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신의 술래잡기 모삼과 무즈선의 사건파일
마옌난 지음, 류정정 옮김 / 몽실북스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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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을 잃은 채 악몽을 꾸다 어두운 방 안에서 깨어난 모삼. 사실 그는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하던 사람인지, 왜 이곳에서 살고 있는지 전혀 모르는 상태다. 왜 매일 밤 자신이 비수에 찔리는 악몽을 꾸는 지도. 샤워를 할 때마다 보게 되는 몸에 새겨진 흉측한 상처들. 그 상처들만이 그에게 어떤 끔찍한 일이 있었는지 짐작하게 할 뿐이다. 자신의 이름조차도 이 집의 고용인들에게 들어 알게 되었을 정도로 그는 자신에 대해 아는 것이 전무하다. 기분전환 겸 옷을 차려입고 외출한 모삼. 그가 향한 곳은 어떤 클럽이다. 바에 자리를 잡고 마르가리타를 주문하며 상념에 빠져 있는 그에게 한 여인이 다가온다. 여인이 알려준 마르가리타에 얽힌 슬픈 사연. 여자는 이야기를 끝내고 모삼 곁을 떠나고 곧 클럽 안 한 룸에서 살인사건이 벌어져 소란해진다. 현장을 찾아 피해자의 사인부터 신원에 이르기까지 명쾌하게 추리해내는 모삼. 그는 경찰이 해결하지 못하는 모든 사건을 해결해낸 명탐정, 신화로 불리는 남자 모삼이었다! 그리고 그의 연락을 받고 나타난 무즈선. 1급 경감이자 특급 법의관 주임으로 활동하는 그는 부와 명예, 멋진 외모까지 갖춘 완벽한 남자다. 모삼은 기억을 잃기 전까지 무즈선과 파트너를 이루고 여러 사건들을 해결해왔다.

 

모삼이 기억을 잃은 이유는 한 연쇄살인마를 쫓았기 때문이었다. 여대생을 잔인하게 살해한 후 시체를 참혹하게 훼손한 연쇄살인마. 책에 적힌 묘사를 읽는 것만으로도 인간이 어떻게 인간에게 이런 짓을 벌일 수 있는가 경악을 금치 못했는데, 이 작품에 실린 사건들이 거의 실제로 일어난 일을 바탕으로 했다는 말에 정말 깜짝 놀랐다. 그런 살인마를 쫓고 있었으니 그 화살이 모삼에게 향해진 것은 어찌보면 당연할 터. 결국 살인마의 칼날은 모삼의 약혼녀인 관팅을 향하고, 결국 그녀는 모삼의 집에서 자궁과 태아가 적출당하고 살해당한 채 발견된다. 모삼 자신도 살인자와 마주하고 치명적인 상처를 입은 채 기억을 잃었었다. 그리고 클럽에서 벌어진 일을 해결해나가면서 점차 잃어버린 기억을 찾게 된 것이다. [사신의 술래잡기]는 모삼과 무즈선이, 그들이 L이라 이름붙인 이 연쇄살인마가 제시한 게임에 동참하면서 여러 사건을 해결해나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그 과정 속에서 빛나는 모삼과 무즈선의 활약이란! 그들의 실력에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큰 줄기는 L과의 게임이지만 L이 제시한 범행의 범인을 잡는 과정 속에서 작가는 다양한 사건들과 피해자, 가해자의 모습을 그려낸다. 아직까지 발견되지 못한 살육과 죄악을 보여주겠다는 L의 경고로 작품은 긴장감을 유지한 채 이어지고, 그가 세상 앞에 드러내보인 사건들은 하나같이 잔혹하면서도 안타까웠다. 가해자로 밝혀진 이가 간직한 기구한 사연들에 과연 내가 그의 입장이었다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또다시 수많은 희생자를 만들어낸 것은 잘못된 일임에 확실하다. 과연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가. 복잡한 세상 속에서 마음을 다잡지 않으면 악에 휩쓸리기 쉬울 것이니 끊임없이 주의해야 한다.

