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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영혼의 장소


12.jpg RED BOOK - 나를 찾아 떠나는 영혼의 여행

칼 구스타프 융, 김세용 옮김, 부글북스, 2012년 05월 10일.


   『RED BOOK』은 융의 유작이다. 융이 직접 쓰고 삽화를    그려 묶은 이 책을 라틴어로 새로운 책이라는 뜻의 ‘Liber Novus’라 붙였다 한다. 하지만 미완으로 남겨졌고 오랜 시   간이 흘러 2001년에야 세상에 나왔고 2009년에 책으로 출   간되었다. 융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에 쓰기 시작해 융의 핵심적인 이론이 다 담겨있는 바다가로 흘러가는 물줄기가 시작되는 곳이라고 할 수 있다. 융 자신의 무의식의 세계에 대한 깊이 있는 탐구서라고 할 수 있는데 융이 그린 그림들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물론 무의식의 측면을 상징하는 그림이겠지만 그림이 갖는 의미에 대해서는 부족하게 이해되었지만, 색감을 비롯해 그림 자체는 잘 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불어 복잡미묘한 세계 속에 빠져 헤어나올 수 없는 기분이 들기도 했지만.

  융이 펼쳐보이는 환상과 내면에 대한 무의식은 이해의 차원과 별개로 계속 끌림으로 이끈다. 좀더 명확히 이 아저씨...좀 끌린다. 아니, 그가 살고 있는 집이 더욱 끌린다. 살고 있는 집, 그가 작업하는 공간인 탑. 호숫가에 자리한 집, 미로같고 문명의 기구들을 들이지 않은 그 탑. 거기서 생활하는 그의 삶을 통째 훔치고 싶다.

  융은 어린 시절 어머니의 친구가 보덴호숫가에 성을 가지고 있던 것을 기억한다. 그리고 그 때의 호숫가에서 놀던 시절을 생각하면 그 호소의 광활함을 즐거움으로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그때 호수 근처에 갈아야겠다는 생각이 그의 마음에 깊이 박혔다고 했다. 그 어린 날의 기억이, 그를 호숫가로 이끈 것일까. 이곳이 융이 말하는 장소일 것이다.


사람마다 자신이 영혼 안에 조용한 장소를 두고 있다. 거기서는 모든 것이 자명하고 쉽게 설명된다. 사람이 삶의 혼란에 직면하게 될 때 물러나고 싶어 하는 곳이다. 왜냐하면 그곳에선 모든 것이 단순하고 명쾌하고, 목적도 분명하고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미국 유학을 한 어느 분이 번역서를 출간하기로 하고 번역하면서 책 속에 나오는 Jung이라는 이 명칭을 계속 정이라고 하던 것이 기억난다. 그때 ‘융님을 모르다니’하며 속으로 놀랬지만, Jung를 융으로 읽는다는 것 빼고 내가 융에 대해 아는 것이 무엇이 있었나. 거듭 책을 읽어도 융에 대해서 그의 꿈에 대해서 무의식에 대해서 이론에 대해서 안다고 말할 자신이 없다. 그래도 이해가 되는 대로 또는 되지 않는 대로 문득 문득 융의 무의식의 세계에 빠지고 싶은 날들이 있다. 어쩜 내 깊은 무의식으로 들어가고 싶은 것을 우회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나의 내면에 있는 이 시대의 정신은 궁극적 의미의 위대함과 그 광대함에 대해서는 인정하려 하지만 궁극적 의미의 사소함에 대해서는 인정하려 들지 않았다. 그러나 깊은 곳의 정신이 이러한 오만을 정복했다. 나는 나의 내면에 있는 불멸성을 치유하는 수단으로 궁극적 의미의 사소함을 받아들여야 했다. 그 사소함이 나의 내면을 온통 들쑤셔놓았다. 그 이유는 그것이 영광스럽지도 않고 영웅적이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깊은 곳의 정신의 집게가 나를 꼼짝 못하게 잡았다. 그래서 나는 할 수 없이 쓰디쓴 약을 삼켜야만 했다.


