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탈의 계보


넬레 노이하우스, 여름을 삼킨 소녀

  

  "그동안과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그동안 타우누스 시리즈로 범죄 추리 소설을 써오던 작가의 ‘완전히 다른 이야기’란 어떤 것일까. 완전히 다를 수 있는 이야기라는 것은 장르적인 특성을 말하는 것일지 이야기를 말하는 것일지 생각했는데, ‘완전히 다른 이야기’란 보이지 않았다. 여기에 피아와 보덴슈타인이 등장해서 범인을 추리한다면 얘기의 전개는 같아 질 것이다. 그러니까 비슷한 이야기가 될 것이다. 그것도 그럴 것이 신고만 들어갔다면 청소년보호법을 위반한 범죄자들을 찾는 이야기가 될 것이니까. 아니면 시체만 발견된다면.


 이제 나는 그 친구들이 낯설었다. 그들은 축 늘어져서는 한없이 불평하며 예정된 삭막한 미래로 느릿느릿 걸어가고 있었다. 그 미래 역시 축 늘어져 있고 불만스러울 터였다. p98


  나 역시 이 이야기가 낯설지 않다. 미국을 배경으로 한 독일 작가의 소설인데 작가 특유의 추리와 미스터리가 가미되어 있지만 꽤 익숙하다. 방점은 ‘청소년’에 있다. 이 책은 15세 소녀 셰리든의 성장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청소년의 성장 소설이란 늘 방황과 혼란과 반항과 일탈이 상징처럼 따라다닌다. 그리고 그것은 규율에 답답해하고 익숙한 공간을 벗어나고자 하는 욕구 때문이다. “그들은 축 늘어져서는 한없이 불평하며 예정된 삭막한 미래로 느릿느릿 걸어간다”. 덧붙여 가장 힘들어하는 것은 가족의 주는 억압이다. 이 책 속의 셰리든 역시 이 모든 것을 갖췄다. 하나 더 있자면 출생의 비밀이다. 그녀는 자신이 입양되어 온 것을 알고 있고 양엄마는 자신이 하는 모든 일을 못마땅해 한다. 그러니 이 아이의 반항의 이유는 이 모든 것이 골고루 결합된 것이다. 그래서 결국 이 소설 역시도 익숙한 ‘청소년’ 소설의 계보를 따르게 된다.

  작가는 자신이 미국 네브라스카를 여행한 기억을 살려 이 소설을 썼다 한다. 독일 타우누스와는 조금 다른 느낌이 드는 것은 지역적인 차이도 한몫하는 것 같다. 매력적이고 활력적인 이 소녀를 못마땅해 하는 이가 바로 자신의 엄마라면, 그런데 알고 보니 친엄마가 아니라면, 그래서 그렇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이 소녀는 자신을 괴롭히는 엄마와 막내 오빠와의 힘겨루기에서 그나마 아버지와 다른 오빠들의 사랑으로 버티고 있다.

  셰리든의 처음의 일탈은 어찌보면 가벼웠다. 친구들과 사유지에서 음악을 들으며 노는 것 정도. 그것이 보다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고 활동이었다. 그러나 반복된 이 행동으로 경찰에 연행된 이후의 금지된 외출과 좋아하는 음악을 할 수 없게 된 소녀는 더욱 더 강도 높은 일탈과 반항의 욕구를 가지게 된다.

  왜 반항의 형식은 성적인 일탈로 나아가는 걸까. 그것은 반항과 일탈의 틀이 너무나 정해졌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사회문화적인 배경의 차이가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 생각해 보기도 하지만 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다른 나라나 우리나라다 청소년들의 일탈의 궤도는 정해진 듯하다. 어쩌면 그 나이의 셰리단의 성적인 호기심이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도 하게 된다. 사랑의 감정과 성적인 호기심은 다른 것이고 이후 셰리든 역시 그것을 안다. 물론 주체적인 듯이 보이지만 딱히 그렇지도 않아 보이는 셰리든의 격정적인 여름은 그렇게 모든 것이 성적인 일탈로 향해간다. 

  한여름은 일탈과 동의어가 아니다. 여름은 너무 뜨겁고 작열하는 태양 때문에 격정적인 활동에의 욕구를 가지는 것처럼 얘기한다. 하지만 여름은, 그저 여름이다. 다시 돌아올 여름이고 다른 계절로 향해 갈 뿐이다. 작가가 타우누스 시리즈의 넬레 노이하우스였기에 이 책에 대한 ‘관심’과 ‘찬사’가 다르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어쨌든 그 여름을 세 번 삼키고서 출생의 비밀을 알고서 자신은 더한 비밀을 만들어 놓고 셰리단은 이 곳을 떠난다. 그 많은 일들을 겪고서 자유를 찾아 떠나고자 했던 셰리든에게 더 이상의 일탈과 반항은 없게 되는 것일까. 자유를 찾게는 되는 것일까. 청소년들에게, 롤러코스터 같은 감정을 지니고 있는 그 시기의 아이들에게 가족이라는, 부모라는 역할이 미치는 영향력. 그것을 알면서도 부모와 자녀들은 늘 그렇게 대립한다. 결국 모두가 제 감정을 우선하여 여기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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