 

작품 안에서 모삼과 무즈선이 묘사하는 범인의 모습이 무즈선과 비슷해 혹시 L이 무즈선은 아닐까 의심했다. 작품 끝에서 L의 정체가 밝혀질 것이라 예상했는데 아무래도 속편인 [사신의 그림자]로 이야기는 이어질 모양이다. 과연 L은 누구일지, [사신의 그림자]에서 작가는 또 어떤 사건들로 모삼과 무즈선의 활약을 그려낼 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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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여자의 사랑
앨리스 먼로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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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독서카페 #리딩투데이 에서 함께 읽는 도서로 선정된 앨리스 먼로 시리즈의 첫 번째 도서는 [착한 여자의 사랑]이다. 앨리스 먼로는 1931년 캐나다 온타리오주 윙엄에서 태어나 그녀의 유일한 장편소설로 여겨지는 [소녀와 여자들의 삶]을 이끌어가는 화자 델과 비슷한 나이인 열한 살 때부터 작가의 꿈을 키우기 시작했다고 한다. 첫 단편은 1950년에 발표되었고, 1968년에는 첫 단편집인 [행복한 그림자의 춤]이 발표되었다. 그리고 1998년에 발표된 [착한 여자의 사랑]. 총 여덟 편의 이야기가 실린 이 작품집에서 먼로는 여성들을 내세워 평범했던 그녀들의 삶과, 그런 삶 속에 찾아든 폭풍같은 사건들, 그 폭풍이 지나간 후 다시 이어지는 삶을 그려낸다.

 

표제작인 <착한 여자의 사랑>은 한 검안사의 시체가 발견되면서 시작된다. 소년들에 의해 강물에 빠진 차 안에서 시체로 발견된 검안사 윌렌스. 그의 죽음의 원인이 정확히 밝혀지지 않은 채 시선은 보조간호사로 근무하면서 병자들의 집에서 일하고 생활하는 이니드에게 옮겨진다. 사구체신염을 앓으며 죽음을 앞둔 퀸 부인은 이니드의 학창시절 동창인 루퍼트의 아내로, 그녀의 병세는 점점 악화되고 있는 중이다. 아이들마저 멀리하는 퀸 부인 대신 루퍼트의 딸들을 돌보며 집안일을 해내는 이니드. 어느 날 퀸 부인으로부터 상상도 하지 못할 이야기를 듣게 된 이니드의 생활에 태풍이 불어닥치고, 퀸 부인이 세상을 떠난 후 고민 끝에 다시 루퍼트의 집을 찾는다. 죽음마저 각오하고 찾아간 그의 집에서 과연 이니드는 어떤 결정을 내리게 될까.

-당신한테 말하고 싶은 게 있어요. 당신은 믿지 않겠지만요.

-사람들은 나한테 많은 이야기를 해줘요.

-그렇겠죠. 다 거짓말이겠지만요. 장담하건대 다 거짓말일걸요.

p97

어떤 여자의 삶에서는 남편이 갑작스레 세상을 떠나고, 어떤 여자는 어이없는 집주인을 만나 황당한 경우를 당하며, 어떤 여자는 오랜만에 만난 딸과 손주들과 보낸 시간 속 잠깐 위기감을 느끼기도 한다. 누군가 옆에서 지켜봤다면 잔잔한 물결같았던 그녀들의 일상. 그 일상에 갑자기 바람이 불고 그녀들을 흔든다. 하지만 바람은 곧 멈추고 다시 잔잔한 물결이 계속된다. 작가가 여성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담담하다. 그 중 누구도 작가의 대체 인물로 여겨지지 않을 정도로 거리를 두고 묘사된다. 날카로운 시각으로 그저 그녀들의 삶에 일어난 한 순간의 사건을 관찰하고, 역시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계속되는 삶을 연이어 노출시킨다. 독특한 것은 삶의 방향을 바꿔버리는 그 사건들이 여성들의 삶을 힘들게 했을 법도 한데 그 힘든 과정은 딱히 보여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마치 그 사건은 중요하지 않다는 것처럼. 그런 일들이 있었더라도 시간은 흘렀고, 이렇게 삶은 계속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처럼 먼 훗날의 모습만 살짝 비춰질 뿐이다.