  융은 자신을 깊이 들여다보며 ‘꿈’을 발견했다. 꿈에 관한 기억을 글로 적으며 정신, 영혼에 대한 깊이 있는 탐구를 펼친다. 영혼의 본질과 의식과 무의식, 신과 악과 남성성과 여성성 등 때로는 경구처럼 글들을 기록하고 있다. 융은 자유가 외면에 있지 않고 내면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끊임없이 내면을 탐구하며 영혼의 본질을 찾아가는 것은 자유를 찾는 것과 다르지 않는 일이다. 융은 강력한 행동을 통해서 외적 자유를 성취할 수 있지만 내면적 자유를 창조하는 것은 상상을 통해서 가능하다고 말하고 있다. 또한 융의 대표적인 개념인 아니마와 아니무스, 즉 우리의 내면엔 남성 속의 여성과 여성 속의 남성이 있기에 어느 한쪽을 부정하지 않고 인정할 때에야 완전한 영혼을 갖출 수 있다고 말한다.


죽음이 없다면, 생명은 무의미해질 것이다. 영원성이 다시 일어나면서 생명 자체의 의미를 부정하기 때문이다. 무엇인가가 되기 위해, 그리고 당신의 존재를 즐기기 위해 당신은 죽음을 필요로 하고, 한계는 당신으로 하여금 당신의 존재를 성취할 수 있도록 만든다.


  영혼이라거나 내면을 찾는다는 것은 재미있는 놀이처럼 때론 뜬금없는 놀이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실체를 잡을 수 없는 이 영혼의 목소리를 쫓으려고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쩌면 지극히 개인적인 꿈의 기록에서 비롯한 상징들을 당연한듯 수용하며 내면을 해석하게 되는 까닭은 무얼까. 자고나면 사라지는 것이 훨씬 많지만 더러 생생하게 기억되는 꿈, 그 이미지에서 내 영혼의 본질을 찾아낼 수 있을까를 생각하는 밤이다.


부디, 생각하길 좋아하는 사람은 자신의 쾌락을 받아들이고 느끼길 좋아하는 사람은 자신의 사고를 받아들이길. 그것이 곧 사람을 제 길로 안내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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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


기대의 심리학 - 잘못된 기대로 힘들어하는 12가지 이유 

선안남, 2010. 

  


  결론이란 생각하기에 지친 지점이다.

                                    - 마틴 피셔

 

  그러고보니, 어떤 회의에서는 지쳐서 ‘이만 결론내자’고 외친 적이 있다. 더 이상 생각할 거리가 없이 지친 지점에 이르러 결론이 난다. 이렇게 해서 결정된 결론에 대한 만족감이란, 그리 높지 않다. 처음 시작할 땐 분명 최고의 결론을 이끌어 내리라 생각했던 기대가 충족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기대란, 기대하고 있는 그 순간의 만족감은 높을지언정 기대하는 바가 추구하는 종착역에서 늘 만족감을 최대로 높여주진 않는다. 그럼에도 희망없는 나날을 견딤에 기대가 이끄는 공이 있음을 부인하지는 못한다. 기대란, 나에게나 타인에게나 같은 무게를 달고 오는 것이 아닐까.

  기대의 심리학은 자신에 대한 스스로와 타인의 기대가 심리적으로 어떤 영향을 주는지에 대해 설명한다. 익숙하게 얘기되는 것처럼 그 기대로 인한 긍정적, 부정적인 영향에 대해 다룬다. 피그말리온 효과나 아틀라스증후군, 피터팬 증후군이 이 기대와 연결되어 있음 또한 설명한다.


피그말리온 효과가 담고 있는 메시지는 희망적이고 교훈적이다. 이 메시지는 발전을 거듭해 개인적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불안과 절망의 시대에 좋은 것을 기대함으로써, 더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희망과 확신을 주는 것 같기도 하다. ‘기대하면 그대로 이루어지리리’는 메시지는 지금의 고통에 의미를 부여하고, 절망에 빠진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다시 시작할 의지와 에너지를 심어주기도 한다. 하지만 이 효과에도 맹점은 있다. 주변의 관심과 기대가 그들의 성취에 압박을 주고, 기대가 ‘이루어지길 기대한다’를 넘어 ‘이루어지지 않으면 안된다’로 발전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모든 현상들은 긍정과 부정을 안고 있다. 그것이 발현되는 방식에 따라 긍정이냐 부정이냐의 결과가 나타나겠지만 사람들은 부정적 효과를 더 염려하고 있지는 않을까. 이처럼 바라는 대로 이루어진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하기도 하고, 결과에 따라 그 효용성이 가려질 것만 같은 기대가 그 과정에도 부정성을 한껏 안고 있다는 것도 안다. 타인의 기대에 의해 더욱 더 가해지는 부담감이 그것이다. 특히 한국 사회에서는 가족 또는 타인의 시선에 민감하기에 느끼는 부담은 크다. 이 모든 것들이 현실적이지 않은 기대에서 비롯된다. 꿈꾸는 것은 좋지만 마구 달려나가는 비현실적인 기대 하나가 삶을 더욱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 되어 버린다.

