology(1999)은 최종진에 의해서 한들출판사에서 번역 출판했다(2001년). 앤더슨의 저술은 구약 연구를 집대성한 것이다. 구약 신학계가 현재 진행하는 것을 이해하는 중요한 저술이다. <구약 신학>은 구약 신학에 대한 것이고, <구약성서 탐구>는 이스라엘 역사에 관한 것이다. 구약을 공부하는 학도에게는 필독서이다. 구약성경을 이해하려는 독자에게 <구약성서 탐구>는 좋은 근거를 제공한다. 노희원이 번역한 <시편의 깊은 세계>(1997년, 기독교서회)도 있다.

 

필자는 <구약성서 탐구>를 ‘진행형 모듈’에서 ‘완성된 모듈(Module)’로 제시한다. ‘진행형 모듈’을 익히는 것도 유익하다. 그러나 완성된 모듈을 파악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앤더슨은 1998년에 5 개정판을 출판 뒤에 2007년에 별세했다. 신학자는 죽음 직전까지 학문은 진행형이다. 앤더슨이 마지막까지 펜을 놓지 않은 일생 동안 구축한 모듈이 <구약성서 탐구>이다. 구약성서를 이해하는 완전한 모듈은 아니지만, 앤더슨에게는 완전한 모듈이다. 한 학자의 모듈을 이해하는 것은 독자 자기 모듈을 만들 수 있는 중요한 방법이다. 학자는 자기를 답습해서 자기 학문을 계승하기를 바라지 않는다. 자기를 잘 답습해서 독자 자기의 모듈을 만들도록 유도한다. 그리고 여러 모듈이 잘 작동하는 학문 교류 연합체가 세워지면 멋진 학풍을 이룰 것이다. 모듈과 모듈이 서로 작동하지 않아도, 작동되지 않는 모듈 자체를 이해하는 것도 매우 즐거운 일이다. 자기 모듈의 오류를 수정할 수 있는 작동원리(매카니즘)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앤더스는 구약성서를 이해할 때, 출애굽에서 시작해서 말라기(역대기)를 지나 묵시문학까지 구성시켰다. 헬레니즘 시대에 팔레스타인은 구약과 신약의 중간 지대이다. 구약성서에서 거기까지 제시했다. 앤더스는 구약정경목록에 대한 이해를 제시해서 포괄적인 구약성서 이해를 추구했다. 출애굽에서 시작한(1장, 2장, 3장, 4장) 것은 ‘히브리의 실재 역사’를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이해했다. 앤더슨은 구약성서를 역사와 이야기의 복합 형태로 제시했다.

 

앤더스의 <구약성서 탐구>에서는 다양한 그림 자료를 제공한다. 고고학 발굴 자료 등이 사진으로 제시했다. 구약 탐구에 관련된 모든 근거 사진 자료로 제시했다고 생각할 정도이다. CLC에서는 사진을 잘 인쇄해서 매우 편하게 확인할 수 있다. 구약에 관련한 모든 고고학 사진이 수록되어 있는 것 같다. 책 뒤편에 별면 사진은 칼라로 제공했다. 다만 지도를 옮길 때 영어 지명을 번역하지 않고 그대로 표기한 것은 아쉬움이다.

 

앤더슨의 <구약성서 탐구>를 번역한 김성천은 구약신학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며 번역하는 구약전공 학도이다. 번역했다는 느낌이 들지 않을 정도로 부드럽게 내용을 진행시킨다. 다만 ‘B.C.E’를 ‘기원전’으로 번역했는데, ‘B.C.E’(C.E)를 보여주어 학계의 표기 변화를 알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좋았을 것이다.

 

CLC는 앤더스의 <구약성서 탐구>를 매우 귀하게 제작했다. ‘크라운판 양장’으로 제작한 것이다. 크라운판은 신국판에 비해서 훨씬 무겁다. 책의 무게도 무겁고 저자의 사상도 무겁다. 크라운판 저술은 모두 오래 동안 보관할 지식이다. 크라운판, 판형을 보면서도 저술의 무게를 가늠할 수 있다. CLC가 매우 의욕적으로 출판한 것으로 생각한다.

 

앤더슨의 마지막 작품 제5 개정판 <구약성서 탐구>를 읽어보자. 구약 전체를 보는 한 시대의 탁월한 신학자의 관점을 보는 것은 즐거움이다. 그리고 나의 신학 좌표를 굳게 세우는 도움의 도서로 활용하자. 


cl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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톰 라이트의 칭의론을 비판한다
임원주 지음 / 가나다출판사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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톰 라이트의 칭의론을 비판한다/임원주/가나다/고경태 편집위원

세계 교회에서 톰 라이트 신학은 대세이다. 반면 한국 신학계에서 발표되는 석, 박사연구 논문 대부분은 비평 일색이다. 그런데 왜 한국 교회 지성적 그리스도인들은 새관점에 열광하고 있는가? 이해하기 쉽지 않는 부분이다.

그에 대한 필자 견해는 첫째, 비평자들이 새관점에 대해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둘째, 자신이 비평하는 대상에 대해서 확실하게 밀어붙이지 못하고 머뭇거리기 때문이다. 셋째, 새관점은 샌더스, 던, 라이트로 크게 이어지는데, 셋을 차이를 알지 못하고 있다. 필자는 신약 학계가 새관점과 김세윤 신학(독일계열)의 차이점을 제시해 주길 기대하고 있지만, 그 차이에 대해서도 소개가 거의 없다. 라이트는 새관점을 하나로 묶어 비판하는 것에 대해서 매우 냉소적으로 비판한다. 새관점 진영에서 차이가 상당하기 때문이다. 라이트는 <칭의를 말하다>에서 던(Dunn)을 자기 경쟁자와 동료로 소개한다. 그런데 새관점을 연구하는 연구자들이 그 차이를 명료하게 제시하지 않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임원주 목사는 <톰 라이트의 칭의론을 비판하다>에서 라이트에 대한 비판에 대한 명확한 의식과 머뭇거리지 않고 밀어붙이는 일관성을 갖고 있다. 임 목사는 간단한 채팅에서 냉철하게 서평을 요구했고, 가나다 출판사 대표도 냉철한 서평을 요구했다. 참 흥미로운 과정이다. 그래서 좀 더 자세히 읽어야 했다.

