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우누스 시리즈 4. 백설공주에게 죽음을


쉿! 너만 알고 있어야 돼!


   비밀이 드러나기 위해선 끝까지 비밀을 파헤치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의심’을 가지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비밀’이 만들어져야 한다. 비밀이란 항상 ‘너만 알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미 나는 알고 있는 것이니까 너만 알고 다른 누군가는 모르게 해야 하는 것. ‘너와 나’가 만들어 내는, 꾸미는 음모가 그러니까 비밀이다. 

 <백설공주에게 죽음을> 역시 비밀을 만들어 내는 자와 비밀에서 소외된 자와의 대결이다. 다른 시리즈에 비해 아멜리라는 발랄한 소녀의 등장이 필요했던 것도 ‘비밀’의 소유자인지 아닌지와 관계가 있다. 한번 구덩이를 파고 난 뒤엔 퍼낸 흙으로 전과 같이 구덩이를 메꿀  수 없다. 무엇보다 이전과는 이미 달라져 있는 흙의 색깔이 조화롭지 못하다. 그러니, 더 많은 흙이 필요하다. 파헤친 색깔의 흙을 표면의 흙 색깔로 만들기 위한 처절한 위장의 흙더미들이. 그렇게 비밀은 만들어진 순간, 더 많은 비밀을 생성하며 덩어리로 구덩이로 삶을 밀어버린다. 그럼에도 그 첫 번째 비밀을 감추기 위해 끊임없이 또다른 구덩이를 파헤치며 같은 색의 흙을 찾아 헤맨다.


인생은 그렇게 순식간에 바뀐다. 잘못 디딘 한 걸음, 잘못된 사람과의 잘못된 만남, 그러면 더 이상 돌이킬 수 없게 되는 것이다. p58


  <백설공주에게 죽음을>이 타우누스 시리즈 중에서 가장 열광적인 호응을 얻는 것은 충격의 강도에 있는 것 같다. 타우누스의 공통점은 큰 줄기의 사건으로 둘러쳐 있지만 결국 개인의 욕망, 이기심이 사건의 결정타였고 백설공주에서도 드러난다. 이전에는 권력과 재력가들의 욕망의 문제가 강조되었다고 한다면 백설공주에서는 권력과 재력을 가지지 않은 일상의 이웃들, 너가 그가 그녀가 가하는 이기심이 집단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또한 사건이 발생하고 그 사건의 범인을 찾아가는 것과 달리 이미 사건은 벌어졌고 범인이 형량까지 치러진 상황에서 그가 진범이 아니라는 데서 오는 충격. 진실이 은폐된 채로 억울한 희생자가 생겼다는 데 대한 안타까움과 분노 때문일 것이다. 더구나 그 재판이라는 것이 납득하기 어려운 형태로 흘러갔음을 알게 되어 감정의 이입이 더해진 것이다.

  흑산도 성폭행 사건이나 22명의 여중생 집단 성폭행 사건의 부모들의 반응이 백설공주 속 사건을 대하는 이들의 태도와 같다. 거기서 더 나아가 흙을 파헤치고 덮고 있다는 것이 다른 점이긴 하다. 폐쇄성은 집단의 지리적인 위치가 좌우하는 것이 아니라 심리적인 것이 작용한다는 것을 실감한다. 언제까지 비밀의 섬에 갇혀 있느냐는 ‘너에게만 알려주는 비밀’을 공유할 집단을 언제까지 만드느냐에 달려 있는 듯하다.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지는 죄를 짓더라도 그것이 드러나지 않는 한 생은 변함없이 계속되리라는 잘못된 기대, 너와 같이 남에게 전가하면 될 것 같은 착각은 어리석음일까 욕망일까.

  잘못된 방식으로 잘못을 공유하게 되면 거기서 헤어나올 수 없다. 그래서 언제나 비밀은 만들어지고 생명력을 갖게 된다. 비밀을 파헤치는 것은 그들 집단에 들어갈 수 없는, 들어가지 않은 자들의 몫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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