 

가장 감정이입하면서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읽은 <자식들은 안 보내>. 결혼 후 아이들을 낳고 키우면서 평범한 일상을 보내던 폴린 앞에 연극을 준비하는 제프리가 나타난다. 연극 <외리디스>의 여주인공으로 발탁된 폴린. 하루하루 공연을 준비하면서 제프리와의 관계도 깊어진다. 가족들과 휴가를 보내기 위해 떠난 폴린을 쫓아 온 제프리. 그리고 결국 가족을 떠나 제프리를 선택한 폴린. 남편 브라이언은 체념한 듯 하지만 그녀를 가장 고통스럽게 할 말을 내뱉는다.

간밤에 브라이언은 차분하고 통제되고 거의 유쾌한 목소리로 통화를 했지만-충격을 받지 않은 자신, 반대하거나 매달리지 않는 자신을 대견하게 느끼는 것 같았다-기어코 감정을 터뜨리고 말았다. 누가 들을지 모른다는 사실에는 신경도 쓰지 않고 경멸과 분노를 담아 말했다. "그래 그럼......애들은?" 폴린의 귀에 댄 수화기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녀가 말했다. "그 이야기는......" 하지만 그는 그녀의 말을 듣지 않는 것 같았다. "자식들은." 그가 여전히 복수심에 불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단어가 '애들'에서 '자식들'로 바뀌자 그녀는 판자로 한 대 세게 얻어맞은 것 같았다. -무겁고 공식적이고 정당한 협박. "자식들은 안 보내."

p356

남편이 그렇게 나올 줄 몰랐던 걸까. 아이들을 지금까지처럼 당연히 자신이 키울 수 있을 줄 알았던 것인가. 아이들을 생각하지 않은 채, 오직 자신에게만 몰두해 한 선택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 지 어떻게 짐작도 못할 수 있을까. 제프리를 선택한 후의 폴린의 삶은 과연 어떠했는지 역시나 자세히 드러나있지 않다. 다만 아이들이 장성했고, 그 아이들이 폴린을 만나러 왔고, 큰 딸 케이틀린과 폴린은 그 때의 일을 역시나 담담하게 추억한다.

 

여기 실린 여덟 편의 이야기는 천천히 시간을 두고 읽어볼 것을 권한다. 일상을 뒤흔드는 사건들임에도 담담하게 서술되는 것에 반해, 이상하게 여성들의 심리를 따라가는 게 힘에 부쳤다. 그 담담했던 문체가 오히려 깊고 무겁게 다가왔던 것인가. 앞으로 남은 먼로의 작품은 과연 어떤 느낌으로 찾아오게 될 지, 기대되는 한 편 약간 두렵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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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대의 왕
니클라스 나트 오크 다그 지음, 송섬별 옮김 / 세종서적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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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3년, 스톡홀름의 온갖 쓰레기가 떠다니는 파트부렌 호수에서 참혹하게 죽음을 맞은 시체가 발견된다. 사지와 두 눈, 이가 하나도 없이 심각하게 훼손된 사체. 제복만 입은 명목상의 방범관인 미켈 카르델은 이 시체를 호수에서 처음 건져낸 인연으로 치안총감 놀린으로부터 전권을 위임받은 세실 빙에와 사건 해결에 나선다. 그들이 칼 요한으로 이름붙인 시신은 오랜 시간을 두고 사지가 절단되어왔으며 이 사건의 배후에는 인간의 엄청난 악의와 잔인함이 숨어있음을 감지한다. 하지만 폐결핵으로 생명이 얼마 남지 않은 빙에. 게다가 그에게 전권을 준 치안총감 놀린은 너무도 정의로워 권력에 그다지 관심이 없는 탓에 곧 그 자리에서 물러날 위기에 처해 있다. 야망에 찬 후임 치안총감이 오기 전까지, 그리고 자신의 생명의 불꽃이 꺼지기 전까지 이 사건을 해결하고 싶은 빙에와 자신이 물속에서 건져 낸 칼 요한의 사건을 해결함으로써 과거의 악몽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카르델.

