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0만의 평화


오두막 The Shack, 윌리엄 폴 영, 세계사, 2009-03-16.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책 Top 100’

  전 세계 1800만 부 돌파, 전 세계 46개국 출간


  오두막이 이룬 문구를 적고 보니 뜬금 1,800만에 눈이 간다. 엄청난 베스트셀러라고 놀라워하고 있는데 갑자기 영화 ‘명량’이 1,700만 관객을 기록했다는 생각이 난 것이다. 뭐라고 해야 할까. 정녕 영화시장과 도서시장은 격차가 클 수밖에 없는 건가. 갈수록 독서인구가 줄고 출판시장이 위축되고 있다는 사실에 영화보다 책을 더 즐기는 사람으로서, 안타까운 마음 가득하다. 그래도 내가 죽을 때까진 종이책이 사라지지는 않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은 여전히 쏟아져 나오고 아직 읽지 않은 책들도 더불어 늘어나고 있다. 어쨌든 『오두막』이 전세계 사람들로부터 사랑받은 책이라고 하니 난 좀 덜 사랑하기로 했다.

 『오두막』이 어떤 분위기로 흐를지 예상을 했지만 초점은 두가지였다. 실화인가. 맥이 겪은 사건뿐만 아니라 오두막에서의 경험까지 말이다. 이 책을 마지막까지 읽게 만든 힘은 그것이었을 게다. 실화인가, 아닌가.

  충격적인 사건을 겪고 난 후 사람들은 무언가에 의지하고 싶어한다. 혹은 의지하고 믿었던 것에 배신감을 느끼기도 한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 벌어졌는가, 그로 인해 상처받고 이전과는 다르게 변하기도 한다. 이 책의 주인공 맥 역시 마찬가지다. 사랑하는 막내딸의 실종·사망이라는 ‘거대한 슬픔’을 겪고 변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의 변화의 방향은 다르다. 그가 이 거대한 슬픔에서 회복·치유되는 과정이 오두막에서 아니 구체적으로는 하나님이라는 신앙 안에서 이루어진다. 


이 비극적인 사건으로 인해 맥과 하나님과의 사이도 벌어졌지만 그는 점점 더 벌어지는 간격을 무시했다. 그는 냉랭하고 무감동한 신앙을 받아들이려 했고, 그 안에서 어느 정도 위안과 평안을 얻었다.


 결국 맥은 이 냉랭한 거리감을 없애고 하나님의 안에서 진정 위안과 평안을 얻게 된다. 이 과정이 오두막에서 하나님, 예수, 성령을 만나 함께 얘기를 나누면서 깨닫는 형태로 소설은 전개된다. 딸은 잃은 아버지의 절규는 하나님의 사랑을 믿으려 하지 않지만 살인자까지 용서하는 종교적인 색채가 가득하다.


하나님이라면 쉽게 하겠지만 당신은 그렇게 못한다는 뜻인가요? 당신의 다섯 아이 중 어느 셋을 지옥으로 보내겠어요?

당신은 했어요. 당시의 전부를 희생한다고 해도 당신의 아이들을 사랑할 가치가 있다고 심판했어요. 예수님의 사랑이 바로 그런 것이었죠.

이제 당신은 파파의 마음도 알게 됐어요. 자기 아이들을 완벽하게 사랑하는 그 마음을.


  종교적인 시각을 가지고 보지 않아서인지 치유를 위해 나아가는 이들 대화에서 모순을 느꼈다. 왜 이토록 하나님이 인간을 사랑하심은 꼭, 사랑하는 이의 충격적인 죽음 뒤에 알아야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슬픔과 고통을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으로 종교든 다른 무엇에든 ‘의지’하고픈 인간의 마음이겠지만 나는 이런 사건을 겪으며 하나님의 사랑을 확인하고 싶지는 않다. 저런 질문을 하고 못하겠다는 답을 듣고서야 “잘했어, 바로 그거야”라는 말을 하는 신이라니…. 내 마음이 바로 그것이다라고 한들. 이 책 속에서의 용서와 사랑이 맹목적 강요로 느껴졌다.


예수님이 돌아가셔야 했던 건 정말 슬픈 일이었어요.

   그런 줄 알고 있었어요. 고마워요. 하지만 우리가 전혀 슬프지 않았다는 걸 알아야 해요.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었죠.


  이것부터 수용하지 않는 한 나에게 이 테마는 영원한 물음표일 것이다.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라는 말. 인간이 따지는 가치는 평가절하하면서 신의 이름으로 말하는. 맥의 막내딸 미시의 죽음에 대해서도 저 말이 나올 때면 어쨌든 내겐 영원한 미지의 세계구나 느낀다. 신. 종교는 인간이 만들어낸 최고일까, 최악일까. 아주 심오하고 깊은 뜻은 취하겠지만 어쩌면 규율속에 스스로를 가두고 있는 것은 아닌지. 종교가 인간을 자유롭게, 선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옥죄고 있다는 생각이 자꾸 드는 것은 아름다운 그 세계속에 머물지 않고 밖에서 들여다보기 때문일까. 내가 아는 종교는 밖에서 보는, 뉴스기사로 접하는 사건일 뿐이니 그것은 종교가 아니다 할 수는 있겠다. 내가 신뢰하지 못하는 것은 종교 자체가 아니라 종교라는 이름으로 둘러싸고 있는 세계일지도 모르겠다.

  신을 찾고 싶을 때도 있고 그 안에서 평화롭고 싶을 때도 있지만 실천이 어려운 이유는 이 말의 뜻을 진정 가슴으로 알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내겐 나만의 오두막이 무언가 생각해본다. 종교가 답이 아니라면 상처와 고통을 치유하기 위해 나는 어떠한 방법을 쓰고 있는가. 전세계 수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고 감동하고 영혼의 치유를 얻었다는 얘기를 들으면 그런 마음이 부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내 마음은 왜 이다지도 영혼의 치유를 거부하나.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