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과 도덕]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결혼과 도덕
버트런드 러셀 지음, 이순희 옮김 / 사회평론 / 2016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람은 제도를 만들고 제도는 사람의 관념을 지배하고


  시대를 떠나 결혼과 도덕에 대한 절대적인 가치가 있으리라는 것, 그것이 지켜져야 한다는 것이 일반적인 생각일 것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이에 관한 ‘절대적’인 것은 무엇이며, 무엇이어야 할까. 1929년의 사회에서 결혼과 도덕에 대해 생각한 러셀은 ‘절대적’이라 간주되어 온 것에 대해서 의문을 표한다. 그리고 오랫동안 결혼과 도덕에 대한 관점이 달라져 왔으며 왜 달라져야 하는지에 대해 진지하게 말한다. 다양한 방면에서 탁월한 활동으로 업적이 드높은 러셀이 1929년이라는 시대적 혼란의 시기에 다른 무엇보다 결혼제도에 관해 진지하게 고찰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풍요와 낭만의 시대가 아닌 전세계에 우울과 상흔이 휩쓸던 그 시기에. 

  어쩌면 혼란과 위기의 사회를 안정화시킬 수 있는 것은 우선 개인, 가정(가족) 단위의 힘에서 발전될 수 있으리라 여겼을지 모른다. “사랑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인생을 두려워하고, 인생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이미 거의 죽은 사람이나 다름없다(p253)”라고 말하는 러셀이라면 충분히 그런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특히나 러셀이 사회(고대이든 현대이든)는 경제와 가족 또는 성적인 요인이 긴밀하게 얽혀 있다고 본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사회의 발전과 가족제도의 발전이 상호적이며 그렇기에 가족제도에 대한 고찰은 사회적 고찰과도 연계된다. 그러니까 이에 관한 논의는 협의적이라기보다 광의의 의미를 가진 성찰이었다.

  러셀에 따르면 모든 나라의 성 윤리와 제도는 어느 정도 미신과 전통의 영향을 받아 탄생했다. 즉, 꼭 합리적인 형태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분명한 건, 사회의 변화에 따라 제도가 변화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는 것이다. ‘낡은’ 것에 대해서는 수정이 필요하고 잘못된 것에 대해서는 인식을 달리해야 할 필요가 있다. 러셀에게 있어 “사랑은 인간의 삶에서 대단히 중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제도를 만들지만, 분명 제도가 사람의 관념을 형성하는 측면이 있기에 타당치 못한 인습이 어째서 그런 것인지를 밝히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낡은 도덕률을 새로운 도덕률로 교체하는 경우에는, 의식적 사고를 구성하는 인격의 최상층에서만이 아니라, 인격의 모든 구성 부분에서 새로운 도덕률이 수용될 때에만 완벽하게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유년기 내내 낡은 도덕을 접해 온 사람들은 대부분 이렇게 하기가 무척 어렵다. 따라서 유년기부터 새로운 도덕을 배우지 않은 사람은 새로운 도덕에 대해 공정한 판단을 내릴 수 없다(p277).


  그런 점에서 “빵을 굽는 유일한 이유가 사람들이 케이크를 훔치는 것을 막는 데 있다고 주장하는 것과 같다”는 비유를 든 성 바울의 성윤리에 대한 관점은 무엇을 낡은 것으로 보는가를 명확하게 보여준다고 할 것이다. 사랑이라는 이름의 결혼은 마냥 낭만적인 것이 아니며 정신적인 것과 육체적인 것을 포함하는 것이다. 또한 어느 지역의 사례를 보건대 모성이나 부성은 본능적인 것이 아니며 성행위 또한 그렇다고 지적한다. 역사적으로 성윤리가 사랑을 오히려 구속하고 억압하는 측면이 적지 않았다. 특히나 종교가 금욕주의를 강요하며 성은 죄악이라는 인식을 강하게 심어주었다. 하지만 피임법의 발전과 여성해방사상 등의 사회변화에 맞물려 사람들의 인식은 점차로 변화되어 가고 있고 가족제도에서 부모의 역할을 국가가 대신하는 상황도 증가하고 있다.

  사회의 변화에 미신적인 사고로 인한 제도적인 제약이 가해지는 것은 개인의 자유로운 사랑과 결혼을 저해함과 동시에 사회에도 영향을 미친다. 러셀이 자유로운 사랑과 결혼이라고 말하는 것은 성적인 방종과 책임의 부재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러셀은 오히려 ‘자녀출산’이라는 면에서 결혼과 이혼은 더욱 신중해야 한다고 보며, 자녀 출산을 목적으로 결혼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고 남녀가 자식을 낳지 않고 살기로 결정한 경우라면 타인이 간섭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러셀은 당시 린지 판사의 우애결혼compnionate marriage에 동조하는데 이 결혼이 일반적인 결혼과 구별되는 특징은 다음과 같다.


  첫째, 당분간은 아이를 낳을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 가장 편리한 피임 지식을 습득해야 한다. 둘째, 출생한 아이가 없고 아내가 임신한 상태도 아닌 경우에는 합의에 의한 이혼이 가능해야 한다. 셋째, 이혼을 할 경우 아내가 이혼 부양료를 받을 권리가 인정되지 않아야 한다. 이 제도가 법률에 의해서 확립되면, 상당히 많은 젊은이들이 주신제와 같이 난잡한 현재의 상황에서 벗어나, 공동생활을 수반하는 상당히 지속적인 배우자 관계를 맺으리라고 주장한다(p147).


  이러한 주장을 하는 러셀이 생각하는 행복한 결혼이란 과연 어떤 것일까.


행복한 결혼 생활의 정수는 서로 인격을 존중하고, 육체적으로나 지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깊이 있는 친밀감을 유지하는 데 있다. 이런 요건들이 충족될 때 남녀 간의 진지한 사랑은 인간의 모든 체험 가운데서 가장 풍요로운 것이 된다. 이런 사랑은 모든 위대하고 귀중한 것들과 마찬가지로, 그 자체의 도덕을 필요로 하며, 더 큰 것을 위해서 작은 것을 희생할 것을 요구한다. 그러나 이런 희생은 자발적인 것이어야 한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그 희생은 다른 목적을 위해서 사랑의 토대 자체를 파괴하게 될 것이다(p281).


  사소한 부분, 방법이나 인습수준 등에서의 차이는 있을지 모르나 행복한 결혼에 대해서 굳이 견해를 달리한다라고 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러한 기본적인 공감을 위해 필요한 것이 방법적인 측면이다. 러셀이 이미 보편적인 의견에 자신의 견해를 더해 행복한 결혼을 위한 방법을 제시했다면 이제 그 의견에 동의하거나 또다른 의견을 제시하면 될 것이다. 다시 한번 말해 그 방법적인 부분은 다양한 논의를 통해 더욱 확대될 것이다. 그러나 사회의 변화에 맞추어 낡은 ‘제도’의 수정이 필요하리라는 그리고 그 제도에 고착화되어 버린 ‘낡은’ ‘비합리적’ 인습에 수정이 필요하리라는 것 또한 공감하리라 본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