 

-빙에 씨, 혹시 '호모 호미니 루푸스 에스트'라는 말의 의미를 아십니까?

-플라우투스가 포에니 전쟁에서 남긴 말이지요. '사람은 만인에게 늑대다'.

......

빙에 씨, 제가 어째서 당신을 도와야 합니까? 죽음을 눈 앞에 둔 제가 뭣 하러 두 늑대 중 더 힘센 쪽임을 증명한 살인범을 잡는 헛된 도전을 하겠습니까?......당신은 어떤 늑대입니까?착한 늑대입니까? 능숙한 사냥꾼입니까?......제가 냄새를 맡는 걸 도와드렸으니 이제 냄새를 좇아 숲으로 들어가 발자국을 찾으십시오. 당신의 표정이 바뀌는 걸 전 분명히 봤습니다. 절 속일 생각은 마시지요! 당신이야말로 진짜 늑대입니다. 지금까지 본 것만으로도 당신이 늑대인 건 분명하지만, 만에 하나 제 짐작이 틀렸다 해도 당신은 조만간 완연한 늑대로 다시 태어날 겁니다. 늑대 무리와 함께 달리려면 늑대들의 법칙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걸 명심하십시오. 송곳니가 생기고, 포식자의 눈빛을 띠겠지요. 피에 굶주린 본능을 거부하려 아무리 노력해도 당신 주변에서 피 냄새가 악취처럼 피어오를 겁니다. 시간이 흐르고 당신의 이가 피로 벌겋게 물들고 나면 당신도 내 말이 옳았단 걸 알게 될 겁니다.

p92-96

1700년대의 격변의 시대를 거치고 있는 스웨덴을 배경으로 특유의 분위기를 선사하며 숨 막힐 듯한 긴장감으로 전개되어가는 [늑대의 왕].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대패하고 파산 위기에 처해진 나라 안에서 죽지 못해 삶을 이어가는 백성들이 대부분이었다. 카르델은 전쟁에서 아끼는 친구를 잃었고, 죽음의 순간 왼팔을 잃었으며 여기저기에서 횡행하는 고된 삶의 모습을 외면하고자 술에 빠져 사는 인물이다. 그런 그가 호수에서 건져 올린 칼 요한은 카르델에게 과거의 악몽을 상기시키는 인물이자, 파도에 휩쓸려 죽은 친구를 놓치지 않고 무사히 뭍으로 데리고 올라온 것 같은 기분을 전해주었다. 결국 그 기분에 전격적으로 수사에 착수했다. 빙에에게도 사연이 있기는 마찬가지. 폐결핵에 걸린 후 아내가 다른 남자와 사랑에 빠지자 그 현장을 목도하고 충격을 받아 스펜스 백작 집에서 방 하나를 빌려 살고 있다. 감정보다는 이성에 기반을 두고 범죄자에게도 심문받을 권리를 주어 충분히 그 이야기를 듣고 죄를 판단하는 것으로 유명한 빙에. 어쩌면 인생 마지막 사건일 수도 있는 수사에, 마지막 남은 시간을 쏟아붓는다.

 

작품은 이들의 이야기만으로 구성되어 있지 않다. 소제목은 1793년 가을로 시작해 여름, 봄, 겨울로 끝을 맺는데 순서가 엉켜 있어 처음에는 책이 잘못 인쇄된 것이 아닌가 의심도 했다. 하지만 1793년 가을에서 빙에와 카르델이 칼 요한을 발견하고 수사하기 시작한 것을 묘사했다면, 여름에서는 칼 요한을 그렇게 만든 장본인이자 피해자이기도 한 크리스토페르 브릭스의 회고록이 펼쳐지고, 봄에서는 그 시대를 살아가는 여성을 대표하는 안나 스티나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으며, 그리고 겨울에서는 마침내 사건의 전말을 알 수 있게 된다. 인상적인 인물들과 다양한 시각에서 묘사된 사건의 깊은 이야기가 생생한 현장감을 전달하며 그들의 얽히고 설킨 인연들이 의미있게 다가온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실제 인물처럼 생명력을 가지고 작품 안에서 살아 움직이고 있다.

