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우누스 시리즈6. 사악한 늑대


늑대는 억울하다



  시리즈의 여섯 번째다. 나올 때가 되었다. 범죄를 다루는 추리소설이라면 당연 빠지지 않는 이야기, 그 사건이 <사악한 늑대>에 담겨 있다. 제목에서 벌써 어떤 감이 느껴진다. 동화를 연상시키는 제목, 프롤로그의 분위기. 그리고 학대당한 흔적이 온 몸에 가득한 채 강에서 발견된 소녀의 시체. 방송의 힘을 빌렸음에도 시간은 속절없이 흐르고 피해자인 소녀는 여전히 제 이름을 찾지 못한 채 ‘인어공주’로 지칭된다.

  작가의 글쓰기 특징은 이번 책에서도 나타난다. 많은 등장인물이 나타나는 것이다. 차이가 있다면 이전 시리즈에선 용의자가 무수히 많았다면 <사악한 늑대>에선 피해자의 신원을 파악하는 것조차 쉽지 않다. 사건을 해결해야 할 형사들이 능동적으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동안 여러 인물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형사에 의한 용의자로서가 아니라 그냥 등장인물로서다. 결국 이 인물들이 한 지점으로 모아지는 일이 벌어질 것이다. 그것이 무엇이며 언제가 되는지 사건의 크기는 어느 정도인지가 관건이 될 것이다. 

  작가는 <사악한 늑대>를 ‘지금까지 썼던 소설 중 최고의 작품’이라 했다 한다. 형식을 말한 것일까, 스토리를 말한 것일까. 시리즈 다섯 편을 읽은 후 몇 년 만에 <사악한 늑대>를 읽었더니 지루함과 예측가능함이 생겼다. 항상 이 작가의 이야기는 ‘범인’을 찾아내는 것보다 ‘왜’에 더 집중되기에 충분히 범인들이 예상되는 것 같긴 하다. 그리고 대략 ‘왜’의 이유도 가늠할 수 있다. 다만 다단계처럼 이루어지는 범죄의 계보에서 꼭대기에 있는 일의 시초가 되는 이의 ‘왜’는 알 수가 없다. 다른 이들은 그에 의해 길러졌기에 전염되고 그 상황에서 살아가기 위한 방법을 터득한 채 성격이 형성되었다고 하자. 그러면 푸른 수염의 첫 번째 아내가 죽은 이유처럼, 도대체 처음의 이 일을 시작한 이들은 왜 그런 것인가. 단지 성격이 지랄같아서?

  <사악한 늑대>는 아동학대를 다루지만 아동학대 중에서도 여아들에게 주로 해당되는 아동성폭력을 다루고 있다. 변태적이고 비이성적인 경악할 범죄가 혈육에 의해 자행되고 있다는 놀라움은 그것을 혼자서가 아니라 조직적으로 공유하고 있다는 데 대한 경악으로 바뀐다. 제 딸을 제 친구들과 함께 하는 변태적 성행위에 들이미는 권력과 재력을 가진 자의 표피는 미혼모와 아이들을 위한 복지활동을 위한 재단을 운영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그가 운영하는 재단이란 자신의 변태성향을 충족시켜줄 지속적인 아동공급처일 뿐이다. 악은 악을 양성한다. 그가 양육한 버림받고 갈데 없는 아이들은 일찌감치 그의 노예가 되었다가 그 위에 군림한다. 아동포르노와 스너프 사업으로 확장되어 전세계에 조직적으로 움직이고 있는 이 집단이 믿는 것은 그들이 가진 폭력성과 또한 그 험악한 취향에 발을 담그고 있는 재력과 권력을 수두룩 가진 이들이다. 그리하여 그들의 취향은 안정적으로 유지되었고 그들의 끔찍한 범죄는 폭로되지 않으며 오히려 다른 이를 범인으로 둔갑시키는 능력까지 갖추었다.

  작가가 처음부터 의심스럽게 몰아간 이는 이 끔찍한 집단을 폭로하려다 억울하게 아동성범죄자로 몰린다. 그리하여 수감되고 인생이 나락으로 떨어진 채 10여년을 살아온 킬리안 로테문트. 환경이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이라서 그렇다고 한다면 그럼에도 영향을 받지 않는 이들에 대해선 어떻게 말할 것인가.  


겉으로 볼 때는 삶이 많이 바뀌었지만 사람 자체는 변하지 않았다. 비밀스러운 욕망과 꿈, 동경은 그대로였다. 평상시에는 잘 참고 지냈다. 하지만 가끔은 이성보다 내적 열망이 강하게 치고 올라와 그것들을 통제하기 어려울 때가 있었다. p106


  오래도록 그리고 또한 전세계적으로 이 끔찍한 아동포르노 마피아 일당이 검거될 수 있었던 것은 삶이 추락하는 가운데에서도 지킬 것은 지키며 삶을 이어온 이들 덕분이다. 끔찍한 상황, 생명의 위협 속에서도 그것을 이겨내고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애쓰는 킬리안, 한나. 사랑을 위해 제가 살아온 삶의 방식을 버리고 아내를 위해 사악한 집단과 맞선 베른트 프린츨러의 굴복하지 않는 노력이, 그들의 꿈이 이뤄낸 결과이다.

  <사악한 늑대>에서 함께 경악하며 가슴을 쓸어내리는 장면은 역시 아이가 “이제 나쁜 늑대가 죽은 거야? 다시는 나한테 아무 짓도 못하는 거야?”라고 말하는 부분일 것이다. “늑대가 잡아가”라는 말에 무서워하는 순진한 어린 아이들에게 끔찍한 짓을 저지르고 늑대를 이용해서 입다물게 하는 사악한 놈들. 아이들은 왜 그다지도 늑대보다 더 무섭고 사악한 놈들보다 늑대를 무서워하는 것인지.

  끔찍스럽게도 가장 악랄한 놈이 끝까지 살아남은 것은 이 타우누스 시리즈가 계속될 것임을 알리는 것일까, 아니면 아동성폭력이 계속될 것임을 말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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