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햇살 문지아이들 169
윤슬 지음, 국지승 그림 / 문학과지성사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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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에선 아직도 빗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더 이상 그 빗소리가 따갑게 느껴지지 않았다. 내일은 아마도 비가 그칠 것 같았다. (p. 29)


너무 어색해서 얼굴을 쓸어내렸다. 웃는 게 낯설어진다는 게 이상했다. 나중에는 다시 웃지 않는 게 낯설어질까, 시간이 흐른다는 건 어떤 걸까. 언젠가는 다 괜찮아진다는 걸까? 그건 얼마만큼 괜찮아진다는 걸까? 머릿속이 복잡했다. 나는 꼼짝도 않고 한구석에 가만 머물러만 있는 베타를 물끄러미 들여다봤다. 지금은 그냥, 이 베타가 잘 버텨 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만 들었다. (p. 57)


엄마, 안녕. 안녕. 나는 마음속으로 엄마에게 다시 한 번 작별인사를 건넸다. 모든 것들이 괜찮아지길 바라게 되는 밤이었다. (p. 66)


“녀석. 이제야 제대로 웃는 구나.”/ 은하 아빠가 진호의 손을 잡아 주며 말했어요. 그 옆에 서 있던 은하는 ‘제대로 웃지 못했던 순간’들에 대해 잠깐 생각했어요. 엄마가 떠나고 영영 웃지 못할 것 같았던 그 순간들에 대해서 말이죠./ ‘이제 괜찮아. 나 괜찮아, 엄마.’/ 은하는 마음속으로 작게 속삭이며 앞을 바라봤어요. 엄마와 찍은 사진 옆에 놓을 새로운 사진이 생겨 참 기뻤어요.(p. 103)


새삼 작별(作別)이란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보았다. 지을 작, 헤어질 별. 헤어짐을 짓는다는 의미였다. 문득 짓는다는 말이 생소하게 느껴졌다. 짓는다는 말만큼 능동적인 행위의 표현이 있을까. 세상엔 셀 수 없이 많은 이별의 순간이 있을 텐데. 그때마다 나는 이별에 대하여 어떤 행위를 해야 할까. 생각해 보면 누구도 내게 작별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지 않았다. 작별할 때 어떤 말을 주고받고, 어떤 마음으로 상대를 떠나보내야 하는지.


이별의 순간은 예측할 수도 상상할 수도 없는 방식으로 우리 삶에 들이닥친다. 그 순간을 아무쪼록 잘 지나갈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무엇일까.『오늘의 햇살』에선 네 아이들이 나온다. 소유, 미유, 은하, 진호. 한 동네에서 살고 있는 이 아이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이별을 경험하거나, 이별을 목격하거나 아니면 이별을 예감하기도 한다. 아이들에겐 너무나도 생소하고 낯선 이별의 순간들이다. 그 누구도 이 아이들에게 헤어짐의 순간에 대하여 아무런 말도 전해주지 않았을 텐데도. 아이들은 신기하게도 자기 나름대로의 작별 방법을 찾는다. 그 과정을 그린 책이 『오늘의 햇살』이다.


이 책의 아이들 대부분이 엄마가 부재한 아이들이다. 엄마와 헤어진 아이, 엄마가 돌아가신 아이, 엄마 대신 할머니와 사는 아이이다. 각기 다른 상실을 안고 있는 아이들은 어느 날 자신의 처지와 똑 닮은 것 같은 동물들을 만난다. 수로에 빠진 새끼 고라니가 그렇고, 곧 죽을 것만 같은 열대어 베타가 그렇고, 또 서로를 부모 자식처럼 여기는 고양이와 오리가 그렇다.


이 어리고 연약하고 말도 못하는 동물들에게서 아이들은 자신을 발견한다. 새끼 고라니의 엄마 고라니를 찾아 주고 싶어 하는 장면이나, 아픈 열대어를 살리려고 마음먹는 장면, 오리와 고양이를 위협에서 지켜 주는 장면은 꼭 아이들이 자기 자신에게 보내는 위로 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내가 나에게 보내는 위로. 내가 나에게 들려주고 싶은 마음이고, 전해 주고 싶은 응원인 것이다.


아이들이 서로의 어깨를 손바닥으로 덮으며 "잊지 마라. 네 옆엔 나도 있다!“ (p. 29)라고 말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아이들은 자기만의 작별 방법을 찾는 과정에서 주위 어른들을 본다. 이별을 앞둔 어른들은 어떠한지 살펴본다. 엄마 이야기를 들려주는 할머니를 보며 은하는 생각한다. ‘언제든 엄마에 대해 말해 줄 사람이 곁에 있다는 게 새삼 든든했다. 엄마가 보고 싶냐던 할머니의 말은, 마음껏 엄마를 그리워해도 된다는 말과도 같다는 걸 문득 알아차릴 수 있었다.’ (p. 62)고.


극복한다는 말보다 지나간다는 말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이 장면을 오래오래 기억할 것만 같다. 어쩌면 슬픔이라는 건, 이별이라는 건 극복하거나 지워야 하는 것이 아니라 지나가거나 통과하는 것이 아닐까. 꼭 잊거나 묻어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그리워하고 생각하고 오래 슬퍼해도 되는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혼자인 것보단 함께인 게 좋으니까.” (p. 26)


잘 헤어지는 방법은 무엇일까. 어떻게 하면 제대로 인사를 나누고 헤어질 수 있을까. 친구와 이웃 들과 다같이 찍은 사진을 엄마의 액자 옆에 걸어 두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아이의 마음처럼. 오늘은 비가 오고 날도 컴컴하지만, 내일은 해가 뜰 것 같다고 말하는 어느 독백처럼. 내일을 나아가게 하는 작별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하는 책이었다.


케이트 디카밀로의 책 『왜 동화는 약간 슬퍼야 하는가?』의 장면을 빌린 마지막 작가의 말에도 밑줄을 쳐 두었다. 우리는 왜 동화를 읽을까.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았지만, 그래도 다시 읽어 보면, 모든 것이 너무나 아름다웠어. 그리고 나는 내가 감당할 수 있다는 걸 확인했지.’(p. 106) 혼자인 것 같은 순간에 혼자가 아니라는 말을 듣고 싶을 때가 있다. 내가 잘 지나가고 있다고 확인 받고 싶은 때가. 그런 때를 지나가고 있는 사람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두껍지 않은 책이라 부담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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