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독소 - 죽음을 부르는 만찬
윌리엄 레이몽 지음, 이희정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5월
평점 :
절판
그의 메시지는 강했다. 우리 식탁의 모습을 변화시키기에 충분하다는 첫 느낌이 고스란히 책의 곳곳에 숨어 있다.
어쩌면 일종의 경고성 메시지로 주의를 넘어 더 큰 재앙이 올지도 모른다고 조심스럽게 전망하고 있다. 이것은 변화를 바라는 지은이의 바람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는 것을 뜻한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잠깐, 잠깐 책을 읽으면서 쉴 틈을 주지 않는 지은이의 생각에 나 자신도 모르게 동의를 하게 되고 맞장구를 치며 맞는다는 이야기를 연신 하고 있었다.
한밤의 소동으로 끝날 일이라면, 그리고 심지어 그냥 간과하고 한쪽에 그냥 방치할 일이라면 우습게보아 넘길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한마디로 그렇지 못하다.
책을 읽는 사람의 사고를 신중하게 만들어 주었다. 실제 하는 일을 조사를 통한 지은이의 글은 타당성과 함께 여러 가지 방법을 느낄 수 있게 쉽고 깊게 써 주고 있었다. 깨끗한 마음에 들어 와 있는 투자하지 않은 우리의 밥상이 이제는 위협을 넘어 예상되지 못하는 일까지 상상 될 수 있고 그것이 현실화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득 문득의 생각이 현실로 나타나고 있어 우려의 목소리를 높여 본다.
사람이 편리하도록 만들어 놓은 것들에 줄이 길게 서 있는 사람들. 이런 것들이 어처구니없게도 비만과 체질을 변화 시킨 원동력이 되었고 이제는 회복의 단계를 생각해 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우리가 먹고 있는 것에 독소가 포함되어 있다는 생각을 못한 채 우리의 밥상은 어제나 오늘이 똑같다는 것에 충고를 아낌없이 보낸다.
이것은 우리가 아플 때 먹는 일종의 진통제로는 더 이상 효과를 보지 못한다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무엇을 상상하듯 그 이상이다. 그리고 그의 취재 열기는 상상을 초월한다. 머릿속에 맴돌던 의문을 그냥 쉽사리 지나치지 못한다. 그는 현장을 가고 취재를 통해
하나의 해답을 얻을 때까지 어떠한 수단을 가리지 않는다. 이것은 단순한 이야기를 끌어오기 위한 것이 아니라 독자와 함께 공감 하고 그의 생각의 옮겨 보기 위한
것이 아닐까 싶다. 또한 단순한 전염을 이해하는 목적이 아니라 우리의 식탁을 위협하고 우리의 삶에 깊숙히 침투해 있는 현상을 올곧게 보여 주려는 의지에서 나오는 것이 아닐까 싶다.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식품에 대한 그의 주장은 말 그래도 제조되어지고 우리의 입맛을 달콤한 것으로 바꿔 놓는데 성공을 거뒀고 이야기 한다. 이 것은 우리가 원하는 것을 이제는
제조사의 입장에 의존하게끔 만들었다는 의미로 받아 들일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서 하나의 딜레마에 빠지게 되는데 그것은 우리가 받아 들이려고 하는 맛의 기준이 제조사의 기준에 맞춰져 있다는 것이다.
이제는 일종의 유형에 따른 소비를 통해 그 맛을 느끼는 수치가 높아지고 당연히 우리의 몸은 서구화를 통해 우리의 속까지 깊숙이 이상해져가고 있다고 우려의 말을 건네고 있다.
그 달콤함 속에 독소가 있는줄도 모르는 우리의 그것을 삼키고 맛을 음미한다.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 아닐수 없다.
세계가 그것으로 흔들릴지도 모른다. 어쩌면 지각 변동이 일어나 우리가 섭취한 것이 과학적으로 그리고 연구의 결과를 토대로 살펴 보면 그 위험 수치는 더욱더 높고 병의 발생률은
더 위협적으로 우리의 앞에 놓여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제조사는 업계의 권장량등을 무시한채 유용하게 식품을 만들고 파는데에 아무런 제약도 받지 않을지도 모른다.
이런 의미에서 분석과 과정을 통해 도출 된 하나의 결론을 이끌낸 지은이의 힘은 크다고 본다. 그리고 책을 읽는 동안 받았던 충격은 설명이 다 되지 않는다.
책을 다 읽고 났을 때가 점심을 먹고 난 이후였다. 단순하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의 가족 식탁부터 생각해 보도록 하자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의 발간을 반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