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여기 있어요 zebra 12
라에티티아 부르제 지음, 요안나 콘세이요 그림, 나선희 옮김 / 비룡소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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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만 오 천 원 짜리 그림책?
요안나 콘세이요니까 샀다. 10년 동안이나 작업을 했다고 하니 오만 오천 원이 이해되기도 했다. 인터넷 미리보기는 3장에 연속해서 나오는 세 그루의 나무만 보여주고 끝이었다. 보고 싶은 욕구를 막내딸 생일선물을 핑계로 샀다.

도착한 책은 실망을 먼저 주었다. 크리라 생각했는데 대개의 그림책 사이즈보다도 작은 200*260mm. 엠마뉴엘 우다의 『엄마』 정도의 사이즈 (285*367mm)를 기대했다. 156쪽에 달하는 그림책을 넘기며 오만 오천 원이 생각났다. “뭐지?”고개가 갸우뚱.
다시 읽었다. 오만 오천 원이 덜 생각났다. 다시 읽었다. 오만 오천 원이 아깝지 않았다. 고개가 끄덕여졌다.

이미 홍보된 내용으로 3대의 이야기는 알고 있었고 대충 그 의미도 나름대로 가지고 있었던 터였다. 요안나 콘세이요 그림은 나를 신비롭게 이끌었지만 글작가 라에티티아 부르제에겐 의구심이 들게했다.
요안나 콘세이요 그림은 『바다에서 M』에서 나를 확실하게 매료시켰다. 바다가 보고 싶었는데, 그리운 바다를 제대로 보게 해 준 책이다.(바다를 그린 그림책 중에 바다가 바다로 다가온 책은 거의 없었다.)
『당신은 여기 있어요』는 반투명 트레이싱지에 인물과 사물과 자연이 정교하고 세밀하게 그려졌다. 이들은 서로 겹치어 작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잘 표현한다. 트레이싱 작업이 힘들었다고 요안나 콘세이요는 말했지만 그녀가 포기하지 않은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 종이가 가지는 반투명의 특징으로 세대를 지나가는 시간과 공간과 마음의 연결이 쌓여감으로 너무나 잘 표현했다.

책의 겉표지는 질감이 부드럽다. 손을 대면 종이의 따뜻함이 느껴진다. 커피가 살짝 튀었는데 바로 흡수되어 이틀 만에 새 책의 기운을 빼앗겼다. 표지에는 눈을 감은 검은 머리의 건강한 젊은 여성이 입술에 작고 붉은 열매 피라칸다를 물고 있다. 장미과에 속한 피라칸다는 ‘알알이 영근 사랑’이라는 꽃말을 가지고 있다. 속표지의 제목 아래는 3분의 2정도는 썩고 잎맥만 남아 있는 나뭇잎 한 장이 그려져 있다. (책의 내용 중 이 그림은 다시 나온다. ‘당신을 소화하고’ 라는 표현과 함께) 그리고 이어 그 나뭇잎이 달려있었을 나무(미루나무) 세 그루가 트레이싱지에 그려져 있다. 초록의 나무는 한 장을 넘겨 왼쪽으로 옮겨지는 순간 녹갈색으로 바뀌어 시간이 지나감을 느끼게 한다. 그리고 세 그루 나무 사이 덩그러니 등장하는 신발 한 켤레, 그 아래 글은 첫 문장. “당신은 여기 있습니다.” 이어 한 장을 넘기면 어렴풋이 트레이싱지 뒤로 보이는 외투, 한 장을 넘기면 풀밭, 트레이싱지 그 뒤로 보이는 소녀와 인형, 이어 넘기면 고양이과 집, 그리고 또 다른 소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넘겨지는 순간 그 둘은 서로를 보게 된다.

이제 잊고 있던 글작가를 살펴볼까?
그림책에서 본의 아니게 나는 그림보다 글에 더 비중을 둔다. 처음 읽었을 때 그림 빠져 글을 제대로 못 읽었을까? 156쪽에 달하는 그림에 글은 한 편의 시 정도의 분량이다. 너무 짧아 뭔가를 놓친걸까? 그래서 또 읽고 또 읽었다. 홍보영상에서 요안나 콘세이요가 라에티티아 부르제의 영감으로 이 책을 구상하기 시작했다는 말이 생각나 글작가의 이력을 다시 보았다. 한국에 소개된 짧은 이력에는 프랑스 보르도대학교에서 조형 예술을 공부한 뒤 비디오, 사진, 조각, 설치 미술 같은 다양한 형태의 예술 작업을 하고 있다고 나왔다. 같은 미술 계열인데 왜 굳이 본인이 하지 않고 글을 썼을까? 궁금해서 조금 찾아보았다.
놀랍게도 내가 좋아하는 엠마뉴엘 우다와 연결되어 있었다. 우리나라에 김시아 번역가를 통해 바람의 아이들 출판사가 펴낸 두 권만 소개된 엠마뉴엘 우다와 처음으로 공동작업을 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 번역된 책을 공동작업하지는 않았다.) 다른 학문분야를 넘나들고 다른 창작자들과 수많은 예술적 협업을 하는 작가였다. 나는 이런 형태의 사고를 가진 사람을 좋아한다. 뭔가 같이하고 거기서 새로운 것을 돌출하고 그 영향으로 또 다른 구상들을 하는 멋진 순환을 일으키는 사람. 그녀를 향한 야릇한 호기심이 일기 시작했다.
“그녀에게 있어서 어린이를 위한 글쓰기는 모두를 위한 글쓰기이고, 어른을 위한 글쓰기는 어린이를 배제하는 것을 의미한다”
프랑스어를 모르니 구글 번역에 의존해서 검색해서 아쉬웠다.
<당신은 여기 있어요>에서 그녀의 글은 간결하고 시적이다. 다시 읽을수록 예리하게 파고든다. 요안나 콘세이요 그림을 더 와닿게 만든다. 나의 경험을 바탕으로 하는 상상으로 들어가게 하는 힘이 있었다. 그래서 읽을수록 책은 친밀해졌다.

나는 보통 책을 소개하면 독서동아리들이 읽기를 권한다. 그러나 이 책은 조용히 혼자 읽기를 추천한다. 그리고 계속 읽기를, 천천히 읽기를 추천한다. 읽은 후에는 산책하기를 권한다. 엄마와 외할머니를 그리며. 내 딸을 생각하며.

막내딸은 할머니를 좋아한다. 나의 엄마와의 만남이 짧은 아이다. 아픈 외할머니를 두고 병원을 나올 때 서럽게 울던 아이다. 이 책을 선물하길 잘했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나의 엄마와 나의 100일 즈음 돌아가신 외할머니를 그리워한다. 그들의 유산은 내 안에 있다. 나의 딸들에게도 흘러가겠지. 내 아이도 이 책을 통해 같은 마음을 가지겠지. 그리고 나도, 엄마도, 외할머니도 그 아이 안에 있겠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 위에는 많은 사람들이 스쳐갔다. 시절을 살고, 공간을 살고 나뭇잎 하나 떨어져 땅에 묻히듯 묻혔다. 누군가는 기억되지 않은 채 이 땅을 지나갔겠지만 그래도 어딘가에는 남았으리라. 누군가에겐 남아 있으리라. 기억되든 기억되지 못하든.
“당신은 여기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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