  저자는 그렇기에 기대에 합리와 현실을 주문한다. 타인이 던지는 기대에 부합하려 발버둥칠 필요가 없다는 것이고 힘겨움의 이유 속에 들어찬 기대에 대해 잘 살펴봐야 한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그것이 지나친 기대라는 것을, 비현실적인 것임을 안다한들 “오우, 그건 이뤄질 가능성이 없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가. “더, 더, 더 노력해보겠습니다”가 해야 할 말이고 해야 할 일이라는 것을 이 사회는 보여준다. 생각보다 오로지 나 자신을 인식하고 산다는 건, 어렵다. 그럴 수 있었다면 애당초 타인의 기대 때문에 힘들 일이 무엇 있었겠는가.

  이 책에서 할애하는 많은 부분은 타인에 대한 기대에 부응하느라 힘들어하는 나에 대한 것이 주다. 그로 인한 다양한 문제점들과 빠져버리게 되는 오류들을 실제 사례와 임상 실험을 통해 보여준다. 그에 관한 이야기들은 일상생활에서 자주 겪고 있는 모습들이다. 알고 있으면서도 행하지 못함에서, 인식이 재빨리 전환되지 않는다. 그렇기에 더 이론이든 경험이든 이런 글들을 통해 더더 깨우치고 느끼면서 변화할 수 있기를 노력해봐야 하는 것인지도.

  그런데 타인의 기대로 인해 힘든 것과 더불어 이 사회를 살아가다 보면 타인에게 기대하는 것이 충족되지 못해 힘든 경우도 많다. 사회는 더불어 사는 것이니까. 이때의 기대란 사회가 흘러가야 한다고 생각되는 마땅한 상식과 정의에 대한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공동체적 질서와 가치,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될 인간존중을 지켜 가리라는 기대 말이다. 그래서 지난 겨울엔 이런 기대로 희망에 부풀었을 테고 여전히 기대를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세상이 변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나날이 사그라진다는 것은 또 얼마만큼의 좌절을 안겨줄까. 이런 기대로 인한 힘겨움 역시 이 책에서 말하는 것과 같은 식으로 수용하면 되는 것일까. 묻혀두었던 일들이 하나씩 끄집어 나오는데도 도로 들어가버리는 분위기가, 그것들만을 공고하게 묶으며 감싸는 분위가가 얼마나 강했고, 얼마나 강한지를 새삼 느끼며 이것은 과연 잘못된 기대인가를 묻게 된다. 좀더 현실적인 기대로 합리적인 수준으로 그 기대를 정해야 한다고 말한다면 도대체 그 수준은, 그 기준은 얼마만큼이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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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자와 비판자


나는 왜 눈치를 보는가- 나를 발견하는 심리학, 가토 다이조저, 고즈윈.


  눈치를 본다는 건 흔히들 말하는 한가지만이 아니라 행동에 대한 여러 의미를 말해 준다. 나약하고 부족한 자아를 눈치의 표상으로 보통 얘기하지만 세심하고 배려심이 많다는 얘기일 수도 있다. 또한 눈치없다는 말은 타박으로 주로 사용되느니만큼 센스있음을 위한 전제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눈치를 본다’는 건 그리 유쾌한 상황과 느낌을 주지 않는다는 점은 확실하다.

  ‘나를 발견하는 심리학’이란 부제가 이 이야기의 중심이다. 발견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저자는 항상 불안하고 인간관계에서 어려움을 겪는 이들을 위한 처방전처럼 이야기를 펼친다. 인간관계는 누구나 어려운 것이며 그 이유에 대해 찾고 해결방안을 제시한다. 저자는 불안과 인간관계의 어려움은 ‘유아적 의존욕구’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그렇기에 그 해결책은 내재된 의존욕구를 파악하며 자신과 자신의 삶의 태도에 대해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어쩌면 자주 모든 문제의 해결책으로 제시하는 나를 사랑하는 일, 그것이 모든 문제의 해결방안이라면 결국 나를 사랑하는 일은 나를 잘 아는 데서 시작하는 일이다. 이를 위해 60개의 문제점을 제시하고 있다.

