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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연학교 ㅣ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55
박현숙 지음 / 자음과모음 / 2016년 5월
평점 :
한때 푹 빠졌던 인터넷 소설(이하 인소)이 생각났다. 인소의 단골소재는 일진인 경우가 많았는데, 대부분의 일진은 짧게 줄인 교복을 입었으며 걸쭉한 욕설을 구사하고 싸움질을 일삼는 동시에 술과 담배를 밥 먹듯이 했다. ‘뭉게뭉게 피어 오르는 담배 연기 사이로 보이는 상처 입은 야수 같은 깊은 눈’ 따위의 묘사가 기억난다. 활자로 접했을 땐 소녀의 감성을 자극하여 설레게 하는 묘사였다. 뭔가 있어 보이는 것이다. 그런데 화장실 맨 뒤 칸에 시커먼 연기를 내뿜으며 흡연하는 애들을 보았을 때, 인소를 보며 느꼈던 설렘은 없었다. 그저 냄새가 참 구리다는 생각만 들었던 것 같다. 어쩜 이리 이상과 현실은 다른지. 책 속의 준영이처럼 담배로 건강이 악화된 애도 있었다. 그 애는 결국 학교를 몇 달 쉬었던 것 같다.
이 책에 나오는 성돈이는 평범한 중학교 3학년생으로, 특이한 점을 꼽자면 흡연 중독자라는 점이다. 중학생이 담배를 사기란 여간 쉬운 일은 아니고, 담배 생각은 나날이 간절해져만 간다. 참으로 지독하게 간절했는지, 놀이터에 쓰러진 사람의 담배를 훔친 성돈이는 ‘암만동 놀이터 살인사건’에 연루되어 버리고, 그 동안 숨겨온 흡연 사실도 가정과 학교에 들통나버린다. 고생은 고생대로 하면서 본의 아니게 학교의 금연 캠페인을 도맡게 되기도 하고, 담임 선생님과 금연 학교에 끌려가기도 한다. 그 모든 일련의 과정들이 매끄럽고 유쾌하게 전개되어 읽는 내내 지루하지 않았다.
공감 가는 이야기들이 참 많았다. 성돈이와 금연 캠페인을 하게 된 담임 선생님은 학교 아이들에겐 금연을 강조하면서 정작 아무도 없을 땐 담배를 폈다. 어른들은 참 이상해. 우리들에겐 하지 말라면서 어른들은 하잖아. 10대때 내가 종종 했던 생각이 책에 그대로 있어서 많이 놀랐다. 내 경우엔 파마랑 화장을 하지 말라는 선생님들이 이해가 안 갔다. 화장이 피부를 썩게 한다고? 그런데 어째서 선생님들은 하는 건데? 어른들은 하지 말라는 게 너무 많아! 같은 별의별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다. 말로는 안 좋다면서 화장을 하고 담배를 피는 어른들을 보면, 어른들도 하는데 나도 좀 하면 어때 같은 생각이 들어버렸기에.
오맑음 강사가 들려준 에피소드(p. 136)도 인상 깊었다. 남자 친구를 따라 담배를 피기 시작했다가, 입에서 냄새가 난다는 이유로 남자친구에게 차였다는 그녀의 이야기는 유쾌하면서도 담배의 심각성을 효과적으로 전달해주었다고 생각한다. 이가 누래지는 건 당연지사, 피부도 거칠어지고, 입과 몸에서 냄새가 나고, 머리도 나빠지고, 목구멍과 폐가 나빠져 가래침과 구토를 달고 살아야 하고. 참 나쁠 것밖에 없는 담배인데, 왜 사람들은 담배를 주구장창 피려고 하는지 모르겠다. 우리 아빠 말로는 스트레스가 쌓인 날에 담배를 피면 살 것 같다고 하는데, 자식된 도리로 너무 걱정스럽기만 하다
‘그래요, 선생님도 이참에 담배 확실히 끊고 건강해져서 꿈을 이루세요. 오십 살이 넘은 것은 문제가 되지 않을 것 같아요. ‘내일 지구의 종말이 와도 나는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라는 말도 있잖아요. (p.250)’
자기 자신을 사랑했다면, 자신의 건강에 무감하지 않았을 텐데. 자신을 사랑한다는 건 자신이 존재하는 순간을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이고, 순간을 사랑한다는 건 하루를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하루를 사랑한다는 건 자신의 삶을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이라 생각한다. 어서 와, 금연 학교는 처음이지? 이게 뭐라고, 나는 이 말이 너무 웃겼다. 금연 학교지만 금연만 가르쳐주진 않을 거란다? 라며 의미심장하게 웃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금연보다 더 귀한 주제와 감동을 얻었다. 이 책을 20년간 담배를 피우신 아버지께 권해드리고 싶다….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