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으로 난 길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46
현길언 지음 / 자음과모음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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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인 물은 썩는다는 말이 있다. 고이지 않고 흘러가는 물이 건강한 물이다. 이를 테면 모험을 감행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코앞에 닥친 상황에 물러섬 없이 뛰어들어 겪어보아야만 강해질 수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내가 장담할 수 있는 것은 그러한 삶은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고 안정만 누리는 삶과 비교했을 때 훨씬 더 낫다는 것이다.

 

 처음으로 복지회관에서 봉사를 했을 때가 기억난다. 단순히 문서를 작성하거나 서류를 정리하는 일이나 하겠지 싶어 신청했던 봉사였다. 봉사 시간 내내 내가 있을 곳은 사무실 책상이라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나 담당 봉사자의 부재로 인해 나는 의도치 않게 어르신들 곁에서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얼마나 힘든 시간이었는지 모른다. 자기 옷도 빨아 입은 적이 없는 사람에게 다른 사람의 옷, 심지어 이물질과 침이 범벅된 옷감을 세탁하는 일은 참 고역이었다. 돌이켜보면 그 당시엔 ‘이딴 봉사, 다음에 또 할까보냐.’하며 이를 박박 갈았던 것 같다. 그러면서 방학마다 그곳을 다시 찾아 또다시 고역을 치루고 이를 갈고, 그러다 다음 방학에도 와서 어르신들을 뵈었다. 이가 다 갈려 없어지지 않는 것도 그렇지만 스스로의 행동이 참 신기하게 느껴졌다. 이건 아무래도 어르신들의 식사를 도와드리며 복지회관을 청소하고 마사지나 윷놀이 같은 다양한 활동 프로그램을 어르신들과 하면서 정이 든 것이 아닌가 싶다. 달갑지 않은 일을 계속 해도 좋을 만큼.

 

 만약 낯설고 어렵다는 이유로 봉사를 관두었다면, 지금의 나는 알고 있었을까. 옷감에서 나는 침 냄새는 살아있기에 날 수 있는 향기이고, 흐르는 물은 그 어떤 오물일지라도 아무런 기색 없이 그것을 손으로 씻겨낼 수 있다는 것을. 또는 어르신들이 겉모습과는 다르게 노래를 부를 수 있고, 경쾌하게 춤을 출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사람의 미소는 근육이 전부가 아니었다는 것 또한 알고 있었을까. 만약 내가 고여 있었다면 이런 소중한 깨달음을 간직할 수 있었을까 싶다.

 

 ‘사막으로 난 길.’이란 책은 옛 기억을 회상하게 해준다. 그것은 정말이지 신기한 경험이다. 낯설게만 느껴지는 새로운 공간에서 일찍이 겁부터 먹고 뒷걸음쳤던 과거의 나를 이렇게 기분 좋게 떠올릴 줄이야. 그 당시엔 날 에워싼 세상이 죽고 싶은 만큼 무섭고 싫었는데, 어느새 미소가 돌게 하는 추억이 될 줄은 꿈에도 생각해보지 못했다. 주인공 ‘세철’에게도 이와 같은 일이 있었을까. 내 또래인 세철 또한 과거의 힘들었던 기억을 추억삼아 웃을 때가 있을지도 모른다.

 

 고등학교 2학년 무렵에 세철은 고향인 제주도를 떠나 서울로 가는 커다란 모험을 하고자 한다. 자신에게 너무도 익숙한 고향을 등지고 서울을 향한 세철의 마음속엔 서울에 대한 동경도 있었고, 옛 친구들에 대한 그리움도 있었을 테지만 더욱 강하게 자리 잡은 것은 아마도, 자신에 대한 ‘도전’이 아니었나 싶다. 제주도에선 누구에게나 인정받았던 세철이었기에 또 다른 새로운 곳에 대해 자신감이 있었고, 누구나 그러하듯 그 자신감을 시험해보고 싶었을 것이리라.

 

 하지만 불행이도, 부푼 설렘을 감싸 안고 온 세철을 맞이한 건 서울의 무정한 모습이었다. 옛 친구들과 형이 있을 서울에 대한 환상 속에는 전혀 인연이 없을 상황에 맞닥뜨렸다. 인심 좋게 생기신 아주머니를 따라 간 것이 화근이었다. 아주머니를 따라서 도착한 창녀 집에서 옥자라는 아가씨를 만났고, 깡패들과 다투기도 하였다. 고향에만 고여 있었더라면 몰랐을 세상의 또 다른 모습들을 서울에서 보고 겪으면서 세철은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있어 능숙함을 키워나가기 시작한다. 매 사건마다 스스로를 성찰하고 정리하여 단계적으로 발전하는 세철을 보며, 그의 삶의 자세를 내 일상생활에 적용하고 싶었다. 세철이 자신의 어려움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주위 사람들의 배려와 도움이 있었지만, 무엇보다 세철에게 강한 마음가짐이 있었기에 그 모든 것들이 가능했으리라 싶다.

 

 책은 어떻게 보면 한 사람의 인생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점에서 지금 이 순간 책을 읽었다고 하기 보단 ‘세철’이라는 멋진 소년과 만나 벤치에서 빵을 나눠먹고 왔다고 여기고 싶다. 우리 둘 다 그 당시엔 힘들고 괴로웠던 과거를 기쁘게 회상했고, 앞으로의 미래에 대해 따뜻하게 서로를 격려했다. 세철이나 나나 성공도, 실패도, 후회도 나중엔 웃으며 떠들 수 있을 만큼으로 남아 삶을 채워나간다는 것을 깨닫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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