 

가나다 출판사 대표(이름을 기억하지 못함)와 우연하게 통화를 하면서, 가나다 출판사도 알았다. 소신 있는 기독교 출판사가 있다는 것은 큰 위로와 희망이다. ‘그책의사람들(그책사)’의 운영 악화에 대한 소식을 들었을 때 안타까움이 컸다. 출판사도 대형기획과 함께 자기사상을 갖고 있는 전문 출판사도 많이 필요하다. ‘가나다’라는 기독교 출판사도 기억해주고 출판한 책들을 많이 애독해주길 기대한다.

 

임원주의 <톰 라이트의 칭의론을 비판한다> 표지에 “톰 라이트의 칭의론은 존 파이퍼의 칭의론을 극복하지 못했다. 실패했다”는 문장이 있다. 임 목사가 이 책을 통해서 증명하고 싶은 핵심 문장이다. 서평자는 이 책을 읽으면서 톰 라이트의 오류를 지적하는 것이 아니라, 존 파이퍼의 옮을 인정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제목을 “라이트와 대결에서 완전히 승리한 파이퍼” 이런 제목이이 더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톰 라이트의 칭의론을 비판한다>는 톰 라이트의 <칭의를 말하다>에 대한 비평인데, 19개 주제로 구성했다. 독자가 매우 간략하게 볼 수 있는데, <칭의를 말하다>의 전반부만 취급했다. 서평자는 19개 주제를 3개로 크게 분류할 것을 제안해 본다. “1부(1-7장) 라이트의 주장: 허구에서 독단으로, 2부(8-14장) 하나님의 의: 라이트와 파이퍼의 격돌, 3부(15-19장) 언약적 율법주의와 개혁주의 구원론”으로 제안한다.

 

<톰 라이트의 칭의론을 비판한다>에서 아쉬운 점은(칭찬만 하고 싶지만, 저자의 특별한 부탁으로 생각하고) 파이퍼를 등에 업고 너무 단순하게 라이트를 비판한다는 인상이다. 라이트는 시대에 최고 사상가이다. 연구자가 저술을 발표하면, 제한적인 저술에서 비판받을 수 있다. 그럼에도 시대의 거장에 대한 비평을 할 때 거장의 거대 프레임에 대한 깊은 성찰이 필요하다. 파이퍼와 라이트의 격돌은 마치 바르트와 반틸의 격돌과 유사하다. 라이트는 파이퍼의 주장에 대해서 세밀하게 다루지 않겠다고 선언했다(칭의를 말하다, 12쪽). 라이트는 파이퍼를 무시하고 자기주장을 제시했다. 그런 상황에서 파이퍼의 <칭의논쟁>에서 라이트와 연결점을 찾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다. 임원주 목사는 파이퍼와 라이트를 긴밀하게 대조하는 방식으로 전개했는데, 라이트의 주장과 파이퍼의 논쟁에서 교점이 쉽지 않아야 한다. 그런 상황에서 저자는 두 사람을 긴밀하게 대조시켰다.

 

임원주 목사는 박영돈 교수의 <톰 라이트 칭의론 다시 읽기>(2016년)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긍정했다. 서평자는 박영돈 교수의 책을 정독하지 않은 상태이지만, 라이트의 저술 번역 출판에 적극적인 IVP에서 라이트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를 출판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추측이 있다. 그럼에도 박영돈 교수에 연구에 대해 적극적으로 옹호한 것에 대해서 약간 의문이 있다. 박영돈 교수의 저술에 대한 추천자 중, 권연경 교수의 추천사가 상당히 타당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최갑종 교수는 라이트의 견해와 다른 주장을 하는 대표적인 학자이기도 하다. 그러나 전통적인 이신칭의 견해를 수정할 것에는 라이트와 동일한 견지이다. 학문이 무엇일까? 세속 영역에서 가장 신성해야 할 영역은 학문 영역이다. 기독교 학문에서 학자의 양심은 무엇일까? 기독교 학문에서 학자 양심의 소리를 기대한다.

 

라이트 비평 도서는 이승구 교수가 처음 <톰 라이트에 대한 개혁신학적 반응>(2013년)을 출판했다. 그러나 모든 비평자들이 새관점 내부의 세 학자의 견해에 대해서 세밀하게 구분하면서 비평하지 않고 있다. 그리고 라이트 본연의 주장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럼에도 임원주 목사의 글이 귀한 것은 한국 교회에서 가장 단호한 라이트 비평 도서라는 것이다. 임원주 목사의 주장을 읽으면 라이트의 견해는 분명하게 파이퍼와 대조되는 것이며, 종교개혁의 이신칭의와 대치되는 것이 너무 명료하게 드러난다. 박영돈 교수와 이승구 교수의 비평에서는 중간적 입장이 강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책을 읽으면 새관점에 대한 자세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것이다. 그러나 임원주 목사의 글을 읽으면 반드시 라이트를 찬성하든지 반대하든지 한 쪽 편에 설 수 있게 도움을 준다. 임원주 목사는 파이퍼의 견해를 따르면서 라이트와 반대됨을 명료하게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임원주 목사의 글을 시작으로 2번 타자로 라이트의 <칭의를 말하다>를 독서 비평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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