 

여러모로 가슴 아픈 작품이다. 어쩌면 등장인물 중 그나마 나은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은, 한쪽 팔이 없는 미켈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각자의 사연이 기구하다. 빙에의 이야기도, 크리스토페르의 이야기도. 심지어 어렸을 때부터 친구였던 안데르스 페테르에게 겁탈당할 뻔 했음에도 오히려 매춘부로 몰려 교화소에 끌려가 죽음의 공포를 겪어야 했던 안나 스티나의 이야기는 그 시대 여성들의 삶이 얼마나 힘겨웠을지, 여성의 지위가 남성보다 얼마나 보잘것 없었는지를 보여주는 것 같아 비극성이 더해진다.

 

칼 요한의 시체는 그 묘사된 것을 읽는 것만으로도 끔찍하다. 어떻게 인간이 한 인간에게 이런 짓을 저지를 수 있는가. 범인 앞에서조차 빙에는 그의 이야기를 듣는다. 범인이 어떻게 괴물이 되었고 왜 칼 요한에게 그런 짓을 저지른 것인지. 당연히 연민이 느껴진다. 범인이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환경에도 마음이 아프고, 그의 보호자에게 분노를 느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그가 칼 요한에게 그런 짓을 저지른 일에 변명은 될 수 없다. 그리하여 빙에는 자신만의 정의를 실행한다. 그의 마음에도 상처를 남길 방법으로. 그는 결국 한 무역상의 예언처럼 피에 굶주린 늑대의 왕이 되고 만 것인가!

 

작품이 전달하는 특유의 분위기, 주먹을 주로 쓰는 카르델과 예리하고 냉철한 분석력으로 사건에 접근하는 빙에, 이 두 사람의 조합에 나는 그만 반해버렸다. 하나의 구멍도 발견할 수 없는 치밀한 구성과 입체적인 매력을 발산하는 캐릭터들까지. 어느 하나 비판할 거리가 없다. 이런 노련한 작품이 데뷔작이라니 믿을 수가 없다! 부디 빙에를 폐결핵으로 잃게 하지 마시기를. 18세기 스웨덴을 배경으로 한 '벨만 누아르 삼부작' 중 첫 번째 책인 [늑대의 왕]을 시작으로, 2019년 출간된 후속작 [1794]또한 출간 즉시 여러 나라에 판권이 팔렸다는데, 여기서도 이들을 볼 수 있으려나. 어서 [1794] 도 만나보고 싶다. 빨리!

 

참고로 작가의 이름이 무척 발음하기 어렵다고 생각했는데 '나트 오크 다그'는 '밤과 낮'이라는 의미를 지닌 현존하는 스웨덴 최고의 귀족 가문으로, 이 성은 가문의 문장인 금색과 푸른색으로 위 아래가 나뉜 방패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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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회화실록
이종수 지음 / 생각정원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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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2년 7월, 태조의 즉위식 기사에서 시작하여 1910년 8월, 국권을 일본에게 넘긴다는 순종의 교서로 마칠 때까지 조선의 하루하루를 지켜보아온 [조선왕조실록]. 조선의 역사는 익숙하면서도 익숙하지 않다. 어디서 들은 건 있어서 잘 아는 부분이면 신이 나지만, 또 세세하게 들어가면 복잡해지고 어렵게 느껴지는 것이 바로 역사. 지금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와 가장 가깝게 이어져 있는 조선이지만, 우리는 과연 그 조선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단순히 글로만 읽어왔던 조선의 역사를 이제는 그 때의 회화와 함께 만나볼 수 있게 되었다.