  가령, 작은 일에도 상처를 받는 것이나 타인에게 헌신적으로 대하려고 하는 사람은 자존감이 낮기 때문이다. 가까운 사람이 하는 말이 ‘불만투성이’로 느껴진다면 그것은 어리광을 부리고 싶은 유아적 욕구를 억누르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살아가면서 부닥치는 많은 애로사항은 결국 내면아이의 문제로 귀결되는 것이다. 프로이트와 융의 심리학의 일정 부분들이 이 책을 지탱하는 기본이다.

  결국 유아기 때 제대로 충족되지 못한 욕구들이 성인이 되어서 ‘자아’를 뚫고 나와서 나를 지배하고 있다는 것인데, 심술궂고 미성숙한 어린 나의 모습들이 지금 불완전한 생각들 때문에 힘겨워하는 나의 모습을 만들어 내고 있다는 것을 거듭 말한다. 얼핏 인지는 하면서도 실제 생활을 하면서는 늘 까먹게 되는 마음속 깊은 유아적 의존 행동들. 뒤돌아서는 후회하고 답답해하면서도 사실, 쉽게 그 마음에서 벗어나기는 쉽지 않다. 이런 심리학책을 백번 읽은들 머릿속에서는 알고 있지만 마음에서 아이가 튀어나와 버리는 일이 빠를 때도 있으니까. 어쩌면 더 깊이 들어가지 않기 때문에 진정 떨쳐내지 못했을 지 모를 일이고. 인간의 마음이 성장하는데 필요한 이해자와 비판자가 순서를 무시해서일지도. 이해자와 비판자가 적절하게 나오기를 바란다면, 그것은 나의 마음속을 잘, 들여다보고 알아가는 일이라는 것은 변할 수 없는 핵심요소이다.


심리학자 필립 짐바르도는 ‘부끄럼을 잘 타는 사람은 자신에 대한 최악의 비평가’라고 말한 바 있다. 인간의 마음이 성장하는 데는 순서가 있다. 자상한 이해자가 존재하고 그 다음 단계에서 비판자가 등장하는 것은 별 문제가 안 된다. 그러나 자상한 이해자가 없는 상태에서 갑자기 비판자를 만나게 되면 마음이 파괴되고 만다. 이렇게 되면 자기 자신에 대해 자신감을 잃게 되고 스스로를 비판하게 되어 모든 일에 지나치게 부끄럼을 타게 된다.


  이런 저런 상황에 대해 심리학적 접근은 항상 재미있다. 이 책 역시 쉽고 간편하게 설명하고 있다. 미용실에 가득한 잡지에서 자주 보는 심리학테스트 같은 느낌이 들어서인지 사실, 인생의 중요한 문제들을 일깨우고 생각하게 만드는 내용들인데도 가볍게 여겨지고 가뿐하게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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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거짓말을 해봐!


거짓말의 심리학 - CIA 거짓말 수사 베테랑이 전수하는 거짓말 간파하는 법


필립 휴스턴, 마이클 플로이드, 수잔 카니세로, 돈 테넌트 지음/박인균 옮김, 추수밭, 2013..


   상대방의 몸짓에서 거짓말을 읽어낼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일상의 대화는 상대방을 예의 주시하면서 이뤄지지는 않는 까닭에 행동에서 나타나는 메지시를 간과하기 쉽다. 자주 보는 사람이라면 평소와는 다른 행동이 눈에 띌 수 있겠지만 다르다는 것을 알아낼지언정 그 세세한 의미를 간파할 수 있을까. 그럼에도 호기심은 알고 싶다고 계속 신호를 보낼지도 모른다.

