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랜드
천선란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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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랜드 #천선란작가님

고라니도 몰랐을 거다. 왜 하필 이곳에서 태어났는지. 그걸 알 수 있는 존재는 없다. 그것이 태어나는 존재들에게 가장 처음 내려지는 수수께끼다. 평생 답을 찾아 헤매지만 아무도 알지 못하고 죽겠지. (「이름 없는 몸」, p. 199)


‘이유 없이 살아가자는 말을 너무 길게 한 것 같다’. 작가의 말에서 본 문장이다. 이유 없이 산다는 건 어떻게 사는 걸까 생각하다가, 이번 소설집에 수록된 열 편의 소설들을 떠올렸다. 정확히는 어떤 상황에 처했든 계속해서 살아가고 사랑하려는 사람들을. ‘만약’으로 시작되었을 상상이 구체적인 서사와 다채로운 묘사로 더욱 생동해진 느낌이다. 만약 지구가 멸망한다면, 만약 우주생물체가 지구를 습격한다면, 만약 로봇이 호기심을 느끼게 된다면, 만약 사람이 사람을 잡아먹는다면…. 이 만약이라는 세계에서 사람들은 저마다의 수수께끼를 안고 살아간다. 해답을 찾기도 하고, 또 다른 질문을 만들기도 하면서.


“강설 씨, 우리는 무엇을 두려워하고 있는 걸까요? 두려운 시절은 이미 다 지나갔는데. 강설 씨가 두려워하는 건 뭐예요?”(「흰 밤과 푸른 달」, p. 52)


소설에서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사랑이 발견되는 순간들이다. 흔적처럼, 자국처럼 마음의 모양이 일상에 군데군데 찍혀 있는 것을 목격하는 장면들. 지키기 위해 싸우기를 택한 명월과 똑똑해지기를 택한 강설이 그렇고, 죽은 형을 닮은 로봇에게 밤마다 먹을 것을 가져다주던 아이가 그렇다. 친구의 이마에 총구가 향해 있다는 것만으로도 눈물이 나려 했다는 누군가의 독백이 떠올랐다. 멸망한 지구에 남은 사람들이 “계속 가라”고 보낸 마지막 교신 또한. 마음과 마음이 이어진다. 우리가 예측할 수 없는 방식과 형태로. 이 삶은 과연 나만의 것이 맞을까 질문하게 된다. 이렇듯 사랑을 빚지며 이어가는 삶이 어떻게 나만의 것일 수 있을까.


이름을 잊게 해서 정체성을 흐리게 만드는 거야. 이름이 불리지 않는다는 건 결국 내가 누군지 잊게 된다는 거고, 그렇게 되면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빼앗기는 거야. 뭔지 모르는 것에게. 그럼 이름 없는 몸이 돼. (「이름 없는 몸」, p. 219)


이름과 관련된 이야기도 흥미롭다. 이름이란 ‘나’라는 표상이다. 이름에는 기억과 역사가 있어 내가 나임을 증명한다. 그래서 <레 미제라블>에서 장발장을 이름 대신 죄수 번호로 부르고,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 유바바가 치히로의 이름을 가져간다. 24601이 되고 센(1000)이 된 두 사람은 수많은 노동자 중 하나가 된다. 언제든 잊히거나 대체될 수 있는 존재가.

이름이 없는 것이 내는 소리는 대체로 “없는 소리”이다. “환청이나, 웃음소리나, 소의 울음이나, 개 짖는 소리”(p. 195)처럼, 해석의 필요를 느끼지 못할 소리. 그러나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이 있다. 문을 열어 살피는 사람이 있다. 바닥에 있는 괴물이 된 친구의 손에 명찰을 쥐여 주는 아이가 그렇고, 적이었던 우주인에게 이름을 붙여 주는 사람과 적이었던 인간에게 보라색 꽃을 건네는 우주인이 그러했다.


몇 번의 계절을 넘기고 내가 죽었던 그 계절로 다시 돌아올 때까지, 나는 성불되지 못한 채 구천을 떠돌았고 대신 죽은 이의 이름을 외우고 다녔다. 나와 비슷하게 살았고, 비슷하게 죽었던 사람들의 이름을. 혹시나 나처럼 잊을까 봐. 그들은 멍하니 눈만 깜빡이다 내가 이름을 부르면 돌연 울음을 터트렸다. 차사가 삼창을 할 때까지 나는 그들을 꽉 끌어안고 괜찮다고 다독였다. (「-에게」, p. 265)


이름과 기억은 연결되어 있다. 이름을 떠올리면 그 사람의 말투와 습관이 기억나니까. 다친 이인에게 엘런이 말했다. 사라지는 걸 원하면 말하라고. 네가 바란다면 이 우주에서 완전히 소멸할 수 있다고. 이인은 벤을 떠올렸다. 죽음을 간절히 바란 나머지 흔적 하나 남기지 않고 사라진 벤. 그렇지만 완전한 소멸이란 게 과연 있을까. 내가 기억하는 한 당신은 계속해서 나의 곁으로, 나의 일상으로 호출될 텐데.


기억을 완벽하게 지우기 위해서는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를 도려내야 할까. 아무리 생각해도 그 경계가 보이지 않았다. 완벽히 지우려면 자신의 삶을 도려내야 했다. 그것도 꼴에 삶이라고 억척스럽게 들러붙은 것이다. 그것도 삶이라고. (「뿌리가 하늘로 자라는 나무」, p. 413)


이름을 잊었던 영혼은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어 무사히 이승을 떠날 수 있게 되었다. 지구에 대한 마지막 기억이 푸른 별이었기에 사람들은 지구와 작별할 수 있었고, 유라는 유진을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에 규영의 죽음을 끝이 아닌 탈출로로 여길 수 있었다. ‘나’의 기억이 ‘타인’의 완전한 소멸을 끊임없이 방해하는 것이다. 기억이라는 것이 나와 너를, 그리고 삶을 중력처럼 붙든다. 떠나더라도 다시 돌아올 수 있게. 떠나더라도 계속 감각할 수 있도록.


‘우주를 떠올릴 때마다 고요한 그곳에 홀로 시끄럽게 돌고 있는 지구가 좋았다.’는 작가의 말에 밑줄을 쳤다. 작가님이 오랫동안 우주와 사람과 삶에 대해 관찰을 해 왔다는 걸 느꼈다. 오랜만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재미있게 읽었다. 추천!

노랜드, 천선란, 천선란작가님, 한겨레출판, 하니포터, 하니포터3기_노랜드, 책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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