 

[조선회화실록]은 역사와 당대의 그림들을 함께 맛볼 수 있다. '조선'하면 빠질 수 없는 인물. 바로 태조가 아닐까. <태조 어진>은 태조 재위 당시에 그려진 원본이 아니라 1872년 이모한 작품이라고 전해진다. 그림이 낡거나 상했다면 이를 이모하여 새것으로 모시는데 어진의 경우에는 <태조 어진> 외에도 후대에 이모된 예가 적지 않다고 한다. 화면 정중앙에서 중심을 차지하고 있는 태조. 용상은 금빛 용문으로 가득하고 앉은 자태만으로도 큰 키에 당당한 체구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희로애락을 드러내놓지 않은 표정. 저자는 가볍지 않은 인물의 성품과 함께 표정을 드러내지 않아야 하는 지위를 보여주는 듯하다고 해설한다. 유능한 무장이었던 이성계. <태조 어진>에 대한 설명과 함께 그가 즉위할 당시의 상황, 중국 황제처럼 황색 곤룡포를 입지 않은 이유, 명과의 관계, 그 유명한 왕자의 난을 일으킨 세자 책봉 등의 역사적으로 흥미로운 이야기가 함께 실려 있다.

 

또 눈길을 끄는 그림 하나. 광해군 시절에 그려진 <파진대적도>이다. 명과 후금 사이에서 갈등에 휩싸인 조선의 현실. 결국 명의 원군으로 명과 후금의 전쟁에 끼어들지만 이 <파진대적도>를 통해 당시의 긴장과 상황을 더 생생하게 느껴볼 수 있다. 그림은 [충렬록]의 삽화로 제작되었는데 각 열마다 다른 무기를 들고 적을 향해 선 조선군의 모습을 강조했다. [충렬록]은 김응하라는 장군의 장렬한 죽음에 대한 헌사인 까닭에 버드나무에 기대 선 그의 모습이 그려져 있는 것이 조금 어색하게 보이기도 하다. 저자는 전쟁이 끝난 후 패전 수습과 공훈에 대한 포상에 이르기까지 까다로운 문제를 해결해야 했던 조선이, 명나라에 대해 의리와 충성을 다했음을 알리기 위함이라고 해설한다. 그리고 역시 이어지는 광해군의 정치적 역량, 계축옥사 등 굵직한 사건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앞서 언급한 <태조 어진>과 대척점에 있는 것은 어쩌면 <고종 어진>이 아닐까 싶다. 흥선대원군이 실각한 후 고종의 친정이 시작되었고, 그 이후 맺게 된 외국과의 통상조약, 일본과의 조일수호조규, 조미수호통상조약, 갑신정변 등은 나라가 얼마나 어지럽고 혼란스러웠을 지 짐작하게 한다. 그 이후의 상황이야 자세히 언급하지 않아도 다 아실 것이기에. 그런 배경 속에 그려진 <고종 어진> 속 고종은 군주다운 위엄을 찾아보기 어렵다고 적혀 있다. 기분 탓일까. <고종 어진>을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답답해지는 것 같다.

 

뒤에 실린 -도판 목록-을 보면 한층 생생하게 그림들을 느낄 수 있다. 역사와 그림이 만나는 지점에서 잘 몰랐던 새로운 이야기가 피어난다. 사관과 화가의 붓이 포착한 500년 조선사의 명장면, 부디 놓치지 마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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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말들
천경우 지음 / 현대문학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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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ppy Journey. 인도 뭄바이에서 이루어진 공공미술 프로젝트의 제목이다. 저자는 기차역에서 만난 사람들을 작품에 참여시켜 프로젝트를 함께 완성하는 시간을 보냈다. 모두가 행복하지만은 않을, 각자의 삶의 무게 속에서 허덕이는 인도 사람들에게 이 말이 얼마나 역설적으로 들렸을지. 저자는 '당신이 가지고 있는 물건 중에서 버리고 싶거나 타인에게 주고 싶은 물건 하나를 가져오십시오. 그리고 당신의 이름과 함께 이 물건이 어디에서 왔는지, 얼마나 먼 곳에서 왔는지를 적어주십시오'라고 요청하며 기차역에서 익명의 여행자들을 참여자이자 조력자로 이 프로젝트에 참여시켰다. 그들 삶의 일부를 공유하면서 하나의 공동작품을 완성해나가는 과정이란.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프로젝트를 눈여겨보고 기꺼이 자신의 일부를 제공했을까. 누군가는 토끼 발을, 누군가는 간단한 이력이 적힌 기차표를, 누군가는 아무 말 없이 물건을 건네주고 사라지지만 누군가는 며칠을 오가며 지켜보다가 귀한 무언가를 집에서 가져오기도 했다. 놀라운 것은 쓸 데 없는 물건이 대부분일 것이라 예상한 저자와 큐레이터에게, 누군가는 딸이 태어나서 처음으로 신었던 분홍색 양말을 가져다주기도 하고, 또 어떤 이는 20년간 팔에서 끼고 다니던 팔찌를 빼서 주기도 했다는 점이다.