  이 책은 전직 CIA 거짓말 탐지 조사관들이 조사와 심문경험을 바탕으로 한 거짓말 탐지 방법을 소개한다. 어떤 특별한 방법이 있을까라는 궁금증이 그들의 경험과 경력에 기대어 증폭하는데, 여러 현장에서 활용되고 있다고 한다. 이들 조사의 방법들이 결국 인간에게 적용되는 것이니만큼 일상생활에서도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다. 요즘은 원체 거짓과 사기가 판치는 세상이라는 점에서, 몇가지 방법들을 작 숙지하고 있다면 사기꾼들의 거짓에 속지 않을 수 있지 않을까. 뉴스들은 어떻게 저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싶은 황당한 사기와 술수들이 넘쳐나는데 그렇기에 속인 자들보다 ‘어떻게 속아 넘어가는가’ 하면서 속은 자들에 더욱 놀랄 때가 있다. 심리학자들은 충분히 그럴 요인들에 대해서도 속속 설명하며 생각보다 많은 이들이 당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심리학을 안다는 것은 여러 면에서 재밌고 유용하다는 점은 확실하다. 이론과 적용이 따로 놀아서 그렇지…. 정권에서 국민세금을 동원하며 인력을 동원하며 했다는 활동, 인터넷상에서 판치는 댓글부대들은 ‘심리전단’이다. 앞선 정권이 공권력으로 기가 찰 수준으로 활동해 왔음이 증거로 속속 드러나고 있는 가운데 전직 대통령을 수사하면서 행한 일들도 드러나고 있다. “논두렁 시계’…국정원, 더 치명적 프레임 위해 심리학자들 동원”. 가장 모멸감을 줄 수 있는 방법을 강행하기 위해 심리학자들을 동원해 다양한 시나리오를 짰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히틀러가 생각나지 않을 수 없었다. 레니 리펜슈탈을 통해 자신의 이미지를 극대화하고 괴벨스를 통해 선전 또한 극대화하는데 몰두한 히틀러 역시 온갖 선전전을 동원했고 그 선전술에 심리학을 동원했다.

 

악한 사람들이 이 책을 읽고 거짓말을 더 능숙하게 하는 방법을 배울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걱정은 접어둬도 좋다. 거짓을 탐지하는 우리의 방법론은 인간이 자극에 반응하는 방식을 중심으로 설계되어 있다. 반응을 통해 나타나는 특정 행동을 최소화하거나 없앨 수는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행동들은 드러나게 마련이다.


  이런 마음을 아는 듯 저자는 다음과 같이 우려를 안다는 듯 쓰고 있다. 이 문장에 웃음이 났다. 동원되지 않고 이용당하지 않을 심리에 관해서도 물론 분석되고 있다. 어쨌든 ‘거짓말’을 알아낼 수 있다면 그것으로 인해 타인에게 이용당하지 않을 수 있다면 정말 좋겠다. 결국 이러한 노하우를 안다는 것은 사물을 생각하고 판단하는데 도움을 주는 것이다. 당장은 대화 상대가 거짓말을 하는지 아닌지 알아서 뭐해 할 지 모르지만 생각을 확장시키는데도 필요한 일이다. 마냥 무언가에 휩쓸리지 않게 될지도. 인터넷은 하루가 멀다 하고 ‘진실공방’이라는 이름으로 수많은 정보를 생산하고 있지만 그 진실을 알아내는 것은 결국 그 글을 읽는 사람의 몫이 되어버리는 일도 다반사이니까. 언제든 내 판단력을 조금 믿을 수 있는 방법을 가지고 있는 일도 좋을 수도.

  한편으론 이렇게 거짓말을 판별하는 법까지 배워야 하나 싶다. 산다는 건 참으로 복잡하고 씁쓸한 일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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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를 냉장고에 넣는 방법

 

생각의 지도- 동양과 서양, 세상을 바라보는 서로 다른 시선

 

리처드 니스벳 조, 최인철 옮김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는 방법에 관해 문과와 이과생의 반응이 다른 유머코드를 조금 진지하게 들여다보면 느끼게 된다. 똑같은 장면을 두고도 서로의 경험과 이해에 따른 해석을 하게 되는 것을 반복적으로 겪게 되면 어느 순간 너와 나에 대한 성격과 성향을 확정짓게 된다. 동양과 서양의 사고방식의 차이도 이와 같은 것 아닐까. 내가 배워 온 것대로 내가 아는 선에서 문제를 바라보고 해결하게 되는 것.

   동양과 서양은 여러 가지로 다르다고 한다. 어떤 점이, 어떻게 다른 지 많이도 이야기되기도 한 것 같은데 이미 우리의 뇌리에는 동양과 서양은 무조건 다르다가 지배해 버린 듯하다. 문화적 차이인지, 유전적 차이인지에 관한 논쟁도 있긴 하지만 어쨌든 ‘다르다’.

