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크릿 박스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51
김혜정 지음 / 자음과모음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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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 같은 데서 종종 청소년들의 창업 소식을 접한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여고생 몇 명이 패션 쇼핑몰을 운영한다는 소식이었다.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면서, 애들끼리 잘 할 수 있을는지, 조금 염려되었다. 지금 그 쇼핑몰 사이트는 업데이트를 한 지 오래됐다. 망했다는 의미이다. 여고생CEO들은 쇼핑몰을 운영했던 경험이 하나의 스펙이 되어 현재는 좋은 직장, 좋은 대학을 다니고 있다고 한다. 결국은 성공의 기준에 크게 미치지 못한 쇼핑몰이었으나, 학생들이 스스로 무언가를 독립적으로 시도했다는 것 자체로 매우 의미 있는 쇼핑몰 사업이었다고 생각한다.

 시크릿 박스란 비밀스런 선물 상자로서 여울을 중심으로 다솜, 유준, 지후라는 고등학생들이 벌인 사업이라 할 수 있다. 이는 여울과 다솜, 유준이 다니고 있는 유한 비즈니스 고등학교에서 유비고 창업 경진 대회에 참여하기 위해서였다. 1등 상급이 100만원인데다 동아리 과제 점수에도 들어간다고 하니, 세 아이들과 더불어 다른 인문계 고교에 다니는 지후까지 합심하여 창업을 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기 시작한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여울의 어머니의 화장품 가게가 문을 닫게 된 덕분에 창업에 필요한 물품들(화장품 재고들)은 어느 정도 준비된 상태였다. 그렇게 순조롭게 시작된 시크릿 박스는 첫 시작부터 기대했던 것과는 전혀 다르게 매우 큰 수확을 얻게 된다. 대회를 위해서 시작한 사업이었으나, 준비하고 성취하는 과정에서 아이들의 막연했던 기대는 점차 확실한 목표가 되어 갔다. 이제는 본격적으로 시크릿 박스 사업을 펼치는 아이들이었다. 그렇게 많은 우여곡절 속에서 열심히 단합하여 시크릿 박스 3월호부터 12월호까지 총 10개의 시크릿 박스를 만들어냈다.

 꿈이 생기고 목적이 있고 계획을 세우게 되니, 그 동안 무심코 지나쳤던 것들이 하나 둘씩 눈에 들어와 하나의 소재가 되어간다. 시크릿 박스를 어떤 식으로 홍보하면 좋을까 고민했던 여울이 다른 제품의 광고들을 유심히 살펴보며 답을 찾으려 했던 것처럼. 왜 이 광고는 이렇게 구성되었는지, 어떻게 하면 자기 사업에 적용할 수 있을지 생각해보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열심히 쌓아 올린 시크릿 박스의 인기와 수익금은 한 순간의 부주의로 무너지게 된다. 결국엔 1년동안의 노력이 원점으로 돌아온 상황인 것이다.

 얼핏 1년 전과 같은 상황처럼 보이지만 분명히 다르다. 원점으로 다시 돌아왔고, 설사 제자리 걸음을 했더라도 그 시간 동안 아이들의 다리 근육은 튼튼하게 변했을 거다.’

 비록 수익금은 전부 날렸지만, 아이들은 사람을 대하는 방법을 알게 됐다. 어떻게 하면 사람들의 마음을 끌 수 있는지 마켓팅을 하는 과정에서 배운 것이다. 그리고 서먹했던 친구에게 진심을 전하는 용기를 갖게 됐다. 그리고 그것을 이해하고 공감하고 용서하는 방법을 알았고, 또 진정한 반성에 대해 깨닫게 됐다. 대필이 아닌 스스로의 반성이 담긴 진짜 반성문의 가치를 알게 된 것이다. 마지막으로는 타인의 눈치에서 벗어나 자신을 위한 선택을 하는 방법을 알았다. 타인의 의견에 휩쓸리는 것이 아닌, 자신의 주관을 갖고 임하는 자세를 말이다.

 일을 벌이기에 앞서 나는 늘 성공할 가능성이 있는지 재며 에이, 설마. 나 같은 게 어떻게 이런 일을 할 수 있겠어.’라는 말을 습관처럼 입에 달고 살았다. 지금 생각해보니 참 어리석은 태도가 아닌가. 무슨 미래를 보는 예언가도 아니면서, 바로 10분 뒤의 미래도 모르는 주제에 그리 쉽게 포기할 수 있었던 건지. 만약 여울이 실패를 두려워하는 아이였다면 이야기는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 시크릿 박스의 존재 자체를 그 누구도 몰랐을 것이다. 또 여울과 친구들의 다리 또한 연약한 정도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고리타분한 얘기겠지만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란 말이 있다. 어떤 기업인은 성공이 두렵다고 했었다. 그 만큼 의외로 실패는 성공보다 더 많은 것을 남기곤 한다. 오랫동안 마모된 원석의 표면이 점차 매끄러워지는 것처럼, 실패라는 이름의 마모를 통해 우리들 또한 갈고 닦여 점차 빛을 발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잠시 시크릿 박스의 사업을 중단하고 학업을 위해 애쓰고자 하는 네 주인공의 모습이 그리 쓸쓸해 보이지 않는 이유는, 그들이 또다시 시크릿 박스와 같은 새로운 시도 앞에서 전처럼 두려워하는 기색 없이 자신감 넘치는 모습으로 나아가고자 하기 때문이다. 이는 오늘날 미래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전하는 따스한 메시지가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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