 

단순한 사진 에세이집인 줄 알았는데, 울랄라, 당장 첫장부터 독특하다. 사진작가가 피사체를 정해두고 사진을 찍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주변 사람들을 모두 이 과정에 동참시킨다. 작가는 이미지가 아닌 실재의 과정을 불러들인 것은 그것을 감지하는 지각을 통해 상상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기 위함이라고 했다. 우리가 손으로 느끼고 만질 수 있는 실재. 공공장소에서 이동하는 사람들을 작품에 참여시키는 불안정하고 도전적인 일을 통해 작가가 얻고자 했던 것은, 사람들에게 전달하고자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에게 자신의 물건을 전달한 사람들은 과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그가 행한 도전이, 사람들이 건넨 물건들이, 뜻하지 않게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스페인의 섬마을 안드라치의 중심가에서는 주민들에게 100개의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타인에게 하고 싶었던 질문들, 하지만 할 수 없었던 질문들'을. 그리고 그 질문의 형식은 반드시 '애' 혹은 '아니오'로 대답할 수 있어야 했다. <고통의 무게>라는 제목을 가진 챕터에서는 스페인 북부와 한국에서 이루어졌다. '당신이 생각하는 고통의 무게만큼의 돌을 모아 보자기에 담아주십시오'라는 요청에 사람들은 자신의 이름과 출생지, 생년월일이 적힌 보자기에 돌을 담아 가져왔다고 한다. 왜 그는 고통받는 것에 관심을 가졌을까? 빌바오의 일간지 <베리아>기자에게 받은 이 질문에 저자는 '우리가 얼마나 많은 고통을 가지고 있는지를 묻는 것은 스스로 얼마나 행복한지를 묻는 물음과 같을 것이다'라고 대답했다. <1000개의 이름들>은 암스테르담에서 이루어진 퍼포먼스-설치 작업으로, 시민들이 빈 공간을 채워 작업을 완성시키는 주체로 참여하기를 바랐다.

 

처음에는 슬렁슬렁 넘겨나가던 페이지가 점차 묵직해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저 괴상해보이기만 하는 작업들. 그 의미를 알 수 없는 퍼포먼스들에 점점 빨려들어갔다. 사진에서는 피사체가 그 주인공처럼 보이지만, 어쩌면 그 피사체조차도 작가의 의도 아래 만들어진 것일 수도 있다. 이 작품에 실린 퍼포먼스들은, 물론 작가와 큐레이터가 기획하고 실행한 것이지만 그 안에서 민낯을 보여주고 있는 것은 일반 사람들이었다. 어째서인지 그 점이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었다. 소통과 교감을 강조한 작가의 퍼포먼스 앞에서 그들은 자신의 내면에서 무엇을 발견했을까. 책을 읽는 내내 내가 실제로 이 작업에 참여하고 있는 것 같은 현장감, '당신은 지금 카메라 앞에 앉아 있는 게 아니라, 자기 자신 앞에 앉아 있는 것입니다' 라는 말이 전하는 내적 교감에 마음이 벅차오른다. 작가가 던지는 하나하나의 질문 앞에서 마치 내 자신을 찾아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고, 그 어떤 자기계발서나 에세이보다 훌륭하다고 느꼈다. 자신의 내면과 조우하고 싶은 사람들, 마음이 혼란으로 가득차 괴로운 사람들이 읽는다면 차분하게 안정시켜줄만한 책인 듯하다. 읽을 수록 커지는 매력. 멋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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