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꿈은 없고요, 그냥 성공하고 싶습니다 - 180만 유튜브 채널 [문명특급]의 밍키 PD가 90년대생 직업인으로서 생존해온 방식
홍민지 지음 / 다산북스 / 2022년 3월
평점 :
#꿈은없고요그냥성공하고싶어요 #홍민지피디님
메이저 근처에서 기웃거리며 우리의 가치를 알아주길 바라고 있을 시간에 우리는 우리만의 리그를 만들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서 억울하다면 분노해야 한다. 그 에너지가 있으면 관두고 싶다가도 조금 더 버텨내게 된다. 그럼 언젠가 내가 만든 담장 밖에서 들어오고 싶다고 두드리는 사람들이 생길 것이다. (p. 17)
이것들이 묘하게 불편했던 이유는 마치 나에게 벌어지는 일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내가 사회생활을 하며 임하는 진지한 태도를 우습게 보는 어른들도 있고, 내가 전문성을 발휘하는 걸 기대하기보다는 회식을 하며 분위기를 띄우는 역할을 기대하는 어른들도 많았다. 그런 지점들이 아이돌이 방송에 나가서 받는 대우와 꽤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게 나를 불편하게 만든 거다. (p. 23)
애초에 꿈을 이루겠다는 강박이 없다면 타인의 긍정적인 평가를 목 빠지게 기다릴 일도, 불합격 딱지를 받을 일도 없다. (…) 꿈을 이뤄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고 싶지 않다. 강박에 시달리다 보면 내 꿈을 인질로 악마의 손길을 내미는 빌런이 등장하기 마련이다. (…) 누군가가 인정해주지 않아도 내 세상은 절대 무너지지 않는다. (p. 38)
그래서 나는 무엇이든 좀 헐렁하게 시작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시작이 하찮다고 결과까지 하찮은 건 아니니까. 좋은 운동화 없이도 맨발로 가볍게 출발선에 서는 일에 더 익숙해졌으면 한다. 밟혀서 때가 탈 운동화가 없어서 그런지 용감해진다. (p. 57)
운전을 처음 배울 때 차선을 지키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 이리저리 맞추려고 할수록 더 한쪽으로 치우치게 된다. 그럴 때마다 엄마는 “멀리 보면 오히려 차선이 지켜져”라고 말씀하셨다. 도로의 끝에 점을 찍고 바라보니까 신기하게도 차선이 맞았다. (p. 102)
얼마 전 아빠가 내 방에 들어와서 말씀하셨다. “너는 둥그렇지 못한 모난 돌인데 계속 그렇게 살길 바란다.” (p. 212)
* * *
‘꿈은 없고요. 그냥 놀고 싶습니다’ 무한도전에서 명수아저씨가 그렇게 말할 때 나는 웃었다. 또래 친구들도 어른들도 배를 잡고 웃었다. 그 말이 유머로 재미로 소비될 수 있었던 이유는 그 당시 학교 필독 도서가 ‘아프니까 청춘이다’였기 때문이었을 거라 생각한다. 웃음으로만 소비되어야 할 말이었다. 우리는 반드시 꿈이 ‘있어야’만 했고, 향후 10년의 나를 어렸을 때부터 미리 ‘계획해야’ 하는 게 당연했으니까.
문명특급은 스브스뉴스 채널의 ‘다시 만난 세대’에서 시작하여, 현재엔 독자적인 이름으로 콘텐츠를 만들고 있는 채널이다. 90년대생에겐 익숙한 귀여니부터 시작하여 다꾸, 비혼식, 학교 앞 찾아가기, 숨듣명 등의 콘텐츠를 제작하여 많은 사람들이(특히 내가!♡) 사랑하는 채널이다.
책의 저자는 밍키PD로 그가 문명특급의 연출가가 되기 전후로 겪어왔던 일화와 느꼈던 생각들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이끌어 가고 있다. 애니메이터와 광고인, 예능PD……. 어렸을 때부터 꿈을 꾸어 왔지만 그는 그 꿈들을 실현해 보기도 전에 불합격 통보를 받는다. 이후 집에서 가깝다는 이유로 지원한 스브스뉴스 인턴에 덜컥 합격하게 된 그는 인생 처음으로 꿈 없이 살아 보게 된다. 이에 대해 그가 남긴 말이 떠오른다.
‘나를 원하지 않는 곳에 미련을 두는 것은 시간 낭비라는 생각이 들었고 나를 원하는 곳에서 최선을 다할 때 어떤 결과가 있을지 궁금해졌다. (…) 불행할 줄 알았지만 이룰 것이 없으니 반대로 아주 행복했다. 짐이 가벼워져서였을까. 회사에 출근하는 모든 날들이 즐거워졌다.’ (p. 36)
원대한 꿈 없이 일을 시작하면서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과 하기 어려운 일이 무엇인지 알아간다. 직장에서의 지위가 아닌 직업에 대한 목표가 생기면서 회사에 가는 게 즐거워졌다는 말이 인상 깊다. 그에게 회사는 편집할 수 있는 컴퓨터와 함께 일하는 동료가 있는 공간이 되었다는 말도. 많은 출연자들과 제작진들을 만나 오면서 그는 그 자신이 어떤 연출가가 되고 싶은지 알게 되었다. 그가 잘 알든 모르든 모든 사람들에겐 존중받아야 할 가치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좋은 리더, 좋은 어른, 좋은 동료가 되는 방법 또한 배웠다. 앞으로도 고난이 찾아와도 견디어 나아갈 수 있는 맷집(p. 118)을 기르게 되었다. 그는 그가 모르는 사이에 계속해서 성장한다.
꼭 또래 친구의 이야기를 듣는 기분이었다. 책을 읽는 동안 이상하게도 나는 그가 다른 사람에게 무시를 당할 때면 함께 화가 나고 분했다. 그가 웃긴 일을 겪거나 든든한 동료들 덕에 기운을 얻을 때면 나도 함께 키득키득 웃었던 것 같다. 이건 내가 저자와 똑같은 90년대생이라 그런걸까. 퇴근길 지하철에서 ‘누군가가 인정해주지 않아도 내 세상은 절대 무너지지 않는다’는 문장을 보고 나도 모르게 훌쩍이고 말았다. 내가 나에게 해주지 못했던 말을 내 또래인 저자가 해 주었다.
당장 1년 후, 10년 후의 나를 상상할 수 없는 요즘이다. 꿈이 있지만 확신이 없는 오늘의 나에게 이 책은 그래도 괜찮으니, 달리지 않아도 괜찮으니 느릿하게라도 걸어 보라고 말해 준다. 발길 닿는 대로 걷는 모든 방향이 길이 될 거라 이야기한다. 그럼 나는 나를 마구 사랑해 주고 싶어진다. 혹시라도 여기에 강박처럼 꿈을 찾고, 꿈을 좇는 또래가 있다면, 혹시라도 꿈이 없다며 몸을 움츠리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이 책을 권하고 싶다.
+ 표지 정말 잘 만들었다. 모난 돌멩이들을 표현한 걸까. 바코드도 귀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