   이 책은 동양과 사양의 ‘사고방식’의 차이에 대해 논증하고 있다. 저자인 리처드 니스벳은 문화가 인간의 사고방식을 지배한다는 입장이며 심리학자로 이것을 심리적 차이로 접근·분석하여 총9장으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동양과 서양이 여러 분야에서 나타내는 차이는 ‘항상성’을 가지고 있다. 즉, 특정한 사회적 행위들은 특정한 세계관을 가져오고, 그 세계관은 특정한 사고 과정을 유발하며, 그 사고 과정은 역으로 원래의 사회적 행위들과 세계관을 다시 강화시킨다. 이런 항상성을 이해하는 것은 인간 사고의 본질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또한 주어진 사회적 조건에서 어떻게 사고하는 것이 바람직하고, 또 다른 문화권의 사람들에게 어떤 사고 방식을 가르치는 것이 중요한지를 논하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p20

 

    리처드 니스벳은 서양은 개인주의적 관점을 동양은 개인과 주변 인물 간의 관계를 부각시키며 이것은 일찌감치 아이들의 교육에서도 나타나고 있다고 말한다. 사회심리학자인 도드 코헨과 알렉스 건즈의 연구 결과 또한 동양인들은 사건에 대해 종합적인 관점을 가지고 다른 사람의 시각에서 보는 반면 서양인들은 주로 자신의 관점, 즉 안에서 밖을 내다보는 관점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동양적 사고에서 바라본 개인은 구체적 맥락 속에 있는 존재로 구체적인 어떤 사람과 구체적인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 존재로 사회적 상황에서 인간을 분리시키는 것을 낯설게 생각하는데 인류학자 에드워드 홀은 이 차이를 ‘저맥락’ 사회와 ‘고맥락’ 사회로 구분 설명했다. 저맥락 사회인 서양에서는 사람을 맥락에서 떠어내어 이야기하는 것이 가능하기에 개인은 맥락에 속박되지 않은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행위자 자유롭게 옮겨 다닐 수 있다. 그러나 고맥락 사회인 동양에서 인간이란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유동적인 존재로서 주변 맥락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는 것이다. 이런 연구결과와 저자가 실험한 연구들을 종합하여 저자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현대의 동양인들은 고대의 동양인들처럼 세상을 종합적으로 이해한다. 그들은 전제 맥락에 많은 주의를 기울이고 사건들 사이의 관계성을 파악하는데 익숙하며, 세상이 복잡하고 매우 가변적인 곳이라 믿는다. 또한 세상의 구성 요소들은 서로 얽혀 있고, 세상사는 양극단 사이에서 순환을 반복하는 형태로 진행되며 그러한 사건들을 통제하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과의 협동과 조정이 꼭 필요하다고 믿는다. p105~106

 

   어쨌든 동양과 서양은 서로 다른 사고방식의 차이를 가지고 있다. 왜 이러한 차이가 나타나는가. 저자는 이것은 서로 다른 생화환경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이것이 서로 다른 경제적·정치적·사회적 체제를 초래했다고 설명한다. 경제적인 차이가 사회구조의 차이로 사회구조적 차이가 사회의 규범과 육아방식을 만들어내며 환경에서 주의를 기울여야 할 부분을 결정지었다고. 그리고 서로 다른 이해가 결국 지각과 사고 과정(인식론)의 차이를 가져왔다. 그래서 이런 차이가 뭐 어쨌단 말인가, 어떡해야 한단 말인가.

 

사회의 인종적 다양성은 여러 가지 이유로 옹호되고 있다. 그중 하나가 다양한 문화권의 사람들이 공존함으로써 교육적 환경과 업무 환경이 더 풍성해진다는 것이다. 우리의 연구는, 상이한 사고방식을 가진 문화권의 사람들이 함께 일하면 어떤 문제든지 쉽게 해결할 수 있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동양인과 서양인의 사고 방식과 기술이 매우 다르기 때문에 서로의 단점을 보완해줄 수 있을 것이다. 어떤 문제든지 같은 문화권 사람들끼리만 모여서 해결하기 보다는 서로 다른 문화권의 사람들이 함께 해결할 때 문제 해결이 훨씬 쉬울 것이라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p222

 

   차이는 다름을 말하는 것이다. ‘옳고 그르다’도 '우위'의 문제도 아니다. 각각은 자신들이 문화적으로 익숙하게 배우고 살아온 대로 기준을 정해 상황을 해결하고 판단하는 것뿐이다. 이것을 잘 알며 어느 때인가는 세계가 지구촌이라는 말로 서로 이해와 존중하며 살아나가는 것 같았는데 점점 서로 자문화를 강조하며 갈등만이 부각되고 있는 것 같다. 이성과 감성으로 서로를 존중하는 분위기가 가득했다가 왜 차이를 차별과 공격으로 인식하고 인식한 대로 적대적으로 변하는 상황이 되었는지 모르겠다. 어쩌면 강대국의 논리, 혹은 자본의 논리에 따라 어떤 문화권의 목소리가 문제 해결의 주도권을 쥐고 있어서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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